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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텔레비전에서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역사 저널, 그날˝같은 교양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재미 위주의 자극적인 방송만이 그 자리를 대신 꿰차게 되었다. ˝개그 콘서트˝의 주요 소재라 할 수 있는 외모 비하 개그가 시청자들의 불쾌함을 산 지는 오래고 최근 ˝런닝맨˝에서는 한 남자 개그맨의 여성혐오적 단어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의 저자 프랭크 퓨레디는 이렇게 대중문화의 질이 점차 낮아지는 현상을 무교양주의시대라고 정의내렸다. 프레디는 전문가의 등장이 진리와 지식 그 자체를 추구하던 지식인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동안 시장과 대립해 왔던 예술이 이제는 대중의 입맛에 맞춰 상업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예술의 상업화는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무런 교훈은 없고 사람들의 눈을 자극하는 화려한 액션과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로 점철한 상업영화가 꾸준히 흥행하는 것이 그 증거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는 서울에 있는 상영관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서점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이제 소설 대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즐겨 본다.
무교양주의는 문화의 획일화와 어느정도 관련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와 지식을 접할 수 없을 때 대중은 무지해진다. 그러므로 도서관, 박물관과 같은 공공시설은 많은 사람들이 지식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대중들에게 친절히 다가가야만 한다. 요즘에는 도서관이 만남의 장과 헬스장, 컴퓨터실의 역할을 동시에 해냄으로써 지식과 시민들의 거리감을 좁혀주고 있다. 대중시설이 문화와 예술이 소수의 것만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프레디는 바로 이러한 도구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도서관과 박물관, 전시회장이 일종의 치료시설로 변하면서 지식의 질이 변질됐다는 것이다. 또한 프레디는 현대인들을 위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쉬운 용어로 풀이하고 각색하는 것 또한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예술의 본래 의미를 훼손 시킨다는 명목에서다. 프레디의 생각은 예술을 예술로써만 봐야한다는 의견과 맞닿아있다. 그러나 예술이 인간 정신을 고취시키고 자아를 성장시킨다는 점에서 본래 예술이란 예술 그 자체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좀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 각색되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
무교양주의는 프레디의 주장처럼 대중을 위해 훼손된 지식의 질 때문에 도래하거나 지식과 예술을 소수만이 독점해서 도래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는 전자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과 문화를 누릴 수 있게 됐지만 우리가 쉽게 얻는 지식들이 과연 허위사실인지 아닌지 조차 알기 힘들다. 그러나 대중들이 현재 몸 담고 있는 사회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프레디가 그토록 경계하던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과 토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중들이 지식인의 도움을 구세주처럼 필요로하는 무지의 덩어리라면 ˝개그 콘서트˝의 외모 비하 개그에 아무런 반발도 없었어야 하고 ˝런닝맨˝에 출연한 한 개그맨의 혐오 발언에 그토록 많은 비판이 쏟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은 우리가 두려움에 떨만큼 무교양적이지도 않고 더 큰 힘을 발할 수 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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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리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밑바탕에는 언제나 자유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국민들은 신체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를 갖는다. 하지만 자유라는 말이 그릇된 행동을 정당화 시키고 다수의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에까지 사용되고 있어 요즘의 자유는 또 하나의 막강한 권력처럼 보인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따르면 자유라는 단어 뒤에 숨어 한 말과 행동들도 법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자유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내 자유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행동들이 사실은 진리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때 종교의 탄압을 받았던 지동설처럼 말이다. 우리는 사실 논리없이 그저 내 기호에 맞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밀어내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중에 반하는 새로운 의견과 시도들이 무시 당해오던 선례는 굉장히 많다. 우리가 소수의 의견을 계속 짓누르게 될 경우 사회는 진보하지 못하고 정체되기만 할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사회는 적극 장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이라면 끊임없이 충돌해 보되, 존중이 결여되서는 안 될 것이고 그들이 소수라는 점을 스스로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개개인의 개성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벗어나 사회, 즉 집단과 개인과의 관계로 나아갈 수록 존중받기 힘들어 진다. 당장 학교만 해도 개인의 성격과 지성을 존중하는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하나의 우상을 만들어 놓고 많은 사람들이 그 우상처럼 되기를 바란다. 마치 사회가 바라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이고 우리는 그 한 명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기 자신도 되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대체 무슨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정답을 정해 놓고 다양한 사람을 획일화 시키려는 계획은 우리 자신을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썩게 만드는 것과도 같다. 자유라는 권력은 이렇게 부당한 사회에 맞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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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널 지켜줄게. 과거로부터, 너를,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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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나고 맨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이다. 예전처럼 꾸준히 책을 읽는 생활을 시작하는 데에 이 책을 발판삼기로 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이웃들과 오베의 사랑스러움에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까웠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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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도 기대도 없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시간은 더욱 촉박해질 거고 머리는 온갖 쓸모없는 지식들로 채워지는 반면 가슴은 황폐해질 거란 예감만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무엇보다 책 읽을 시간을 빼앗긴게 가장 짜증이 났다. 시간을 뺏긴 사람에게 지루한 책은 사치가 돼버렸다. 내 눈은 조금이라도 더 재밌는 책을 찾으려 한다. 학교는 내 자유시간만 잡아 먹는게 아니라 독서 습관까지 망쳐놓았다.
˝풀꽃도 꽃이다˝를 읽으면서 화가 났다. 살인적인 교육 체제, 학생들간의 서열, 무한 경쟁시대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책과 함께 분노 한 것이다. 그와 별개로 ˝꽃다워야 할 소녀˝라든지 ˝여자가 입을 딱 벌리고 하품하는 것은 가장 무교양한 짓이라고 질색을 하셨다.˝와 같은 문장들, 외국인을 좋아하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내용에 화가 나기도 했다. 평소에도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고 소재도 괜찮은 책인데 일순간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 교육을 비판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만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꽤나 묘한 느낌이다. 바쁘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볼 만큼 가치있는 책이었냐고 묻는다면 차라리 다른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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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6-2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흘러도 계속 젊은 생각을 갖고 사는게 꽤 어려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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