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오공훈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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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즈음, 독일의 산골마을에서 우편배달을 하는 젊은 상이군인 요한의 이야기이다. 전선에서 빗겨난 후방이라 전쟁의 상황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평온한 일상 속, 배달되는 전사통지서와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20여 년이 지나 다시 일어난 전쟁... 전쟁은 남자들의 '미친 놀이'이다. 특히 미친 정치가들의... 독일은 잿더미가 됐지만, 확실한 교훈 하나는 얻었다. 반면 일본은 원자폭탄 정도로는 충분치 않은 것일까. 


소설 자체로도 재미있게 읽었다. 세상은 불합리하다. 세상은...


  에리히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어제 도르트문트 출신 전사자의 부인은 어땠지? 소리를 지르며 마을을 뛰어다녔다고 하지 않았어? 너와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말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갔겠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 여자 앞에서 문을 닫았어요." 요한은 침착하게 말했다. "그들은 그 엄청난 비탄을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되돌아와 제게 매달렸어요. 그러는 바람에 제 재킷에는 온통 눈물이 묻었지요. 나중에는 눈물 묻은 재킷이 얼어붙는 바람에 널빤지처럼 뻣뻣해졌고요. 하지만 그 여자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아이들을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며 이렇게 말했어요. '우유가 식었어. 얘들아, 얼른 마셔야지.'"

  "어이구." 에리히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하늘로 던졌다. "너는 세상이 멸망하는 날에도 우편배달을 하러 마을을 한 바퀴 돌게 될 거야!"

  '그럼요.'라고 요한은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할 거예요.' (98 페이지)

  "자넨 아직 운이 좋은 편이야." 게오르크가 말했다. "한 손으로도 우편배달부 일을 그럭저럭 잘해나갈 수 있으니 말이야. 무엇보다 생각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게 중요해. 게다가 세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고 맛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 국민돌격대에 소속되어 있네." 게오르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계속 이어나갔다. "소속되지 않을 도리가 없지. 곧 전차 참호를 파고 전차 차단물을 구축하는 일을 시작하게 될 걸세."

  "전차 참호요?" 깜짝 놀란 요한이 물었다. "어디에요?"

  "음, 어디냐니?" 게오르크가 되물었다. "바로 여기야."

  "설마 러시아군이 이곳까지 온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게오르크가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지금이 2월 초야. 아마도 부활절은 망치와 낫 아래에서 지내게 되겠지. 성령강림 대축일이 되어서야 그렇게 될지도 모르고. 물론 그때까지 러시아에게 점령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는 나지막하게 웃었다. "어쨌든 자네도 상황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익숙해지면 무슨 일이든 받아들일 각오가 서게 되고, 좀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일단은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렇지 않은가?" (146~14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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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4-25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잼나겠어요 오오~

blueyonder 2019-04-26 17:52   좋아요 1 | URL
네 복선도 여기저기 잘 숨겨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