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가와카미 가즈토 지음, 김해용 옮김 / 박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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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책이 나왔을 때랑 연구가 잘돼서 논문이 나왔을 때랑 언제가 더 기쁘세요?
답: 당연히 논문 나왔을 때가 기쁘죠. 본업은 속일 수가 없나봐요. 하하하.


인터뷰에서 저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내가 했던 대답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린 적은 없지만 내 책이 나올 때쯤 내 목은 십여센티는 족히 길어졌고,
책이 나온 뒤 최소한 한 달간은 붕 떠서 지낸다.
그러니 저 대답은, 과학자로서의 원칙이 그렇다는 것일 뿐
솔직한 내 심정은 아니었다.


가와카미 가즈토.
<조류학자라고 다 새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을 쓴 조류학자다.
그는 희귀한 새를 찾아서 일본의 오지-주로 섬-를 다닌다.
화산폭발로 생긴 오가사와라라는 섬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햇볕을 피할 곳조차 없는 조그만 섬에서 며칠씩 묵기도 하며,

입에 파리가 잔뜩 들어가는 것도 감수하며 새를 쫓는다.
결국 원하는 새를 관찰했을 때, 그간의 고통은 기쁨으로 바뀐다.
이런 가즈토를 보면서 좀 부끄러웠다.
내가 한번이라도 저자와 비슷한, 아니 반 정도의 열정이라도 가진 적이 있었던가 싶어서 말이다.
말로만 기생충의 아버지일 뿐,
실제로는 자식을 버린 패륜애비가 바로 나다.


저자가 존경스러운 점은, 이렇게 힘들게 여기저기를 다니면서도
늘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머는 고스란히 책에 반영돼,
책을 읽는 게 즐거웠다.

사실 이 책의 리뷰를 좀 더 일찍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작년 말에는 많이 바빠서 쓰지 못했고,
시간이 좀 생긴 올해 초엔 책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다.
혹시 잃어버릴까봐 책상 위에 놔뒀고, 작년 말 책의 존재를 내내 확인했건만,
막상 쓰려니 책이 없어진 것이다.
책을 찾는 데 또 며칠의 시간이 흘렀는데,
오늘 또 십여분의 시간을 책을 찾다가 결국은 포기했다.
이게 도대체 리뷰냐, 싶은 글을 리뷰라고 쓰게 된 건 다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리뷰를 올리는 것은
저자의 열정을 다른 독자분들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작년 말,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게 됐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피자집 주인 때문이었는데,
그는 백종원이 내준 숙제-가장 잘 하고 또 빨리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라-조차 하지 않고 손님을 맞는 뻔뻔함을 보여 시청자의 공분을 샀다.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고로케집을 차린 25세 청년도
‘어떻게 저런 정신으로 장사를 하나’ 싶었다.
음식과 과학은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죽도록 열심히 해야 잘될 수 있다는 점은 똑같다.
비단 음식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일 터,
뭔가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가와카미 가즈토가 쓴 이 책을 권한다.
이 조류학자의 마음으로 산다면, 뭘 해도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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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01-26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놀랍게도 책을 찾았다. 책은 내 베개 밑에 있었다. 그게 하필이면 책찾기를 포기한 순간에 나타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雨香 2019-01-2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구스럽습니다만, 이 책을 읽다가 한국에는 *민 이라는 분이 글을 이렇게 재미있게 쓰는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마태우스님이 잘 아시는)

읽는 내내 재미있어 죽을 뻔 했는데, 에피소드 뒤에는 무겁지 않게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을 보며 팬이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태우스 2019-01-26 13:29   좋아요 1 | URL
어머나어머나... 그 *민이라는 자는 저도 잘 아는데요, 이 책 저자에 비하면 몇 수 아래에요!! 암튼 재미나게 읽어주셨다니, 반갑네요. ^^

불사조 2019-02-1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구매해야 겠어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