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잘 쓸 자신이 없어서 리뷰를 안쓰고 있다’는 어느 서재인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나도 그와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그런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구나, 싶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아 리뷰특강을 마련했다. 이 특강은 리뷰에 자신이 없는 분들을 위해 만들었으니, 4대천황을 비롯해서 리뷰 잘쓰시는 분들은 보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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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특강 1: 추리소설 쓰는 법


 

 

 

 

 

 

<살인자들의 섬> 리뷰를 쓰느라 무진장 고생을 했다. 이말을 쓰면 결말을 암시하는 것 같고, 저말도 안되겠고. 고민 끝에 난 <쥬라기공원>, <그리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같이 섬에서 일어난 작품들을 언급하다 끝을 맺었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었다. 다음 글을 보자.

아영엄마
저는 툭하면 스포일러성 리뷰를 쓰는지라 추리소설 리뷰 쓰는 거 포기했습니다.ㅜㅜ - 2005-03-04 02:35 삭제

그렇다. 나뿐 아니라 다들 그런 거다. 심지어 땡스투의 일인자 아영엄마까지도. 추리소설 리뷰는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할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나는 추리소설의 대가 물만두님의 리뷰를 분석하게 되었다. ‘하트잭’이라는 소설에 대해 만두님이 쓴 리뷰다.

[퍼트리샤 콘웰의 세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제목은 <법의관>, 두 번째 제목은 <소설가의 죽음>이었는데 갑자기 세 번째에서 뜬금없어 보이는 제목이 등장했다..]

만두님은 제목을 물고 늘어지며 여덟줄을 쓴다. 콘웰의 다른 두 작품을 읽어야 이럴 수 있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물론 그건 아니다. 책날개에 보면 작가의 이력과 함께 기존 작품들이 나오지 않는가.


다음에 작품분석이 이어진다. 먼저 약간 비판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이 작품은 처음 두 작품보다 작품성에서는 그 다지 돋보이지 않는 작품이다. 사건에서 정치적 연계성이 너무 심화되어 사건 자체에 대한 작가의 초점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마지막 결말도 순식간에 결정 나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어느 정도의 내공이 없으면 쓸 수 없다. 하지만 ‘초점’ ‘정치적 연계성’같이 어려운 말을 섞어서 대충 둘러치면, 누구나 그럴 듯한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까 깠으니 칭찬할 차례.

[스카페타 시리즈가 매력적인 것은 인간관계의 가감 없는 드러냄에 있다....]

만두님처럼 장점을 콕 찍어내지 못할지라도, 되는대로 얘기하면 남들은 그럴듯하게 봐준다. ‘뭔가 있겠지’라고 믿어주는 것, 그게 이 세계의 속성이다.


칭찬을 했으니 사소한 결점을 지적할 차례.

[마지막으로 오타가 있다. '임도'... 읽을 때 인도를 잘못 썼군 했는데 계속 '임도'로 나온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임도'란 말은 없다...]

편집자의 댓글에 의해 오타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사전에도 없는 말을 각주도 없이 쓰는 건 지적되어야 한다.


마지막은 이렇게 맺는다.

[대신 표지가 너무 좋았다...]

결점을 지적하더라도 끝은 칭찬으로 맺어야 한다는 만두님의 배려가 돋보이는 문장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걸 정리를 하자면, 일단 작가와 제목에 대해 언급을 하고, 비판적인 작품분석을 한 뒤 장점을 언급해 주고, 오타와 표지 등 책의 전반적인 상황을 정리해주고 끝내는 것, 그게 추리리뷰를 쓰는 ‘만두법’이다. 여기 어디에 스포일러가 숨어 있는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만두님의 땡스투가 늘 상위권을 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내가 쓰려다 실패한 <살인자들의 섬> 리뷰를 써본다.


먼제 제목 가지고 늘어지기.

[데니스 루헤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미스틱 리버>.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인 <살인자들의 섬>이 좀 뜬금없어 보이긴 하지만, ‘미스틱 리버’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독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되도록 한글을 쓰기로 했단다. 제목처럼 이 사건의 배경은 섬이다. 원제가 ‘shutter island'니 ’셔터 섬‘으로 하는 게 옳겠지만, ’셔터‘가 방범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해 ’살인자들의 섬‘이 된 것]


다음에 비판적 분석.

[사실 이 작품은 전작인 <미스틱 리버>에 비해 작품성에서는 돋보이지 않는 작품이다. 아방가르드적인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 전작에 비해, 이 작품에서는 다다이즘을 빙자한 포스트모던으로 회귀하려는 작가의 엘레강스한 어프로우치가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다]


칭찬할 차례.

[그럼에도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 수호의 파수꾼인 보안관도 사실은 두통이 날 때마다 약을 먹어야 하고, 뭔가 마려운 게 있을 때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 약한 존재인 것이다. 섬에서 벌이는 그들의 사투를 보면서, 우리는 아쉬울 때는 서로 도와야 하는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점 지적.

[중대한 오타가 있다. ‘밥을 흘리다’를 ‘밥을 홀리다’로 기술해 놓은 것. 아니 ‘밥’이 무슨 사람인가, 홀리게? 사소한 실수라고 넘어가기에는 의미의 차이가 너무도 지대하다]


그리고 결말.

[그렇긴 해도 출판사 이름은 참 좋다. ‘밀리언 셀러 클럽’이라니, 비슷한 제목의 영화가 오스카상을 받기까지 한 걸 보면 이름은 정말 잘지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어떤가. 이제 좀 자신감이 생기는가. 배우면 시험을 봐야 하는 법, 일단 추리소설을 읽고 리뷰를 한번씩 써보기 바란다. 모든 사람이 자신있게 리뷰를 쓸 때까지, ‘리뷰 특강’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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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3-0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저에게도 광명이 열렸습니다
이제 저도 마태님의 역서 '추리리뷰제작매뉴얼' 을 충실히 따라서
리뷰를 대량생산함으로 리뷰계의 대부가 될 것임을 굳게 맹세합니다. 꽝!!

stella.K 2005-03-08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글입니다. 추천!

비발~* 2005-03-0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nemuko 2005-03-0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쓰면 되는거군요^^ 계속되는 멋진 특강 기대할께요~~~

urblue 2005-03-08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흐흐..
리뷰쓰기 무진장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저, 마태님의 특강을 열심히 들어야겠습니다.

조선인 2005-03-08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다이즘을 빙자한 포스트모더니즘에 숨넘어가 연신 재채기하고 있습니다. 켁켁켁켁

paviana 2005-03-08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댓글에 취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저도 리뷰나 페이퍼는 자신 없지만 댓글은 좀 낫거든요...저를 알바로 써주세요..
그리고 님에게만 살짝 리뷰쓸 자신이 없다고 한말을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하시다니 ㅠㅠㅠ

물만두 2005-03-08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이 칭찬을 하는겁니까 아닙니까 ㅠ.ㅠ 좋게 받아들이고 음... 경험상 말씀드리자면 추리소설은 줄거리를 쓰다보면 스포일러가 됩니다. 또는 소재나 어떤 주목되는 점이라던가를 콕 집으면 그것도 스포일러에 빠지기 쉽죠. 제 리뷰가 스포일러로 없어졌다는 거 아시죠. 또한 제 리뷰는 여기저기서 스포일러로 많이 언급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뭐라고 하든 나의 길을 가련다식으로 철판을 까는 겁니다. 에고 마태우스님 수고하셨구요. 님이 직접 추리 소설을 읽으시고 글을 남겨 주시와요^^

비로그인 2005-03-0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위.. 스텔라댓글 지망자분께 알립니다.
혹시 살아 오시면서 양심적이다. 착하다. 정직하다. 심지가 곧다. 법 없이 살사람이다. 성실하다...이 중 하나라도 들어 보신일이 있으시면 무조건 탈락입니다. 다른데 알아보셔요

얼굴이 뚜껍다. 생각없이 산다. 이러면 자질이 있는 편이구요
우선 댓글은 본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지론을 확고하게 가지시고 계셔야 됩니다.
자신 있으시면 매주 토요일 뚝섬 테니스장에서 부리님 면접이 있습니다. 잘 찾아 오세요

물만두 2005-03-0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책은 이미 예전에 <남아있는 모든 것>이라는 책으로 출판된 작품이라 차별화를 두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밝힙니다 ㅠ.ㅠ

파란여우 2005-03-0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발견. 4대천왕===>4대천황...히히^^
-이상 감기약 먹고 헤롱대기 시작하는 파란여우-

아영엄마 2005-03-0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댓글이 첫판부터 등장하는군요. 저 말은 진짜 서글픈 고백이어요. 다른 분처럼 내공있는 추리소설 리뷰를 쓸 수 있는 날이 오기 전에는 추리소설 리뷰를 안 쓰리라 마음먹고 있어요. 추천하고 퍼갈께요~

플레져 2005-03-08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종류의 리뷰도 특강 하실 거죠?

panda78 2005-03-0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재밌습니다, 너무 좋아요- 저도 참고해서 추리 리뷰 한편 써봐야겠군요. 흐흐흐.. 엘레강스한 어프로치라니! >ㅂ<

줄리 2005-03-0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도움이 많이 된 특강이었습니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는지라 줄까지 치며 읽었습니다. 컴퓨터에 줄치는것 참 어렵네요^^ 특강료는 추천으로 대신할께요~

soyo12 2005-03-0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리뷰 쓰는 거 만만치 않는데 감사합니다.^.~

ceylontea 2005-03-09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그래도 리뷰는 어렵다구요.. ==3
그래도 추천은 합니다.

마태우스 2005-03-0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추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리뷰 부탁해요!
소요님/님의 말씀을 들으니 글쓴 보람을 느낍니다
dsx님/어머나 특강료를 추천으로! 착한 학생이어요^^
판다님/자주 뵈니 좋잖아요! 알라딘을 버리지 마세요!
새벽별님/기대에 부응해야 할텐데....
숨은아이님/그럼요, 다른 종류도 해야죠!
아영엄마님/추천하고 퍼가는 행동, 정말 아름답습니다^^
여우님/아프지 마세요. 제 맘이 너무 아프잖아요
만두님/칭찬인 거 아시면서 내숭!!!
파비아나님/보세요, 리뷰 자신없는 분은 이렇게나 많답니다. 제 특강을 통해 동반상승 하자구요!
조선인님/호호^^
블루님/지난번 컨소시움 이후 님과 훨씬 친해진 것 같아서 좋습니다. 열심히 특강준비 해야겠어요
네무코님/페이퍼 쓰는 것도 강의할 예정이어요^^
비발님/감탄사인가요?^^
스텔라님/훌륭해서가 아니라 제가 좋아서 추천하신 거 다 압니다
스텔라댓글님/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님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stella.K 2005-03-1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떡하지? 마태님한테 내 마음을 들켜 버렸어...>.<;;

마태우스 2005-03-1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뭘 어떡합니까. 그냥 그렇게 사는 거죠^^

숨은아이 2005-03-14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마태님께선 제가 댓글을 달기도 전에 댓글의 답을 먼저 해주셨네요. 캬캬... >ㅂ<

마태우스 2005-03-14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어머 그러네요! 이상하네. 답글 먼저달고 싶네...^^

2005-04-01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