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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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이 좋아하는 것.

"속도"

"바다"

"자정"

"모든 화려한 것"

"모든 어두운 것"

"자신을 잃게 만드는 것"

"고로 자신을 찾게 만드는 것"

"파티"

어쩌면 베일도?

_p68

사강을 신경질나게 하지만

독자인 나를 만족시켜 주는 것.

"아, 나도 안다.

내가 다시 하찮은 주제에 빠졌다는 것을.

진짜 문제라고는 없는,

드라마 같은 가벼운 세계.

'돈이 중요하지 않은'

상상과 공상의 세계."

_p56

​----------------------------

『마음의 푸른 상흔』은 독특하다.

사강이 쓰고 있는 소설과

사강의 삶의 이야기가

교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에세이와 소설의 요상스런 콜라보다.

작가로 이름을 알린지 십팔년.

사강도 어느 덧 서른다섯 살이 되었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젊어 보이지만

마음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음을 자각한다.

사랑 때문에 가슴 저린 일도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일도

같은 앨범을 열 번쯤 되풀이해서 듣거나

자연의 축복을 한껏 들이키는 아침 같은 건

아주 요원해진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사강은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끔찍해한다.

환갑에 마약 복용으로 체포되어

자기 파괴의 권리를 주장했던 사강에게도

나이듦은 의연하기 어려운 문제였는가 보다.

쓰는 일에 대해서

읽는 일에 대해서

스타작가 혹은 스캔들 작가로서

평가받는 일에 대해서

젊은 부르주아 여성으로 사는 일에 관해

사강은 시시콜콜히 늘어놓는다.

중구난방 널을 뛰는 주제에도

잔뜩 귀기울이는 건 모든 얘기가 재미있어서.

"마음이 내킬 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렇게 해서 넉넉하게 사는

내 불행한 운명을 생각하면

울음을 터트리고 싶다."

_p79

"늘 나를 유혹했던 건

내 삶을 불사르는 것,

술을 마시고,

나를 잊고,

취하는 것이었다.

터무니없고 무용한 이 놀음이

나를 즐겁게 한다."

_p70


에세이와 번갈아 등장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흥미롭다.

명랑함을 최고의 배경으로,

아름답고 잘생긴 것을 최고의 무기로,

평생을 남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엘레오노르와 세바스티앵 남매는

사강의 여느 작품 속 인물들처럼

기이하고 매혹적이다.

부유한 유럽 귀족

혹은 돈 많은 미국 재벌들의 삶에

일정시간 기생하는 것으로

삶을 유지하는 베짱이.

엘레오노르와 세바스티앵은

애완 고양이 내지는 애인처럼 돌봐줄

물주를 찾아 돈이 떨어질 때마다 방랑한다.

남매의 그물은 언제까지고 튼튼할 것 같았지만

곧 나이 마흔, 두 사람의 아름다움도 저물고 있다.

무해한 꽃뱀 혹은 제비의 삶이 끝나는 날에

엘레오노르는 그리고 세바스티앵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토록 한량인데

이토록 서로에게 애틋한 남매라니.

역시나 사강의 작품은 판타지라니까.

작품이 궁금하다면

<스웨덴의 성>을 찾으시고

번역물을 찾게 된다면 연락 좀.

나는 못찾았다😢

+ 마약에 대한 사강의 가치관이

두 페이지에 걸쳐 등장한다.

한 때 사강은 마약하는 이들을 보며

슬픔을 느꼈다.

"그 영혼을 잘 돌보지 않으면

어느 날 숨이 턱에 차 은총을 구하는

영혼의 상흔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흔은,

분명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_p139

+ 작고 뚱뚱하고 자신감 없는

반 밀렘 남매의 친구 로베르 베시.

친구들과는 달리 파리에서

사회적 성공을 성취한 성실한 일꾼.

그러나 공항으로 마중 나오는 사람도

사치스러운 공간을 향유할 연인도 없는

(그 연인은 현재 엘레오노르의 품속에 있다!)

외톨박이는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따라서 지옥이다.

그리고 그는 지독히도 혼자다."

_p160

로브레 베시의 운명을 미리 알려드리자면,

"로베르 베시는 그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남아 있던 알약을, 그것도 어렵게 삼켰다.

우연히도 양은 딱 죽을 만큼이었다.

가끔 추리소설에 나오는 표현처럼

그는 자기 자신과 부딪혔다.

삶에 부딪히고 그 삶을 넘어가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꽤 시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승마장에서 멋지고 혈기 왕성한 말이

울타리에 부딪힐 때가 있다.

그때 아예 일어나지 못하거나

일어났더라도 힘겨워하면

수의사가 끝을 내준다.

로베르 베시는 멋지지도 않았고

혈기 왕성하지도 않았으며

수의사로 없었던 셈이다."

_p171

사강은 죽음이 결코

승리는 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로베르 베시는 아마 꽤 편안했을 것이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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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소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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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나는 강렬한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넘쳐흐르는 육체적 직관. 언젠가는 내가 죽게 될 거라는, 크롬으로 된 이 전축 가장자리에 내 손이 더 이상 올려지지 않을 거라는, 내 눈 속에 이 햇빛을 더는 담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_p11

"사는 것, 사실 그것은 가능한 만족스럽기 위해 채비를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쉽지 않다."_p19

"절반의 연극 속에서 사는 모든 사람처럼, 나도 나에 의해 쓰인 연극만을 나 혼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p39

"난 이게 멋지다고 생각되는 걸요. 이런 가느다란 선들로 이루어진 두 개의 근육을 갖기 위해 그 모든 밤, 그 모든 고장, 그 모든 얼굴이 필요했잖아요. 당신은 이것들을 쟁취한 거에요. 그것 때문에 활력 있어 보이고요.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나는 이것들이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하고, 사람의 마음을 끈다고 생각해요. 주름 없는 매끈한 얼굴은 무서워요." _p67

"말하자면, 우리는 기가 꺾인 채 파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꽤 기분 좋았다. 왜냐하면 우리 두 사람 모두 기가 꺾였고, 권태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상대방에게 매달릴 필요도 생겼던 것이다. 나와 같은 상태인 상대방에게."_p135

"나는 우리가 이 조그만 모험을 잘 치러냈다고, 우리는 정말로 문명화되고 합리적인 성인들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나 자신에 대해 일종의 분노와 함께 끔찍이도 굴욕적인 기분을 느꼈다."_p136


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다. 젊은 여자애가 남자친구의 외삼촌과 사랑에 빠진다. 젊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애라고 말하는 이유는 늙은남자와 늙은남자의 아내가 도미니크를 '내 가여운 아기, 내 귀여운 아기, 내 가엾고 착한 아기'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최초에는 열렬한 감정이 아니었으나 가랑비에 옷 젖듯 도미니크는 늙은남자, 슬픈 지식인, 처음 만난 자리에서 조카의 여자친구를 단숨에 유혹하고 마는 뤽을 원하게 된다. 뤽은 말한다. 자신에게는 아내, 프랑수아즈보다 중요한 존재는 없다고. 그러나 너와 연애는 하고 싶다고. 늙은남자의 염치없음을 어떻게 매력으로 느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도미니크는 괴랄하게도 그 순간 그와의 연애를 결심한다.

"내가 프랑수아즈에게 돌아간 후엔 넌 어떤 위험을 무릅쓰게 될까? 나에게 집착하고, 괴로워하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하지만 지루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거야. 너는 더 많이 사랑할 거고, 아무 일도 없는 것보다는 더 행복했다가 더 불행해질 거야."_p82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던 사강. 나를 파괴하기엔 너무 겁이 많고 남을 파괴하기엔 구시대적이고 초보적인 윤리관의 독자에겐 사강을 닮은 것처럼 보이는 도미니크의 『어떤 미소』가 시작부터 끝까지 얼떨떨하게 읽힌다. 특히나 프랑수아즈의 존재가 그렇다. 뤽의 아내는 막장의 파도에 올라타려던 남자와 여자를 잔잔히 이끌어 항구에 정박시킨다. 외투를 사입히고 식사에 초대하고 여행을 함께 하며 도미니크를 딸처럼 예뻐했던 프랑수아즈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도미니크의 머리카락 한 줌 쥐어뜯지 않고 외려 이 어린애를 가여워하고 더는 젊지 않은 육체를 아주 조금 한탄하다가 도미니크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남편과 내가 너를 행복한 표정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며 미안해하고 조금쯤 웃어 보인다. 설령 그 말과 미소가 백프로 진심은 아닐지라도 도미니크와 뤽의 비극적 시그널은 그 순간 막장의 의의를 잃는다. 다 지나갈, 진정하고 보면 별 것도 아닐, 인생의 작은 고장, 훗날 얼굴의 선 하나로 남게 될 그저 그런 일. 그걸 깨달은 어느 아침 도미니크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난다는 한 편의 성장기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혼자라는 것. 나는 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혼자, 혼자라고. 그러나 결국 그게 어떻단 말인가? 나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이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였다. 얼굴을 찌푸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_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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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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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죽음을 닮았다. 사랑이 사랑을 닮은 것처럼." _「누워 있는 남자」 조금 이상한 감상인가 싶지만 『길모퉁이 카페』에 실린 19개의 단편소설들이 내게는 모조리 판타지 소설처럼 읽혔다. 소설 속 그 어떤 사랑이나 작별도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아서. 어쩌면 이다지고 기이하고 괴이쩍고 요상하고 흥미롭고 매력적인 동시에 재미난 남자들과 여자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 그지 없다. 각종의 충동들이 생성되고 부딪히고 잔여하고 소멸하는 과정과 결과가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판.타.지. 취향일지 몰랐던 곳에서 발견한 꿀단지에 배부르게 읽고 곰처럼 쓴다. (책은 무척이나 섬세한데 평범한 독자의 글발로는 따라갈 수 없어!)

"그가 군에 입대한 건 순전히 그녀 때문이었고 일부러 죽음을 자처한 것도 그녀 때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무관심, 그녀의 냉정함은 그가 품은 커다란 사랑을 놓고 보면 그의 죽음 외에는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없으며, 인간의 따뜻함이 무엇인지 언젠가 이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_「다섯 번의 딴전」 와이프가 나한테 애정이 없다고 죽기를 결심한 젊은 남편의 유언이다. 어찌나 절절한지 보통의 소설 같으면야 심경의 변화를 겪은 아내의 모습을 기대해 볼 법도 하다. 사강은 아니지만. 아내의 행보는 더할나위 없이 과격해져서 재혼, 다시 재혼, 바람의 연속으로 흐르다 권총 자살에 이르는데 죽음을 결심하는 이유도, 죽음에 앞서 벌이는 행동도 비현실적인 동시에 매우 환상적(?)이다. 금기도 혐오도 불안도 없는 극강의 자유. 사강이 꿈꿨던 삶일까?

"마르크랑은 다른 연애랑 다를 것 없어. 아무것도 과장하지마. 인생은 흘러가니까."_「어느 저녁」 절친한 친구랑 아내가 바람이 나고 그걸 알게 된 날 내 손에 총이 들려있어도 그게 뭐? 남편의 불륜 현장을 평소 불쌍하게 여기던 친구와 목격하게 됐지만 평상심! 평정심! 바람 까짓 불륜녀 너 뭐 돼?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려고 탑승한 기차의 화장실에 갇히고 나니 결혼할 결심이 선다. 결혼에 갇히는 일, 화장실에 갇히는 일, 공통점이 뭐길래? 나이 많은 여자 돈 때문에 만나는 제비에게 반한다. 사람들이 거진 줄 알고 줄줄이 다가와 돈을 쥐어준다. 죽음은 난데없이 이마의 정중앙을 들이받는다. 나는 불치병에 걸렸는데 아내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실은 나도 그리워하는 여자가 따로 있는 이런 막장 괜찮잖아. 인생은 흘러가니까. 과장하지 말자고 사강이 얘기하는 거 리뷰로 쓰면서도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정리하다보니 어째 판타지가 아닌 미스테리 같지만. 짤막짤막하게 봐도 정말 재미나지 않은가.

"머리 위에서 살랑거리는 줄기들과 함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_「누워있는 남자」 한바탕 울어제껴도 좋을 상황에서도 무심하고 무탈한 인물들을 보고 싶다면, 센치함으로 홍수날 것 같은 아침에도 사는 게 참 우습다는 역설로 사뿐한 반전을 맞고 싶다면, 발칙하고 맹랑한 전개에 따귀라도 맞은 듯이 놀라고 싶고, 지리멸렬하고 아득한 감정에 지쳐있다면 사강이 개업한 "길모퉁이 카페"의 문을 열어보자. 이름 붙이기 애매한 모든 눅눅한 마음들이 사강의 냉소적인 입김 한 방에 훅! 날아가 버릴테니까. 그렇다고 플라타너스에 돌진하진 말고.

+ 19편에 옮긴이의 말까지 다해도 247페이지. 초초단편이라는 말인데 어떤 소설도 얘깃거리가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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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장 스토리콜렉터 100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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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철철 칼 푹푹 쑤시는 류.

신체 절단하고 훼손하는 류.

식인하는 류.

이걸 상세하게 기술하는 류.

꿈에 나올까봐 무서워서 잘 못봐요.

『악의 심장』은 표지에서부터

피가 줄줄이라 완전 뜨악했어요.

그냥 살인마도 아니고

사람 피부 수집가라니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본격 하드코어 스릴러잖아요.

나 어떡해ㅠㅠ

내가 이 책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글썽글썽한 눈으로 독서 시작했는데

왜죠?

왜 이렇게 뒤가 궁금하죠?

왜 이렇게 재미있죠?

나 이런 거 잘 못보는데?

그랬는데요.

다 읽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순식간에.

흠뻑 빠져서요.

실은 재밌으면 취향이고 뭐고

다 없어지는 그런 독자였던 겁니다.


==========


완전 미친놈이에요.

트렁크에서 발견된 시체가 끔찍합니다.

사지 없이 두 명분의 머리만 발견됐는데

눈과 치아를 뽑고 혀를 자르고

얼굴 가죽을 죄 뜯어놨어요.

우연한 교통 사고 덕분에 시체가 노출되며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침착하기가 역시 사이코패스다워요.

FBI에 이관되어 조사를 받는 중에도

입을 꾹 닫고 버티던 놈이

조사관들 머리에 뚜껑이 열릴 때쯤

딱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로버트 헌터."

LA 경찰국의 형사인 로버트 헌터는

하와이 휴가의 꿈을 접고 기꺼이

용의자를 만나러 출발해요.

FBI가 내민 사진 속의 그를

단번에 알아봤거든요.

예일대 동문이자 룸메이트.

전공까지 범죄심리학으로 동일해서

밤새 토론하고 운동하고 술마시며

우정을 나눴던 친구 루시엔을요.

루시엔은 박사 학위를 밟던 도중

연상의 여인에게 빠져들었고

그녀를 통해 마약을 공급받으며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간의 경위를 설명합니다.

마약중독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범죄조직에 한 발을 걸친 채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 중이라구요.

차량을 운반하라는 지시를 받고 움직였을 뿐

사람은 죽인 적이 없다는 루시엔의 말을

로버트는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그가 거짓말을 할 때의 어떤 특징 같은 것을

로버트는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FBI는 믿을 수 없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너에게만 말할 거야.

내 누명을 벗겨줘."

루시엔이 배달한 차가 한두대가

아니었다는 말이 결정타였어요.

피해자가 단 둘 뿐일리 없다는 추측,

연쇄살인마에 대한 추적이 되리라는 예측에

로버트와 FBI 특수요원 테일러는

황급히 루시엔의 집을 수색하지만

돌아온 건 강렬한 배신감이었어요.

루시엔의 집에 걸려있는 다양한 액자.

유난히 익숙한 그림.

로버트, 루시엔과 함께 삼총사라 불리웠던

수전의 팔에 있던 타투가 거기 있었어요.

루시엔이 벌인 최초의 살해 사건 피해자가

다름 아닌 수전이었던 겁니다.

루시엔 이 새끼가 처음 로버트를 만났을 때

수전의 타투 얘기를 꺼내며

학창 시절을 주절주절 늘어놓은 건

긴장감을 풀기 위한 회피행위가 아니라

로버트가! 결단코!

그 액자를 알아보게 만들 의도였다는 거.

루시엔 진짜 완전 미친놈아ㅠㅠ

한 명, 두 명,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

그리고 계속.

스스로 소시오패스임을 깨닫고

그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

범죄 심리학을 전공했던 게

루시엔에겐 되려 기폭제가 됐어요.

수전 이후 25년에 걸쳐 사람을 죽인 루시엔.

피해자들 중에 로버트의 약혼녀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폭로하며 로버트의 분노에 불을 붙여요.

로버트는 눈이 시뻘개져서

사건에서 빠지려고 하지만

루시엔은 피해자들의 위치를 빌미로

로버트에게 계속된 대화를 요구합니다.

로버트의 과거를 고백하게 만들고

로버트가 아픔을 숨기려 거짓말을 하면

심리적 응징을 가하면서요.

꿍꿍이 속이 있는 게 분명한데

그게 뭔지 감이 잡힐 듯 말 듯

책 밖에서 독자는 안달이 나구요.

로버트가 자제력을 잃게 될까봐 조마조마해집니다.

최후의 피해자이자 아.직.은 생존자인

메들린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궁금해

루시엔의 자백에 겁을 내면서도

눈 질끈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끝까지 다 읽을 수 밖에 없었어요.

나야 장하다!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책이라는데

왠지 나머지 권수들도

모두 출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독자도 재미로 설득한 책이니까요.

북로드의 100번째 스토리 콜렉터.

그에 걸맞는 흥미진진함을 갖춘 책 『악의 심장』에

여러분도 도전장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심장 꼭 붙들고 읽는 거 잊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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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박애진 외 지음 / 사계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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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진 『깊고 푸른』

임태운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김이환 『밤의 도시』

정명섭 『부활 행성』

김성희 『흥부는 답을 알고 있다』

사계절 출판사의

SF 앤솔로지 작품집이다.

고전의 SF적 해석이란 주제로

총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익숙한 듯 참신"

"구멍 없는 착실"

"재미가 확실"

단편집이나 중편집에서

가장 기대했던 작가의 작품이

최고로 좋았던 적이 없다.

한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든

여러 작가의 앤솔로지든

모조리 맘에 드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고도 생각해 왔다.

근데 그 힘든 걸 이 책이 해냈다.

한 편 한 편이

다 소중해.

재밌어.

사랑스럽다.

심봉사 눈 뜨게 하겠다고

공양미 삼백수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몸을 던졌던 청이는

인당수 광산에서 캐낸 부품으로

기계팔 기계다리를 분해하고

수리하는 기술자가 됐다.

조선 시대의 청이도

멸망한 지구의 청이도

감탄스럴만큼 용감무쌍.

넌 참 멋져.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가

앤솔로지 제목이 된 이유가 있었다.

스케일도 재미도 제일 크다.

욕망에 충실한 생활로

육신을 충실히 망가뜨린 용왕.

망가진 몸은 육지의 클론으로 교체하는데

그 중 한 명이 코닐리오다.

동해 용궁으로 코닐리오를 초대하러 간

안드로이드 타루타루가.

버킷 리스트를 이루어주면

조용히 따라나서겠다는 코닐리오의 말에

그녀의 모험에 협조한다.

코릴리오의 버킷리스트의 의미는 감동이었고

동해 용왕과의 한 판 승부는 속시원하다.

싱싱한 간만큼 싱싱한 재미.

용감하고 똑똑한 여주는 언제나 좋아!

떡 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외치던

호랑이는 겁 많은 호랑이 외계인이 됐다.

기계 귀신이 나타났다며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는 뒷모습이 짠해.

해님 달님 오누이는 사라지고

해가 없는 도시의 여자아이와

여자가 없는 도시의 남자아이로 만나

풋풋한 우정을 나누는 중.

꽤 귀여워>_<

우주비행사가 된 장화와 홍련.

계모 레이아나 허 이사의 함정에 빠져

실종된 언니 장화를 찾아 홍련은

부활행성으로 떠난다.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의 그곳에서

홍련은 엄마와 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이 즈음에서 생각.

뭐야 주인공이 전부 여자네?

설마 흥부도 거시기 떼고 여자 된 거 아냐???

"흥부는 답을 알고 있다" 냉큼 펼치니....

다행이다.

그건 아니었다.

나란 독자 가끔 이상한 상상에 빠지는 독자.

근데 이 단편도 충분히 이상하다.

흥부 웬일이야.

완전 사기꾼 다 됐다.

"부자는 노력하지 않습니다, 과학을 합니다."

흥부의 과학을 만나면

물은 마시기만 해도 살 빠지는 고마워수가 되고

주식은 수익률 1200퍼센트 고공행진에

한달 만에 내 명의의 집까지 생긴다?

흥부 박 터지는 소리가 와르르르르.

국민 빌런 놀부의 흥부 까는 이야기인데

물이 내게 줄 효능을 생각하지 말고

내가 물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할 때라는 뜬금 수질지킴이

작가님의 후기에 반성과 웃음이 함께 했다.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에로 시작하지 않고

멀고 먼 어느 미래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에도

고전 속 인물들이 무척이나 어울린다.

앤솔로지 2편, 3편도 기대하게 만드는

넘 맘에 들었던 단편소설집❤ 추천!

​+ 사계절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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