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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책 한권을 읽고 이렇게 두들겨 맞은 듯 머리가 멍해지고 온몸이 무거워져 보기는 처음이다.

그러고보니 책의 제목이 다분히 중의적이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방인영이 먹던 사과 음료도 후르츠 펀치라고 할 수 있고,

권투에서 상대를 훅 가게 만드는 한방도 펀치라고 할 수 있다.

방인영이 먹던 사과 음료는 나중에 모래의 남자가 먹게 되는 음료와도 묘하게 연결이 된다.

그냥 읽어버리고 말면 그뿐인 책이지만,

내 자신의 삶에 대입시켜 읽을라치면 모골이 송연해지는것이...

눈이 퀭해지는게 한뼘은 꺼지고 심장은 저만큼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맨 뒷장을 펼쳐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위로 갈수록 읽은게 많았지만 기억에 남지는 않고,

기억에 남는 것은 대부분 최근 것으로 박일문, 이만교, 김혜나의 '제리'가 있고,

전석순과 최민석은 구해놓고는 아직이다.

때문에 기억에 남는것이라곤 김혜나의 '제리'가 있겠는데,

난 '영 아니올시다'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다, 괜찮다...해도,

이 책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쳐뒀었는데,

좋다.

왜 엄지손가락이 두개밖에 없는지 한탄할 정도는 아니어도,

별 다섯개를 꽉꽉 눌러 채워줄 수는 있겠다.

 

아쉬운 점이라고 해야 할까, 무서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한방에 훅 가는 펀치에 비해, 얘기를 빚어낸 필채는 경쾌하다 못해 좀 가볍다.

개연성의 확보 면에서도 좀 아쉬운 생각이 드는데,

여고생에게, 친부모를 향하여 그렇게 맹렬한 살의를 갖게 만든 이유가 구체적이지가 않다.

실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어쩜 이 책에 나오는 방인영이 나처럼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라면 방인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아쉽고 무서웠다.

 

 

 

 

 

 

 

 

 

 펀치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책을 읽고 내가 제대로 된 펀치를 맞은 느낌을 받았던 것은,

뒷표지의 "독자들의 윤리관과 도덕관에, 그리고 삶에 남겨 둔 약간의 기대에 펀치를 날린다'는 문구와 난폭한 냉소와 당돌한 폭력으로 무장한  반성하지 않는 10대 소녀라는 표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윤리관과 도덕관이란 무얼 얘기하는 걸까?

과연 그 기준이란 무엇이며,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걸까?

반성하지 않는 10대라고 했는데, 무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일까?

 

이 책은 요즘 세상을, 가치관의 부재,혼란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기존의 윤리관과 도덕관이 땅에 떨어진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봐야 할 것은 어쩜 존속살해의 개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존속살해를 하고도 어쩜 반성조차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가 아니라,

존속살해라는 건 어디까지나 소설적 장치일 뿐이고,

이를 통하여,

10대 소녀가 어떻게 자아를 찾고,

자존감을 회복하는지,

다시말해, 자립하는지의 과정을 엿보아야 하는것이 아닐까?

깊은 곳에 저장된 자신감이 옛날 옛적에는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 속의 직유가 깊이 침범해

내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 냈다.

성교육 시간에 본 낙태 동영상에서 태아를 긁어낸 것처럼,

아이가 기계를 피해 도망가듯 내 자존감도 달아나려 안달했다.

이젠 더이상 도피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자존감은 내 안에 있는 거지 사람들이 볼 수 있거나

그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란 걸,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깨달았다.(187쪽)

 

내가 이 책의 방인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쉽고 무서웠다고 한 것은,

우리집안이 이 책의 방인영의 그것만큼 하이 레벨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과 친인척의 관심은 이 책의 방인영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아들이 이 책의 방인영과 얼추 비슷한 또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본위로 생각하려 든다.

내가 어른들의 집요하고 과한 관심에 숨이 턱턱 막혔었으면서도,

지금도 그때의 잔재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우리 아들의 장래에 간섭하려 든다. 

아들이 원하는 직업을 향하여 한번도 신중히 생각해보지 않고,

그걸로는 밥 벌어먹고 살 수 없으니,

일단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간 후에 취미활동으로 하라고 한다.

밥을 빌어먹고 살아도 그건 네 운명이라며 쿨하게 넘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

 

친구 중 하나는,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으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모범적이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걸 이 친구에게 사주하는 과정에서 이 친구 또한 별천지를 경험하게 되었을테고,

근데 이 친구는 나와는 태생이 다른지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내색을 한다.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니 충분히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경우, 친구도 비슷한 부류이기 쉽다.

누구의 심장은 웬만한 열에는 끄떡 없는 강철로 만들어 졌고,

또 누구의 심장은 아주 작은 체온이나 온기로도 녹일 수 있는 얼음으로 만들어졌겠는가?

게다가, 그게 사람의 감정 따위,

시간이나 세월에 비례하여 쌓여가는 정이나 미움 따위의 문제였을 경우,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어쩔 것인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친구를 강신주에게 보내야 겠다.

착해지지 말란 말입니다.

나빠져도 괜찮단 말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강신주 말고 또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이 친구에게,

그동안 살던대로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지 말라고 사주라도 하였단 말인가?

매 순간순간을 살면 되는거다.

매 순간순간을 가열차게 살면 되는거다.

 

나는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 이 순간을 살 것이고,

울아들도, 이 친구도 그럴 수 있도록 자리를 넓게 펴주는 수밖에 없다.

옛날에 '넓은 맘과 깊은 속'의 뉘앙스를 몰라서 한참 고민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친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터득하였다.

넓은 맘과 깊은 속.

 

 

 

 

 

 

 

 

 강신주의 다상담 3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12월

 

 

 



 
 
함께살기 2013-12-12 16:35   댓글달기 | URL
책은 언제나 스스로 불러들이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이 책을 불러들인 삶을 즐겁게 사랑하면서
십이월 추위도 기쁘게 맞아들이는 하루 누리셔요.
펀치는 푸른기와집에서 지내는 분들도 좀 맞으면 좋겠네요~

양철나무꾼 2013-12-17 10:31   URL
전 오늘 아침 우리나라 젤 오래된 문학지라는 '현대문학' 사태랑 관련하여 맘이 영 꿀꿀합니다.
아무리 매서운 검열의 시대에도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덩여.
사전 검열의 형태인지,
알아서 기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씁~쓸~해서 더 춥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여~--;
 

요즘 고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다.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券氣)라는게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싶다.

옛것이라고 하여 고루하거나 진부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깊이있는 사고(思考)를 요하면서도 품격을 두루 갖춘 것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난 옛날에 도스토옙스키 옹의 책을 좀 읽다가 넘 어려워서,

고전은 그렇게 다 어렵고 재미없는건 줄 알았었다는~--;

물론 세월이 흐르고,

나도 생각이 여물고,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삶을 해석하는 관점 같은 것들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실은, '안나 까레니나'를 그냥 읽게 되지는 않았었다.

어쩌다가 읽게된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가 계기가 되어 고전문학에 feel이 제대로 꽂혀 주셨다.
'김의기'와 '안나 카레리나'를 읽으면서 느끼는건,

고전문학 중에는 중고등학생들이 필독서로 읽기엔 쉽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거다.

나처럼 반 평생을 산 사람의 눈으로 전후좌우 사정을 고려하여도 어림짐작하게 되는 것들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개중에는 번역까지 난해하여 우리말로 적혀있어도 무슨 뜻인지 못 알아먹겠는 것도 있더라~--;

 

민음사 刊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로마서 12:1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1부/13쪽/1줄)

 

  

 

반면,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에 나온 이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내가 갚을 것이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불행하다.

 

누구의 번역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두 번역을 놓고 봤을 때, 같은 내용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난 고민을 하다가 '로마서 12장 19절'을 들여다보기로 하였다.

여러분이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 갚는 것이 나에게 있으니 내가 갚을 것이라.'"

라고 되어있다.

번역의 잘, 잘못을 떠나서 적어도 원수나 복수를 갚는 주체가 '주님'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는데,

작가의 의도가 그런 것인지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안나카레니나를 읽으면서 '톨스토이'가 시대를 넘나드는 거장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의 부단한 노력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대의 사조나 조류, 유행에 대해서 폭넓고 깊이있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뿐더러, 그걸 그의 작품 곳곳에 녹여냈는데...그것이 요즘의 삶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올드하거나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였는지, 달아놓은 각주를 보면서 였는지...기억이 가물가물한데...러시아어가 재밌게 느껴져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키티는 안나의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산문적인 용모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러시아어에서 '시적'이라는 말은 '예술적인'이나 '아름다운'의 뜻을, '산문적'이라는 말은 '일상적이고 범속한'이나 '무미건조한'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1권/162쪽)

 

레빈이 이런 상상을 하는 부분도 재밌다.

그럼 손님이 물을 거야. 어떻게 이런 일에 그토록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까? 남편이 흥미를 느끼는 일이라면 저도 흥미를 느끼게 돼요.(212쪽)

단순히 레빈의 그것이라고 생각했을때는, 좀 권위주의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 상대방이 흥미를 느끼는 일에 같이 흥미를 느끼게 되는 그런 사랑이라면, 참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이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
 김의기 지음 / 다른세상 / 2013년 1월

 

 

 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겹쳐 읽은 책은, 이택광의 '마녀프레임'이다.

이 책은 이웃 a님의 서재에서 보고 혹하여 읽게 되었는데 '동종요법'이나 '고대의학'관련된 장르소설을 좀 읽어줬던 터라 그랬는지 어쨌는지, 책의 내용이 너무 가볍고 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암튼~--;

  마녀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존재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히브리 신화에도 마녀는 분명히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마법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했다. 즉 날씨나 출산 또는 의술처럼 생존과 밀접한 일들을 마녀가 관장했다.히브리어로 마녀는 므카세파인데 이 말은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특별히 '여성'이라는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마녀하면 떠오르는 섹스와 관련한 뉘앙스도 없다. 대체로 마법은 병을 고치거나 기후를 변하게 하는 요술이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대개 여신 숭배에서 기원했다.(28쪽)

 

마녀사냥이란 "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라는 문구가 번역 문제에서 의미적 혼란 때문에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발생한 것이었다.ㆍㆍㆍㆍㆍㆍ마법사(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는 말은 이렇게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반해서 마법을 사용한 경우에 처벌하라는 말이었다. 아이를 납치하거나 질병을 퍼뜨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다 오늘날로 보면, 의학과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진 존재들이 고대의 마법사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29쪽)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해 본 것은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이라는 '틀'은 '예외'를 만들고 약자, 소수자, 희생양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과거에는 그것이 마녀였고, 여성이었고, 유태인이었고, 빨갱이였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무슬림이고 동성애자고 이주노동자의모습으로 현신하고 있는 것이란다.

 

프레임은 어찌보면 군중심리 같은 것이다.

교집합, 여집합, 합집합의 관계에 따라...마녀로 지목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마녀를 지목해야 하고,

이런 상호감시체계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이 '인터넷'이다.

 

 

 

 

 마녀 프레임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나영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그리고, 그런 군중심리를 가장 적절히 사용하는 사람들이 연예인이 아닐까 싶지만, 잘못 틀어지면 '타.진.요'같은 인터넷 카페가 생겨나기도 하고 눈덩이나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곳이 연예계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과 호기심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된 책, 1박2일 '나영석'PD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정함'이다. 집중과 편애는 한 끗 차이다. 공정함을 잃는 순간 오해가 만들어지고 팀워크는 깨진다. 누군가를 편애해서 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받을 기량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너도 저 기회가 탐이 난다면 최소한 패스를 받을 기량 정도는 스스로 터득해서 갖춰야 한다. 그것만 갖춰진다면 언제라도 너에게 공을 주겠다. 이런 식이다. 어쩌면 야박해 보일 수 있는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었던 것은 호동이 형이 철저하게 유지했던 그 기회에 대한 '공정함'때문이다. 멤버들은 누군가를 질투하기보단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 빠른 길임을 알게 된다. 한 예로, <1박 2일>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운 사람은 이수근이다.(143~144쪽)

 

심각하지 않게 설렁설렁 넘겨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그런 책에서 다른 어떤 책에서 깨달을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예전에 한번 김C와 술을 먹다가 인간은 대체 몇 살쯤에 철이 드는가, 라는 주제로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잇다. 김C의 대답은 이랬다. 사람은 말이야.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 30대가 되면 마흔이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근데 너는 철들었니? 아니, 하고 나는 대답한다. ...결론은 이거야.87살쯤 먹고 죽기 직전에 드디어 깨닫는 거지. 아들딸 주변에 모아놓고 숨은 넘어가는데 창피해서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거지. '아아....철든다는 건 없구나.' 이렇게 말이야. 최종결 결론을 내리고 저세상으로.

  흠. 묘하게 설득력 있는 애기. 과연 그럴듯하다. 철이 든다는 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철이 든 척.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어른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사실을 직시하고 저는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 김C는 가능하면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177~178쪽)

암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날씨가 변덕스럽다거나,

(4월에 눈이 내린게 51년만에 있는 일이란다, ㅋ~.)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하여 나 또한 변덕스럽게 책 한권 읽지않고...

어쨌거나 이 봄을 건너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뭔가를 읽기는 꾸준히 읽었는데 단지 기록으로 남길 시간이 없었을 뿐이고,

내가 열심히 읽는데도 불구하고 신간은 새록새록 나와주고 계신다는 거다.

'책.탑.타.파.'를 고려하여 당분간은 책을 구입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을 했지만...불끈~!!!

이 책 꼭 한권만 구입한 뒤로 결심은 잠시 유보다~--;

 

 

 

 

 

 

 

 

 

 로스트 라이트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알케 2013-04-12 13:18   댓글달기 | URL
제 경우엔 러시아작가들 중엔 도스토예프스키 한 사람만 편애하고 톨스토이 이 할배는 어려서부터 정이 안가서 유명하다는 소리만 풍문으로 들었어요. 전 당분간 해리보슈 형님하곤 결별. 해리 홀레 형님하고 새 교분을 맺는 중이어서 ㅎㅎ 이 캐릭터 너무 어썸합니다.

2013-04-1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9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는데, '토요일에 만난 사람' 코너에 내가 애정해 마지 않는 강신주가 나왔다.

요며칠 심심함이 극에 달했었다.

딱히 마음 둘데가 없는 것이, 지루하고 따분했으며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왜 사는 지를 모르겠는 채로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그렇게 그렇게 지냈었다.

강신주 식으로 얘기하면 타자와의 소통부제로 괴로워했고,

이지누 식으로 설명하자면 지독한 고독을 맛보는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강신주는 가뭄에 만난 단비였다.

출근 시간 부랴부랴 움직이느라 제대로 못들은 부분을 나중에 다시 듣기로 들었는데, 역시나 '강신주'였다.

다소 '센 발언'도 서슴치 않는 것이 솔직한 성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고,

철학이라는 어려운 얘기를 하면서도 '박사'랍시고 심각하게 무게잡고 얘기하지 않는 것도 좋았다.

전에 그가 알튀세르를 좋아하여 이메일 계정을 'contingency'로 한다는 소릴 들었었는데,

오늘도 contingency와 eventuality가 적절히 버무려진 그런 것이었다, 아흑~!

 

오늘 라디오를 듣고 그가 더 좋아 졌는데,

강연에서 말을 많이 하다 보니까 강연이 끝난 후엔 듣고 싶어져서...

보통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잠이 든다는 것이( 의외였지만,)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어서 였고,

첫 단행본이라는 <장자 :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을 풀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철학자' 강신주가 아니라 '인간' 강신주를 엿본것 같아서 였다.

타인과 제대로 소통하려면 내가 변해야 되고 내가 변해야 타인과 소통하는 게 동시적인 사건이어가지고 우리가 대개 소통의 문제가 지가 안 변하면서 소통하려고 할 때 폭력이 돼요. 그러니까 타자와의 소통이라고만 얘기하면 이상하고 주체의 변형이라고 하면 지 혼자 수행하는 거고 그런데 왜냐하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진짜 그 사람한테 마음을 열면 내 자신이 변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경험을 장자가 딱 포착을 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뭐라고 그러죠. 이거 어렵다, 개념이 너무 철학 개념이 한 4개 정도 들어가니까. 그래도 이걸로 하자, 이 제목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사실,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손석희'도 '강신주'도 '이지누'도 아닌, 내가 심심하다는 거다.

타인과 제대로 소통을 하려면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강신주'를 들으며,

'고독'을 수행처럼 지켜낸 '이지누'를 되풀이해 읽으면서,

심심함이 극에 달해 바닥을 쳤다는 얘기를 하려니,

왠지 라디오를 헛 듣고 책을 헛 읽은것 같지만서도...

모든 깨달음은 그렇게 오더라,

소통과 고독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으려면,

일단 소통과 고독을 몸과 마음으로 직접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관독일기 : 잠명편
 이지누 지음 / 호미 /

 2008년 11월

 

하지만 고독이란 것은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또 고독을 견디고 이겨 내며 굳건함을 지키는 것 또한 스스로 해야 할 일일 뿐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럿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 있는 반면 혼자 이루어야 하는 일도 허다히 많다.(64쪽)

그렇다고 내가 그동안 심심함이나 고독 따위는 전혀 몰랐었냐 하면...그건 또 아니다.

다만 그런 내게, 소통의 즐거움과 더불어 고독의 굳건함을 알려준 친구가 여행중이신 고로,

홀로 남겨진 나는 그전보다 더 심심함과 고독함을 뼈 아프게 느끼고 있고,

생각은 엉뚱한 곳으로 널을 뛰어 날 홀로 내버려 둔 친구를 향하여 '직무유기'라며 툴툴거리고만 있다.

 

잠箴은 자신의 허물을 예방하고 반성하며 결점을 보완하려고 짓는 글이고,

명銘은 스스로를 반추하며 새기는 글을 말한단다.

이 책 <관독 일기 :잠명편>에 나오는 조선 시대의 숱한 사상가와 문장가(장유, 신흠, 김집, 이규보, 안정복, 조익, 이식, 윤휴, 허균, 보각 선사, 원랑 대통, 낭혜 무염 등) 의 글들을 이지누의 날 선 해석으로 접했다.

정갈하고 깔끔한 상차림을 '내가' 주체가 되어 고루 누리기 위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선입견을 배제하려고 노력하였고,

그 과정에서 극도의 심심함과 지독한 고독을 맛보았다.

 

이지누는 담담하게 읊조리듯 얘기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고독이 자신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오는 것이란걸 느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그 고독을 견디고 이겨내는 굳건함을 지키는 것 또한 녹록지 않았다.

 

어찌보면, 이지누의 그것들은 너무 날이 선 듯하고 반듯하여 좀 부담스러운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푸른하늘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말이다.

좋아할 순 없어도 존경할 순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몸은 신身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일 테고, 거울은 오늘 실레마을에서 바라보며 윤대녕 형에게 마음 속으로 선물한 것과 같은 푸른 하늘일 것이다. 누구라서 그 하늘에 자신을 비추어 스스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생각보다 인정하는 마음이 더 깊어야 한다는 것이다. 깊이 인정하지 못하면 고치는 것 또한 겉일 뿐일 테니까 말이다.(87쪽)

게다가 그의 글이 반듯하고 사실적인 기술이라고 해서, 문체까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지는 않다.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기품을 잃지 않아, 미려하고 그리하여 시적 감상에 젖기에 충분하다.

그의 '서정'이 다른 사람의 그것과 다른 점은, 직접적인 경험과 체험에서 나온 사실의 기록이라서 한결 애틋하고 살가운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뭇잎 지는 소리는 빗소리와 달라서 자꾸만 두리번 거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빗소리는 대개 일정하여 오히려 그 소리가 그치면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지만 낙엽 지는 소리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순하게 떨어져 내린다고 해도 그는 일정하지가 않다. 또 마른 잎이 바위나 나무 등걸에 부딪치는 소리는 바람 부는 대로 들쑥날쑥하여 제멋대로이다. 더구나 무엇엔가 집중하고 있다가 그 소리를 들으면 마치 누군가가 숲 속을 걸어서 나에게로 오는 것 같은 환청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91쪽)

 

그러나 뒤늦게 깨달은 것은 인생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보다 나 스스로 이루어야 하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냉철한 눈으로 바라보면 인생이란 어차피 홀로 가는 길이다. 그 지독한 외로움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뒤죽박죽으로 뒤엉켜 버리고 말지 싶다. 비록 고독할지라도 홀로 이루어야 할 것들을 참구하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은 절로 진정한 벗이 될 것이다.

서로 동시대의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기만 한 진정한 벗이란 한두 명일지라도 족한 것이다. 새로운 벗을 사귀거나 그것을 지키려는 것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혹독할지라도 단절의 고독을 만드는 것이다. 시퍼렇게 날을 세운 칼날 위를 홀로 걷는 고독을 내 안에 지니지 않은 채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107쪽)

 

암튼 이지누를 읽으면서,

홀로 고독해지는 것을 지독히 두려워 하면서도 고독을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이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엿보았는데, 이게 수행자의 그것이라서 멋지다기 보다는 왠지 처연해서 눈물이 났다.

게다가 친구가 잠시 잠깐 곁에 없는 것으로도 극도의 심심함과 지독한 고독으로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내가,

벗이 동시대의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지독한 고독을 겪어야 하는 걸까.

그걸 강신주는 본인이 더 힘들어봐야 된다는 한마디로 일축하고 있다.

자기가 힘들어봐야 그것보다 적게 힘든 사람들은, '저 사람이 어떤 걸로 힘들구나' 하는 것들을 대충 알게 되고,

그래야 자신이 힘들게 고민하고 살아왔던 걸 철학이나 문학이나 이런 걸 통해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된단다.

하지만, 위로를 한다든가 하진 않는단다.

때때로 보면 지나치게 어떤 힘든 것도 아닌데 오버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야단도 많이 쳐야 되고 욕도 좀 하고 그래야 돼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안아주세요. 이런 것도 있어요. 위로 받으려고 해요. 무슨 위로를 해요. 위로를 하긴, 다 힘든데 살기가.

그런데 말이다.

내 입장에서 보기에는 엄살을 부리는 사람도 그렇지만, 의연한 사람도 인간다운 매력이 없기는 매 한가지다.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세상에서...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이 곁에 있어서 더욱 고독하고 쓸쓸해지는 것만은 막아보자는 심사다.

 

책을 통틀어 이지누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부분은,「대대례大戴禮」의 '무왕천조'편에 나오는 무왕이 반우에 새겼다는 명과 관련해서 인듯하고, 나도 그랬다.

사람에게 빠지려면 차라리 물에 빠지겠다. 못에 빠지면 헤엄쳐 나올 수 있지만 사람에게 빠지면 구제할 수 없다(與其溺於人也 寧溺於淵 溺於淵 猶可遊也 溺淤人 不可求也).

글을 읽고 참으로 묘한 마음이 일어나 선뜻 책상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다. 그 울림이 무척이나 강했던 것이다. 오늘까지 읽은 글들이 어느 것 하나 허튼 생각으로 대할 것이 없지만 이토록 크게 마음을 흔든 것은 없었다. 글을 읽고 두어 시간이 지난 지금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나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무왕은 사람에게 빠지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무왕의 그 큰 생각에 빠져 버렸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까.

여전히 나는 진정되지 않았다.(292~293쪽)

하지만, 이지누는 금방 진정이 되지 않아 이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까...라고 하였는데,

나는 물보다는 사람에게 빠지는 쪽을 택하겠다.

물에 빠졌을 경우 헤엄쳐 나올 수 있는 것은 수영을 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고, 수영을 하지 못한다면 말짱 꽝이다.

사람에게 빠지면 쉽진 않겠지만,

내가 그(녀)를 닮고 배울 수도, 그(녀)가 나를 닮고 배울 수도 있을 것이고,

구할 수 없어도 물들어 닮고 배우다보면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여 나아지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게 강신주의 첫 단행본 <장자 :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에서 얘기한 '자신이 변해야 되고, 자신이 변해야 타인과 소통하는 게 동시적인 사건'이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암튼, 이지누가 너무 좋아 헤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던 차에 작은 맞춤법 오류를 발견하였다.

솔직히 다른 책이라면 눈도 꿈쩍하지 않고 넘어갈 일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그것이다 보니 작은 걸 갖고도 호들갑이다.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일테고,(아흑~, 어쩔거야. 인간적이어서 멋지잖아~--;)

나도 인간이니까 호ㆍ불호를 놓고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것이다, ㅋ~.

 

ㆍㆍㆍㆍㆍㆍ박병천 선생의 소리는 애끓는 한을 머금은 채 한 세상 넘어간 곳에서 뱉어 내는 것만 같았다. 비록 천대받던 무가이었을지라도 소리에 기품이 넘쳤고 몸짓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사람을 통해서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거늘 이제 또다시 그 소리를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사람의 일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사람이 내는 소리와 몸짓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절절하게 보여 주던 고인은 자신이 타인을 위해 부르던 소리를 들으며 북망산천 먼 길을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절로 처연한 마음이 생기고 슬픔이 일어났다. 다시 한번 애도의 마음을 펼쳐 놓은 채 잠이 들었다.(141쪽)

 

위 문단에서 빨간 글씨 '애끓다'의 용례를 보게 되면,

'애'가 끊어질 만큼 슬플 때는 '애끊다'를, '애'가 부글부글 끓을 만큼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울 때는 '애끓다'를 써야 한단다.

박병천 선생의 소리는 애(창자)가 끊어질 듯이 슬픈 소리였으니, '애끊다'가 적절하겠다. 설혹 부글부글 애가 끓는 통한의 그것으로 들렸다고 해도, 뒤에 나오는 '오로지 사람을 통해서만 끊어지지 않고' 와 '문맥 상 호응을 이룰 수 있도록 '애끊다'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또 한군데, 

ㆍㆍㆍㆍㆍㆍ"도에 가까워진 사람은 말수가 적어진다"고 했거늘 그 많은 말들을 밖으로 토해 내지 않고 어디에 새겨 두었을까. 그것은 마음 속일 것이다. 달아나지 못하고 갈라지지 않게 굳게 붙들어 둔 마음 말이다.

번연히 알고 있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러나 그 마음 다스리고 보존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이토록 마음에 대해 많은 경계의 글들이 넘쳐나는 것 아니겠는가. 날마다 돌아봐야겠다. 나의 마음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맹자」'고자 상 告子 上'에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다. 놓친 그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學文之道 無他 求其放心而已矣)"라는 말이 나오지 않던가. 공부를 한다는 것,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본성을 깨닫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지 싶다.(243쪽)

 

 

학문(學問)-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

학문(學文)-≪서경≫, ≪시경≫, ≪주역≫, ≪춘추≫, 예(禮), 악(樂) 따위의 시서ㆍ육예를 배우는 일.

 

따라서, 저 상자 안의 빨간 글씨는 學問이 되어야 맞는다.

 

 

 

 

 

 

 

 

 

 

 

 

 

 

 

 

 

 [수입] Joni Mitchell - The Studio Albums 1968-1979

 [10CD 리마스터 디럭스 박스세트]
 조니 미첼 (Joni Mitchell) 노래 / Warner / 2012년 10월

 

 

Love is touching souls
Surely you touched mine
Cause part of you pours out of me
In these lines from time to time



 
 
꿈꾸는섬 2013-02-24 00:07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글들이 많아서, 다시 또 읽고 있어요. 전 타자와의 소통에 문제가 많은편이라, 제가 바뀌지 않고, 상대도 바꾸지 않고, 포기쪽을 선택해요.ㅜㅜ 사람한테 빠져서 미친듯이 살았던 20대도 생각나고, 주저리주저리,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나는 글이에요.....

팜므느와르 2013-02-24 15:29   댓글달기 | URL
강신주 목소리를 들으셨군요. 타자와의 관계에서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 맞아요. 하지만 인간인지라 그게 맘대로 안 될때면 저도 꿈꾸는 섬님처럼 포기하는 쪽을 택하고 말아요. 사람 사귀기는 힘들지만 놓는 것은 한 순간이더군요. 강신주식 장자를 읽을 때의 그 바람결 냄새가 아직도 선하옵니다. 정통 장자를 학문하는 사람들이 마구 욕하는 그 상황까지 전 재밌게 생각했어요.
심심함을 가장하시는 나무꾼님 언제나 잘 계시리라 믿어요.^^*
 

나는 그러니까 기다리는 걸 잘 못한다.

어려서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컸었다고는 얘기했었고,

그러니 무엇 하나 아쉬워서 기다릴 일이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다섯 명의 고모들 중 결혼 안하고 남아있던 고모들은 내가 분부만을 내려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인줄 알았다.

이러고 성장한 나는,

커서 단체 생활, 집단 생활을 하면서 그 차이에서 버거워했었지만,

그래도 직업 자체가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다보니 그럭저럭 잘 견뎌내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시간 약속을 철저히 잘 지키는 줄 알지,

그게 안달이 나고, 불안과 초조의 소산이라는 걸 모른다.

 

지난 주에 남동생이 상의할 일이 있다고 만나자고 하였다.

남동생은 만나기로 한 주점에 잠깐 얼굴을 들이밀었다가는,

무슨 전화를 받고 급히 나갔다가 한참만에 들어왔다.

남동생은 딸 둘을 둔 이른바 '딸딸이'아빠다.

첫째와 둘째의 나이 차이가 무려 열 살이나 난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키워져 오던 큰조카는 갑자기 생긴 동생으로 인하여,

관심이 분산되었고...

올해 중1인 사춘기 소녀답게 나름의 방식으로 온갖 일탈을 감행하여 남동생의 속을 있는대로 썪이는 중이었다.

 

동생을 향하여 별로 해줄 얘기가 없었던 난, 위로주나 살 요량이었는데...

그때 동생에게 걸려 온 전화 한통이 나까지 광분케 하였고,

그리하여 술독에 같이 빠져 버렸다.

얘기인즉,

학원에 가기 싫다고 친구와 패스트푸드점에 앉아있는 조카를 발견하여,

집으로 들여보내는 과정에서,

조카 친구의 부모에게도 연락을 하겠다고 하여 부녀 간에 말다툼이 있었나 보다.

그걸 순찰을 돌던 순찰차가 보고 조카가 탄 마을 버스에 같이 타서는,

누구냐

아빠다.

가정폭력이냐?

아니다.

꼬치꼬치 캐묻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실적 위주의 업무 행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그 부녀를 가정폭력으로 엮을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번엔 더 기가 막히는 얘기를 들었다.

부녀는 화해를 했고...

어찌 어찌하여 기분이 좋아진 조카는 마을 버스 안에서,

마을 버스 밖의 남동생을 향하여 손바닥을 자기 입술에 쪼옥~ 댔다가 날리는 손바닥키스를 날렸고,

남동생도 마을버스 밖에서 조카를 향하여 똑같이 화답하였다고 한다.

마을버스가 떠난 뒤, 남동생은 뒤에 서있던 순찰에게 아동 성폭력 전과가 있는지 조사를 받았는데...

불쾌하였지만, 자기도 딸 둘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어쩌지 못하고 응할 수밖에없었다고 했다.

 

어제, '노자 할아버지 같이 놀아요!'란 그림책의 발상에서 참 좋았던게,

헝겁을 이렇게 저렇게 짜집기 한것도 물론이거니와,

거기다가 노자 '도덕경'의 몇 글자를 발췌하여 수실로 한땀 한땀 수놓은 정성이었다.

요즘은 어디서고 바빠 바빠를 외치는 속전속결의 세상에,

자기밖에 모르는고로,

남을 기다리거나, 남에게 정성을 들일 줄 몰라서 참신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수실'하면 떠오르는 책이 바로, '나는 기다립니다'이다.

 

 

그림책의 '끝'을 '끈'으로 바꾸어 표현해 놓았지만, 사실은 수놓을 때 쓰는 수실이다.

 

 

 

  나는 기다립니다...
  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즈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어린이 / 2007년 7월

 

책의 표지로 미루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듯,

사람 사이의 관계, 삶을 '빨간 수실'로 표현해 놓았다.

이쯤에서 난 딴지를 걸고 싶어지는데,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더 복실거리고 탐스러운 털실뭉치도 놔두고,

하필 탄력 제로, 툭툭 잡아당기는 대로 끊어지는 수실을 사용했을까 하는것이다.

 

난 원색의 옷을 좋아하는데,

그런 옷의 단추가 떨어지면 단추를 달 실이 없어 난감할 때,

알록달록한 수실을 이용하여 단추를 달때가 있다.

작은 단추는 그럭저럭 견뎌내는데,

겨울 외투의 큰 단추는 반나절도 못 버티고 떨어져 단추마저 잃어버리는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단추 마저 버텨내지 못하는 수실을,

기다림의 용도로 표현하다니,

사실을 알고보면 아이러니컬 하다.

 

기다림의 용도로는 짱짱한 고탄력 스타킹을 만드는 함섬섬유실이나,

필라테스할때 쓰는 고무로 된 밴드,

또는 자전거포에 가면 자전거 바퀴 속에 들어 있는 짱짱한 고무를 갈라만든게 짱이다.

폼은 안나더라도 무릇 인연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수실처럼 어디에선가 조금만 힘을 주어 잡아당기면 툭툭 끊어져 버려선,

어디 성질 나빠져서 도 닦듯 인내하며 놓아야 하는 수인들 제대로 놓겠는가 말이다.

 

찰떡이나 점성 좋은 치즈도 좋겠다.

쭈욱 잡아 당기면 늘었다 줄었다 자유자재여서,

연결은 되어 있으면서 자신의 본성은 유지하는 그런 인연이어야 하겠다.

왜냐하면 '세살 버릇 여든까지'라는 속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나이에 자기 자신이 나아지는 쪽으로의 변화라고 하여도 쉽지가 않은데,

누굴 내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고 바꿀려고 하느냐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관계는 발전할 수 있고, 인연은 유지될 수 있다.

수실처럼 '톡톡~' 끊어져 버리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진다.

 

그렇다면 기다리는걸 잘 못하는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석봉이 시험에 합격하기를...?

아니, 석봉이 건강하게 시험을 치르기를...

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몸 상하거나 하지 말고,

셤 마치고 무탈하게만 일상으로 돌아와 주기를 기다린다.

모든 석봉 모친의 마음이 그렇듯~!

 

'다비드 칼리''세르주 블로크' 커플의 책이 한권 더 있다, '너에게 뽀뽀하고 싶어'

 

 

 

 

 

 

 

 

 

 

 

 

 

 너에게 뽀뽀하고 싶어
 다비드 칼리 지음, 길미향 옮김, 세르주 블로크 그림 /

 아트버스(Artbus) / 2012년 8월

 

이 책도 '나는 기다립니다'처럼 참신하고 이쁘다.

 

다비드 칼리 홈페이지 링크 클릭~!

세르주 블로크 블로그 링크 클릭~!

 

웹서핑을 하다가 든 생각인데,

불어판의 경우,

저자가 '다비드 칼리'라고 되어 있고,

그 밑에 저자의 다른 작품들로 링크되는 란에 가서,

'다비드 칼리'와 '세르주 블로크' 두명이 나란히 놓여있다.

두 명은 공저자일수도 있는데,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우리의 관행상 '한명은 글, 한명은 그림' 이렇게 적어준 게 아닐까 싶었다.

 

둘 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사람들인데,

한명은 글만 쓰고, 한명은 그림만 그렸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정작 본인들이 아니면 알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뽀뽀'니 '키스'를 '성인'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편협하고 낡은 가치관 속에 빠져버리는 게 아닐까 싶다.

'너에게 뽀뽀하고 싶어'는 참으로 예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책이다.

누군가는 결혼한 사람들의 '프렌치 키스'에 방점을 찍어 한정시켜 생각 했었는데,

그런 키스도 있는가 하면,

굿모닝 키스,

갈구하거나 허기질때 하는 키스,

가슴 설레이는 첫키스의 추억,

그 장소여서 아름다운 키스,

그 사람이어서 의미가 있는 키스,

화해의 몸짓으로서의 키스,

프로포즈로서의 키스,

영화를 보다가 필이 동하는 키스,

장엄한 광경에 동화되어 하는 키스,

등 갖가지 키스가 예쁘게 그려져 있는게,

프로포즈할때 한권쯤 준비해도 좋을 것 같다.

난 낭만적인 비오는 날 우산 속의 뽀뽀도 좋을 것 같고,

언덕 위에, 까만 하늘 아래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노라면,

뽀뽀를 하지않고서라도 두고 두고 황홀할 것 같다.

 

 

 

 

그림은 파스텔톤의 손톱달이 뜬 이런 분위기가 맘에 든다.

 

 

 

당근,

아이디어는 돌맹이를 하트로 표현한 게 가장 맘에 들고...ㅋ~.

그리고 잠든 여자의 사랑스런 눈썹 그늘과,

그 눈썹 그늘을 바라보는 남자의 그윽한 눈빛이,

뽀뽀가 없어도 가장 맘에 들었다.

(남자가 들고 있는 책이 분홍분홍*^^*하다.)

 

 

 

책은 '나는 기다립니다'와 '너에게 뽀뽀하고 싶어', 두권 다 참 예쁘고 좋았다.

하지만, 남동생네와 관련된...'폭력과의 전쟁'관련 에피소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실적이나 성과 위주의 보여주기 식으로 끝나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우려하는 건 나혼자만 일까?

 

 

 

 

 

 



 
 
순오기 2012-09-28 11:09   댓글달기 | URL
동생네 부녀의 일은 정말 웃지못할 에피소드네요.ㅠ
늘 풍성한 책 이야기, 독자로서의 찐한 사랑이 느껴지는 리뷰~ 언제나 좋아요!
명절 잘 지내시고 올해가 저물기 전에 한번 봐야지요.^^

2012-10-05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친구가 책 몇 권을 보내줬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그랬겠지만,

난 바쁘다는 핑계로 그 중 한권을 제대로 들춰 읽지는 못하고,

'김탁환'의 '열하광인'에 나오는 '명은주' 버젼으로 연모하는 사내 대하듯 책에자신의 감정을 옮겼다. 겉표지에 입 맞추고 손바닥으로 쓸고 글자 하나하나를 검지로 만지며 내려가고 옆구리에 끼거나 젖가슴에 댄 채 잠들고 머리맡에 두었다가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냄새 맡고 여백에는 검지로 도장 찍는 흉내를 내며, 이 책과 영원히 함께 머무를게요 맹세만 해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가, 그래도 그럼 안되겠다 싶어 집어든 책이 제일 가벼운 이 시집이었다.

 

 

 

 

 

 

 

 

  다정한 호칭
  이은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시인은 명은주를 흠모하는 내 마음을 엿보았나 싶게...아무렇게나 펼쳐든 시집  구석 구석에서 이런저런 시구절로 나를 유혹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바람의 지문' 부분)

책의 주요기능이 '시각적 효과'를 이용한 '보기'이니까,

바람의 '보이지 않는 지문',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 등으로 미루어 잠시 나도 시각적 효과에 집중 했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읽다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로 미루어 다분히 촉각적, 말하자면 감각적인 시가 되어 버렸다.

책 한 권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보았을 뿐인데,

책 한 권 위를 거쳐간 보이지 않는 당신의 손길과 지문을 느낄 수도 있고,

책 위의 보이지 않는 지문 위로 내 뺨을 댄 건데도,

뺨을 간질이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거다.

내 뺨을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

어느새 바람의 손길에 내 뺨을 내어 맡기는 게 되어버리고,

그렇게 내맡긴 나와 내 뺨을 어루만지고 간 바람(wind)의 손길을 기억하고 싶은 바람(wish)은 어딘가에 '각인'되게 마련이고 그걸 '지문'이라고 부른다.

 

지문은 '오래된 근황'이라는 시에선 마침표 대신이 되기도 한다.

이건 햇볕이나 바람 등 자연이 주는 선물에 오롯이 자신을 내맡겨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축복이다.

그저 비치는 햇살인데 나를 따사롭게 비춰주는 넉넉한 햇살이 되고,

그저 부는 바람인데 '괜찮다, 괜찮다~' 나를 다독여주는 바람이 된다.

그렇게 보면 햇살이, 바람이, 삶이, 그리하여 당신이 그저 고맙다.

 

나를 발명해야 할까

                

 정말 구름을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걸

까 사람들은 조그쯤 회의주의자일 수도 있겠구나 설령 빙하

를 가르는 범선이 난파를 발명했다고 해도 깨진 이마로 얼

음을 부술 거야 쇄빙선에 올라 항로를 개척할 거야 열차가

달리는 이유를 탈선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사람

들은 궤도를 이탈한 별들에게 눈길을 주는 걸 몹시 염려해

평범한 게 좋은 거라고 주술을 멈추지 않지 누군가 공기보

다 무거운 비행기를 띄운 오만함이 추락을 발명했다고 말

한다면 그럴 수도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이동은 늘

매혹적인 걸 나로부터 멀어져 극점에 다다르는 것으로 나

를 발명해야 할까 흐르는 구름을 초대하고 싶은 열망으로

 

'나를 발명해야 할까'라는 시도 좋았다.

이 시는 내게 시점의 전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시점의 전환'이란 쉬운 말로 하자면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정도 되려나?

입장이란 참 오묘한 것이다.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방향만 바뀌었을 뿐인데도...'나로 인함이냐'와 '나로 말미암음'처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시점을 전환시키는거, 즉 입장 바꿔 생각하는 건 쉽지 않을 뿐더러...게다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건 더더욱 쉽지 않다.

긍정주의자와 회의주의자,

데려오는 일과 마중가는 일,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과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 것 등...

 

세상일이란 것이 시점의 전환,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 정도는 가능한 일이라면...

까짓것, 초긍정 자아의 시점으로 전환하고 싶다.

시점만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햇살도, 바람도, 그리하여 삶도 한없이 넉넉해진다는데,

그리하여 구름을 초대할 수도 있다는데,

그 정도 모험을 마다하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건 '허밍, 허밍'이라는 시였다.

입을 벌리지 않고 소리를 내기때문에 소리가 크거나 분명하지 않아,

가사를 전달할 수 없지만 기분은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게 '허밍'이다.

이 콧소리, 허밍은 나의 경험에 미루어 기쁘거나 즐거울 때나 나오지...슬플때는 나와 줄 수가 없다.

 

또 일반적인 음악소리보다는 한참 작기 때문에 보통 합창이나 중창곡에서 많이 쓰인단다.

허밍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만히 있다보면 어느새 기분이 흠뻑 담굼질해 물든 것 같이 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허밍, 허밍

                                               

  종종 구름을 눈에 담는 습관, 당신의 폐활량이 천천히 부

풀 때 그날의 공기를 부러워한 적 있다 구름을 가리키며 바

람의 춤이라고 말하는 당신의 허밍은 입술에 기대는 음악일

까, 기대지 않는 음악일까

 

  바람의 춤이 보인다면 그건 구름의 몸을 빌렸거나 폐활량

이 푸른 여름잎의 소관일 것, 구름은 바람으로 흐르고 바람

은 여름잎으로 들리니까

 

  언젠가 고원의 사라진 호수에 대해 이야기 나눴지 수면을

맴돌던 그때의 구름은 지금 어디 있을까 가장 낮은 하늘을

흐르고있을 호수 저편, 깃털무늬구름이거나 물결무늬 구름

 

  당신은 잠시 구름사전 속 이름들을 덮는다 구름과 노닐기

에 알맞은바람이므로, 구름의 후렴은 음악이다 마지막 소

절이 첫 소절로 흐르는 허밍, 허밍

 

사라진 호수 저편

팔랑, 수면을 깨뜨리는 나비 한 점도 좋을 오후

 

허밍의 연장선상에서 요즘 feel충만하여 듣는 음반 중에 zaz가 있다.

 

 

 

 

 

'제2의 에디트 피아프'라고 불릴 정도로 유럽에서는 이미 유명하다는데,

그녀의 히트곡이라는  'Je Veux(난 원해요)'를 우연히 듣게 된게 시작이었다.



"뭔가를 만든다는 것, 그건 두려운 게 아니다.난 만들고 난 뒤를 생각한다"는 그녀의 소신을 엿보는 일은,

프랑스 대중 음악의 밝은 미래를 예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노래를 듣다보면 중간 중간에 애드 립(ad lib)이 나오는 데, 난 여기서도 이은규의 시'허밍, 허밍'을 떠올렸다나, 어쨌다나?
하긴 중간의 이 애드립은 '허밍'이라기 보단 스캇에 가까울테지만 말이다, 암튼~.

 

암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 가능성을 다방면으로 발휘하는 그녀가 참 멋지다.

zaz를 통하여 재발견하게 된 곡이 있는데, All of me라는 곡이다.

이 곡도 중간에 나오는 애드립이 압권이다.

 

 

zaz 버젼의 이 노래를 듣다가, 이 영화가 생각났다. 

다소 황당하지만, 유쾌했던 이 영화...나른한 이 봄날 오후에 딱인 그런 영화였다. 

 

 

 

영화 (all of me)두영혼의 남자 -첫장면

 

영화 (all of me)두영혼의 남자 -ending credit

 

 



 
 
마녀고양이 2012-05-18 16:01   댓글달기 | URL
나 머리 아파, 나 목 아파, 나 어깨 아파, 나 몸 아파,
코알라도 머리 아파, 코알라도 목 아파, 코알라도 몸 아파,

둘이 멀 했는지, 오늘 정신차리니, 봄이 훅 날아갔더라.... ㅠㅠ

함께살기 2012-05-19 04:41   댓글달기 | URL
즐겁게 부르는 노래는
온누리를 따사롭게 보듬으리라 생각해요

2012-05-19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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