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xxxx님이 아이패드를 품에서 꺼내는 걸 보고 질문을 던졌다.
"혹시...책을 그전보다 덜 읽는다든지 하는 부작용은 없으신가요?"
그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책읽는 양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거의 안읽게 됐다고.
그때 결심했다. 난 아이패드랑은 절.대.로. 친하게 지내지 않을 거라고.
아직도 폴더폰을 쓰냐는 힐난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사지 않은 것도 그 일환이었다.
실제로 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열심히 책을 읽었고,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를 하는 사람을 비웃었다. "흥, 난 책 읽는다!"
운명의 어느날, 베란다쇼에 나온 클라라와 사진을 찍으려는데,
내 폴더폰을 꺼내는 게 너무나 한심해 보여서,
그 다음날 바로 스마트폰을 샀다.
평소 가졌던 우려대로 내 독서량은 조금 줄었다 (사실은 1/3 가량 줄었다).
거기에 더해 지난 가을쯤엔 생각지도 않게 아이패드가 생겼다.
처음에 난 그 아이패드를 아내가 쓸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아내가 "아이패드를 내가 왜써?"라면서 방치하는 거다.
그게 아까워서 잠자리에서 책 대신 아이패드질을 하기 시작했다.
평상시 일할 때는 딴짓하지 말고, 자기 전에 한꺼번에 딴짓을 하자는 게 내 모토.
하지만 그게 꼭 그렇게 되진 않았다.
평상시 일할 때도 컴퓨터로 딴짓을 원없이 하고,
자기 전에도 아이패드로 인터넷 서핑을 원없이 했다.
어느던 난 손으로 터치하면 넘어가는 화면의 신비로움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러는 사이 내 한달 독서량은 세권 가량으로 떨어져 버렸다 (원래의 30% 수준)
"이래서 내가 아이패드를 호환.마마보다 무섭게 여겼거늘!"
다행히 아이패드를 집에서만 쓰고 있어,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왔다갔다 할 때는 그래도 책을 좀 읽는다.
문제는...서울과 천안아산 사이를 KTX가 너무 빨리 질주한다는 것.
33-37분이면 후다닥 가버리니, 책을 읽어봤자 얼마나 읽겠는가!
다시금 한탄했다.
"서울서 살면서 무궁화로 천안을 출퇴근하던 그때가 봄날이었구나!"
하루 네시간씩 차를 타고 다니면서, 사흘이면 책 한권을 읽었던 그 시절이
내게는 참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때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이북에 대해서 한마다.
언젠가 알라딘에서 e-book이 당첨돼서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를 읽었다.
정유정 작가 하면 종착역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는 스릴 넘치는 구성이 특기,
어려운 책이면 모르겠지만 그 작가의 책이라면 이북도 괜찮을 듯 싶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종이책에 인이 박힌 탓인지,
그렇게 어려운 내용도 아닐 그 책이 이해가 잘 안갔다.
등장인물들이 머리에 선명하게 박히질 않고 겉도는 느낌?
그 사람이 그 사람같고, 저 사람은 이사람 같았다.
종이책이었다면 훨씬 재미있게 읽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결론: 아이패드는 독서에 하등 도움이 안되며,
책읽는 사람에겐 호환.마마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