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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 - Poongs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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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개를 꽤 많이 키웠었다. 어떤 개는 아무 생각 없이 밥만 축내고 가까이 가면 제가 덩치 큰 것은 생각 안 하고좋아서 날뛰는가 하면, 어떤 개는 애교가 철철 넘치고 재롱을 떨어 학교 수업 시간에 그 개 생각이 나기도 하고, 어떤 개는 몸집은 작아도 굉장히 의젓해서 개 같기보다는 마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재롱이 많은 개가 좋았다. 어린 강아지를 가끔씩 엄마 몰래 방에다 들여놓고 형이랑 같이 놀기도 했는데, 형이랑 양쪽 벽에 붙어 서서 강아지를 가운데 놓고 서로 자기쪽으로 오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강아지는 이쪽저쪽을 오가며 똥개훈련을 했는데, 그 강아지가 똥개였는지는 모르겠다.

풍산개는 애교하고는 거리가 멀다. 의젓하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 과묵하고 좀 고독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 장대높이뛰기, 지뢰높이뛰기, 인명 구조, 잠수, 수영, 사이클, 오랫동안 말 안 하기, 싸움, 손발이 묶인 채로 키스하기 등등 각종 스포츠와 잡기에 능하다. 어릴 적 형과 내가 하던 놀이처럼 개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이리 오라고 서로 손짓하며 부르는 똥개훈련까지는 괜찮지만, 넌 어느 편이냐고 자꾸 묻는 것은 개인의 실존을 무시하는 집단의 횡포다. 더군다나 한 발 물러나서 양쪽을 보면 둘 다 하는 짓이 똑같다. 성난 풍산개의 복수가 펼쳐지는 지하 패싸움신의 역설은 코믹하지만 조금 유치하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좀 유치한 비유와 상징, 작위적인 부분이 있지만 의외의 상황에서 독특한 유머를 발휘하는 볼 만한 영화다. 남북 문제가 뻔하다고 외면할 수도 없고. 사제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이야 알 수 없겠지만, 어쨌든 <고지전>보다 <풍산개>가 더 잘됐으면 한다. 손익분기점은 넘었다고 하던데, 더 잘돼서 김기덕식의 영화를 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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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7년이면 개울, 언덕 정도는 변할 시간은 되겠지. 사랑으로 치면 '아무도 우리가 그렇게 쉽게 이별할 줄은 몰랐'을 만할 정도로 모두에게 믿음을 주는 시간. 7년! 스무살에 대학에 입학해 스물일곱살이 되던 2월에 대학을 졸업했으니, 군대 시절을 포함해 대학을 7년 다녔다. 돌아보면 군대 시절은 엄청 지루했고, 대학생활도 특별한 추억 없이 시간을 과소비했다. 직장인인 지금은 돈도, 시간도 없지만, 당시 20대 초중반엔 나름대로 시간 부자였는데 재테크 없이 길거리에 시간을 뿌리고 살았다. 시간은행 같은 거 하나 있었으면 7년 적금 부어 꽤나 두둑하게 만기 적금을 손에 넣었을 텐데. 그 7년을 영어든, 책이든 하나에라도 진득하게 투자했더라도 지금의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후회 말고 반성을 해야 하는데, 후회도 아닌 잡념만 는다.

어쨌든, Lucky Se7en도 외국에서나 그렇지, 소설 속 7년은 진실이 깊고 넓은 물속에 수장된 고난의 시간이자 복수를 위한 준비의 시간, 빈손으로 그저 하루를 떼워야 하는 가난한 시간이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좀 찝찝하고 수장된 진실에 녹이 슬고 이끼도 끼었지만, 소설 속 소설(액자소설)을 통해 감춰졌던 진실의 알맹이가 하나씩 속을 드러내면서 책에서 눈을 못 떼게 만든다. 속사포 단문으로 쏟아내는 작가의 통큰 스케일은 독자를 책속으로 불러들여 안개 낀 세령호 근처에서 빈 눈으로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책에 머리를 박고 멍하니 앞에 가는 작가의 꽁무니만 바라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현실을 반영하지만 결국 허구인 소설 속에서 아저씨가 지어낸 이야기인 소설은 진실을 그린 소설로, 소설 속 실제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니까, 결국 소설 속 소설은 소설 속 현실을 반영한 거짓이 아닌 진실이 된다. 그 진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달 전쯤에 화분을 하나 샀다. 가게 주인이 열흘에 한 번씩 물을 주라기에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열흘에 한 번씩 한 달에 세 번 물을 줬다. 노랗게 피었던 꽃이 조금씩 시들기에 가위로 잘랐다. 그것도 화분을 팔면서 가게 주인이 했던 말이다. 그런데 꽃만 그러는 게 아니라 잎도 점점 상태가 이상해졌다. 그 화분에는 아래에 물 빠지는 구멍이 없었다. 아무래도 물도 안 빠지는데 물을 너무 자주 줬는가 싶어 아래에 구멍이 있는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줘야지, 하면서 보름이 넘도록 방치했다. 아래쪽에 썩은 잎을 버리고 최근에야 분갈이를 했다. 아, 이름 모를(실제로는 까먹었지만;) 식물이여! 아무쪼록 유년의 아픈 기억일랑 잊고 씩씩하게 잘 자라라. 아마 책 속 서원이도 그렇게 살 수 있겠지?

 
 
 
2009년 5월 - 노무현의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남겼는가 
김정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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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을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 세상살이가 너무 뻔해서일까? 언젠가부터 반전에, 그것도 사랑하는 두 남녀가 알고보니원래 남매였고 여자가 불치병에 걸리고 남자는 신내림을 받고 그 와중에 남자가 개그콘서트를 보다가 너무 웃겨서 사망했는 줄 알았는데 얼굴에 점 하나를 찍고 다시 환생하는 정도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이라야 흥미를 좀 가진다. 요즘에 <식스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 정도의 영화가 나온다면 왠지 많은 사람들이 결말을 쉽게 알아맞힐 거 같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예측하면서 보기에 사람들의 눈높이가 많이 높아졌다.

사실 현실이 그렇게 뻔한 것만은 아니다. 영화보다도 더 예측하기 힘든 반전이 매일같이 뉴스를 가득 채운다. 이 책은2008년 겨울부터 시작된 우리 주변의 현실에서 일어났던 반전에 대해 충실히 기록했다. 도덕적 순결이 큰 자산이었던 대통령이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보도가 쉴새 없이 쏟아져나올 때에 그 씁쓸한 반전에 사람들은 혀를 찼다. '그래, 결국 너도 어쩔 수 없구나.' '노무현'이라는 대배우의 사기 캐릭터 연기는 언론의 말과 펜 속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급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반전을 너무 일찍 터뜨린 걸까? 지루하게 질질 끌면서 어서 끝나라고 결말을 기다릴 즈음에 이 앞의 반전은 반전이 아니었음을 알리는 대반전이 일어난다. 2009년 5월이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이런 반전은 예측할 수도 없었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그 어떤 막장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는 결말이었다.

2009년 5월, 그때 충격적 반전에 몸서리쳤던 사람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돌아보면, 배우가 절대 아닌 인간 노무현의 삶을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사각 화면 그 안에 쑤셔넣고 팝콘 씹듯이 그렇게 쉽게 씹어버렸다. 높아진 눈높이로 다시 돌이켜보면, 결말 그 이전 어디에선가 결말을 막을 수도 있었다. 막아야 했다. 막았어야만 했다. 영화 관람료 한 푼 안 내고 본 대한민국 역대급 반전 영화가 끝났다고 관객들은 상영관을 우루루 빠져나가려 한다. 이 곳은 극장이 아닌, 영화가 아닌 현실이고, 아직 진행 중인데도. 아직 진행 중인 현실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배우임에도 자꾸 관객 역할만 하려고 한다. 이왕 관객 역할을 할 거면 영화 보듯 끊임없이 의심하고 예측하면서 제대로 하든가, 그건 또 아니다.

2009년 5월의 비극에 대한 논픽션으로서의 충실한 기록. 무슨 조갑제에 전원책 인터뷰까지 했지, 하며 씁쓸해 했지만 책에 나오는 보수 논객 2인의 치졸한 논리, 그게 이 책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21그램 - 21 Gram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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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너무나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진흙밭에 빠진 듯 덕지덕지 달라붙은 삶의 무게는 자꾸 늘어만 가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꼬인 실타래를 풀다가 지쳐 내평개쳐 버린다. 몸이 하찮은 정신을 만나 고생하는 건지, 정신이 보잘것없는 육체를 만나 피곤한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둘 다 괴롭다. 그럴 때면 정말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몽땅 괴롭고, 아침에 눈 떠서 잠이 들 때까지 힘들다.

사랑하는 일, 살아가는 일 모두 쉽지만은 않다. 힘든 상황을 이기려고 누군가는 심장 이식 수술을 앞두고도 담배를 피우고, 누구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술과 약에, 또 누군가는 잉여 인생 갱생을 위해 종교에 의지한다. 한없이 약한 21그램짜리 영혼을 가진 인간일 뿐인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힘든 사람인데 아무럼 어떠랴. 나를 잠시 포기하고 내려놓는 게 당시엔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 인연, 그것은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다.

기독교를 맹신하는 잭(베네치오 델 토로)과 본의는 아니라 해도 어쨌거나 기독교적 삶을 실천한 폴(숀 펜)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모순과 비극의 연속일 것만 같던 인생이지만, 모순과 비극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관계를 통해 뿌린 씨앗이 움트고 있다. 만족스럽지 않은 작은 행복과 희망이어도 그것에 기대하고 기대어 보게 만든다. 때로 인생은 당당하게 사는 게 아니라 담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네 인생처럼 복잡하게 조각난 영화 내용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을 요한다. 숀 펜과 나오미 와츠, 베네치오 델 토로 세 배우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쓸쓸하고 허무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21그램' 이듬해에 나온 '대통령을 죽여라'라는 영화에서는 숀 펜과 나오미 와츠가 부부로 나오니, 이들의 인연 또한 참 질기다.

 
 
 
우리 동네 미자 씨 낮은산 작은숲 12 
유은실 지음, 장경혜 그림 / 낮은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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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어머니는 일하느라 바쁘시고, 아버지는 일을 하든지 병원에 계시든지 해서 집에 잘 안 계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숙제를 하다가, 우리 집 바둑이나 백구, 황구, 검둥이 이런 애들 중 하나랑 놀다가(그런 고마운 애들이 늘 집에 있었다), 형이 오길 기다렸다. 동네 친구들이랑 놀았던 것보다 혼자 마루에서 숙제를 하던 기억, 기형도의 시처럼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가 안 오시던 그 외로운 기억이 강하다. 유년의 고독은 왜 그리 길고 지루한지, 벽시계의 초침은 건전지를 갈아 끼워도 힘없이 느리게만 움직였다. 한여름에 돋보기를 가지고 개미를 불태워 죽이다가 햇볕에 나도 정신이 어질어질했던 기억, 한겨울에 이유 없이 뒷밭에 서서 찬바람을 맞았던 기억을 머릿속 어딘가에서 꺼내면 외로움도 함께 한 움큼씩 딸려 나온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미자 씨도 성지도 모두 외롭다. 성지처럼 외로움을 숨기려 도리어 큰소리치고 괜한 심통 부려도, 미자 씨처럼 한없이 무딘 듯 보여도 그 속을 파 보면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다. 외로움을 견디고, 서로 보듬어 가는 책의 내용이 유쾌하면서 사실적이다.

20여년, 아니 30년 만에 본 동화. 어렸을 때, 우리나라 전래동화나 세계 명작동화만 봤기에 요즈음 동화가 어떤지는 통 몰랐다. 이 책을 보니 동화, 절대 단순하지 않다. 그림에도, 글에도 사람 사는 풍경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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