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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게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대답하겠다.

독서 기록을 왜 남기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그냥' 이라고 대답해야 겠지만, 이건 '그냥'은 아니다.

소싯적 기억력이 좋을때는 기록에 의지하지 않고도 책을 읽으면서의 감정 변화나 읽은 후의 느낌을 정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기록에 의지하지 않고서 기억하기가 힘이 든다.

 

 

 

 

 

 

 

 소중한 경험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5년 7월

 

 

 

'김형경 독서성장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있는 이 책은,

독서모임에서 '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시간과 공간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와있는 독서나 독서모임들은 어떤 방향성이나 지향점 따위를 가지고 있는 듯 여겨졌고,

게다가 그것도 독서 자체보다는 독서나 독서 모임을 통한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듯 하여  씁쓸했다.

 

생각이 이리저리 딴방향으로 튀는 것이 짬뽕공 같은 나는 요번에도 이책에서 애기하는 것과는 다른 엉뚱한 것을 느꼈는데,

책을 성찰하는 책읽기, 치유하는 책읽기 등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가, 

책읽기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그냥 내멋에 겨워, 내 방식대로 읽으면 안되는 것인가 따위를 말이다.

 

프롤로그에서,

타인으로 하여금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만드는 재능과 더불어,

타인의 비밀을 듣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순간 잊어버리는 망각의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프롤로그 말미에서 책으로 엮으면서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았는지 조심스럽다고 하는 걸 보면,

과연 망각의 능력을 두루 갖추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지만, 쩝~(,.)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는 차치하고,

독서토론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귀가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만 아프고 힘든 것이 아니라는 동료 의식을 더하여.

 

 

그런데 김형경은 책을 만들기 위한 소재를 수집한 것 같다.

치고 자기는 빠져버린다.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귀가 필요하지도 않고, 자기만 아픈 것이 아니라는 동료의식도 그녀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절실하지가 않다.

절실하고 치열하지가 않으니 타인을 위로 할 수가 없다.

애벌레가 크기 위해서 누에고치를 벗어놓고 탈피를 하듯 그렇게 자신은 성장한다.

 

책 내용에 무의식을 자극당하면 미처 몰랐던 분노가 올라오기도 한다. 그때도 그 감정이 자기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채 이상한 꼬투리를 잡아 책에게 화를 낸다. 이 책은 번역이 잘못된 것 같다는 둥, 표지가 촌스럽고 편집이 나쁘다는 둥 심지어 책이 시시하다거나, 재미가 하나도 없다고 화내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내면 감정을 책과 저자에게 투사하는 행위이다. 독서모임에서는 그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 배면의 감정을 알아차리도록 이끈다. 사실 삶에서 만나는 타인이나 경험에 대해 판단이나 의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사람이라면 치유 노력이 필요없는 상태일 것이다.(36쪽)

 

독서나 독서모임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하고 그걸 성장과 동격으로 취급하는 그녀를 탓하려는건 아니다.

독서 모임이나 독서토론은 차치하고,

그냥 묵묵히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고, 개인의 기억을 위한 용도로 기록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것이다.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이 처음부터 자기표현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일 년이 지나도록 자기 이야기를 한 마디도 꺼내놓지 않는 이도 있고, 친구 따라 모임에 참석했지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오래 사용해 온 페르소나를 벗는 일이다. 모임에서 말하는 방식도 그들의 생김이나 성격만큼 각양각색이다. 이를테면 책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해와 세미나에서 발표하듯 말하는 사람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물으면 내면이 정전된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일상생활을 사건 파일 보고하듯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일을 겪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느냐고 물으면 언어가 중단된다.(39쪽)

 

나라가 뒤숭숭 해서 책이 안 읽힌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저 묵묵히 책을 읽고, 읽은 느낌을 이렇게 정리하는 것 외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all or nothing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냥'은 단순히 그냥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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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6-10-26 18:19   좋아요 2 | URL
그냥 이라는 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만 한다면.. 사는것이 좀 많이 피곤할듯 해요~
그냥 책 읽고 그냥 공부하고 그냥 .. 하고 싶어서...
너무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사는것 처럼 보일까요?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6-10-27 15:27   좋아요 1 | URL
저도 그냥이라는 말 좋아요.
목적이 없는 듯 순수하게 여겨져서 말이지요.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 듯 살더라도,
바람이나 햇살 따위 경계가 없더라도 두루 공평하게 넉넉할 수 있잖아요.
그리 살아도 좋지않을까요?
헤에~^____^
 
국수는 내가 살게 삶창시선 46
김정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어제였었나,  앉으면 꼬리뼈가 아프다는 비밀 댓글이 달렸었는데,

난 이런 비밀 덧글을 달았다.

이렇게 아프신 곳을 집어서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라면 스스로 자가치유도 가능하실거에요.
너무 꼿꼿하게 바른 자세로 앉으려하니까 꼬리뼈에 무리가 갈 수도 있고,
꼬리뼈를 지배하는 감각신경의 문제일수도 있는데,
흔히 디스크라고 얘기할때 영향을 받는 요추5번신경이랑 천추1번 신경의 지배영역이거든요.

가장 좋은건 지금도 잘 하고 계시는대로 도너스 방석이용하시고,
50분 책상에 앉아 계셨으면 한번씩 일어나서 움직이셔서 자세를 바꿔주는 것입니다.
앉은 자세에서 움직이기만 해서는 안되고,
일어나 손을 씻으러 다녀오신다던가 커피를 한잔 타 드신다던가 움직이셔야 자세 근육이 재 배열되고 정렬될 수 있답니다.

그런데, 이 모두를 너무 오래 방관하셨다면, 되돌아 가는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 생각하시고,
느긋하게 고울을 잡아보시길~^^

덧글을 이렇게 달았지만,

사실 난 퇴화 기관인 꼬리뼈에서 통증을 느낀다는 그 (또는 그녀)가 부러웠다.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근원적인 명제를 떠올릴 것도 없이,

오래전부터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살아있다와 동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냥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명징하게 반응한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좋다.

 

그런데, 이 시집 '국수는 내가 살게'를 쓰신 김정원 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는 시 '까치'를 통하여 이렇게 소회를 밝히고 있다.

뛰놀기는커녕 걸을 기회조차 박탈되어

점점 짧아지다가 어느 날엔가 아예

두 다리마저 없어질지 몰라

퇴화한 꼬리뼈처럼

                    -'까치' 중 일부-  

 

그렇다고 일부러 꼬리뼈를 가지고 통증을 즐기겠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매 순간 순간 무뎌지지 않고,

내 고통을 느낄 수 있을테니,

타인의 고통에도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을거란 짐작을 얘기하는 거니까 말이다.

 

정말 되도않는 사람들이 화가라고 하고 다니고,

말도 안되는 시인과 작가가 시를 합네 소설을 합네 난리 블루스를 추지만,

아직까지는 무뎌질 수 없다며 통증을 일깨우는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한다고 생각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받아쓰기

 

농주 한 주전자 들고

벼논에서 피뽑고 지심 매시는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논둑에 난 흰머리, 삐비꽃 뭉개고 앉아

사발에 막걸리 따르며

깜냥 잘 썼다고 생각한 시를 흡족하게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버지가 펼쳐보시더니

-당최 무신 말인지 모르것다야. 요로케 알기 옹삭한 것이 시다냐?

하셨다

 

나는 무지하게 민망했지만

염치없이 또 다른 시를 슬그머니 흘렸다

-이런 시답잖은 것도 시다냐? 영락없이 우리 사는 것 맹키구나. 나도 쓰것다야.

아버지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큰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 아찔하게

벌떡 일어나 무릎을 쳤다

 

먹물 묻은 관념이 아니라, 넥타이 맨 언어와 표현이 아니라

맨발로 흙을 밟고 손에 굳은살 박인 가난한 농사꾼이

'나도 쓰것다'하는, 오지항아리 같은 삶을 받아써야지

향기 나는 암술이 없는 꽃은 생명력이 없듯

땀내 나는 삶이 없는 시에는 자궁이 없구나!

 

시방 날도 화창한데

논길 따라 돌아오면서

나는 청개구리처럼 울었다

개안개안開眼開眼

 

내 시 농사는 조족지혈,

늙은 농사꾼의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난 이런 시가 좋다.

이렇게 아픔을 건드리는,

그리하여 알싸한 통증을 느끼게 하지만,

하지만 그 아픔에 무장해제하고,

감싸안고 다독다독 할 수 있게 해주거나,

쿨한듯 어깨 한번 툭치며 소주 한잔 털어넣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은,

이런 시들이 좋은것이다.

 

'공정한 편애', '구별하기', '호남고속도로 하행선에서' 등 좋은 시가 넘쳐나는데 미처 다 못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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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25 18:04   좋아요 0 | URL
누가 말했던가요..고통은 존재를 각성케 한다라 했던데..책 찾아 봐야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10-26 18:03   좋아요 0 | URL
누가 말했던가요..고통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아니다, 사랑이었네요. 눈물의 씨앗은~^^

cyrus 2016-10-25 18:52   좋아요 2 | URL
관절염 같은 뼈에 생기는 통증은 정말 아픕니다. 오늘 병원에 검진 받았는데, 의사 선생이 통풍이 아니라 류머티즘 초기 증상일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6-10-26 18:07   좋아요 1 | URL
통풍은 요산 검사를, 류마티즘은 류마티스 인자 검사를 하면 알 수 있는 것인데~--;
류마티스는 만만하게 볼 게 아니랍니다, 소모성 질환인데다가 난치라서.

정확하고 명확한 검사를 받아보세요.
대충 두루뭉술 넘어가면 나중에 후회하십니다~ㅅ!

AgalmA 2016-10-25 19:05   좋아요 1 | URL
이렇게 빨리 나타나실 줄 알았으면 급하게 먼댓글 달지 말 걸ㅜㅜ... 그래도 좋아요... 후루룩 냠냠. 국수엔 양념 간장~청양 고추 넣어서~

양철나무꾼 2016-10-26 18:11   좋아요 1 | URL
전 국수하면 따끈한 잔치국수가 좋고.
거기 동글한 밀가루 튀김말고 유부 많이 얹어서 먹는게 좋습니다요~^^

어제 비가 많이 내려서 하루종일 링가링가 베짱이처럼 놀았다죠.
님의 댓글도 , 먼댓글도, 덧글도 제겐 귀하고 소중하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건 아닙니다.
늘 그리워 한답니다~ㅅ!

지금행복하자 2016-10-25 19:24   좋아요 1 | URL
저도 국수 사드릴수 있습니다 ㅎㅎㅎ
좋네요. 누군가에게 선듯 밥은 내가 살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국수 사줄 사람 찾으러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6-10-26 18:16   좋아요 1 | URL
사실 저 `국수는 내가 살게`라는 시는 좀 슬펐습니다.
요즘은 김영란 법 때문에 국수 한그릇 맘대로 못 사죠.
근데 제가 그런 선생님을 알아서 하는 말인데,
졸업한 제자들에게 국수고 밥이고 술이고 막 퍼주는 것은 김영란법에 안 저촉되나여?

제가 좀 많이 먹습니다.
국수 두그릇도 먹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ㅋㅋㅋ

아이리시스 2016-10-25 22:23   좋아요 0 | URL
저도요 국수 열그릇씩 열번. 방금 댓글달고 수정하려다 리스트를 지웠습니다. 폰으로 건드리다 한 실수인데, 그만큼 오래 안해서 낯설어졌구나 했어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마음이 언제나 다는 못건너가지만 전해질거라 믿어요 이제 자주 만나요😁😁

양철나무꾼 2016-10-26 18:18   좋아요 1 | URL
북플이 편하기는 하지만,
편한게 매번 좋은 건 아닐거예요.

때로 때때로 한번씩 좋습니다.

이제 자주 만날 수 있습니까?
새끼 손가락 걸자구요.
꼬옥~♥
 

사람들이 시를 얘기할때 어려운 말로 언어유희라고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난 그런 어려운 말로 꾸미기보다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말 장난 같다.

지나친 말 장난 같은 시집 한권을 만났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그동안 김민정 시인을 좋아했었다.

문학동네에서 낸 시집들을 보다보면, 여기저기 따뜻하고 기지 넘치는 그녀의 코멘트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동안 그녀의 코멘트를 보고 넘어가지 않았던 적이 없을 정도로,

그녀를 향하여 팔랑귀였던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시집은 언젠가 내게 돌멩이를 보내줬던 친구가 보내준 것인데,

그래서 그런 것인지 어쩐 것인지,

표제시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보다가 내 돌멩이가 불쌍해졌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돌을 주웠다

닭장 속에서 달걀을 꺼내듯

너는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들었다

속살을 발리고 난 대게 다리 두 개가

V자 안테나처럼 돌의 양옆 모래 속에 꽂혀 있었다

눈사람의 몸통 같은 돌이었다

물을 채운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담그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냈는가 하면

물을 버린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놔두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먹빛이었다가 흰빛이었다가

밤이었다가 낮이었다가

사과 쪼개듯 시간을 반토막 낼 줄 아는

유일한 칼날이 실은 돌이었다

필요할 땐 주먹처럼 쥐라던 돌이었다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우리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 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내 돌멩이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하는 시의 소재로조차 등장하지 못하니 말이다~--;

 

시집의 뒷표지를 보면 김민정 시인의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시는 내가 못 쓸 때 시 같았다.
시는 내가 안 쓸 때 비로소 시 같았다.

그랬다.
그랬는데,

시도 없이
시집 탐이 너무 났다.

탐은 벽(癖)인데
그 벽이 이 벽(壁)이 아니더라도
문(文)은 문(門)이라서
한 번은 더 열어보고 싶었다.

세번째이고
서른세 편의 시.
삼은 삼삼하니까.

 

나도 같이 말장난을 해보자면,

시도 없이 시집을 탐내면 탐욕이 되는데,

詩集이 아니라 여자가 결혼하여 남의 아내가 되는 그 시집을 일컫는 모양이다.

그런데 시집 간 여자의 탐욕은 예로부터 칠거지악이라는데 말이다.

암튼 본인도 민망했는지,

'현대시 5월호'에서 신형철과 대담한 내용의 한 꼭지를 '출판사 책 소개' 란에 실었는데,

'이게 시가 아니면 뭐 어때?'라고 말하듯이 쓰인 시가, '그런데 이게 인생이 아니면 뭐냐'라고 말하듯 삶의 깊은 데를 툭툭 건드린다.'

고 하는데, 뭐~(,.)

그런데 말이다.

'삶의 깊은데'를 툭툭 건드린다고 하여, 시도 덩달아 깊어지는 건 아니다.

시는 깊은 데를 건드리는 매개일 뿐이다.

지인과의 카카오톡 내용 따위가 시가 될 수 있는 시대라지만,

굳이 그 시의 저작권을 따지자면,

그런 카카오 톡 내용을 보낸 시인의 지인에게 일정 부분 있고,

시인은 찬조출연 쯤 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시인에게서 윤동주 같은 시심을 바래선 안 되겠지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고백하던 윤동주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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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려운 돌, 어려운 시
    from 공음미문 2016-10-25 14:29 
    조약돌  조약돌은 잘 정의하기에 쉬운 사물이 아니다.단순한 묘사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우선 조약돌이 바위와 자갈 사이의 돌의 형태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이 말은 이미 돌에 대해서 증명되어야 하는 하나의 개념을 의미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노아의 홍수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나를 비판하지 말 것이다. * 모든 바위덩이들은 엄청나게 큰 하나의 선조로부터 분열되어 나왔다. 전설적인 이 몸체에 대해 한가지밖에 말할 수 없다. 저 세상을 벗어나면
 
 
yureka01 2016-10-25 13:46   좋아요 2 | URL
시집 제목이랑 돌맹이 하나가....마음의 연못에 툭 뎐저질 때의 파장은 그래서 더 물이 결로 일어나는 것인지도^^..잘봤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10-25 14:01   좋아요 1 | URL
우와~~~~^^
댓글이 더 시 같이 멋집니다여.
근데 시집은 그니의 명성만큼은 아니어서 씁쓸했답니다~--;

AgalmA 2016-10-25 14:3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이 글에 먼댓글 썼는데요. 혼내기 없기요-,-;;

양철나무꾼 2016-10-25 14:38   좋아요 2 | URL
먼댓글 잘 읽었고 `좋아요`도 눌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님의 먼댓글을 혼낼 깜냥이 안 되는지라, 쭈뼛쭈뼛~--``(땀나라~)

어려운 돌, 아니 어려운 댓글 말고...쉬운 댓글만 던져 주시길~^^
이곳은 비가 내리다가 그쳤습니다.
님 계시는 그곳은 어떤가요?^^

AgalmA 2016-10-25 15:22   좋아요 2 | URL
좋아요는 프랑시스 퐁주에게 주시는 것이지 제 것은 아니니까 감사 안할래요ㅎㅎ;;
저도 말 공기놀이 좋아하는데, 양철나무꾼님 이 글이 퐁주 시를 부르는 걸 어떡해요; 작가가 작품이 원하는 대로 따라 글을 쓴다 하듯이 저도 양철나무꾼님 글이 부르는 글을 찾아 데려 왔다고 핑계댈래요ㅎ;;;
여기도 비는 그쳤는데, 덕분에 시 읽다보니 일이 너무 하기 싫어졌어요. 으앙ㅜ.ㅜ

양철나무꾼 2016-10-25 17:56   좋아요 2 | URL
어떡하죠?
전 이런 님의 투정같은 글을 사랑한답니다.
온몸으로 흠뻑 받아들였다나, 어쨌다나~(,.)

우리 비도 그쳤는데, 일은 이쯤에서 작파하고,
술한잔 합시다~!
그대는 거기서 난 여기서,
잔을 채우고,
건배~!^^

2016-10-25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0-25 18:01   좋아요 1 | URL
아핫~, 관심을 가져주시고 감사합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 지으실 님은 아직 모르겠지만,
이런 가을 저녁이 되면,
그냥, 불현듯,
있지도 않은 옛사랑 생각도 나는 것이 괜히 멜랑꼴리해진답니다~^^

이 시간에 커피 먹으면 밤을 꼴딱 지새우지만,
오늘은 님말씀 듣고 퇴근길 편의점에서 따끈한 캔커피 하나 사봐야겠어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10-25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지승호 지음 / 오픈하우스 / 201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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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환자들에게 말을 시키지만, 환자가 하는 대답의 내용은 주의깊게 듣지 않는다.

그들이 내가 묻는 것에 호응을 적절하게 하는지 따위를 살피면서,

그들이 하는 말의 행간을 듣고, 뉘앙스를 감지해 낸다고 해야 할까?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아픈 곳이나 아픈 증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생각하는 곳이나 아프다고 생각하는 증상들을 얘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때문에 입으로 하는 말보다는 몸으로 드러나는 행동들 오히려 정직하다는걸 간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말을 할때 호응을 하고 적당한 추임새를 넣어 주고 하는 것은,

아픈 곳에만 집중하려는 환자들의 주의를 분산시켜 슈도 사인을 잡아내기 위해서다.

 

허리를 예로 들어 보자면,

무거운 것을 들거나 잠을 잘못 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허리를 삐끗하지도 않았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할 경우,

일단 허리 주변 근육들을 살펴보는게 먼저이긴 하지만,

무거운 걸 들지는 않았어도 당기거나 밀다가 허리와 어깨에 넓게 펼쳐져 있는 광배근이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또 허리 주변 근육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허리주변의 뼈나 신경 따위의 문제 일 수도 있고,

흉ㆍ복부 내장기관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심리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또는 무게중심이 흔들려서 허리가 아플 수도 있으며,

턱관절이 안좋은,턱관절염이나 부정교합이라고 불리우는 경우도 허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며,

여성의 경우 빈혈과 허혈로 인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책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같은 경우가 그런 것 같다.

그의 말대로 먼저 <글쓰기의 힘>의 글들을 뼈대를 삼아 살을 붙였다.

그래서인지 글들이 어렵지도 않고, 돌려말하지도 않는 것이,

이 책을 읽고나면 그가 누굴 좋아하고 누굴 존경하는지 알 수 있겠고,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한우물을 팠다는 것을,

(물론 그가 책에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훤히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음으로 그의 열정이나 그동안의 꾸준함 따위를 알겠지만,

최대한 그의 색깔을 배제했기 때문에,

그동안 나도 읽었던 글쓰기 관련 서적 속의 내용들이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김규항은 "글쓰기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거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건 느린 독서, 고독한 사색, 인간의 이면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이다. 그것을 대체할 방법은 없다."고 말합니다.(183쪽)

그동안 글쓰기 비법하면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글을 안 쓰고 못 써도 좋으니,

행간을 읽는 '느린 독서'와

깊이와 넓이를 두루 갖춰 고독하게 느껴질지라도 마다 않는 '사색',

그리고 쓸쓸하고 외롭더라도 보여주는 것만이 보여지는 이면 너머의 그것을 간과하지 않아야 되겠다.

그러려면 너무 많은 책과 너무 많은 사람에게로 범위를 넓히는게 불가능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줬다.

 

또 한가지,

허지웅 기자는 자신의 글쓰기 원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일 신경 많이 쓰는 건 글 자체의 운율감이다. 단문과 중문은 담고 있는 정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서로 쓰임이 전혀 다르다. 그 둘을 적절하게 운용하여 읽는 사람이 운율감을 느끼고 지치지 않게 한다. 그러려면 퇴고 과정에서 원고를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게 중요하다. 내가 의도한 호흡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더부어 웬만한 비문은 이때 다 잡힌다. 소리 내어 읽는 것만큼 좋은 교정 도구는 없다."(187쪽)

텔레비전에 나오는 허지웅을 보면서, 또 그의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강한 척하는 그이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은,

야구선수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의 과학>을 인용하며,

목수가 연장 탓하냐는 말이 있지만, 초특급 목수는 연장을 탓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글쓰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 하다못해 마음에 드는 필기구, 마음에 드는 책상,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기 위한 노력이 그래서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 일단 앉아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194쪽)

라고 한 구절이다.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은 말을 하기보다는 잘 듣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책 속에서는 '잘 참는 사람' 이라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을 가지고 '사람의 품성을 상징하는 표상'이라고 까지 하는데,

좀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그동안 그의 저작들을 보면 토를 달 수는 없겠다.

 

하지만, 이 모두는 인터뷰어인 그에게 적용되는 것이겠고,

일상에서는,

적어도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좋다고 다독 다독 해주고 싶다.

 

잘 듣는 사람도 좋고, 잘 참는 사람도 좋지만,

그러다가 만성체증으로 고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도,

다른 사람에게 크게 잘못을 하거나 해를 입히기에는,

그의 글이 화려한 문체나 능란한 수사를 구사하지는 않으나,

소통하고 공감하기에 적당한 온기를 지녔으니까 말이다.

 

인터뷰를 하려는 사람만이 아니고,

좋은 인간 관계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온갖 유명한 작법서를 요약,발췌한 이 책 한권이면 충분하겠다.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된 사실 하나,

나보다 한살 많은 걸로 알고 있는,

알라딘 서재 이곳에도 둥지를 틀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

구본준 기자가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디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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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4 1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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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1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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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4 1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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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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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14: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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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2017 리커버 한정판 나무 에디션)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허지웅은 자신을 '글쓰는 허지웅'이라고 소개한다는데, 난 여지껏 연예인인줄 알고 있었다.

만능엔터테이너의 느낌이 강하여,

연예인이 소신발언도 할 줄 알고 글발도 그정도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이런 허지웅에게 관심을 갖게 된건 '미운 우리 새끼'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였다.

청소에 관해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을 떠는데,

그게 내가 보기엔 상처 입을까 두려워 주변에 견고하게 벽을 쌓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 그를 두고 이러저러한 말들을 하고,

누군가는 환자 취급을 하고 정신분석을 해놓기도 했던데,

나는 그딴건 차치해 두고,

그저 그냥 어깨를 툭치거나 그러모아 다잡아주며 다독다독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작가의 말' 맨처음에서,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하나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라는 문장을 보자마자,

(왜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을 뿐이고~--;)

텔레비전에서 보여지던 것처럼 시니컬하거나 독설적이지 않은,

카멜레온의 보호색처럼 일종의 변장이고 위장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꾸준히 책을 내고 텔레비전에 모습을 드러내고 하는 것 자체가 누구보다도 소통을 원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닐런지.

아버지와의 관계나 전처에 관해 언급할때, 결코 누구의 탓을 하지 않는데,

그의 그런 행동이야말로 어른스러운 것이지 싶어서 좋았다.

하지만 좋은건 좋은 것이고,

한걸음 떨어져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심리 상담과 치료가, 적어도 마음을 소통할 수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상처받으며 살아온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상처를 기준으로 타인을 견주어 헤아릴 수 있게 되지만,

잘못 하면 집단적인 자기연민을 조장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여야 겠다.

그걸 허지웅은 책 속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날 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엄마는 내게 말했다. 엄마가 맞고 있는데 욕은 못해줄망정 인사를 하고 나오냐 너는? 그때 내가 무어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그날 이후 영영 달라졌다. 힘들 때마다 내 비굴한 웃음을 기계적으로 떠올리며, 그날의 나를 해명하기 위해 살아왔다. 그 웃음을 떠올리면 아무리 나쁜 것도 마냥 나쁘게만은 보이지 않고, 제 아무리 아름답다는 것도 마냥 아름답게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 받은 알량한 상처의 총량을 빌미로, 타인에게 가하는 상처를 아무것도 아닌 양 무마해버리는 비겁함을 쉽게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생이 영화나 연속극이라도 되는 양 타인과 자신의 삶을 극화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그 상처를 계기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거나, 최소한 보상받으리라 상상한다. 내 상처가 이만큼 크기 때문에 나는 착한 사람이고 오해받고 있고 너희들이 내게 하는 지적은 모두 그르다, 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착각은 결국 응답받지 못한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상처를 과시할 필요도, 자기변명을 위한 핑곗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뿐이다. 살아가는 내내 말이다. (18쪽)

 

이 책은 7년동안 여기저기 기고했던 글들을 묶어놓은 거라서 같은 얘기가 중복되기도 하고 글이 들쑥날쑥한 단점은 있지만, 그래도 7년이란 세월을 두고 그의 소신이랄까 생각의 큰 흐름은 늘 한결같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어떤 글들은 줄을 타는 광대의 그것을 닮았다.

아슬아슬 조마조마하지만 그것은 구경꾼들의 몫,

광대는 줄을 밟았다가 놓았다가 쪼르르 내달리고 사뿐사뿐 넘나들며 구경꾼들과 '밀.당.'을 즐긴다.

줄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날고 뛰고 춤추다가,

땅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하는 순간,

광대와 구경꾼은 하나가 되는 묘한 카타르시스와 쾌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데서 닮았다.

 

그의 글은 이런 식으로 시니컬 하면서도 유머러스 하고, 신랄하면서도 통렬하다, 멋지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드물다. 여타 대개의 한국산 선후배 문화에는 장점만큼이나 나를 질식하게 만드는 냄새와 결이 있다. 선배와 후배라는 이름으로 날줄과 씨줄을 자처하지 않고서는 좀체 안도할 수 없는 병이 보인다. 나는 좀 빼주었으면 좋겠다. 한국에는 깍두기라는 훌륭한 전통이 있다.(31쪽)

 

 

'책을 읽는 삶에 관하여' 꼭지에 있는 문장들도 그렇다.

내 독서습관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잠자고 밥 벅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는 책만 읽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하루 십오 분이라도 시간을 쪼개어 읽어야 한다. 재미있는 건 하루를 아무리 바삐 보내보았자 결국 그 시간만이 온전히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는 거다. 책을 읽지 않으면 내가 아는 것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민들어내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하이퍼링크가 없는 웹상의 DB를 상상해보라. 그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TV만 보면 테이스트가 없는 사람이 되고, 인터넷만 보면 자기가 해보지 않은 모든 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틀렸다고 말하게 되며, 경험만 많이 쌓으면 주변 세계와 격리된 꼰대가 됩니다. 종류가 무엇이든 책을 읽으세요.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지혜입니다.(82~83쪽)

 

한때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들이고 쌓아두는 것인줄로만 알았던 적이 있다.

책을 들이면 언젠가는 저절로 읽게 될거라는 허무맹랑한 생각도 했었다.

한편으론 책을 들이고, 한편으론 전투적으로 읽는데도, 읽을 책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주마간산 식으로 책 한권을 뚝딱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행간에 머물면서 사유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생각들을 숙성이키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그렇게 그렇게 책도 읽고, TV도 보며, 인터넷도 하고, 경험도 쌓을 때,

우리는 세상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때의 살아간다는 의미는 그저 삶이 수동적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생명력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얘기한다.

때문에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날의 반복인 세상이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고민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을 얘기한다는걸 알겠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지만,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적당히 무게감 있는 문제 제시를 하며, 적당히 무게감 있게 씌어진 이 책을 읽은 소감을 이렇게 마무리해야 겠다.

사람의사랑이 변하듯,

7년이라는 세월동안 그의 소신이라는 것도 변해가지만,

변화보다는 뚝심에 초점이 맞춰져서 좋았다.

모두들 끝까지 같이 버티자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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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6-10-21 17:52   좋아요 2 | URL
가볍게만 봤던 사람인데 글은 참으로 진중하게 써서 달리 보였어요.. 화면에서 보이는 말보다 글이 더 좋은 사람이에요~

양철나무꾼 2016-10-24 18:49   좋아요 0 | URL
며칠전 세탁 어쩌구 하는 프로그램에 나온걸 봤는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품이 정말 멋지더라구요.
보통 그런 방송에선 자신이 두드러져야 하니까 아무래도 튀게 마련인데,
정말 다시 보게된 계기였습니다.

전 시니컬한 척 하는 외모도, 말도, 글도 이젠 다 좋습니다여~^^

2016-10-21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0-24 18:50   좋아요 1 | URL
그렇다고라고라고요?^^
언젠가 한번 읽어보세요.
다시 읽어도 후회 안하실겁니다~^^

서니데이 2016-10-24 18:54   좋아요 0 | URL
이번 주말 지나고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아마 새 책이라고 고이 보관중일 가능성이 높아요.^^

CREBBP 2016-10-21 21:09   좋아요 0 | URL
뭔가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군요. 물론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지만.. 저는 요즘 가끔 티브이에서 청소 깔끔 떠는 거 보면서 완전 웃기게만 봤는데, 저런 사람이랑 참 살기 어렵겠다고 옆에서 그러더군요. 혼자 살아야 되는 사람이다 그 생각은 저도 동의했어요 . 아무튼, 논리적으로 말 잘하는 사람이니 글도 얼마나 잘쓸까 싶어 얄미워보이기까지 하네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6-10-24 18:56   좋아요 2 | URL
전 허지웅 까지는 아니어도 청소광인 남편을 둬서 아는데,
저희 남편 흰면장갑 끼고 창문 먼지 청소하는 사람임~(,.)
반면 저는 저 앉을 자리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인 사람이구요.

어찌 같이 살까 했었는데,
연애 기간까지 합쳐 이제 26~7년 되니까,
남편이 깔끔 떨고 청소하지 않으면 제가 이젠 적응을 못하겠다는거.

오래 같이 살다보면 이렇게 저렇게 적응하고 동화되지 않을까요?
아마 허지웅도, 허지웅의 빈 옆자리도 그럴거예요~^^

AgalmA 2016-10-21 21:2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아녔음 저도 허지웅 씨를 표피로만 보고 말았겠군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긴 어렵죠. 그럴 때 신념이 있는 사람은 덜 흔들리며 삶을 좀 더 용기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허지웅 씨 글은 그런 걸보여 주는 군요.

양철나무꾼 2016-10-24 19:00   좋아요 2 | URL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고사하고,
제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적어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면 보이는게 전부는 아닐거예요.
그게 실재적인 것이든,이렇게 글로 보여지는 것이든 말예요.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작습니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책읽는나무 2016-10-22 13:44   좋아요 0 | URL
말과 글이 똑같을까?
늘 허지웅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면서 생각해오다 언제 한 번 본심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고서 멋진 사람이란 생각을 했어요
저는 결벽주의로 청소하는 모습도 가히 나쁘지 않던데요?(물론 같이 살기엔 많이 피곤하겠지만요^^)
방송을 위해 꾸미지 않는 듯,자신의 생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같아 허지웅은 다른 출연자들과는 달리 연예인이 아닌 그냥 지인들 중 좀 유별난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봐지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6-10-24 19:03   좋아요 1 | URL
제가 쫌 그런 남자랑 살아서 아는데 말이죠~^^
같이 살기에 많이 피곤하지 않습니다.
시키고 엉덩이 두둘겨주면, 못 이기는 척 즐깁니다.
허지웅도 그렇고, 저희 남편도 그렇고...청소가 취미인 사람들은 청소를 즐기더라구요.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불편하지 않습니다여~^^

단발머리 2016-10-22 14:20   좋아요 0 | URL
저는 반짝반짝한 연예인들 사이에서 허지웅씨가, 말하는 허지웅씨가 그렇게 섹시하더라구요. (엄마나~~ 느닷없이 양철나무꾼님 방에서 고백타임^^) 저는 요즘 신문에 연재되는 허지웅씨 글을 읽는데 너무 좋아요.
먼저는 솔직해서 좋고 그리고 쓰디쓴 고생의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꼰대가 되지 않으려 돌아보고, 성찰하는 모습이 그렇게나 멋지더라구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6-10-24 19: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섹시한게 정답이네요~^^
외모가 섹시한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거기다가 적당한 온기,
쿨한척 턱 쭈욱 내밀어 만드는 표정까지,
그의 마음 속 적당한 온기를 엿보게 되면, 완전 멋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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