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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토끼 식당 차림표 : 6시 20분의 고기감자조림 눈토끼 식당 차림표
고미나토 유우키 지음, 박유미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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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월 5일 15시. 1대째 사장님이 돌아가시고 거의 반 년만에 눈토기 식당이 문을 열었다. 함박눈이 펄펄, 입김이 뿌옇게 일어나는 겨울의 한낮에 2대째 사장이 된 다이키가 티끌 한 점 없이 새하얀 포렴을 격자문 앞에 내건다. 이로써 장사 준비 완료! 대망의 첫번째 손님은??

에게, 고양이잖아?

어딘지 거대하고 무뚝뚝하니 귀염성 없는 길고양이에게 다이키는 대구 토막을 삶아 건낸다. 찹찹냠냠 맛있게 먹고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길을 떠나는 고양이. 그런데 이상하다. 고양이가 다녀간 뒤로 고양이에게 열쇠뭉치를 빼앗겨 가게 앞까지 쫓아오게 되었다는 눈사람 여자와 눈에 온통 나자빠진 모양새의 롱코트 신사와 그 밖으로 처음 보는 손님들이 줄줄이 가게를 찾는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피리 부는 고양이? 고양이에 홀린 듯 찾아오고 발견하게 되는 "단품 요리 눈토끼 식당"에서 벌어지는 인연과 사건 사고들! 엄마를 잃고서 식욕을 잃어버린 아오이와 아버지의 푸딩가게를 박차고 나가 경쟁가게 파티쉐가 되어 돌아온 렌, 섬인 고향을 떠나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살아보려는 힘내라 청춘 미케양, 망해버린 식당의 종업원으로 건너건너의 눈토끼 식당을 시샘하는 치사토씨, 무엇보다 할머니의 눈토끼 식당을 이어 받아 아름다운 손으로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담백한 그이 다이키의 이야기가 그날그날의 일품요리가 되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소란스러웠던 일상을 맛있게 익혀준다.

어제 오늘 연달아 음식 소설을 읽은 탓인지 아침부터 허기가 져서 주섬주섬 식빵을 뜯었다. 포솜포솜 야들야들하게 혀에서 녹는 고기감자조림, 1대 주인의 비법이 가득 담긴 감자 샐러드, 매실장아찌를 품은 예쁘게 빚은 주먹밥, 신선한 가지랑 호박과 파프리카에 고기를 가득 넣고 끓인 여름채소카레, 수제 고구마쨈을 바른 식빵, 육즙이 느껴지는 닭튀김에 고양이 무사시도 탐을 낼만큼 맛있는 푸딩의 맛을 식빵 한 장에 고스란히 얹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침이 꼴깍. 눈 앞에 없어도 맛이 느껴지는 것 같은 요리들에 마음을 녹이며 오늘은 냉장고를 가득 비울 다짐을 한다. 

식 말고 간편식 말고 맛은 좀 부족해도 정성 가득 따뜻한 요리를 해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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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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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만 보고는 화가 났다. 땅콩회항, 재롱잔치, 애비 찾고, 물 뿌리기에 이어 이제는 도시락 갑질이냐?! 라는 기분으로 어떤 정신나간 녀석이 부하직원에게 이 따위 심부름을 시키는 거야!! 제대로 욕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라? 작가가 유즈키 아사코다. 세상의 모든 소녀를 응원한다는 <서점의 다이아나>의 그 작가다. 여성의 사랑과 우정, 무엇보다 성장을 기가 막히게 그려내는 작가랑 갑질? 이건 어울리지 않는다. 전혀 매치가 안돼.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다 읽은 지금은? 그러면 그렇지!! 생각대로의 유즈키 아사코라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내가 있다.  

'나 같은 인간은 왜 사는걸까?'(p12) 고심하는 미치코. 으악, 초반부터 뭐야? 이 친구 넘 우울하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만 했다. 19살 때부터 4년을 사귄 남자친구에게 차였다. 회사에서는 존재감 없는 계약직. 결혼자금을 모으려고 아끼고 아끼다 보니 친구 하나 남지 않은 생활. 계단 꼭대기에서 난간 밖으로 한발짝만 떼면 인생이 편해지지 않을까 유혹에 빠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사랑이 전부이고 내 모든 것이 실패인 것만 같은 그런 때가 있질 않나. 그 순간 정신없이 울적한 미치코의 등짝을 떼리는 여성이 있다. 일명 앗코짱. 구름과 나무 영업부의 베테랑 부장님 되시겠다. 173센티의 커다란 키(동경한다), 윤기나는 검은 단발머리(부러워), 똑 떨어지는 업무능력(모자란 게 뭐냐), 알고 보니 연하의 이성에게 인기까지 많은(젠장, 이 정도면 재수없는데?) 그녀가 외근으로 갈고 닦은 자신의 점심 루틴과 미치코의 도시락을 바꿔 먹자고 말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주일. 예스걸이라고 해야할지 도무지 NO를 외치지 못하는 미치코는 그렇게 강제 도시락 셔틀이 된다. 흰 토끼가 그려진 빨간 봉투 속 지도와 1000엔. 탐 크루즈처럼 매일 아침 미션을 부여받아 회사 밖으로 달려나가는 점심시간. 카레와 샌드위치와 가슴 확 트이는 옥상에서 배달 받은 스시 도시락을 앞에 두고 홀쭉했던 미치코의 마음이 토실 토실 알밤처럼 차오른다. 어느 새 괴로웠던 점심시간과 부장님의 도시락 싸는 시간까지 즐거워진다. 오늘은 무슨 반찬을 준비할까? 점심엔 또 어떤 메뉴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내일은 뭐 먹지?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 월화수목금요일. 지난 금요일 이후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더는 어제의 미치코가 아니다. 성장하고 꿈꾸고 행복해하고. 남자친구와 만들었던 우물 안 세계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전진하는 스무세살의 아가씨. 뭐 이런 동화 같은 소설이 다 있담. 속의 말을 숨기지 못하고 책을 덮으며 입을 삐죽 '유치해'. 그런데 왜 자꾸만 웃음이 날까? 왜 자꾸만 입꼬리가 씰룩씰룩 한거지?실은 유치한 게 아니라 부러운 거 아니야?그렇다. 실은 비밀의 앗코짱과 친구가 된 미치코가 너무너무 부럽다. 앗코짱 옆에서 행운의 실마리를 다 배운 것만 같은 그녀가 너무너무 샘난다. 너무너무 완벽한 앗코짱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이런 츤츤한 데레 언니 어디 없냐규~ 창문을 활짝 열고 외치고도 싶다.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나를 반성할 때 꼭 나와 같이 서른을 넘겨 미팅으로 폭주하다 자괴감에 빠지는 그녀 노유리씨가 나오고 아내와 별거하며 매일 같이 야근에 시달리는 마사유키 사장님이 등장한다. 그들의 일상 어느 한 켠을 훅 지나가는 미치코와 앗코짱의 새로운 업무 뒤로 달려오는 드라마틱한 해피엔딩들. 무슨 책이 이렇게 출근해서 마시는 믹스커피 같냐. 쨍하게 달고 찐하게 사랑스럽고 비타민 보다 더 에너지가 샘솟는 내 맘 같이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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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더 포스 1~2 세트 - 전2권
돈 윈슬로 지음, 박산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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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뉴욕 경찰의 초상화 같은 책을 만났다. 모든 경찰의 초상화는 아니겠지만 몇 몇 경찰들의 초상화는 될 수 있을 것 같은 조직 "다 포스". 그들은 맨해튼 북부 특별 수사대로 뉴욕 하렘의 제왕 데니 멀론의 지휘를 받는다. 헌데 소설의 시작이 좀 특별하다. 제왕이 갇혀있다. 3만 8천 경찰들 중 1퍼센트의 1퍼센트의 1퍼센트 두뇌에 머리와 용맹성을 지닌 다 포스의 왕이자 50킬로그램의 헤로인을 몰수하고 마약범을 처벌한 경찰들의 영웅이 연방요원들의 손에 붙들려 감옥에 간다. 그는 생각한다. 나는 왜 여기에 범죄자들과 같은 모양으로 잡혀있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는 부패한 경찰이다." (p15)

이 책에 대한 모든 추천사 중에서 <잭 리처 시리즈>의 작가 리 차일드의 말에 가장 동의한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는 것만 같은 서사라는 말.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택과 더욱 확장되는 비극의 연결고리. 이제야말로 끝이구나 클라이막스구나 싶을 때에  데니 멀론은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저열하지만 가장 인간적이고 솔직한 열망에 휘둘려 계속해서 어리석은 답을 선택한다. 그가 저주한 동료 토레스는 소시오패스였을지는 몰라도 그 자신의 부패가 연방요원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밀고자가 되지 않고 자살을 선택한다. 어찌보면 깔끔하고 어찌보면 지루한 선택이었다. 연방요원들은 더 어떻게 그를 엮지 못했고 그는 연금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은 채 수치없이 경찰묘지에 묻힐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데니 멀론은 달랐다. 그는 본격적으로 부패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 이를테면 공짜 샌드위치에 공짜 커피를 얻어먹는 것 이상의 비리들 말이다. 범죄자가 흘리고 간 돈을 줍고 범죄현장에서 돈이 될만한 물건들을 슬쩍하고 마약거래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오천만 달러와 향응을 제공받고 더하여 헤로인을 강탈하고 무장하지 않은 두목을 살해하며 부패의 마지막 선을 넘어서는 그런 때에 이미 이 순간을 준비했다. 대비가 탄탄하니 모험을 해볼 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18년간이나 뉴욕 하렘의 뒷골목에서 제왕처럼 군림해온 그가 왕의 자리에서 내려가는 것은 치욕이었기에. 경찰 아닌 삶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그는 밀고자가 된다. 처음은 변호사, 다음엔 시의원, 다시 다음엔 경찰, 마지막은 누가 될까? 그들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는 데니 멀론의 결심은 제 명줄 앞에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나.  

그의 거듭된 나쁜 선택에 기대어 소설은 800 페이지 가깝게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고 거듭 흥미로웠으며 거듭 서글프다. 통쾌하거나 시원하거나 묵은 체증이 한방에 내려가는 것만 같은 쾌감을 주는 소설은 아니다. 외려 통렬하고 두렵고 가슴 아픈 비극이다. 그 비극에 독자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쳤음은 말할 것도 없고. 데니 멀론의 모든 부패와 뉴욕이 마주하고 있는 인종, 계급, 총기, 마약의 문제들이 글발이라는 작가의 거대한 재능과 씨줄날줄처럼 얽혀 독자를 압도한다. 데니 멀론의 비극에 꽁꽁 묶인 독자는 잠자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책을 읽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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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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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흔치 않은 소재이리라 생각합니다. <비바, 제인>의 주인공은 남성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위협 당하고 삶을 저지 당한 인물이거든요. "20살의 인턴과 하원의원의 관계에서 시작하는 페미니즘 소설" 이라는 소개를 받으면 무슨 생각부터 드시나요? 의례히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예상하지 않을까요? 저도 그랬구요. 그러나 이 책엔 강압에 의한 희롱도 폭력도 없습니다. 반대로 인턴인 학생쪽에서 클라크 켄트 같은 매력을 가진 다부지고 핸섬하며 거대한 성공을 거둔 하원의원에게 먼저 몸과 입술을 밀어붙이죠. 세간의 표현대로라면 유부남에게 꼬리를 친 겁니다. 물론 아버지 뻘의 연륜에 의원으로서의 도덕심, 가정과 기독교적 윤리를 생각한다면 의원측에서 마땅히 거절해야 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남자의 양심 대신 뇌가 먼저 반응합니다. 일반적 성교 대신 항문섹스를 하는 방향으로요. 그리고 어린 여성은 왜?라고 의아해하지요. 왜 그는 나를 사랑한다면서 나와 성교하지 않는가? 어머니에게 묻고 싶지만 그 정도 분별력은 가지고 있으므로 대신에 익명의 블로그를 만들어 관련한 글을 게시합니다. 하루 방문객이 넷 내지 여섯 정도 되는 블로그에 무슨 문제가 생기겠나 했지만 네, 물론,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이 타고 가던 차가 교통사고가 났고 상대 운전자인 노인이 사망했으며 대중들은 그들의 관계를 의심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저 익명의 블로그를 캐냈죠. 관계의 모든 하이라이트까지 상세하게요. 아비바 스캔들의 시작입니다.

"네가 뭘 했길래? 그건 섹스였어. 그 남자는 케케묵은 아저씨였지. 넌 애였고."(p389)

이름의 정체성으로 구분한다면 총 다섯 명의 화자가 등장합니다. 존경받는 유대계 학교의 교장에서 하루아침에 성 스캔들 주인공의 모친이 되어버린 레이철,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앞에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제인 영, 아비바를 저주하며 불륜을 저지른 정치인 남편을 비호하고 용서한 아내 엠베스, 엄마의 스캔들을 신문사에 고발하는 제인의 딸 루비, 20살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이 두렵고 혼란했던 낭만적인 철부지로 유부남을 사랑한 아비바. 아비바의 사랑이 몰고 온 폭풍은 거셌습니다. 레빈은 첫 유대계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인기 의원이었고 블로그는 노골적이었죠. 정보의 바다는 좀비와도 같아서 삭제하고 또 삭제해도 그녀가 이력서를 넣은 회사, 정치인 사무실, 하다못해 자원봉사단체에까지 전력을 쏟아냅니다. 레빈과의 관계가 완벽히 파탄난 후에도 사회는 그녀의 잊힐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요. 그녀는 대중의 끊임없는 비난과 편견, 비웃음에 노출되야 했고 인생 리셋은 커녕 생의 유지조차도 버겁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녀는 고향을 떠납니다. 이름과 성을 모두 바꿔서요.
그러나 새로운 삶에서도 아비바 스캔들은 여전한 그녀의 족쇄입니다. 

 반면 레빈은 어떨까요? 레빈의 반성은 통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자식과 사회에 용서를 구했고 재선에도 성공합니다. 그가 대중 앞에서 어떤 모욕을 느꼈든 스캔들 발생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사건은 그의 커리어에도 가정에도 신변에도 변화와 손실을 주지 않았어요. 아비바와는 정말 다르죠. 아비바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그녀의 반성 또한 우리 사회를 통과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어쩌면 그녀들에게 사회적 용서라는 잣대를 가져다대는 것이 합당한가 라는 의문입니다. 그건 그냥 섹스였고 성인의 섹스를 당사자와 이해 관계자들이 아닌 이상 대중이 무어라고 판단하는 게 정말로 도덕률에 맞는 일인지. 그것도 매우 여성 편향적으로만 들이대는게요. 20살의 아비바를 비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오롯이 여성에게만 향하는 가혹한 시선과 조리돌림만큼은 불공평합니다. 공정하지 않아요.

또 하나. 불륜한 남편과 헤어지지 않은 엠베스의 선택 또한 반페미니즘이 아니라는 겁니다. 엠베스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부정한 남편을 내내 뒷바라지 하는 삶이라 해도 그 여성의 삶 또한 존중받아 마땅한 선택이며 권리라는 것. 페미니즘 교수의 말에 꼭 뒤통수 한대 맞은 듯이 얼얼하더군요. 수치 당하기를 거부하고 여전히 사랑하거나 또 어쩌면 여전히 필요한 남편과 거듭 새 삶을 살 권리는 철없는 아비바뿐만 아니라 굴욕과 배신감을 감내한 엠베스에게도 마땅히 존재한다라는 깨달음을 가슴에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걸 품고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책인데 의외로 가볍습니다. 경쾌하고 빠르고 유머러스하죠. 성장하고 전진하고 연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시원시원하고 소설 속의 남성은 사회의 악도 적대적 원수도 아닙니다. 토양과 바람 등의 환경이 바뀌는 것으로 우리의 생태와 성질이 바뀔 수 있음을 은유하며  자연스럽게 변화를 촉구해요. 그래서 추천합니다. 싸우고 계몽하고 이기는 소설이 아니기에 반감없이 읽을 수 있는 페미니즘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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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가와카미 가즈토 지음, 김해용 옮김 / 박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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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룡은 새의 조상님이었다.(p242)

"공룡은 1억 3000만 년 동안 지배적인 대형 육상동물의 지위를 차지했다. 포유류는 그 대부분의 기간 동안 주위에 있었지만 몸집은 작았다. 더구나 공룡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로 진화했다. 적당한 크기의 공룡, 아주 큰 공룡, 엄청나게 큰 공룡, 초식과 육식. 걸어 다니는 것, 뛰어다니는 것, 헤엄쳐 다니는 것, 날아다니는 것. 그리고 화석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한 형태도 있었다. 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중에서>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제목은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입니다. 아니 공룡 얘기하더니 왠 새??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대 정말 새를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 거에요. 우리 치느님이 공룡의 직계후손이라는 얘기도 못들어보셨습니까? 공룡에게선 치느님 맛이 안날지 몰라도 치느님께는 공룡 맛이 난다는 뭐 그런 얘기. 공룡이 최종진화를 잘 이룩했다면 튀겨지는 것은 치느님 같은 새가 아니라 우리였을지도 몰라요. 덜덜덜... 에잇, 좀 웃겨 보려 했는데 리뷰도 우습게 쓰는 건 보통 일이 아니군요. 책이 너무 웃기고 경쾌해서 리뷰도 기발하게 써보려 했는데 괜히 폐만 끼치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소개할게요. 약간 변태같으면서도 새에 대한 츤츤한 애정이 엿보이는 투덜이 조류학자,
조류계의 빌 브라이슨, 가와카미 가즈토 씨의 이야기입니다.

2. 새똥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p114)
: 톰 행크스가 말했죠.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고. 투덜이 조류학자도 주장합니다. 새똥도 초콜릿 상자와 같다! 시료를 분석하기 전까지는 내용물을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차 유리창에 묻어 종종 애를 먹이는 그 하얀 새똥은 새똥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 실은 새오줌이었대요. 흰 것 사이에 작은 까만 점 같은게 똥이라나요? 별로 알고 싶진 않았는데 투덜투덜 어찌나 상세히 알려주시는지. 누구씨의 말처럼 정말 섬세하지 못한 남자라니까요. 누구씨는 아마도 옛여친? 그리고 가끔 고둥 같은 복족류는 (나 좀 유식해진 듯) 살아있는 상태로 배출되기도 한답니다. 새의 소화기관을 거쳐 항문을 빠져나와 꼬물꼬물 움직여 바다로 나가는 고둥이라... 읔!!

3. 아름답기만 한 자연은 없다. (p75)
: 미나미이오토로 연구를 떠난 투덜이 조류학자. 25년만에 인간에게 개방된 이 절해의 무인도에서 투덜이는 멘붕에 빠집니다. 산꼭대기에서 램프를 키는 순간 작은 파리들이 입과 코로 호흡과 함께 딸려오기 시작한 겁니다! 상상만으로도 끔직해! 그의 표현을 빌자면 "숨쉴 때마다 파리 열 마리 정도의 무게가 늘어나 배불뚝이 중년남이 되는 것" (p70) 같았대요. 사람이 살지 않는다니 무공해 청정구역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훼손되지 않는 자연이라 함은 넘쳐나고 치워지지 않은 동물들의 사체 범벅인 겁니다. 나무마다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달려있는 새들의 사체! 그 무수한 먹이에 파리 천국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 호흡을 멈추고 사체 천국의 동료로 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숱한 방황 속에 무사히 연구를 마치고 돌아온 투덜이는 현세에서 또한번 멘붕에 빠집니다. 연구에 동행한 촬영팀의 다큐가 티비에서 띠리링. 근데 뭐죠? 이 천상의 아름다움은?
방송국 놈들아 사기치지 말라규~
 
4. 당신에게는 혹시 조류학자 친구가 있을까? (p6) 
: 여러분 그거 아셨습니까?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은 실존하는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에서 따온 거래요! 세상에 조류학자는 윤무부 선생님이랑 오듀본 딱 두 분만 계시는 줄 알았는데 투덜이 조류학자 가와카미 가즈토도 있고 007에게 이름을 빌려준 제임스 본드 박사님도 계셨어요. 이로써 저는 총 네  명의 조류학자를 알게 되었는데 혹 실례가 안된다면 여러분은 몇 명의 조류학자를 알고 계시는지요? 혹시 아는 조류학자가 없으시다면 이 분 가와카미 가즈토를 추천합니다. 투덜이지만 일본 안팎을 오가며 경험한 새 탐구일지가 매우 재밌거든요.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문방구 순례가 취미인 조류학자는 나름 유머도 있습니다.
어떤 둥지에서도 최강웃음으로 깃털을 날려줄 것을 확신합니다!  

5. 그냥 덧 : 여러분 햄스터가 왜 쳇바퀴를 돌리는 줄 아세요?

①살 뺄려고
②모든 힘이 다리로 뻗쳐서
③그냥 재미나니까

2014년 네덜란드에서 이를 연구한 박사님께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햄스터는 왜 쳇바퀴를 돌릴까. 증명을 위해 야외에 쳇바퀴를 설치해  수년 동안 1만 2천개의 동영상을 찍어 분석을 했지요. 예전에는 이런 연구가 있다하면 픽 웃었을텐데요. 지금은 웃음이 나는 동시에 세상에는 별별 실험과 갖은 탐사가 다 있구나 그들의 지적 호기심에 강렬한 호감과 호기심을 느낍니다. 인류에 도움이 되든 안되든 그 연구가 대중일반에게 가치가 있든 없든 중요한 건 효용의 유무에 있지 않다는 것. 활기찬 쥐가 세계를 돌린다는 말이 참 맘에 들었습니다. 아참, 이 문제의 정답이 궁금하신 분은 페이지 122를 확인하시길!  참고로 민달팽이도 쳇바퀴를 돌리더랍니다. 푸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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