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올해의 문제소설 - 현대 문학교수 350명이 뽑은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 / 푸른사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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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읽는 독서모임 선정도서이었다.
12편중 이번에 읽은 작품은 김봉곤님의 <시절과 기분>.
예전에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많았었다. 그러나 현재는 다소 희석되고 이해가 된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미진이 남아있다.

​주인공인 게이는 ‘정체화과정‘이전에 사귀었던 혜인과 다시 만나 옛 시절의 기분을 헤아리고 현재 사귀고 있는
해준과의 기분사이에 널뛰기하는 심정을 읽는다.
군데 군데 다소 생소한 단어들이 나와 새로웠다.
또한 섬세한 심리묘사가 특히 돋보였다.

요즘 커밍아웃에 대한 주제가 많이 거론된다.
이 작품을 읽고 성소수자 권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짧은 글 속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한 굵직한 문장들을 써내려간 김봉곤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219.11.21.목



해인에게서 사진과 문자가 전송되어 왔을 때, 공소시효가 지나 원고인을 맞닥뜨린 사람이 과연 이런 심정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응당 벌받고 싶은 마음 충만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벌할 사람이 없는, 죄책감을 느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제 나조차 모르겠는 그런 애매하고 찝찌름한 기분.
p.72

다음날 해인은 평소보다 더 후줄근한 차림으로 도서관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중략) 이건 명백해, 백퍼야, 저 머리띠가 조금만 더 고급이었어도 이건 사랑이 아니었을걸? 나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 대신 혜인의 손을 붙잡고 열람실을 뛰쳐나왔다.
p.87

˝질투한 거야?˝ ˝아니 첨엔 괘씸하다가 나중엔 섭섭하다가 질투도 좀 하다가 나중에는 다 말았다.˝ ˝잘했다.˝ ˝잘하긴 뭘 잘해? 올라가서는 맨날 보자고 말만 하고.˝ ˝너 결혼식 안 간 거 때문에 이러는구나? 그건 내가 설명.....˝
˝아니.˝ ˝그럼 워 때문에?˝ ˝니는 니가 기다리는 것만 기다릴 줄 알잖아.˝ 선문답 같은 말이었지만, 어쩌면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그냥 던지는 건지도 몰랐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혜인의 그 말에 어딘가 꿰뚫린 기분이었다.
p.89

무엇보다도 고향을 떠난 것이 결정적인 변곡점이었다. 나는 상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촌스러운 내 옷들과 함께 내 말투를 버렸다. (중략) 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고,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고, 화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없어지는 쪽을 택했다. 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
p.91

고요한 밤 풍경 속, 나는 오다 카즈마사의 베스트 앨범을 재생하고 눈을 감았다. 또 한번 내가 될 시간이었고, 나의 농도를 회복하기에 음악은 제법 효과적일 것이었다. 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답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열차가 멈추기 전까지 이 진동이, 흔들림이 계속 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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