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2 오늘 아침에는 앨라배마에서 오신 주교님께 무척 인상적인설교를 들었어요. ‘비난받고 싶지 않거든 남을 비난하지 마라.˝
왜 타인의 실수를 눈감아 주어야 하는지, 왜 사람들을 가혹하게 비난해서 낙담시키면 안 되는지 그 이유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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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8 지금은 창조의 시대일 뿐 기억의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는 자가 창조할 수 있을까?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창조는 아이작 뉴턴의 말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았을 뿐이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기존에 형성된 인류 문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문명의 자취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선진국일수록 역사 교육에 목을 매는 데에는다 그만한 까닭이 있다. 이때 역사는 말 그대로 왕조 중심의 역사만을 뜻하지 않는다. 경제의 역사, 과학의 역사, 예술의 역사, 종교의 역사, 생각의 역사 등 모든 문명의 자취를 뜻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은 시대가 창조를 중시할수록 더더욱 가치를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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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4 내게 영화는 또 하나의 책이다. 책이 뭐 별 것인가? 읽는 사람이머릿속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사고의 틀에 균열을 주어 새로운 문명으로 상승하도록 만들고, 그 상승이 반복적으로 일어나 결국 머릿속 문명의 틀에 더 큰 문명이 형성되도록 도와주는 것 아닌가! 그러니 어제가 오늘인 것처럼 살아가며 이것은 저것‘이라고 여기는 머릿속 문명의 틀에 충격을 준다는 면에서 본다면 영화와 책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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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4 그러나 문명이 구축한 세상 이치는 매우 논리적이고 그 논리는 단순하기 짝이 없다.
˝공부하는 자가 공부하지 않는 자를 이긴다.˝
과거, 그러니까 원시와 야만이 인류를 지배하던 시대에는 힘센 사람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른바 문명국가라고 하는 곳에서는 힘센 사람이 아니라 창조하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 구태의연한 말이겠지만 창조력創造力은 독서를 중심으로 한 직·간접경험에서 비롯한다. 이걸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독서 대신 게임을 하고 도박을 하고 복권을 사고 투기를 하며 미래를 준비할 것이고, 이걸 믿는 사람은 독서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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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8 경제 분야에서 우리를 뛰어넘는 건 언제든 우리가 노력하면 다시 역전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 분야에서 뒤떨어진다면 그걸 만회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경제건 정치건 사회체제건 문화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밑천이 드러날 테니까. 반면에 문화적으로 탄탄한 겨레는 여건만 된다면언제든 폭발적 창조력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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