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선언 - 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 걷기, 2002~2018 서울 선언 1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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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서울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매우 자유로운 오늘날에 이 같은 경계구분은 무의미 할수도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 구분에 민감하다. 특히, 수도서울은 그 행정경계가 분명함에도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여긴 서울이지만 사실상 서울이 아니고 저긴 서울은 아니지만 사실상 서울로 봐야한다는 둥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거기엔 문화적 역사적 동기도 있을테고 요즘 같으면 부동산 관련한 경제적 욕망이 가장 강할 것이다.

 여러 시각중 저자는 진정한 서울을 사대문 안으로만 보려는 가장 편협한 시각을 가장 경계한다. 여기엔 다섯가지 편견이 포함되는데 조선 후기 중심주의, 사대문 안 중심주의, 왕족양반 중심주의, 주자학 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들이 그것들이다. 이런 시각은 그 외의 다른 지역들과 중심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역사와 현실에서 소외시킨다. 구체적 지역은 사대문 밖, 1936년[영등포일대], 1963년[강남을 포함한 남부, 서부, 북부일대] 이후 확장한 대경성과 대서울에 편입된 지역과 과거 한성백제시대와 현대 한국 시대의 서울, 계급이 중인, 평민, 노비인 사람들의 유적과 유물들이 그것들이다.

 저자는 이런 편협한 서울주의에 맞서 대서울주의를 제창한다. 그래서 책제목이 서울 선언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으로 지난 20년간 서울을 바라보고 갖게된 단상과 사진들을 통해 이 책을 엮었다. 그래서 이 책의 거의 1/3은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은 언제 어디를 찍든 항상 밝고 아름답게 의도된 사진이 아니라 그저 무심하게 대상을 담아낸 사진들이다. 그래서 극히 어둡기도 하고 예쁘지도 않으며 보이는 그대로 추하다. 하지만 그래서 있는 그대로이며 서울에 속한 일반 평민들의 모습이 잘 담겨져있다.

 저자가 서울을 걷기 시작한 이유는 일반사람들이 주인으로 살아가는 서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구한 역사에도 유물과 유적이 상당히 부족한 편인데 많은 한국인들은 이를 한국전쟁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잦은 외침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는 상당히 사실이지만 저자에 의하면 해방과 전쟁후 우리 스스로 근대화와 개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중심에서 쫓아내는 과정에서 상당수 유적과 유물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 수는 우리 아닌 다른 세력에 의해 잃어버린 것 이상일 수도 있다. 강남과 강동구 일대를 개발하면서 수 많은 백제 왕족과 귀족들의 유물이 파괴되었고 은평구를 개발하며 발견된 상당수의 조선시대 평민 묘들이 그대도 파괴되었다.

 파괴한 것은 오래된 유물만은 아니다. 사실 서울은 지난 100여넌간 조선의 왕도였으며 근대화로 빠르게 변모하였고, 이후 일본제국의 제3도시 경성이었으며 해방후 대한민국의 수도로써 빠르게 변화했다. 짧긴 하여도 이같은 변화로 다층적인 유적과 건축물들이 남아있을터인데 이에 대한 보전과 관리 역시 무척이나 소홀하다. 이것만 잘 되었어도 서울이 지금처럼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보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유적이나 유물을 무조건 보존하고 복원하려는 주의의 사람은 아니다. 저자는 우리의 문화유적이 파괴되고 일대가 개발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단 그렇게 되어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생겨난 것은 그대로 바라보기를 원한다. 풍납토성 일대가 개발되어 풍납토성과 현대적 아파트, 상가가 공존하는 기이한 형태를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의 궁을 복원한다고 과거 필요해 의해서 생겨난 도로를 다시 끊는다던가 삶의 터전이었던 일대를 부수고 궁으로 환원하는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은 조선을 과거 일반 백성의 나라가 아닌 왕과 지배층의 나라로 보는 시각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배층의 의도가 담겨져 왜곡된 형태로 남겨진 네 공간을 비판한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북촌, 서대문형무소, 선감학원들이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정부로 부터 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곳이지만 충청, 전라, 경상도의 한옥형태만을 복원했고 여기서 조선지배층만을 조선으로 여기고 이를 남기려는 의도를 지적한다. 북촌에 대해서는 과거 평민들의 마을이었음에도 현재는 마치 양반계층들의 집이 남아있는 것처럼 왜곡된 부분을 지적한다. 서대문형무소는 독립투사를 고문하고 투옥한 일제의 잘못만을 기억한체 1987년까지 이곳이 운용되며 독재정권에 의한 민주주의 투사를 재판하고 투옥하며 사법살인까지 한 곳이라는 기억이 지워진 것을 비판한다. 선감학원은 전혀 몰랐던 곳인데 안산지역의 한 섬에 존재한 곳으로 경기도가 운용하고 지역의 품행이 불량하거나 아니면 멀쩡한 아이들을 부모가 있음에도 집단으로 가두어 수용한 곳이다. 당연히 아이들의 의문사도 많았으며 국가가 자행한 폭력의 상징같은 곳이다. 이곳을 기리는 안내문은 있지만 지극히 피상적이며 잘못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점등을 저자는 모종의 의도가 있다고 파악한다.

 위와 같은 공간들은 현재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소수자들을 일반 시민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면서 선비나 양반 사대부 같은 소수의 남성지배자들이 조선시대부터 현대한국에 이르는 역사를 주도했고 이로 인해 이들이 여전히 현재의 한국사회를 이끌어 갈 권리가 있다는 의도의 세계관을 제시하는 곳들이라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전체는 아니지만 서울의 여러지역을 탐색하고 글을 남겼다. 저자는 자신도 그랬다지만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이 사실상 슬럼가에서 생활하는 것과 다름 없는 수준에 놓여있으면서도 자신들이 그러한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마치 일반 중산층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을 지적한다. 아무래도 그런 상태에선 집권층에 대한 비판이나 현실개선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일것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한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도 아니고 권력과 사람이 집결하고 문화와 자본의 중심이자 사람들의 욕망이 가장 결집하는 그런 곳도 아니다. 그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그들이 주인으로서 자신이 살았던 흔적과 기록을 남겨야 하는 공간, 단지 그런 것이며 그런 것이 누군가에 의해 왜곡되거나 파괴되어서는 안되는 곳, 그런 곳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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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0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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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2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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