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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1년 11월
평점 :
재일 조선인 서경식(徐京植)은 디아스포라이다.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디아스포라(Diaspora)는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를 떠돈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켰으나 오늘날에는 전쟁과 피식민 등으로 고국을 등진 난민 및 그 후손들을 총괄적으로 지칭한다. 일제시대에 철도건설 노동자로 일본에 건너간 할아버지 代부터 일본에서 살아온 서경식은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각각 19년과 17년의 시간을 감옥에 갇혀 지낸 서승과 서준식의 동생이다. 그가 일본에서 받은 차별과 억압은 그로 하여금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게 했다. “나는 분단된 민족의 일원, 군사독재국가의 국민, 정치범의 가족이고 게다가 재일조선인이었다...”(91 페이지)는 말은 그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나의 서양 미술 순례’가 나온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 그 책과의 만남을 계속 미루어 온 나의 무심함은 탓할 만하다. ‘나의 서양 미술 순례’를 읽지 않은 것은 특히 서양 미술에 자신이 없는 데다가 상대적으로 음악이나 문학에 더 큰 관심을 가진 탓이지만 배우는 자세로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안타까움도 든다.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의 문제의식을 이어나간 ‘나의 서양 음악 순례’는 음악에 대한 저자 나름의 정의(定議)로 공감을 자아낸다. 저자에게 음악은 성적(性的) 관능(官能)과 깊이 연결된 예술 장르이며 동경(憧憬)과 반발(反撥)의 대상이었고 삶에 대한 훗날의 정서를 예고한 존재였다. 특히 음악이 불가해한 여성 같은 존재라는 그의 고백은 설렘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의 서양 음악 순례’는 사회적이기보다 정치적인 감각이 한껏 반영된 책으로 읽힌다. 서경식의 책은 “음악 현상학적 입장에서 말하자면 서양의 음악에는 욕망 성취의 계기가 상당히 강하게 잠입되어 있다.”(서우석 지음 ‘물결 높던 날들의 연가’ 중 음악사회학 부분: 267 페이지)는 글이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트징어’에서 바그너는 온음계와 반음계를 적절하고도 교묘하게 썼는데 이는 그가 음악이 세속의 상황에 너무도 쉽게 적용될 수 있음을 안 결과”(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음악은 사회적이다’ 참조)라는 글과는 다른 차원으로 읽힌다. 저자의 글은 정치와 예술을 아우르는 복합적 시선의 결과물이다.
서경식은 자본주의 사회는 중산층 이상이 아니면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없고 문화적 투자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한다. 저자가 지닌 고전 음악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고전 음악의 그런 속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중산층이 아니어도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는 중산층과 클래식 음악의 세계는 잘 맞는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양자를 등식화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궁정과 귀족의 비호(庇護)를 받은 덕분에 수많은 명곡을 작곡할 수 있었지만 귀족 사회의 가치관을 훨씬 뛰어넘는 음악 세계를 창조한 모차르트를 예로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 저자의 논지는 뛰어난 분석력을 자랑한다. 모차르트에 대한 저자의 글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낳은 도시국가(폴리스)가 소멸했음에도 도시국가라는 발생 배경으로 환원할 수 없는 철학 차원의 담론적 성취를 이룬 플라톤에 대한 글에 비견된다.
‘나의 서양 음악 순례’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기보다 음악이라는 거울에 비친 저자 자신의 이야기이다. 그것도 가볍고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 무겁고 암담했던 가족사가 요소 요소에 반영된 자기 고백의 서(書)이다. 저자의 글을 단적으로 표현할 말은 정치적인 역정(歷程)과 예술적인 역정(歷程)은 분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정치냐 예술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닌 양자가 갈등하는 고뇌 속에서 새로운 보편적 가치를 창조하려 했다는 작곡가 윤이상(尹伊桑: 1917 - 1995)이 저자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예로 읽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이상이 누구인가. 우리는 흔히 그를 19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뤘고 1980년 5월 18일 광주를 배경으로 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 등의 곡을 쓴 통영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 음악 작곡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저자의 책에서 서경식과 윤이상 선생은 묘하게 같은 처지, 같은 정서로 읽힌다. 작곡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악제의 개최가 실현되었지만 정작 귀국할 수 없었던 비운의 작곡가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당해야 했던 히틀러 폭압의 희생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잔혹한 독재자를 준엄하게 단죄하면서도 천상으로의 승화(昇華)를 통한 삶과 죽음의 속죄를 확신했던” 넬리 작스(Nelly Sachs)의 시 세계에 깊이 공감해 ‘밤이여 나뉘어라’를 작곡한 윤이상과, 2006년 봄부터 2년간 성공회대 연구 교수로 한국에 머물며 모어(일본어)와 모국어(조선어)의 어긋남으로 인해 강렬한 체험을 했다는 정치적 인물 서경식에게서 깊은 동질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신군부의 12, 12 쿠데타가 일어난 날 재입원해 5개월의 고통스런 투병 끝에 5, 18 광주 항쟁 직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일련의 과정을 서울의 봄이라는 꽃이 짓밟히고 흩뿌려진 과정에 견준 것이다. 저자는 우연이라는 단서(但書)를 붙였지만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저자가 가진 정서는 공감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납치, 투옥, 고문이라는 상상을 넘어서는 고난을 극복한 동베를린 사건의 희생자들로부터 자신의 형들과 가족이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자문하고 모색하려 했다는 저자의 노력 역시 같은 차원으로 읽힌다. 저자는 윤이상 선생의 자서전 ‘상처 입은 용(傷處 입은 龍)‘을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다섯 권의 책들 중 한 권으로 꼽으며 이 책을 통해 선생의 정치적 투쟁과 예술적 투쟁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말을 들려준다.
’나의 서양 음악 순례‘에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등 유명 작곡가들이 나오지만 주인공은 단연 윤이상과 구스타프 말러이다. 본문에 소개된 말러는 또 다른 의미에서 문제적 인물이며 저자와 묘하게 겹쳐 읽히는 예술가이다. 말하자면 서경식은 정치적이었던 윤이상과도, 어둡고 실존적이었던 말러와도 겹친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통해 나는 정치성과 실존성의 묘한 만남을 감지한다. 말러는 오스트리아인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인 이유로, 독일인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인 이유로, 지상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대인인 이유로 삼중(三重)의 의미에서 고향이 없다고 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찌에 쫓겨 빈을 떠난 유대인 말러는 분열된 마음으로 알마와의 결혼 생활을 시작한 분열된 존재이다.
말러의 음악에는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하지만 본문이 증언하는 세기의 여인 알마와의 버겁고도 묘한 관계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개인사를 이야기 하자면 이제야 나는 교향곡 1번과 5번을 듣는 것으로 조금씩 말러 음악에 적응해 가고 있다. 나는 말러의 음악을 변화의 기미가 감지되지 않는 도도한 강물 같은 슬픔의 곡이라고 생각했었다. 한편 아우슈비츠 이후의 음악은 도취와 각성 사이에 매달려 있는 불편함을 받아들이도록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말로 음악은 위험한 것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며 마지막까지 일관성을 잃지 않은 저자의 필치(筆致)는 정연(整然)하다.
리듬은 심장박동을 반영하고 그것은 끊임없이 종말(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은 이런 저런 상념에 젖게 한다. 리듬이 성적(性的)인 의미를 지닌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만남이 음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저자의 글은 이만큼 흥미롭고도 의미로 가득하다. 강력 추천을 하게 하는 요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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