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이 겹치는 삼겹살 데이라고 'ㅇㅇㅇ데이'마케팅에 동참하자고 친지들을 부추겼더니,

강남 갔던 제비가 오는 삼짇날이라길래,

(원래는 음력이지만, 어차피 오는 봄을 맞이하는 건데 좀 빠르면 어떤가 싶어~그냥 넘어가주시고~(,.))

메뉴를 제비 바비큐로 바꾸자고 했다가 엽기녀라는 소리를 들어주셨을 뿐이고~--;

 

하지만 난 어느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웹서핑을 다니며,

컴 모니터의 사진상으로 봄맞이를 잘 해주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견지망월(見指忘月)라고 했던가?

달을 보라고 손을 들어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본다는 뜻으로 본질을 간과하고 엉뚱한 것을 본다는 뜻이라는데,

봄 소식, 꽃 사진에 눈이 호사를 누리는데도 마음이 환해지는 것도 잠시 한켠이 애잔한 것은,

사진 속에서 꽃의 앞날을 읽어버렸기 때문일까,

꽃 때문에 배경으로 전락해버린 그것의 속내를 짐작해 버렸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프레임 너머의 사진을 담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제비가 봄을 알리는 전령이어서 생각이 난 건지 모르겠는데, '깃발'이라는 시의 유치환이다.

그는 '행복'이라는 시에서 '우체국'에서 편지를 쓰는게 행복이라고 노래한 시인답게 5,000여 통의 연애 편지를 쓴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낮달'이라는 시에서 보면 '보다(가) 남은 연정의 조각'이고 '지워도 지지않는 마음의 어룽'이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제법 멋들어지다.

그러고 보면 편지를 통해 전하는 건 단순히 말 몇 마디가 아니라,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이고 '지워도 지지않는 마음의 어룽'이며 온갖 공감각의 통합일지도 모르겠다.

 

혹 손가락을 바라보느라고 달을 바라보지 못하면 어쩌나 염려하는 이들도 있던데,

나는 거기서 한술 더 떠서,

곱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느라 어긋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이 달 옆의 인공위성이면 어쩌나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5000여통 연애편지를 쓴 유치환의 상대가 한명이 아니었다는 이면을 알게 된 후에, 그가 마냥 멋들어져 보이지는 않았으니 하는 말이다.

 

감이 익기를 기다려 감나무 밑에 입 벌리고 누워있을 수는 없지만,

봄이 오고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면,

어디 나무 밑이고 달이 지고 해가 뜨는 들판이라도 어슬렁거리고 볼일이다.

 

 

 

 

 

 

 

 

책마실을 다니다가, 유치환을 아나키즘으로 분류한 책을 보았다.

5000여통의 연애편지를 썼다는게 각인되어 그랬겠지만,

의외였는데, 생각해보니 말 된다. 

온갖 공감각을 시로 표현해 내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자연 생각은 '윤동주'로 구렁이 담을 넘는데,

난 영화에선 '동주'보다 '몽규'가 매력적으로 비췄었을 뿐이지만~--;

 

문예지에서 시를 가급적 배제하라는 몽규를 향하여,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어 문학뒤로 숨으려는 것 아니냐는 몽규의 비난을 향하여,

'시도 자기생각을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다'며 반박하는 '동주'는 멋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함께 하겠다는 동주를 향하여,

'너는 시를 계속 써라, 총은 내가 들테니'라고 말하는 몽규가 더 매력적으로 비춰진 건 어쩔 수 없다.

 

생각이 단순히 생각으로만 머무르지 않기 위해선, 추진력과 행동이 뒷받침되는 저력이 필요하겠고,

행동이 힘을 얻기 위해선, 지혜와 진심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면, 사상누각이고 속빈강정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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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4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8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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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하는 '김춘수'의 시 '꽃'을 들먹일 것도 없다.

남들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칭찬을 해대도, 범우주적 에너지가 발산될 그때, 부합하는 주변 환경이 협조를 해서 내 눈에 콩깍지가 씌어야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고,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양손 엄지 척 추천하는 책이라도, 머리가 어느정도 굵고 생각이 무르익어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에야 내게로 와서 한권의 양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적절한 때와 그에 부합하는 주변 환경 또는 머리가 어느정도 굵고 생각이 무르익어서 라고 하여서,

감나무 밑에 입만 벌리고 누워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라는 얘기가 아님은 물론이지만~(,.)

 

이 책은 몇 년전 한창 유행일때 들였으나,

매번 '프롤로그'에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였고,

그때마다 내 동양 역사 쪽의 지식이 지극히 소박하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곤 하였다.

 

요즘 다시 고전읽기에 발동이 걸려, 논어를 공부해볼 요량으로 이 책 저책 건드리는 중이었다.

논어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리 어려운 한자로 쓰이지도 않았는데,

대충 소리내어 읽고 어찌 어찌 해석은 하겠는데,

내가 알고 있는 한자의 쓰임이나 용법으로 해석하면 의미가 모호해 지거나, 용어의 뜻이 어긋나서 이상해져 버린다.

기존의 해석과 비교해 보려고 열권의 책을 찾으면 열권의 해석이 제각각 다 다르다.

 

난감하던 차에 이 책의 프롤로그가 생각났다.

제자백가의 속내를 직접 맛보기 전에 우리는 그들의 삶과 사유가 어떤 조건에서 시작되었는지 이해해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화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대화란 무엇보다 먼저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는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려면, 그의 삶과 생각이 전개되는 문맥 혹은 배경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의 말을 잘못된 문맥에 놓고서 이해하면, 우리는 그와의 대화에서 무엇도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 제자백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들이 살았던 삶의 풍경과 그들이 전제한 사유 문법을 살펴보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어떤 위대한 사상도 결코 허공에서 떨어질 수는 없는 법이다.(16~17쪽)

 

사실 내가 논어를 깊이 읽어보겠다고 생각하게 된것은,

김명근의 '이기적논어읽기'에서 '이인1장'을,

어짊에 처함이 아름다움을 이루니 어짊에 처하지 않으면 어찌 지혜를 얻겠는가.

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라고 하여, '里를 '마을'이라는 명사가 아니라 '처한다'라는 동사로 해석한다'고 한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외에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여러 부분들을 자신이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논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논어 속에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삶과 생각이 전개되는 문맥과 배경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어야 할텐데,

동양 역사 쪽으로 지식이 소박하다는 이유만으로...

'이기적논어읽기'라는 책 속의 김명근-개인의 삶과 생각이 전개되는 문맥과 배경으로 미루어 짐작하고는 '이상하다, 그치~!'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강신주의 주관을 될 수 있는대로 배제하였으며,

(뒤에 미주와 참고문헌도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다.) 

꼼꼼히 읽기만 하면 제자백가가 살았던 시대의 삶과 생각이 전개되는 문맥과 배경을 엿보는 것은 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상나라 왕이 지배하던 읍(邑)이 있었고, 일종의 타자적 공간 또는 외부공간이라 할 수 있는 방(方)이 있었다.

('집 잃은 개'의 '리링' 같은 경우는 里를 일종의 마을단위로 해석했었다.)

이 책에서는 里까지는 언급되지 않지만 里를 굳이 명사가 아니라 '처한다'라는 동사로 해석해야 할 타당성 같은 건 찾지 못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목한 점은,

우리가 논어를 비롯한 고전에서 만나게 되는 한자용어들을 오늘날 변형된 뜻 그대로 적용시켜 해석하다보면,

공자가 살았고 논어가 읽혔던 그 시대의 한자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뜻으로 읽힌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백성이라고 하면 일반 민중을 떠올리게 되는데,

상나라에서 백성(百姓)이라고 하면 귀족들만 姓을 가질 수 있었으므로 귀족들을 백성(百姓)이라고 불렀고,

주나라에서는 人이라고 불렀고,

일반 민중은 상나라에서는 소인(小人)이라고 불렀고, 주나라에서는 民이라 불렀다.

 

또 하나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와 관련하여 알아둘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종법사회였다는 것이다.

천자, 제후, 경대부, 사(士)가 엄격하게 지켜졌는데,

사(士)의 맏아들은 그대로  사(士)이지만, 동생이나 서자들은 모두 民이다.

사는 경대부 아래 약간의 토지를 가질 수 있었고,

평상시 육예(六藝)라고 불리는 여섯가지 전문기술을 익혔는데,

예(禮): 귀족사회의 예의범절, 악(樂): 행사에 사용되는 음악, 사(射): 활쏘는 기술, 어(御): 전거를 모는 기술, 서(書): 글을 읽고 쓰는 기술, 수(數): 점을 치고 해석하는 기술로 문무를 겸비한 계층이었다.

 

공자 또한 어머니 안씨가 아버지 숙량흘의 셋째 부인이었으므로 士人 신분이었던 셈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라고 하여 많은 선생과 많은 학파가 있었고,

학파는 스승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모여들어서 청소,취침, 세면, 등의 일상사를 함께 하였다.

춘추전국시대는 탁월한 士人, 즉 賢士를 목놓아 고대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스승에게 통치와 관련된 지혜를 배워서 현사가 되거나,

스승이 객경이라는 제후에 발탁된다면 제자들도 같이 따르게 되어 입신양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사기'에 따르면 공자 휘하에 3000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공자가 출신 성분, 사회적 지위를 상관하지 않고 제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배경 지식을 가지고,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살았던 시대 속으로 들어가서 논어를 읽어야,

그들의 삶과 생각이 전개되는 문맥과 배경을 토대로 공감각적으로 논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겠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남들이 일반적으로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있고,

내 입장이나 처지에서 상대방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통념이나 나의 주관적인 시선을 배제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바라봐주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공감과 소통이라는건 아마도 그런게 아닐까 싶다.

세상의 통념이나 나를 배제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일.

상대방의 삶과 생각이 전개되는 문맥과 배경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앞으로의 논어읽기가 좀 수월해 질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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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6-03-03 18:15   좋아요 0 | URL
강신주 책 중에서는 꽤 괜찮은 책입니다. 그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요. 혹시 춘추와 전국 시대에 관해서 관심이 있으시면 공원국의 춘추전국 이야기를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강신주의 책보다는 진도도 빠르고 재미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03-04 14:56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이런 귀띔 정말 좋습니다~^^

2016-03-06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6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7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8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봄이다.

입춘도 지나고 엊그제 우수도 지났으니 새봄이라고 해야겠지만,

난 한겨울 묵은 때를 못 벗은 고로 경칩을 기다리며 아직은 한겨울이라고 빠득빠득 우기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전 입춘에는 바빠서 숨쉴 시간도 없다는 친구에게 입춘첩을 써내라고 졸랐더니 이런 날림의 입춘첩을 보내왔다.

날림으로 대충 뚝딱 써냈는데도 글씨가 좋으니 볼만하다.

 

제일 위의 것은 싸인펜이고 두번째 것은 천얼마짜리 만년필이고 세번째 것은 몽블랑 만년필인데,

아무래도 세번째 글씨가 제일 낫다.

그걸 펜의 두께로 표현 하길래, 난 펜의 두께라기보다 힘있는 글씨라고 하였다.

암튼,

2월도 하순으로 치닫고 있는걸 보면, 작심삼일은 넘긴지 오래인데,

한자어를 나름 꾸준히 필사하고는 있는데,

내 필력에는 진전이 없다~ㅠ.ㅠ

*

서니데이 님이 봄을 맞이하야~, 이쁜 파우치를 보내주셨다.

그동안 서니데이 님네 소잉데이지(링크)에서 몇가지는 사고, 몇가지는 사은품으로 받고 하였는데,

이뻐서 사용하지 못하고,

귀하게 보관한다고 잘 모셔두다보니,

그렇게 잊혀져 버리거나,

한참 지난 후에 생각나 한번씩 꺼내보곤 했었다.

 

입장 바꿔 내 경우에 대입시켜 보니,

그냥 잘 보관했을때보단 물건을 용도에 맞게 잘 사용했을때,

기쁨 충만, 보람 두배였었던 기억을 되살려,

이제부터라도 잘 사용하여야 겠다.

 

*

봄이지만,

난 아직 한겨울이라고 우기는 이유는 또 있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하는 '강은교'의 시 '사랑법'을 인용하지 않고서라도,

요즘 들썩거리고 술렁거리는 이 동네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무디거나,

아주 엉덩이가 뚱뚱한 사람마냥,

잠자코 앉아서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는 듯 움직이지 않는 듯 그렇게 숨 죽이고 앉아 있다.

그렇게 무디게,

뚱뚱한 엉덩이로 뭉개고 앉아 있다가,

그들이 돌아왔을때,

잠시 여행을 다녀왔는지,

좀 더 오래 멀리 떠났다가 돌아왔는지,

잠시 이 곳에 머물다 떠나버린 사람이었는지,

기억 못하는 듯 그렇게 무심하게,

반가운듯 그렇지 않은 듯 퀭한 눈을 비비며,

어깨를 으쓱하거나 머리를 쓸어올리는 것으로 그렇게 감정표현을 하고 싶다.

 

*

새 봄이지만, 또 다시 봄이다.

흐르는 세월을 막거나 잡을 수는 없지만,

계절은 또 다시 돌아오고,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동안 사들이기만 하고 미뤄둔 책이 많아,

웬만하면 신간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데, 켄폴릿은 어쩔 수 없다.

 

 

 

 

 

 

 

 

 

세계의 겨울 1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세계의 겨울 2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또 한권 강신주다.

 

 

 

 

 

 

 

 

 

비상경보기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6년 3월

 

강신주의 책들은 극과 극을 넘나든다.

그의 일부 책들은 사유가 너무 과격해서 버겁다고 하는게 정확하겠다.

하지만, 그의 저작 중 <제자백가의 귀환>시리즈는 동양철학 전공자라는 그의 말마따나,

만나기 힘든 수작이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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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22 18:29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입춘에 문에 써서 붙여둔 집도 간간히 보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보기 어려워진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입춘이면 설 전인데, 며칠 전 같은데,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저희집 파우치, 편하게 써주세요.
파우치 옆의 분홍장미캔이 참 예쁩니다.
양철나무꾼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03-03 13:53   좋아요 1 | URL
오늘은 햇살이 따땃한게 정말 서니데이 같아요~^^
잘 지내시죠?^^

[그장소] 2016-02-22 21:03   좋아요 1 | URL
간만에...반갑네요!^^

양철나무꾼 2016-03-03 13:56   좋아요 1 | URL
네, 저도요~^^
근데 매일 애정을 가득 담은 상하이 애니팡 하트를 보내주셔서,
되게 친근하게 느껴지는거 있져~^^

[그장소] 2016-03-03 22:42   좋아요 0 | URL
상하이 꽤 진도 많이 나가셨던데요?
전 선배랑 이웃님이 하시는데 가끔 하트만 날려줘요. 요즘은 프렌즈팝 하고요.
상하이 ㅡ마작 같은 건 옛날에 좀 좋아했는데..
상하이건 좀 너무 쉽다고해야하나..
확실히 웹 하고는 차이가 있어요.
그래도 시간 멍하니 보낼때 ㅡ좋죠.
하트필요하시면 아무때고 보내달라하세요.
ㅎㅎㅎ제 이웃님들은 아..너 살아있구나..하는걸 그 하트로 알아요.
응답하라 ㅡ하트 ㅡ같은 거죠.
살아있으니..응답도 하는거라고..들..

양철나무꾼 2016-03-04 14:23   좋아요 1 | URL
저는 애니팡2를 더 열심히 한다지요.
나머지는 하트를 얻기 위하여~^^

[그장소] 2016-03-04 19:23   좋아요 0 | URL
저도 애니팡2 ㅡ 했었는데. .역시 그 하트를 원하는분들이 갈아타시면 저도 갈아타게 되요..^^ 왜 ㅡ하트는 저보단 원하는분들이 많아서...애니팡 ㅡ하트보내드릴게요.ㅎㅎ

단발머리 2016-02-22 21:42   좋아요 0 | URL
반가운 양철나무꾸님 페이퍼에 반가운 강신주님이...^^ 원래부터 반응이 극과 극인데 요즘에는 싫어하시는 분들도 속속들이 보여요. 저는 아직도 강신주님 좋아하는데 근래에 읽고 있는 <삼십금 쌍담>은 진짜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요 위에 신간은...
사야겠죠?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6-03-03 13:57   좋아요 0 | URL
저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읽으면서...너무 좋아져 다시 애정하려구요.
근데, 딸랑 두권, 나머지는 언제 나오냐고요~~~~~ㅠ.ㅠ

2016-02-24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3-03 13:58   좋아요 0 | URL
진짜 만능엔터테이너&에너자이저세요~^^
부럽~^^

2016-02-26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3-03 13:59   좋아요 1 | URL
내 글씨 아니라고 했죠?@@
 
이기적 논어 읽기 - 현대 심리학의 눈으로 본 논어
김명근 지음 / 개마고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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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임종수 님의 논어쓰기 이후 전작 읽기라는 못된 습관의 연장선 상이기도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많고 많은 책들 가운데 읽을만한 책이 없다는 시큰둥함 때문이기도 하였다.

집이고 직장이고 적당한 빈 공간이 생기기가 무섭게 책들이 이렇게 저렇게 엮여 탑을 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읽을만한 책이 없다고 툴툴거리게 되는 것은,

문득 여지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는 시간의 유한성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그러다 보니 책만 읽다 죽는다고 해도 내가 가진 책의 10퍼센트를 다 못 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골라 읽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전이라고 하는 것들에 주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전 읽기도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호기로운 시도와는 다르게 금세 밑천이 바닥나 버렸다.

책을 읽다가 궁금한게 생겨도 물어볼 곳이 마땅치가 않았으며,

해석을 잘못하거나 논리의 미궁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해 버벅거리면서도 깨닫지 못했었다.

 

동양 고전을 공부하려는 시도는 좀 되었다.

그때마다 저자를 달리하여 여러 종류의 논어를 시도하였었지만 흐지부지해지곤 했었는데, 그 이유가 해석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였다.

 

저자들의 이름을 달리할때마다 저자 나름의 해석본이 탄생하곤 했었는데,

과연 이 해석본들이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살았던 시대의 '논어'의 그 원뜻에 가까운지 하는 의문이 생겼었다.

만약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살았던 시대의 '논어'의 원뜻을 헤아리는데 실패했다면,

차선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게 오늘날에 맞게 적용시키는 것이라는 나의 견해와는 다르게,

저자들은 자신의 주체적인 가치관이란 없는 사람들마냥 '어느 스승님 문하에서 사사받았는지'만을 크게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건 스승님의 명성의 크기이지 자신이 이룬 학문적인 성과라고 할 수 없어서 아쉬웠던 차에,

이 책 '이기적 논어 읽기'를 발견하였다.

 

김명근의 가치관이 확고하게 서려 있었던 이 책은,

유명인사나 학자들의 명성을 답습하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신선하고 좋았지만,

책을 읽는 내가  '독자로서' 명확한 가치관과 주체성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오독으로 인한 편견이나 선입견의 늪에 빠져 버릴 수 있는 다소 위험한 책이었다.

 

그걸 책 머리에서 이렇게 밝히면서 시작한다.

  흔히 논어를 도덕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더 흥미를 느낀다. 동양이나 서양에서 도덕은 욕망을 조절하는, 더 정확하게는 욕망을 억누르는 기준으로 작용해왔다. 그런 억제가 있어야 욕망이 조절된다고 봤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의 설명은 다르다. 욕망을 억지로 누르면 그림자니 뭐니 하는 복잡한 괴물이 되어 나타나게 된다는 결론이다. 공자가 말하는 도덕이라는 것이 과연 욕망의 억제를 말하는 것이었을까? 셋 중 하나는 거짓이다.ㆍㆍㆍㆍㆍㆍ나는 공자가 말하는 도덕이 욕망의 억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쪽에 걸겠다. 기존 유학의 논어 해석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8쪽)

기존 유학은 논어를 '욕망을 다스려 군자에 이르는 법'을 담은 책으로 봤다.

그렇다고 나이 칠십에 이르니 욕망대로 살아도 도덕적인 삶에서 어긋나지 않더라는 공자의 삶을 놓고,

기존 유학의 논어 해석은 틀린 것이라고 하는 김명근의 견해에 공감한다고도 하지 못하겠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이기적'으로 욕망대로 산다고 해서 그것이 꼭 도덕적인 삶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닐 수 있으며,

공자처럼 성인이 아니어도 나이 70이 지나면서부터는 어찌 살아도 도덕적이거나 자연의 그것에 점점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이 있다.

정확한 뜻을 헤아릴 깜냥은 아니지만,

내 안에 있는 부처나 조사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죽이고, 있는 그대로의 부처와 조사를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마찬가지로 이기적으로 논어를 읽겠다는 것 또한 내 안에 있는 논어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논어가 읽히고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대로 논어를 읽어야 한다는 의미로 나름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김명근의 그것들이,

때론 확고한 가치관으로 읽히기도 했지만,

때론 또 다른 편견과 선입견을 낳을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다른 해석본과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이는 '이인,12장'을 언급하며,

"(모든 일을) 이로움에 의지해 행하다 보면 원망을 많이 하게 된다." 이게 바른 해석이다.(39쪽)

이라고 하는가 하면,

보통은 이 문장을 어짊仁을 제대로 이루는 것이 그토록 힘들다는 쪽에 초점을 맞춰서 해석한다. 물론 그 뜻도 옳다. 하지만 어짊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지 않는 공자의 태도 역시 주목할 가치가 있다. ㆍㆍㆍㆍㆍㆍ비슷한 문장이 또 있다.ㆍㆍㆍㆍㆍㆍ'명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로 보는 해석이 옳을 것이다.(90~91쪽)

이 문장에서 선진과 후진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108쪽)

궐闕은 '줄이고'로 해석하는 편이 옳다.(125쪽)

정도는 평범한 축에 속한다.

 

'이인,1장'을

어짊에 처함이 아름다음을 이루니 어짊에 처하지 않으면 어찌 지혜를 얻겠는가.

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이인里仁의 이里는 '마을'이라는 명사가 아니라 '처한다'라는 동사다. 하지만 주석을 보면 이里를 '마을'이라는 명사로 취급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마을이 어진 것이 아름다우니, 어진 곳에 처하는 것을 택하지 않으면 어찌 지혜를 얻으리오"로 해석하거나, 혹은 "어진 마을에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리오(지혜롭다는 평을 얻으리오)"로 해석한다. 어짊은 무언가 감성적인 것이고, 지혜는 이성적인 것이니 안 맞는 느낌이 있어서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발달심리학 ㆍ인지심리학 등의 연구 결과는 감성과 이성이 물밑 거래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277쪽)

정도가 되면 오독의 냄새가 풍기는 것이 편견이나 선입견 따위의...좀 위태로운 느낌이 드는데,

개인적으로 리링의 '집잃은 개'의 해석에 한표를 던지겠다.

 

'공자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어짊이나 도를 닦는 것에 대해서도, 이를 절대적인 하나의 잣대로 들이밀지는 않는다. 어짊은 아직 못 이루었어도 자신의 제자요, 나름 능력이 있고, 각자 모자라는 구석도 있으나 다 취할 장점이 있다. 도에 아무리 가까이 가도 배를 곯는 것은 여전히 안타깝다. 이런 것이 여러 잣대를 동시에 인정하는 태도다.(92쪽)' 라는 김명근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공자가 멋진 것은 나이 70에 이르러 자신의 ego가 고착될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강요하거나 자신만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가치관과 고집을 혼동하게 되면 괴팍하거나 고집불통이라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가치관을 확립한다고 하다가,

자신이 만든 가치관의 틀에 갇혀 허우적거리지 말고,

마음과 귀를 열고 생각은 유연하게 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함이 없도록 하여야 겠다.

 

논어를 끝까지 다 읽지 않은 사람도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는 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예전엔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랐었는데, 이젠 이 말이 단지 학문의 즐거움만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다.

한창 학교를 다니면서는 배우고 때로 익히는 즐거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어려운 말로 하면 時習이겠고,

바꿔 말하면, 마음을 열고 배우고 익히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다.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 고착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정도 되겠다.

내가 유연하고 말랑말랑해야만, 상대방과의 공감과 소통이 가능할테니까 말이다.

 

혹자들은 이 時習을 두고, 배움에도 적절한 때가 있다고 한다지만,

나도 김명근처럼 꾸준한 반복 학습 으로 해석하고 싶다.

 

이 책은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김명근 나름의 독자적인 해석이라는 면에서 신선하고 좋았지만,

책을 읽는 내가 '독자로서' 명확한 가치관과 주체성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오독으로 인한 편견이나 선입견의 늪에 빠져 버릴 수 있는 다소 위험한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고전이고 신간이고, 를 떠나서 책이란 깊이나 넢이 어느 한방향으로만 흐르면 안되는가 보다.

살 날은 얼마 안 남은 듯 한데, 갈 길이 먼 믓하여 자꾸 분주해진다~--;

 

 

(고칠 곳)

뚜렷이 담고 싶은 인물이=>닮고 싶은(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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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8 0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2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2-20 21:24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주말이 되었어요. 한주 바쁘게 보내셨을텐데,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참, 제 서재에서 요즘 퀴즈 있어요. 시간되실 때 놀러오세요.^^

양철나무꾼 2016-02-22 18:03   좋아요 1 | URL
네, 마실 가보겠어요~^^

2016-02-26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논어쓰기 고전쓰기 시리즈 1
임종수 엮음 / 문사철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사실 그렇고 그런 논어를 생각했고, 그렇고 그런 필사노트를 생각했었던 내게,

'이태준의 필묵'의 한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엮은이의 말은 신선했다.

 

 

書如其人 字如其人이라는 말을 몰랐던 소싯적부터,

남편의 연습장 글씨를 보고 반해 쫒아다녔을 정도로,

'글씨란 그 사람과 같다'는 내 연애사의 중심이 되는 가치관이지만,

이리저리 치이고 바쁘게 살다보니,

남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글씨를 쓸 일이 별로 없어졌고,

쓰더라도 갈겨쓰거나 흘려쓰다보니 쓴 사람도 읽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급기야 벌어졌고,

그러니 어쩌다 쓰는 글씨라곤 신분 확인용의 '서명'이 고작이었다.

 

나이가 들고 세월은 비껴갈 수 없다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오래 보고 있으면 잔상이 오래 남고 눈이 피로해지더니,

급기야 그 좋아하는 책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먹고 살려니까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아예 안 쳐다볼 수 없고,

내가 좋아서 읽는 책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는데,

개인적인 느낌인지 몰라도

허연 형광 종이보다는 재생지를 사용한 책이,

작고 다닥다닥 붙은 글씨보다는 한글서체나 손글씨가,

많이 봐도 괜찮은 것이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독서 생활의 위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 독서 생활의 전환기라고 생각을 바꾸니까 견딜만 했다.

단지 눈으로만 읽는다고 생각하면 독서활동이 위축될 수 있을텐데,

정민의 '책벌레와 메모광'을 빌리지 않더라도,

온몸과 마음, 거기다가 머리로 통과하면서 읽는다고 발상을 전환시키니 얼마든지 다양하고 광범위해질 수 있었다.

 

나이를 먹고 시력이 약해지면서 내 몸 하나 하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른바 과한 부분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심신의 온 감각기관을 적절하게 열고 협력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심신의 온 감각기관을 열고 공감각적으로 협력하는 독서를 하기 가장 적합한 것들이 동양고전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 이렇게 저렇게 띄엄띄엄 접했던 책들이지만, 난 전혀 이해불가였었던 책들.

그런 책들을 선조들은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두루 섭렵할 수 있었을까?

암튼,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려고 마음 먹었던 차여서 이 책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이런 모양새를 갖추었다.

왼쪽에 한자가 단정하게 앉아 있고 밑에 독음이 있고,

그 밑에 빨간 글씨로 작게 해석이 되어 있는데, 요즘 방식을 따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고전이란 죽간에 적힌 몇 단어로 압축된 문장이 고작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석이 있는게 아니라,

가치관이나 견해에 따라,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면 그만이다.

죽간에 적힌 몇 단어로 압축된 문장은 그래서 선문답 형태를 띄는 것이고,

그걸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각자의 가치관에 맞게 해석을 하면서 위로를 받고,

죄사함을 받는, 일종의 면죄부가 아닐까 싶다.

난 고전이 그렇게 짧은 문구로 이루어진 이유이고,

오늘날 고전이 필요한 이유이고 고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암튼,

손으로 베껴 써가며 읽는 이 방법이 좋은 것은,

눈으로 읽고, 입으로 외고, 손으로 베껴쓰고, 머리로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놓는,

읽기가 곧 행함으로 이어지는 심신의 온 감각기관을 열고 공감각적으로 협력하는 독서이기 때문이다.

 

난 책의 모양새가 두껍고 옆에 노트하기에 불편한 것도 있지만,

내가 감히 범접하기도 아까워서 노트를 따로 준비하였다.

책의 제본 방식이 필사하기에 불편하다는 것 외엔, 역자의 노고와 내공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책 뒤에 실린 이 분야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의 참고 문헌을 보고 역자 프로필을 다시 보기 전까지는,

이 책의 파격이 낯설었던게 사실이다.

모든 학계가 다 그렇겠지만,

고전, 이 분야는 특히 파격을 파행처럼 취급하고 내치는 곳이 아니던가 말이다~--;

 

세상은 바뀌고 있고,

자연스레 그렇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면,

앞장 서서 걷는 사람의 그것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대접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옛날식으로 음차하여 오늘날의 입장에선 어색하기만한 현토가 맘에 안 들었었는데 이 책에서는 현토를 볼 수 없어서 좋았고, 해석의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함이 싫었는데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이 좋았다.

그동안의 책에선 고어 투의 투박한 문체를 그대로 사용했었는데 이 책에선 요즘 일상용어로 고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물론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이겠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책들이 비교의 방법으로 '이중 부정'은 '강한 긍정'인 한자어 특유의 해석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비교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 책은 비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기능인 나열과 열거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는게 아닐까 싶다.

나열과 열거를 통해...장점을 부추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힘을 얻고 위안을 받으니까 말이다.

공자는 양화(陽貨)에서,

시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고,

ㆍㆍㆍㆍㆍㆍ 

사람들과 어울리게 할 수 있고,

ㆍㆍㆍㆍㆍㆍ

시를 배우면 날짐승과 길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러니 이러구러...시는 고사하고 논어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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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2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2-05 09:04   좋아요 0 | URL
Let`s cheer up~!

마녀고양이 2016-02-02 21:42   좋아요 0 | URL
글씨 이쁘다, 이뻐~ 자기만큼.

양철나무꾼 2016-02-05 09:05   좋아요 0 | URL
헤헤~, 내가 내 미모로움을 아는지라 급 겸손 모드로~--;
칭찬 맞지~???

paviana 2016-02-04 12:10   좋아요 0 | URL
이 책 관심있어서 보관함에 넣어놓았는데, 미리보기가 없어서 너무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몇가지 질문이 있는데 논어 전문이 다 있는거지요? 간혹 좋은 구절만 편집한 책들이 있어서요.
그리고 책에 직접 필사하기 많이 불편할까요? 저는 노트 따로 둘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서...ㅠㅠ
제가 <배우고 익히는 논어> 이책과 어떤게 나을까 비교중이라서요.

양철나무꾼 2016-02-05 09:19   좋아요 0 | URL
네, 고주, 신주까지 들어가면 좀 난해해지지만요.
책에 직접 필사하기 많이 불편하지 않습니다만 하드커버 장정이라 부피감은 좀 있습니다.


성백효 님 책은 제가 보지 않아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군더더기 없는 번역`이라고 되어 있던데,
전 현토를 하나의 `군더더기`라고 보는 입장이라서~--;

paviana 2016-02-05 15:39   좋아요 0 | URL
하드커버군요. 새로운 사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설명절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6-02-12 18:14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02-17 17:08   좋아요 1 | URL
금욜날 댓글을 주셨는데, 벌써 수욜이네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인가요?
좋은 저녁시간 보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