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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제약회사 - 제약회사는 어떻게 의사를 속이고 환자에게 해를 입히는가
벤 골드에이커 지음, 안형식.권민 옮김 / 공존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화이자라는 제약회사는 새로운 뇌수막염 치료제인 트로반을 개발했다.
약을 개발하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 건 필수적인 일,
그런데 그들은 임상시험을 하기 위해 나이지리아로 날아간다.
나이지리아의 뇌수막염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화이자는
한 그룹에는 기존 치료제 (ceftriaxone)를 줬고,
또 다른 그룹에는 새로 개발한 트로반을 준다.
정말 부도덕하게도 화이자는 트로반의 효과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기존 치료제의 용량을 반으로 줄여 환자들에게 투여한다.
트로반이 그다지 좋은 약이 아니어서 트로반 투여군 아이들 100명 중 다섯명이 죽은 건 예상치 못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기존 치료제의 용량을 반만 투여함으로써 원래 살 수 있었던 아이들 중 여섯명이 죽은 건
살인행위라 불러도 괜찮을 듯 싶다.
이들이 나이지리아로 간 것도 임상시험 참가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
그럼에도 화이자는 처음에는 자신들의 행위에 잘못이 없다고 했다가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뒤 합의금을 주고 사태를 종식시킨다.
1996년 벌어진 이 사건에 기초해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콘스탄트 가드너>,
여기서 제약회사는 검증안된 에이즈 치료제를 아프리카 애들을 상대로 실험하고,
그 사실을 알아챈 이들을 죽이는 테러집단으로 나온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는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통해 트로반 사건을 뒤늦게 알고 나니 그 영화가 과장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벤 골드에이커는 <배드 사이언스>에서 부도덕한 제약회사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 비판이 한 챕터에 불과했던 게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아예 책 한권으로 제약회사를 까기로 한다.
그래서 나온 게 <불량 제약회사>,
책이 464쪽으로 두껍고, 온통 약 얘기로 도배돼 있어 책을 선뜻 들기가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하다.
현재까지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가 635로,
거의 안팔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렇긴 해도 이 책이 그냥 이렇게 묻히는 건 좀 안타까운 일이다.
제약회사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부도덕한 존재라는 걸 이 책만큼 잘 말해주는 책은 없으니까.
조폭이 가끔 영화의 소재가 되는 건 조폭의 무식함이 관객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 때문인데,
제약회사가 무서운 이유는 부도덕함과 더불어 좋은 머리까지 가졌다는 점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제약회사들의 전략을 읽다보면 “이렇게 치밀할 수가!”라는 감탄이 적어도 20번은 나온다.
마르시아 앤젤이라는 의사가 쓴 <제약회사는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와 비교할 때
사례는 훨씬 더 풍부하고 구체적이며 그래서 그런지 훨씬 더 생동감이 넘치고 재미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게 우리나라 현실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책이여서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그걸 팔아먹으려고 애쓰는 외국 제약회사들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신약개발보다는 리베이트로 먹고사는 제약회사들이 주를 이뤄서다.
신약개발을 별로 안하니 임상시험을 할 필요가 없고,
그러다보니 외국처럼 비열하지만 치밀한 전략을 짤 이유도 없다.
그러고보면 부도덕함이란 것도 어느 정도 능력이 돼야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일반인들은 빵을 훔쳐서 감옥에 가는 반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천문학적인 액수를 횡령하고도 감옥에 안가지 않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기를 쓰고 높이 되려고 하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