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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2
가라타니 고진 지음, 최혜수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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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분야도 문외한이지만 특히 경제 분야는 용어도 생소하고 이론도 다소 복잡한 듯하여 잘 읽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분야를 고르게 읽자는 생각으로 이 책을 들었다. 경제에 관한 세계사이다. 생산양식을 경제적 하부구조의 측면에서 본 마르크스에 반해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이라는 경제적 하부구조 측면에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새롭게 보고자 했다.

증여와 답례, 약탈과 재분배, 상품교환 등등 교환양식을 가지고 세계 시스템의 변화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나에게는 한 번 읽어서는 이해하는 데 무리가 있는 듯하다. 이 책을 통해서 세계경제의 흐름과 변화의 측면을 알 수 있었다. 경제에 관한 서적에좀 더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1장.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자>
#19
마르크스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물질대사로 봤습니다. 그 말을 직역하면 물질교환입니다. 즉,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교환'을 본 것입니다.

#25
러시아혁명 후의 마르크스주의자가 농업의 집단화를 꾀했을 때 농민 측의 저항이 별로 없었던 것은, 그들에게 토지를 사유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농민들은 이전에 차르에게 종속되었던 것처럼, 스탈린에게 종속되었습니다.

#34
일본에서 헌법 9조를 실현하고 군비를 방기하라는 운동을 한다고 칩시다. 그리고 그 결정을 유엔에서 공표합니다. 이에 대해 다른 나라는 일본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선택은 다른 나라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면 유엔도 바뀌고, 그래서 다른 나라들도 바뀝니다. 이런 식으로, 한 나라 안에서의 대항운동이 다른 나라의 대항운동과 고립. 분단되는 일 없이 연대합니다. 제가 ‘세계 동시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이미지입니다.


<2장. 자본주의의 끝, 어소시에이셔니즘의 시작>
#58
모세의 신, 즉 유대교는 보편 종교입니다. 그것은 국가와 민족의 종교가 아니라 개개인이 그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며, 유대교에 귀의한 사람이 유대인으로 간주될 뿐입니다.​


<3장. 생산 지점 투쟁에서 소비자운동으로>
어소시에이션이즘(associationism)은 "상품교환 원리가 존재하는 도시적 공간에서 국가나 공동체의 구속을 거부함과 동시에 공동체에 있던 '호수성'을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려는 운동"이다. 여기서 호수성(互酬性)이란 호혜성(互惠性)으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증여를 받은 쪽이 준 쪽에 뭔가를 갚음[酬]으로써, 상호 관계가 갱신,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는 가족관계에서의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에 나타나는 '절대적이고 강제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출판사 제공-


<4장. 교환양식론의 사정>
#163
정주 혁명이 시작된 시점 이후 세 개의 교환양식이 본격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주 이전, 즉 수렵채집 유동민 단계에도 세 종류의 교환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정주하면 다른 집단과의 적대 상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증여의 호수(혼인을 포함)로 우호 상태를 만듭니다. 그것이 씨족사회지요. 따라서 세 가지 교환 타입은 옛날부터 있어왔지만 함께 비로소 '교환양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장. 유동의 자유가 평등을 초래한다>
#221
수렵채집 유동민의 경우 획득한 것을 공동 기탁하는 시스템이 있스니다. 이것은 그들이 유동적이므로 자연히 이루어집니다. 유동적인 생활에서는 축적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다 같이 소비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빈부의 격차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유도인의 단계에서 자유와 평등을 초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6장. 협동조합과 우노 경제학>
#274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에서는 각자가 노동자이며 동시에 경영자입니다. 거기에는 임금노동자가 없고, 자본가도 없습니다. 노동력 상품을 지양한다는 것은 자본계기업을 국영화하는 게 아니라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주식회사가 자본주의의 '소극적인 지양'이며 협동조합은 그것의 '적극적인 지양'이라고 말합니다.


<7장. 이소노미아, 혹은 민주주의 갱신>
#304
앞으로, 자본주의는 원리적으로는 끝나겠지만 쉬이 쇠퇴할 리가 없고, 다른 자본주의국가가 쇠퇴하더라도 자기 나라는 더 살아남으려고 악착같이 저항하면서, 경쟁이 더더욱 극심해지겠지요. 이것은, 전쟁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제1차 대전도 그랬지만, 전쟁은 생각지도 못한 데서 일어납니다. 따라서 전쟁을 저지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법 9조라고 하면 일본 국내만의 문제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에는 칸트의 이념이 들어있으며, 세계사적으로 보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세계사의 구조>를 통해 하고자 한 것이, 바로 그것을 명확히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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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 - 고수들의 미니멀 독서법
도이 에이지 지음, 이자영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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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보다는 제목에 너무 무게가 실렸다. 한 줄이상의 밑줄은 그을 수 있었다. ~~^^

나는 지금까지 경제경영서를 2만 권 남짓 읽었다. 이런 경험을통해 책 한 권에 100개의 밑줄을 긋는 것보다 100권의 책에서 하나의 밑줄을 발견하는 것이현실적이며 얻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 하나의 밑줄이라도 그을 수 있다면 책값은 충분히 회수하고도 남는다. ㅡ들어가며ㅡ

<1장 독서에 대한 오해와 진실>​
1.나는 서평을 쓸 때 내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를 설명한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나의 변화에 대해 쓴다. 단지 내용을 요약해 적는 것은 무의미하다.
2.다소 거부감이 들지만 어딘지 모르게 신경 쓰이는 문장을 만났을 때 두 눈 딱 감고 밑줄을 그어 보기 바란다.
3.'고유명사'가 많이 들어간 책을 고른다.
4.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쓴 책을 고른다.

<2장 빨리 읽지 말고 천천히 읽어라>​
1.천천히 읽는다. 그리고 이해한다. 이해가 깊어지면 책을 읽는 속도는 저절로 빨라진다.

<3장 전체를 보지 말고 부분을 보자>​
1.작은 목표를 먼저 인식시키고 그것을 확실히 해냄으로써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전략이다. 이것이 바로 '부분 연습'의 첫걸음이고 성공으로 가는 입구이다.

<4장 결과를 보지 말고 원인을 보자>​
1.'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읽어라.

<5장 같음을 따르지 말고 다름을 만들자>​
1.좋은 경제 경영서에는 반드시 '저자의 필터'가 있다.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들은 견해를 바꾸고 입력된 내용을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킬 필터를 손에 넣을 수 있다.

<6장 내용을 읽지 말고 배경을 읽자>​
1.아마존에서 재직했던 4년 중, 에디터로 일했던 2년 동안 1,000편가량의 서평을 썼다.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아마존에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중 가장 큰 핵심은 '컴퓨터는 결과 분석은 할 수 있어도 그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만들어 낼 수 없다'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원인을 만들어 내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가치'라는 뜻이다.

<7장 승자들은 책에서 교양과 지혜를 얻는다>​
1.성공의 열쇠는 '재능'이 아니라 '연습'이 쥐고 있다고 한다. 좋은 환경과 좋은 코치가 있고, 싫증 내지 않고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면 재능은 꽃을 피운다. 천재에 대한 다른 연구도 대개 같은 결론을 내린다. 답은 간단하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이 잘하게 된다.
2.다양한 책을 읽고 밑줄 친 좋은 내용들이 내 안에 축적되어 가면 연쇄 독서의 즐거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책에서 얻은 메시지나 지혜가 한 권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책으로 파생되어 지식이 확장되는 즐거움 말이다.
3.'고전'을 읽으면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
4.밑줄을 그으면 그을수록 더 좋은 곳에 밑줄을 긋게 된다.



<내가 그은 44개의 밑줄>​
1.모든 사람, 사물, 사실은 다른 무수한 사람, 사물, 사실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고 있다. 무엇을 한가운데 둘지를 정하는 것은 생각을 하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한가운데만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풍부한 이미지를 만들 수 없다. <야마모토 다카시의 '생각의 책'>

2.1만 시간의 법칙은 남들보다 뛰어남을 나타내는 지표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필요한 것은 1만 시간의 목적성 훈련이다. <매슈 사이드의 '비재'>

3.'작게 생각하라' 이 광고는 폭스바겐의 포지션을 극명하게 나타내며 폭스바겐 광고 역사상 가장 큰 효과를 거두었다. 클수록 좋다고 여기는 잠재 고객의 사고에 도전한 것이다. <잭 트라우트의 '포지셔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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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6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1-26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경제경영서를 2만 권 이상 읽었다는 말에 바로 계산기 꺼내 눌러봤습니다. 하루 한 권 읽어도 55년 읽었단 얘기네요. 경제경영서가 무척 허접한 책이라는 걸 인정해도 하루 한 권 정도 읽을 정도라니... ^^
그렇게 읽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 저자 인생이 안타깝습니다. ^^
 
내 몸 사용설명서 : TV조선 대표 건강 프로그램 - 한국인에게 맞는 한국식 건강 비법
TV조선 내 몸 사용설명서 제작팀 지음, 이경희.김시완 감수 / 베가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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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방송되는 내 몸 사용설명서란 책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읽어보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참고할 만한 것이 한두 개 있는 듯하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지나치거나 검증이 안된 것은 도리어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매일 조금씩 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음식 섭취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20년에는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해볼 계획이다. 이웃님들도 책을 오랫동안 읽고 싶으시다면 건강이 필수.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보아요~~^^


<1장 뇌>
1.음식: 양파, 초석잠, 천마, 호두, 해바라기씨, 시금치, 브로콜리, 검은콩, 꽁치, 굴, 백합
2.지압: 합곡혈, 곡지혈, 태충혈, 풍부혈
3.운동: 108배 유산소운동

<2장 간>
1.음식: 감태, 홍합
2.지압: 기문혈, 족삼리 혈, 양릉천, 태충혈,
3.약초: 벌나무, 헛개나무, 우슬,

<3장 대장>
1.음식: 고구마, 토마토, 양배추, 다시마
2.장마사지: 시계방향으로 쓸어 주기

<4장 폐>
1. 음식: 미나리, 비단풀
2.두드리기: 승모근

<5장 호르몬>
1.음식: 마카, 마늘, 굴, 더덕, 장어, 양배추
2.지압: 남성(오금), 여성(엄지발가락)

<6장 눈>
1.약초: 결명자
2.지압: 승읍셜, 동자료, 정명혈, 양백혈
3.온찜질

<7장 신장>
1.음식: 돼지고기 사태살, 소고기 목심, 대구, 닭가슴살, 달걀
2.지압: 신수혈, 음릉천, 용천혈

​<8장 척추>
1.운동: 팔꿈치 돌리기 10분, 발가락 세우기

​<9장 두피>
1.머리감기: 일주일 1-2회 베이킹 소다 물로 머리를 감는다.

<10장 손>
1.지압: 손바닥 전체를 지압한다.

​<11장 발>
1.지압: 발바닥과 발 등을 지압한다.

<12장 다이어트>
1.음식: 팽이버섯, 코코넛오일, 언두부
2.운동: 양손을 뒤로해서 어깨를 최대한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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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인간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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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인간'이란 그 순간이 지나면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인가? 

작가는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평범한 직장인을 통해 현대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주변에 보면 차분하고 자기주장이 약한 사람들이 괄시를 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소설에서 O는 자기의 역할을 잘 소화해 내고 있다.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직장상사로 부터 멸시를 받고 동료로 부터도 소외당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양이 가족들에게도 무시를 당한다. 그나마 그녀의 곁을 지켜준 Q마저도 자기 남자친구와의 사랑으로 O에서 마음이 떠난다. 자기의 마음을 알 것이라는 회사의 전임자를 방문해보니 그녀 역시 인간의 모습이 아님을 본다.

​나무 젓가락을 쪼개고 몸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감으로서 주인공 O는 사회로 부터 고립되어 자기의 존재가 해체됨으로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부재하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불안, 고독을 한 인물을 통해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 


• 119
O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증상이 처음 나타났던 때, 어쩌면 처음으로 자각했던 때를 되짚어봤다. 예전 회사에 다니던 때니까 넉달전인가, 월급은 삼개월치가 밀려 있었고 월급날이 지나면 빈 책상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만둘 거라고 미리 귀띔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퇴근길에 짤막한 인사를 나누는 것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O는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카드에 의지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 125
그즈음부터 뒷목과 어깨가 유난히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목을 돌리거나 기지개를 켤 때면 우두둑, 요란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일주일이 넘도록 이력서를 확인하지 않는 곳도 많았다. 왜 구인광고를 냈을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싶었다. 두달 반 동안 딱 한군데의 회사에 가서 면접을 봤다. 자신이 이력서를 보낸 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인지 O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 134
남자친구가 출장에서 돌아올 날이 가까워지자 Q는 O에게 현관문 열쇠를 내준 걸 후회했다. 게다가 남자친구는 하루 일찍 서울에 돌아왔고 도착하자마자 Q의 집으로 달려왔다. O에게는 다음 날 저녁에 늦게 오면 좋겠다고 말해둔 참이었다.

• 139
O는 중지로 전임자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지금 와줄 수 있나요?라고 묻는 전임자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주소룰 받아적기가 쉽지 않았다.(중략) 그때, 젤리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더니 눈으로 짐작되는 어떤 시선이 O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이봐요, 라고 부르는 순간 젤리 덩어리는 물처럼 확 퍼져버렷다. O의 안에서도 뭔가가 왈칵 쏟아졌다.

• 140
오늘 저녁 Q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O를 돌려보내는 기념으로 함께 고기를 구워먹으며 회포를 풀 생각이었다. O가 그렇게 부스러지는 건 잘 챙겨먹질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먹고 마시며 그동안의 서먹함과 어색함, 퉁명스러움을 다 풀어버리고 싶었다.

• 141
저녁 먹자, 하고 어깨를 짚는데 O가 와르르 부서져내렸다. 고양이를 쫓아냈어, 라는 말도 입안에서 그대로 부스러졌다. Q는 자신의 손바닥과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O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O의 부스러기가 손바닥에 조금 남아 있었다. 그걸 보며 Q는 아마도 좀전까지 O였을 부스러기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야 할지 빗자루로 쓸어담아야 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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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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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균씨가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한 달이나 지나서 알았다." 라고 소설이 시작된다. 다이어트나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점심을 거르지 않는다. 첫 대목부터 나의 관심이 증폭되었다. 식당, 쉰 떡을 먹는 것, 대학에서의 시험 등등 조중균씨의 '자아 지켜내기'가 소설 속에서 생생히 그려낸 김금희 작가의 필력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나는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와 "나는 나태하지 않았습니다." 대목에서 그 회사 부장에게 전화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 지금도 이 사회, 이 나라가 지탱되고 있는 것은 조 씨처럼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맡은 일들을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 씨의 시 '지나간 세계'를 읽고 싶은 밤이다.

• 45
조중균씨가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한 달이나 지나서 알았다. 내가 무딘 탓도 있겠지만 구내식당 테이블이 육 인용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다 못 앉으니까 여기 없으면 다른 자리에 있겠지 생각했던 것이다.


• 48
조중균씨 자리에는 거의 컴퓨터 크기에 버금가는 국어사전이 있었고 그 사전의 한 대목을 펼쳐 읽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원고가 앞에 없어도 그러는 걸 보면 그냥 펼쳐서 읽는 것이었다. 듣기로는 아주 오랫동안 사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 걸로 아는데 사전을 또 읽다니, 기괴한 취미였다.


• 49
조중균씨가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외톨이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업무시간에도 휴대전화 벨은 자주 울렸고 그러면 조중균씨는 복도 계단에 서서 소곤소곤 다정하게 통화하곤 했다.


• 52
“점심 안 먹는 게 몸 가볍긴 해요. 건강 챙기시는구나.”
“아닙니다. 먹고 싶은데 참습니다.”
그때 거울이 있다면 내 표정이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다.
“왜요? 왜 먹고 싶은데 참아요?”
“식대, 아끼려고 그럽니다.”
“무슨 식대를 아껴요? 회사에서 운영하는 식당이고 무료잖아요.”
“무료 아닙니다. 안 먹는다고 하면 돌려줍니다. 구만 육천원.”



• 61
학생 때 조중균씨는 데모를 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 며칠 만에 풀려났는데 형사가 목욕이나 하고 들어가라면서 오천원을 셔츠 주머니에 꽂아주었다는 것이다. 조중균씨는 그게 참을 수 없이 모욕적이었다고 말했다. 목욕하고 들어가란다고 모욕을 느끼다니. 아무튼 그 뒤로 조중균씨는 셔츠 주머니에 늘 돈을 가지고 다녔다. 그때 그 형사와 마주치면 이자까지 해서 갚을 생각으로 말이다.


• 69
조중균씨는 교정 기한을 한 달이나 넘겨서 회사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직무 유기, 태만이라는 명목으로 해고되었다. 소송이나 일인 시위를 벌일지도 모른다며 회사는 내게 경위서도 받았다.


• 71
거기에는 육 인용 테이블이 없었다. 복수를 잊어버린 조중균씨도 없고 빈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조중균도 없었다. 나태한 조중균씨도 없고 내 사인이 적힌 수첩도 다행히, 아주 다행히 없었다. 문장과 시와 드라마는있지만 이름이 없는 세계, 내가 간신히 기억하는 한, 그것이 바로 조중균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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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1-2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록별님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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