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자주 즐겨 보지 않는 편이고(거의 독서가 어려운 상황에서 스트레스 해소용이다), 읽고나면 빠르게 소비하듯 중고로 판매하는 편이다. 뭔가 남지 않는다는 느낌에 그런 편인데 간혹 남기고 싶은 소설도 있곤 하다. 오래전 읽었던 천명관의 고래(책을 좀처럼 보지 않는 우리 아내도 이걸 한숨에 읽었으며 무려 3번을 봤다), 그리고 (작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과학소설이었던 '멀리가는 이야기', 2차원 세계를 재밌게 다룬 '플랫'이란 소설이 그랬다. 이번엔 '디디의 우산'을 읽었는데 이것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소설엔 매력이 있다. 표현력이 부족한 내가 말하기 어려운 득톡한 분위기와 문체와 그에 따른 인물 표현력, 머릿속에 풍경을 나도 모르게 그리게하는 묘사력, 그리고 사회를 교묘히 다루는 솜씨다. 연작소설이라 표지에 써있기에 이전 작과 연결이 되나 싶어 처음엔 아차싶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책에 있는 두 개의 소설이 접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연작인듯하다. 접점은 사회적 사건들이다. 박근혜의 탄핵, 세월호 사건, 명박산성 등 지난 민주주의 파괴의 10년이 두 소설의 접점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티를 전혀 내지 않으며 실제로고 그렇지만 그냥 보면 이 책은 사회적 사건을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더욱 매력이 있었다.

 디디의 우산은 제목이 좀 그랬다. 난 왠지 한국이나 일본 소설에서 자국인을 영어명칭으로 표현하는게 맘에 들지 않는다. 굳이 그럴필요가 있을까? 독특한 인물 표현과 다른 느낌을 주는 효과는 충분해 보이지만 정작 서구인들이 이런 방법을 좀처럼 쓰지 않는다는 면에서 그들 중심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워낙 매력적이라 이런 생각은 곧 사라졌고, dd는 정감있게 느껴졌다. 

 소설 dd의 우산엔 서툰 솜씨로 가족을 힘들게한 아버지를 둔 d라는 남자와 어려서 그와 학교에 남아 낙뢰가 떨어진 사건을 함께한 dd란 여자가 나온다. 둘은 동창회서 만나 끌리고 함께 동거한다. 결혼은 아니었다. d는 시끄러운 목공소에서 자랐고, 가난했으며 소음에 시달리며 살았다. 민감해져서인지 둔감해져서인지 자꾸 사물에서 온도가 느껴졌고, 그게 싫었다. 하지만 dd를 다시 만나고서 그런건 아무렇지 않아졌다. 

 둘다 돈이 없기에 강서구의 목2동 반지하 빌라에 자리잡았다. 서로의 직장과 동등한 거리. 창밖으론 주인집 할매가 키우는 화단과 양귀비가 보였고, 하필 그 창가가 응달인지라 동네 할매들이 연인의 창가에 상시 모여 수다를 떨었다. 그들은 그게 미안했는지 떡이며 식혜며 먹을걸 주곤했다. 달착지근한 연애소설을 기대했거만 불과 십여페이지만에 퇴근길에 dd는 죽어버린다. 버스사고였는데 하필 정말 운이 없어 창밖으로 dd는 튕겨나갔다. d는 폐인처럼 몇달을 월세도 내지 않은체 방안에만 칩거한다. 그리고 그토록 사랑했을터인데 dd의 짐도 모두 그녀의 가족에게 보낸다. 그리고 세운상가 인근에서 택배일을 시작한다.

 남들이 며칠이면 떨어져나가는 일을 하며 d는 생기를 찾아간다. 그리고 쇠락한 세운상가에 전축수리점에서 백만원자리 전축을 사 dd가 즐겨든던 LP판을 듣곤한다. 그것도 자기가 사는 고시원에서. 소설은 전반적으로 d가 일과 dd가 듣던 음반을 통해 치유되어가는 과정이 나온다. 인물의 심리묘사가 독특한데, 무척 만연체로 묘사하며 실제로 사람이 그렇듯이 심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왔다갔다하며 모순된다. 이런 면에 소설을 좀 읽기 힘들게 만들면서도 재밌는 부분이었다.

 연작으로 나오는 다음 소설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다. 이번엔 서수경과 김소영, 김소리, 정진원이 나온다. 시점은 김소영이고 서수경과 김소영은 오래전 중학교부터 알던 사이로 육상대회서 만났다. 그리고 대학에서 운동권활동을 하며 둘은 서로 만나고 이끌려 동거인이 된다. 김소리는 김소영의 여동생이고 정진원은 김소리의 아들, 즉 김소영의 조카다.

 김소영의 시점이면서도 동생을 김소영, 다섯살 배기 조카를 진원이도 아닌 정진영, 연인을 서수경이라 표현하면서부터 독특함이 느껴진다. 인물 표현과 심리묘사는 디디의 우산과 매우 다르다. 순차적이며 쉽게 파악된다. 하지만 사회적 사건이 많고 둘은 이 사건에 항상 참여하고 공감하고 담백하게 분노하며 이를 다루는 점이 차이점이다. 

 공통점은 이들 역시 디디의 우산에서처럼 강서구에 거주한다는 점이고 세운상가라는 공간을 앞소설과 공유한다는 것과 박근혜 탄핵이라는 큰 사건을 다룬다는 점이다.

 분위기가 제법 다른 다 연작소설을 교묘하게 이은 점이 이 책의 재미였다. 둘다 분위기와 느낌이 무척 독특하다는 면도 재미다. 책의 굿즈로 책에도 잘 나오지 않는 d의 선곡음악 cd가 담겨있었는데 비오는 날 이 책과 더불어 다시 읽는다면 많이 좋을 듯 하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뒷북소녀 2019-02-22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는 최근에 a부터 h까지 등장하는 소설을 읽었는데 뭔가 몰입이 안되는 느낌이더라구요. 지금 읽고 있는데, d와 dd를 어떤 이름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카알벨루치 2019-02-22 14:27   좋아요 2 | URL
dd는 <아무도 아닌>에서 나왔죠 ~지금 읽는중인데 팍팍 진도가 안나가는군요 ㅎ

닷슈 2019-02-22 14:30   좋아요 2 | URL
저도 읽으며 같은 고민을 했죠

카알벨루치 2019-02-22 14:33   좋아요 2 | URL
작가가 몰입 안되게 만들어놓았네요 고얀 황정은님! 미워할 수 없는!!!ㅜㅜㅋ

닷슈 2019-02-22 14:39   좋아요 1 | URL
네 몰입이 안되는 면이 있어요

뒷북소녀 2019-02-22 14:41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 어쩐지. 낯설지 않다 했어요. 저도 아무도 아닌 읽었는데 도통 기억이ㅠㅠ

카알벨루치 2019-02-22 14:46   좋아요 1 | URL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는 어쩔수 없는 부분이니 여기저기 산재할수도 있다 싶습니다 더군다나 이전의 쓴 소설을 토대로 한 소설이니 더 그러할듯 싶기도...암튼 작가들은 다들 대단한듯 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