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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 ㅣ 파랑새 사과문고 64
김소연 지음, 김동성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6월
평점 :
지인이 동화책을 보내줬다.
"정말 좋은 책인데, 책 좀 팔리게 도와주세요"란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이랬다.
"흥, 난 냉정한 사람이라고. 게다가 동화라니! 난 천만이 든 겨울왕국도 재미없게 본 사람이야!"
총 세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꽃신>을 읽고 깜짝 놀랐다.
어른인 내가 읽어도 너무 재밌다는 게 놀라자빠진 첫째 이유고,
두번째 이유는 동화책이 애들이 읽기엔 너무 안좋은 내용들이 나오는 것 같아서였다.
예컨대 첫번째 소설인 <꽃신>은 기묘사화에 엮인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그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죄가 없는 사람도 잡아다가 귀양을 보내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멀쩡한 사람이 조작된 증거에 따라 간첩이 되는 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그런 비밀을 애들이 알게 하는 게 좋은 것일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게
어린이물을 만드는 사람들의 사명이었다.
악당은 언제나 망하고, 착하게 살면 언제나 성공한다는 만화나 책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읽던 그런 책과는 차원이 완전히 달랐고,
그래서그런지 매 순간 흥미진진한 상황이 전개된다.
두번째 소설에 나오는 덕님이는 보통 어린이 소설에 나오는 공주와 달리
아주 못생겼다!
다 읽고 나서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갖 음모로 가득찬 곳이라는 걸 어릴 적부터 알려주는 게 좋은 것일까?
그게 맞는 거 같다.
나만 해도 정의가 승리하기는커녕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어렵게 살고,
나쁜 놈들이 승승장구하는 현실을 보면서 어찌나 혼란스러웠던지.
그것보다는 솔직하게 이 세상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이 아이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아 보인다.
이 책을 가리켜 보수 분들은 "동심을 더럽히는 종북.좌파적인 책"이라고 비난하겠지만,
현실을 알려 주고, 그 현실 속에서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좋다고 알려주는 게
구름잡는 정의 타령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본다.
어른도 감동시키는 완성도 높은 동화책은 좀 많이 팔려야 하는데,라면서 맨 앞장을 보니까
이렇게 쓰여 있다.
2008년 6월 1쇄 발행, 2013년 7월 19쇄.
아, 그랬다. 이 책은 그래도 제법 많이 팔렸다.
정의가 이긴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