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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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가 책을 냈다, 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그 바쁜 분이 어떻게 책을 냈을까? 그것도 두권짜리를?

 

그래서 이렇게 단정지었다. “급히 썼겠구나!”

 

책 내용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나처럼 글을 잘쓰려고 지옥훈련을 수년간 했을 리도 없으니까.

 

게다가 머리말을 보면 자신이 전형적인 이과남자며,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마음이 놓였다.

 

뭔가 나보다 못하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어야 되니까.

 

 

하지만 본문 초반부를 읽다가 기절초풍했다.


 

이국종 교수는 이 책을 매우 정성스럽게 썼으며, 그의 글솜씨는 상상이상이었다.

 

예컨대 이국종은 첫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늦은 밤에도 환자들은...몰려왔고, 밤새 환자들이 흘린 붉은 핏물이 수술방 바닥을 적셨다.” (29쪽)

 

그가 구사한 비장한 문체는 책의 내용과 어우러져 독자의 가슴에 기다란 여운을 남긴다.

 

책을 구성하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중증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는 동안 이국종은 두 개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나는 만신창이가 된 환자와의 싸움이고,

 

또 하나는 적자의 온상인 그를 마땅치 않게 바라보는 교내. 교외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자신이 다룬 환자 이야기만 계속했다면 재미가 덜했을 텐데,

 

이국종은 이 두 싸움을 번갈아 배치함으로써 독자가 지루할 틈이 없도록 만든다.

 

 

 

책에 의하면 이국종은 중중외과센터를 그만둘 생각을 했단다.


 

그를 마땅치 않게 보던 보직교수와의 대화 장면.

 

이국종: 저도 더는 힘들게 일하면서 욕만 먹는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이국종은 보직교수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디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인가?” (111쪽)

 

때마침 관심을 가져준 민주당 위원이 아니었다면,

 

중증외과센터의 수호신 이국종은 탄생하지 않았으리라.

 

안타까운 일은 다음이다.

 

지나치게 완벽한 이의 존재는 다른 이의 수수방관을 초래하기 마련,

 

그의 헌신 덕분에 우리나라가 중증외상에 나름의 대비책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났고,

 

정부는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별반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국종이 은퇴하기라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그가 바쁜 와중에도 언론사 인터뷰를 하고, 국회에도 나가면서 격정토로를 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인데,

 

거기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보면 아무래도

 

 

우리나라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중증외상센터가 빠져 있는 모양이다.

 

 

 

삶에서나 외모에서는 물론이고 글에서마저 깔 곳을 찾을 수 없던 차에,

 

난 엉뚱한 곳에서 그보다 앞서는 점을 발견했다.

 

“2006년 시즌에 최하위를 기록한 LG 트윈스를 생각했다.” (104쪽)

 

“2008년에 LG는 이미 가을야구에서 멀어진 상황이었으므로” (115쪽)

 

그랬다. 그는 LG 팬이었다! 그리고 난, 두산 팬이다.

 

한국시리즈에선 실패를 맛봤지만, 두산은 LG에게 올 시즌 15승 1패를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수술방을 나와서 잠시 쉬면서 확인한 LG의 패배소식에 안타까워할 그를 상상하니

 

내년엔 LG가 잘 좀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골든아워>는 정말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이 아주 많이 팔려서 LG가 주지 못한 기쁨을 줬으면 좋겠다.

 

그의 헌신에 대해 대한민국이 이 정도라도 보답하지 않는다면

 

제2의 이국종은 나오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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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1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책으로 웃기시고 또 LG로 웃기시고 아...리스펙트!!!!

마태우스 2018-11-15 01:26   좋아요 0 | URL
LG팬분들에겐 좀 죄송합니다만, 앞서는 게 이거밖에 없는지라....ㅠㅠ

책한엄마 2018-11-15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의문의 LG 1패ㅎ

마태우스 2018-11-15 01:27   좋아요 2 | URL
LG가 내년에 잘하길 빕니다.

박균호 2018-11-15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자니 골든아워를 장바구니에 넣게 됩니다. 역시 선생님 글은 언제나 유쾌합니다 ^^ 그나저나 삼팬인 저로서는 두산이나 엘지나 둘 다 부러운 팀이군요. 의외로 삼성팬도 꽤 오랫동안 고통받는 사람들이랍니다. ㅎㅎ

마태우스 2018-11-16 01:02   좋아요 0 | URL
어마 안녕하세요 박선생님.... 선생님도 야구 좋아하시네요. 근데 삼팬이 고통받았나요. 오승환 이후 프로야구판을 거의 휩쓸다시피했는데요-- 그래도 두산팬이 부럽다, 이런 건 이해하는데 엘지가 부럽다는 건.....엘지는 94년 이후 우승이 없습니다

CREBBP 2018-11-15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도 위트면에서 훌륭한 걸요? 특히 드디어 깔 것이 생겼다는 부분의 배치는 작은 반전에 대한 반전으로 서사면에서도 완벽해요. ㅋ 그런데 이 책은 너무 가슴이 아플까봐 못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읽어야겠네요 ^^

마태우스 2018-11-16 01:03   좋아요 0 | URL
칭찬 감사드려요^^ 이순신장군을 다룬 칼의 노래를 읽는 느낌이어요. 가슴이 아프다기보다, 한 인간의 숭고한 삶에 대해 알게 되더군요. 옷깃을 여미며 읽게 된다는...

stella.K 2018-11-1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약간 의심이 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번 사 봐야겠구나 하고 있는데
마태님이 극찬을 하시니 꼭 봐야겠습니다.

아니, 제목은 그렇게 쓰시고 정작 중요한 주제는 안 쓰십니까?
두산 팬이신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넘 겸손하시고 미스테리하지 않나요?ㅋ

마태우스 2018-11-16 01:05   좋아요 0 | URL
네 후회 안하실걸요. 글구 야구를 아주 좋아하면 말이죠, 팀아일체가 됩니다. 그래서 엘지팬을 안타깝게 여기게 됩니다 그거 말고는 제가 이국종교수보다 앞서는 게 진짜 하나도 없어용. 비교 자체도 안되지만...

2018-11-15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8-11-16 01:05   좋아요 0 | URL
어머나 친히 오셔서 축하까지요. 가슴이 뭉클합니다. 꾸벅

카스피 2018-11-16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태우스님의 위트가 갈수록 농 익어 가는것 같아요^^

마태우스 2019-01-03 06:43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 죄송해요. 작년 12월이 너무 바빴어요ㅠㅠ 암튼 유머는 더 노력할게요. 갈데까지 가려고요^^

coolcat329 2018-11-1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쩜.. 귀여운 유머에 혼자 웃음 짓는 오후입니다.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

마태우스 2019-01-03 06:43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 죄송해요. 읽으셔도 후회 안하실 겁니다.

긴또라이 2018-11-17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국종 같은 신념과 결기가 있는 전문가가 많아야 이나라가 바로 선다.
모두가 선진국으로 가려는 몸살살이를 한다...

마태우스 2019-01-03 06:43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런 분이 많이 나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런 분이 많은 사회보단, 이런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중증환자를 살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더 좋다고 생각해요.

2018-12-06 0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9-01-03 06:41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런 걸 제목낚시라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