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적는 얘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약간의 가감이 있음을 밝혀둔다.

다만 줄거리나 내용의 가감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감정 절제이다.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재조명하려고 하였으나,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기억력이 다소 감퇴하였고,

그녀도 사람인지라 쪽 팔린게 무엇인지를 아는지라...

다분히 미화하였을 수도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화를 바탕으로 사실에 가깝게 접근하려 노력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시간을 거슬러 흰눈이 펑펑 운치있게 내리던 며칠 전,

그녀가 사는 집은 산꼭대기, 다시 말해 언덕 위에 있는 저층 아파트이다.

폭설에 택배차가 오르지 못한다고 하여,

어렵게 어렵게 접선하듯 하여 귀하게 받은 택배 꾸러미를 풀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초록색 식물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살아있는 것,

생명이 있는 것에 쉽게 정을 주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얼마전에 친구에게 받아 키우게 된 '로즈허브'에 재미를 붙이자,

동료며 친지들이 여기저기서 탐을 냈고,

그 얘길 전해 들은 친구가 특별히 신경쓴답시고, 유독 싱싱하고 똘망똘망한 것들로 골라 몇 녀석 더 보내주었던 것이다.

룰루거리며 택배 꾸러미를 풀던 그녀는,

'으악~'하고는 저층 아파트가 무너져내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하느님, 부처님, 천주님, 신령님, 천지신명님, 아버지, 엄마, 온갖 종류의 구세주 이름은 다 불러 보고...

직장 때문에 늦는 남편과 야간 자율학습에 늦는 아들을 괜히 속수무책이라고 야속해 했다.

가까이 사는 남동생한테 전화를 했더니 술이 한잔 걸쳤는지,

"누나, (이제 세돌이 막 지난) 우리 둘째 보내줄까?끌끌~"하며 놀려 먹는다.

생각다 못해 해충박멸 어쩌구 하는 사이트에 전화를 했더니,

말 그대로 해충에 대해서만 수습을 해주는데,

그것도 업무시간 외 라는 상투적인 답변인 거다.

"사람 목숨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어떻게 안되겠느냐?"고 통사정을 했더니, 주소를 대보란다.

주소를 듣던 전화기 너머에서,

"그거 산꼭대기에 있는 아파트죠? 거기 오늘 눈 많이 와서 차 올라 다닐 수 있어요?"한다.

"아니요~--;"

택배도 007접선하듯 받은게 그제서야 떠오를게 뭐람~(,.)

 

다음날 직장에서 점심을 먹으며 그 얘기를 하였더니,

점심을 같이 먹던 한명은 웃다가 턱관절(T-M joint)이 빠져 다시 맞춰주는 수고를 해야 했고,

다른 한명은 '드림파마'라는 제약회사를 대야 해야 하는데,

어이를 상실한 사람처럼 '아놀드파마'라는 의류 메이커를 대며 전화 연결을 했다.

 

이쯤되면 로즈허브에 들어있던 괴생명체를 다들 바퀴벌레 쯤으로 상상하는데,

그런데 괴생명체는 더듬이 있는것만 닮은 달팽이 되시겠다.

 

그 괴생명체가 바퀴벌레 따위가 아니라 달팽이라는 걸 안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참 가지각색이었다.

그녀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그녀가 어떤 당혹감을 느꼈고,

심지어 삶의 위협을 느꼈는지, 는 그 즈음이면 사람들의 안중에서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처음에 에 대해 잘 못랐을 때는 세상의 무시와 푸대접에 반발하여 잡초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피했지만 지금은 그런 몰이해의 역사마저 다 끌어안고 좀 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 안에 잡초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의식도 없는데 굳이 단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단어 하나를 바꾸어 사람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난 10년 동안 나는 의식의 변화가 아니라 유행의 변화를 목격했을 뿐이다.(5~6쪽)

굳이 단어가 주는 선입견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풀이 되었든 잡초가 되었든, 어떤 부정적인 의식이 없다면 단어에 얽매일 필요가 없듯이...

그 괴생명체가 바퀴벌레가 되었건 달팽이가 되었건 간에,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당혹감으로 호흡곤란이 왔고,

숨이 막혀서 삶의 위협을 느꼈고,

그렇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내겐 얼마든지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얘길 '황대권'님은 '고맙다 잡초야'에서 이렇게 풀어내고 있다.

 

 

 

 

 

 

 

 

고맙다 잡초야
황대권 글.그림 / 도솔 /

2012년 10월

 

 

 

꼭 농사일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농사짓는 사람들은 수확을 하고 나서 자신이 다 이룬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노동의 강도가 세고 날씨와 기후변화에 애를 태웠기 때문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을 것이나 착각일 뿐이다. 애착 또는 집착을 공(功)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농사는 근본적으로 자연이 짓는 것이며 인간은 다만 그 과정에 이런 저런 방식으로 개입할 뿐이다. 자연의 공(功)으로 농사가 이루어지는데, 그 공(功)의 주체인 자연의 본질은 공(空)이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공(空)으로서의 자연을 이해할 수가 없다. 텅 빈 가운데 무한한 조화를 부리는 자연의 공능(功能)을 믿고 그에 맡기면 다행히 굶어 죽지는 않는다. 굶어 죽기는 커녕 신선의 경지에 올라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살 수 있다. 최초의 자연농업의 원리를 세상에 밝힌 후쿠오카 마사노부 옹의 농사철학이다.

나는 다만 조연이나 보조자에 불과한데 내가 마치 주인인 양 모든 일에 노심초사하며 일희일비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보조자는 보조자답게 주인이 하는 일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내가 그렇게 애를 태우고 수고한다고 해서 자연이 하는 일에 무엇 하나 더 보탠 것이 있었던가? 비료를 주어 수확이 늘어났다고? 그것은 하나를 얻기 위해 열을 잃어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벌레를 잡아주어 수확의 감소를 막았다고? 그것은 벌레를 매개로 작동하는 자연의 공능을 알지 못해 하는 소리다. 내가 잡은 벌레가 나비의 감소를 가져오고 나비의 감소가 꽃가루 수정을 감소시켜 농장 전체의 수확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물론 꽃을 보지 않고 매년 종자를 사서 쓰는 농부에게 이런 말은 황당하게 들릴 것이나, 엄밀하게 말해서 종자를 사다 쓰는 농부는 농부가 아니라 농업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물을 주어서 말라죽지 않게 했다고? 들에 핀 야생화와 숲 속의 나무는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잘 자라는데 누가 물을 주었을까?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내가 무엇 무엇을 했다'는 자의식이다. 이 자의식은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의 토양이기도 하지만 심하면 허위의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미 보조자의 역할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것 자체가 허위의식인데 거기에 하나를 하고는 열을 했다고 풍을 친다. 사실 겸손이라는 말은 유한한 존재인 사람 앞에서보다 자연 앞에서 더 필요한 덕목이다. 말 못하는 자연 앞이라고 오만에 빠져 제멋대로 굴다가 낭패를 당한 인간 지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손자병법에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는데 무한한 공능을 지닌 자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가 다한 것처럼 착각에 빠져 있으니 어찌 위험에 빠지지 않으리.(117~118쪽)

 

그 출발점으로 '경물의 생활화'를 제안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물건이 가지고 있는 영적 차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물건들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경천애인'은 저절로 될 것이다. 하늘과 사람은 물건보다 훨씬 소중한 존재로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건이 그러한 모심의 대상이 되냐고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설명할 것 없이 조용히 손을 잡고 박물관이나 사원으로 데려가자. 어떠한 물건이든지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 그야말로 '물건'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84~85쪽)

 

'내가 누구다', '내가 무엇 무엇을 어떻게 했다' 따위의 자의식은 대상이 다를때 뿐만 아니라,

같은 대상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사물, 기타 등등과의 비교를 통하여 우위의 순위를 매기기 때문인데...

이 모두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우월주의'의 산물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우월주의에서 탈피하는 순간에서야...

남을 위험에 빠뜨리면 자신도 위험에 빠진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늘 위험을 느끼는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옷을 벗어던짐으로써 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스스로를 유약하게 만들어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유약해진 나는 예전처럼 함부로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나를 지키기 위해 좀 더 세심하게 주변을 살펴보게 된다. 이렇게 상대방과 동등한 관계를 맺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면 어느 순간에 자연이 벌거벗은 나를 보호해준다는 느낌이 든다.(21~22쪽)

하는 구절이 설명이 되고,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가 제시하는 우리시대 최고의 자연회귀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먹기 | 음식이 밥상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음미하여 되도록 오래오래 씹는다.

볼일 보기 | 인도식으로 손에 물을 묻혀 씻으며 땅과 똥과 나를 일치시킨다.

옷 벗기 | 옷은 그저 피륙이 아니라 의식과 행동을 지배해온 거대한 관념이다.

추위 | 인류의 미래는 추위를 견디는 힘에 달려 있다.

운전 | 타이어의 진동과 떨림을 모두 느끼며 알아차린다.

절하기 | 허리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반복한다.

종사 | 자연농업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무이한 농법이다.

건강 | 방법은 오직 하나, 우리 몸을 자연의 질서에 맡기는 것이다.

노동 | 반복되는 단순노동을 통해 '거짓 나'가 소멸되는 느낌을 체험한다.

소통 |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다 보면 공감대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란다.

 

이것은, 다시말해 인간우월주의의 탈피이고...

다시말해 경물의 생활화이다.

우리가 애정과 관심을 갖는 그 순간이 물건이 '물건'으로 거듭나는 순간이고,

나는 경물의 숭배라고까지 얘기하고 싶지만,

그 순간 경물 우월주의로 변해버리고 아쉬울 따름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 씹는 행위만 해도 그렇다.

음식물을 입 안에 넣고 씹을 때에 온 신경과 에너지를 씹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라즈니시 말투로 하면 '씹는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단다. 그걸, '비는 단지 흔들어댈 뿐이지만 나의 입 속에서는 격렬한 파괴와 창조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29쪽)' 라고 너스레를 떨고있다.

 

볼일보기, 옷 벗기 등 자연과 물아일체를 넘어선다.

내가 자연과의 연애를 얘기하는 건 들어봤어도, 자연과의 섹스는 또 처음이어서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순간적인 오싹함 뒤에 오는 따스함의 쾌감을 꽤 긴 시간 동안 맛보면서 섹스할 때의 오르가즘과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운우지정이라 하여 남녀 간의 사랑을 자연의 움직임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날 나는 자연과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엇다고 생각한다. 따로 안식처를 찾지 못한 나는 적극적으로 자연을 향해 구애를 했고 자연은 - 물론 말 그대로 '늘 그러함'이었지만 -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애와 유사한 쾌감을 느꼈다.(51쪽)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던건,

반복되는 단순노동을 통해 '거짓 나'가 소멸되는 느낌을 체험한다는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은 어느 순간까지는 맞지만,

흔히들 명상이라고 하면 정적인 모습만 떠올리는데 매우 격렬한 동작일지라도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히 관(觀)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명상이 된다. 사실 도끼질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근력이 있어야 하고 연습도 필요하다. 무작정 휘두르다간 다치기 십상이다. 조급한 심정에 서투른 솜씨로 함부로 달려들어서는 장작은커녕 헛되이 기운만 쓰고 마음은 전보다 더욱 어수선해지고 만다.

ㆍㆍㆍㆍㆍㆍ도끼날과 나뭇결이 일직선이 되게 놓되 마치 제단 앞에 예물을 바치듯이 정성스럽게 놓아야 한다. 통나무의 심사를 최대한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다.바야흐로 통나무가 갈가리 쪼개지고 온몸에 불이 붙어 하늘나라로 올라가려는데 그만한 예의는 지켜주어야 한다. '예의'라고 했는데 사실은 나와 통나무 사이의 주파수를 맞추는 조율과정의 하나다. 통나무를 단단히 세워놓았으면 그 앞에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서서 호흡을 고른다. 도끼를 휘두르는 기술이나 완력보다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통나무와 나의 주파수가 일치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도끼를 휘둘러서는 안 된다.(56~57쪽)

그 순간을 넘어서면 타성에 빠지게 된다.

타성에 빠지는 순간을 넘어서면, 그 다음에 '거짓 나'가 소멸되는 느낌을 체험할 수 있으려나?

아직 나는 갈길이 멀기만 한가 보다.

(난 한때 이걸 갖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언젠가 올렸던 '그녀의 취향' 링크

다만, 나와 통나무 사이의 주파수를 맞추는 조율 과정이야말로

사람이고 사물이고 자연이고 간에, 경계를 넘어서는 소통인듯 여겨져서 눈여겨 보고 귀담아 듣고...나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

 

난 그러고 보면 공감이나 소통이란 말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나 보다, ㅋ~.

 

차와 일체가 되면 도로 표면의 요철 상태에 따라 미세한 떨림이 지속적으로 전해온다. 바로 이 순간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이 진동과 떨림에 일일이 반응하도록 노력한다. 가령 차가 덜커덩하고 위아래로 흔들리면 그에 따라 몸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준다. ㆍㆍㆍㆍㆍㆍ계속 이렇게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다 보면 어느덧 차체와 혼연일체가 됨을 느낄 수 있다. 일단 하나가 된 뒤로는 제법 큰 흔들림이나 방향 전환이 와도 별 어려움 없이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ㆍㆍㆍㆍㆍㆍ

주행과 흔들림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잊고 있었던 호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왜 처음부터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가 하면 호흡은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상을 한답시고 억지로 호흡에 신경을 쓰다 보면 의식이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제는 차와 일체를 이루었으니 전신 호흡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전신 호흡이란 온몸의 주의를 기울여 최대한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되 더 이상 들이마실 수 없을 때까지 숨을 들이켜고 더 이상 폐에 공기가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숨을 내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숨을 쉬자면 온몸의 근육과 신경 - 특히 배 부분 - 을 온전히 동원해야 한다.(69쪽)

 

위 구절처럼 차와의 혼연일체를 잠깐 시험해 보려 했었다.

바로 좌절을 하고 말았는데,

스스로 '한 섬세한다'고 자처하던 나조차도...

차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떨림에 일일이 반응하려고 노력하는게 여간 힘들고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차와 혼연일체는 고사하고, 영혼의 육체 이탈, 흔히들 말하는 멘탈 붕괴를 먼저 경험하겠는지라 접어 버렸다.

다만 마음을 바치고 모으는 모든 일의 근간은 '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다시말해 공감이나 소통은 마음 바치고 모으는 일, 주파수를 맞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다.

'어떤 날'의 '출발'어디에선가 나왔던 구절이기도 한데...

이제는 세월이 한참 흘러 잊어버렸는데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있어야 할 게 제자리에 있는거다...뭐, 그런 가사였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자랄 때 신은 그것이 있어야 할 정확한 자리를 정해준다. 각 생명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을 때에 가장 행복하고 또 번성한다. 각 생명뿐 아니라 그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 다른 생명들도 그렇다. 무한한 생명의 바다에서 생명들은 대단히 복잡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데 어떤 상태의 관계에 있을 때 각 생명이 행복한지 신은 알고 있다. 개별 생명이 그 자리를 찾아갈때 그것은 번성(행복)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시들어갈(불행할)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충실히 따르는 뭇 생명들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찾아감으로써 삶의 의미를 완성한다(또는 자아를 실현한다). 사람들은 흉측하게 생긴 동물을 보고 진저리치면서 신이 왜 저런 걸 만들어 사람을 놀라게 하는지 의아해한다. 반대로 쓸모 있는 동식물을 보면 이들이 모두 인간을 위해 태어났다고 멋대로 생각한다. 둘 다 터무니 없는 인간 중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이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고, 세상에 태어나면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이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할 때가 아니면 인간에 의한 부당한 간섭이 주원인이다.(96~97쪽)

 

난 이 책의 저자처럼 원시수렵시대의 자급자족을 꿈꿀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1순위도 아니고 0순위 되시겠다.

다만 인간이 전지전능하다는 생각은 적어도 버려야 한다.

인간을 위해 태어난 동식물만이 쓸모있다고 생각하는 인간 중심 주의적 사고방식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적어도 겸허해 진다.

뭇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

숙연해진다.

 

내가 '공감과 소통', '대화와 소통'에 목숨 거는줄 알았는지...이런 책이 내게 왔다.

 

 

 

 

 

 

 

 

 

가짜 우울
에릭 메이젤 지음, 강순이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12월

 

 

제목은 '가짜 우울' 이지만,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은 '우울증은 정신장애가 아니다'는 것이다.

앞으로 멀지않은 언젠가...

정신건강 사업 팀이 생길지도 모르고,

대형할인마트의 우울증 코너에 가서,

점원에게 치료프로그램을 OX 또는 사지선다형으로 선택해서 상담받듯 처방받아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단다.

실은 이 책에서는 '만들어진 정신장애'라는 말을 벌써 쓰고 있으며,

이것은 이윤을 많이 남기는 '이름짓기 게임'일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울증이란 정신장애와 정상적인 슬픔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할텐데...

책의 한구절을 옮겨보자면 이렇다.

5.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이 어떤 느낌이고 우울증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고 주장하고, 그 두가지가 완전히 다르다고 확신한다. 이 사실이 우울증이 정신장애라는 증거 아닐까?

 

아니다. 그들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어떤 사람은 그 차이를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슬픔은 살갗이 벗겨진 듯 얼얼하고 쓰라린 느낌인 반면, 우울증은 마치 눈으로 만든 장갑과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서 왜 이렇게도 삶의 온기와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지 알 수 없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느낌이 더 안 좋거나 다르다고 해서 정신장애라고 할 수는 없는일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은 베란다의 흔들의자에 앉아 앞뒤로 흔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러나 롤러코스터가 위를 뒤집고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고 해서 장애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 책이 우울증을 정신장애라고 부르는 것에 딴지를 거는 것 쯤으로 끝났더라면 그저 그런 책이 되었을 것이고,

내가 이렇게 설레발을 치면서 소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울증이 정신장애인지 아닌지...에서 부터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시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변증법을 택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언젠가, 리뷰로 쓸 날이 오겠지만...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문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해서이다.

어떤 해결책을 답으로 얻었는지는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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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2-20 07:52   좋아요 1 | URL
'어떤' 농사꾼은 당신이 모든 일을 다했다고 우쭐해 할는지 모르지만,
제가 살아가는 시골마을 이웃 어르신들한테서는 그런 모습을
조금도 느끼지 않아요.

황대권 님은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요.
어차피 이 책은 도시사람이 읽을 테니,
도시사람들한테 무언가 일깨우려고 그렇게 '빗대어 보는 이야기'로 썼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농사꾼은 '모든 사랑'을 들여서 흙을 만집니다.
스스로 모든 사랑을 들여 흙을 만져 얻은 곡식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활짝 웃는 일이란,
참 아름답다고 느껴요.

아름다운 웃음은 사랑이요,
이 사랑이 있어 곡식도 열매도 한껏 무르익을 수 있구나 싶어요.
사랑받는 곡식은 더 잘 자라고,
사랑 못 받는 곡식은 알곡이 작기 마련이에요.

농사꾼은 '아무것도 안 하는 보조자'가 아니라,
농사꾼은 '스스로 무엇을 한다는 생각' 아닌 '사랑을 온통 바치는'
아름다운 '길동무'라고 느낍니다............

아무개 2012-12-20 08:30   좋아요 1 | URL
저는 오늘 '진짜 우울'하지만 <가짜 우울> 보관함에 담고 갑니다.

프레이야 2012-12-20 08:40   좋아요 1 | URL
님, 황대권의 저 책 소개하는걸 들은 적 있어요. 야생초편지 이후 반갑더군요. 저도 가짜우울 담아가요.

2012-12-20 15:08   좋아요 1 | URL
황대권님 너무 도인처럼 되어 버리셨어요. 아니, 뭐, 제 개인적인 느낌..^^

북극곰 2012-12-24 17:09   좋아요 1 | URL
나무꾼님~
내일이 크리스마스라도 제게는 별만 다를바 없는 휴일이지만 ^^
즐겁게 보내세요. 눈도 온대잖아요. 예쁘겠다.
남쪽나라에서 와서 그런지 눈이 온대면 저는 괜히 설레요.
 

울애인이 상급학교에 진학하신 후, 휴일이라도 집에 있는 걸 볼 수 없다.

학교에, 학원에...뭐 그리 바쁘게 움직이는지,

마땅히 할일이 없어진 난 방바닥에 누워 이리저리 떼굴거리다가 보면, 낙동강 오리알이라도 된듯 처량맞게 느껴진다.

 

엊그제 저녁 그러니까 날씨도 꾸물거리고 기분도 꿀꿀하고 하여,

남편과 목욕탕에 갔다가 'ㅁ면옥'이라는 설렁탕집에 들려 양곰탕을 먹었다.

남편은 연애할때 이후로 잘 안하던,

밥을 말고 파를 적당히 넣고 소금간을 하는 풀서비스를 제공해 주셨는데,

문제는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파를 안먹는 바람에,

남편이 부어준 파를 하나 하나 골라내야 했다.

남편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겉으로는 파를 골라내며 번거롭게 되었다고 툴툴거리다가,

이렇게 예쁘게 생긴 '하트파'도 발견하게 되었으니,

제대로 기분전환이 되어주셨다, ㅋ~.

 

어제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손석희의 목소리를 잠을 깨우는 기상송쯤으로 가족들과 아침밥을 먹는데, 낙동강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아들~, 잘 들어봐봐.

 저기도 엄마랑 똑같은 심정의 사람이 또 있나보다~."

아들은 가뜩이나 작은 눈이 잠에서 덜 깨, 거의 달라붙어서는 나를 간신히 쳐다본다.

"엄마, 4대강 사업 문제점 얘기하고 있는건데...

 엄마랑 4대강 사업이랑 뭐가 이심전심인데...?"

"지금 낙동강 오리알 어쩌구저쩌구...기러기 아빠처럼, 오리알 엄마 얘기하는 거 아냐?"

"무슨...?

 4대강 가운데 낙동강의 칠곡보가 물받이공이 주저앉아 보가 붕괴될 위기라는 거잖아~."

"......--;"

"난 엄마 엉뚱한 소리하는데, 보가 붕괴되는게 아니라 멘탈이 붕괴될거 같음~--;"

하는데, 나는 아무소리 못하고 밥그릇에 코를 박는 수 밖에~--;

 

나는 가방에 김선우를 주섬주섬 집어넣고 출근 준비를 하는척 할 수밖에 없었다.

가방에 집어넣은 책은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이었다.

 

 

 

 

 

 

 

 

 

 물의 연인들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ㆍ이어서 하늘 여기저기를 찢어 놓듯이 번개와 천둥이 쳤다. 손바닥의 담쟁이들이 엽맥을 곤두세우고 소스라쳤지만 괜찮았다. 너와 함께였으므로. 너는 주방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장관이야, 저런 자국! 번개 친 자리들, 하늘은 죄다 기억할 게 틀림없어.

  지구가 생긴 이래 모든 번개 친 자리들을?

  너는 내게 다가와 으깬 감자와 야채에 크림소를 얹은 샐러드를 한 입 넣어 주며 물었다.

  물론이지, 상처잖아.

  꽃일 수도.

  전선처럼 바지직거리는 꽃잎을 단?

  짜릿해. 안드로이드가 된 것 같아.(10쪽)

프롤로그부터 이렇게 감각적으로 시작한다.

책 뒷표지의,

'여기, 강을 파괴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한 물방울로부터 한 물방울에게로"흐르는 사람들이 있다.

 매혹의 정염과 관능적 미학이 살아 숨 쉬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그녀, 사랑을 노래하다.'

라고 되어있는걸 새삼 인용할 것도 없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다.

그냥도 충분히 재밌게 읽히는데,

4대강을 돋을새김하여, 주제를 무겁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작가 김선우가 4대강 반대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이 이를 전달하려고 일부러 쓰여진 글이라고 생각한다면,

작위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될테고,

그러다 보면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비껴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했었다.

그냥 매혹과 정염과 관능적 미학이 살아 숨쉬는 사랑을 노래한 책이라고 해도...

충분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사랑해. 말해줘. 사랑한다고 말해 줘.

빗방울처럼, 아주 작게 속삭였던 것 같다.(11쪽)

숨이 막힐 것처럼 감미로운 비린내가 둘의 몸에서 동시에 피어오를 때면, 너와 함께 마지막까지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강물처럼. 삶이. 사랑이.

윤허하다, 라는 말은 훨씬 뒤에 떠올랐다. (12쪽)

 

  살살 움직여 줘. 아프지 않게. 상처가 많으니까. 물처럼 흐를 수 있게.(139쪽)

 

아ㆍㆍ! 탄성이 나오는 와이강을 모두들 굽어보았다. 무위암에서 내려다보는 와이강은 자궁 속 태아를 감싸듯 와이산과 산자락 마을들 감싸며 흐르고 있었다. ㆍㆍ우리의 몸이 저렇게 흐르는구나, 강물이 흐르듯 피가 흐르는 존재가 생명이구나, 싶은 통찰이 푸른 하늘의 황금빛 햇빛처럼 찰나에 쏟아졌다고나 할까.. 푸르고 희고 검고 붉고 노란, 가장 원초적인 색들이 가장 적절하게 제 기운들을 풀고 당기며 흐르는 강. 사람들이 흔히 풍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지되어 있는 적막한 화면이 아님을 유경은 이곳에서 처음 알았다. 흐르는 풍경, 흐르는 색들, 흐르는 물결, 흐르는 모래들, 흐르는 새들, 꽃들, 풀들, 흐르는 바람ㆍㆍ 몸들ㆍㆍ 흐르는 인생ㆍㆍ.

   어떤 앎은 그런 식으로도 오는 것이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벅찬 마음이 유경과 요나스를 똑같이 훑고 지날 때ㆍㆍ.

  이렇게 아름다우니 누구든 이곳에서 마음 내려놓고 쉬면 병 같은 거 나을 수밖에 없지!

  맞아요, 할머니. 나도 잘 흘러가야 할 것 같아요. 사랑해야 하니까요.

  사랑해야 하니까.

  그의 입을 통해 처음 나온 '사랑'이라는 단어였다.

  약사여래는 여전히 와이강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요나스, 이제 어쩌지? 약사여래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경이 입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린다.(197~198쪽)

 

4대강 얘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치유와 사랑을 지니고 있는 것이...바로 강과 물의 속성인데 말이다.

그래도 '작가의 말'을 빌어 '영롱한, 하나씩의 물방울인 우리들'이라고 해주어서 좋았고 고마웠다.

 

암튼 소설은,  

프롤로그

 

 

번개 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아프다

천둥 친다, 나는 여전히 당신이 아프다

 

번개 친 후 천둥소리엔

 

사람이 살지 않아서 좋았다

 

이렇게 시작하는 연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먼저번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의 소설 버전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아무도 살지 않아서 좋았다

 

번개 친다, 끊어진 길 보인다

 

당신에게 곧장 이어진 길은 없다

그것이 하늘의 입장이라는 듯

 

번개 친다, 길들이 쏟아내는 눈물 보인다

 

나의 각도와 팔꿈치

당신의 기울기와 무릎

당신과 나의 장례를 생각하는 밤

 

번개 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아프다

천둥 친다, 나는 여전히 당신이 아프다

 

번개 친 후 천둥소리엔

 

사람이 살지 않아서 좋았다

소설은 우리에게 잘 흘러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잘 흐른다는 것은 막히거나 넘침없이 제대로 흐른다는 것이고,

그건 사랑이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일게다.

난 이 흐름을 '소통'이라고 슬쩍 바꾸고 싶다.

 

물의 속성이 흐르는 것이지만,

바꿔 말하면 흐르는 것이 막히게 되면 차고 넘칠 것이고,

차고 넘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순리를 역행하는 것 쯤이 될 것이다.

순리를 역행한다는 것은 '불통'이다.

순리를 역행하고 불통이 되는 순간,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마수의 그것으로 변하고 만다.

상처 또한 묵직하고 치명적이다.

 

마지막의 김연수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린 파괴에 파괴로 맞서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물의 속성처럼 흐르는 것이 막히게 되면 차고 넘치겠지만, 흐르면서는 씻기고 떠내려갈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기에 사람이기도 하겠지만,

또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기 때문에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소통과 불통이, 상처와 치유가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바꾸어 말하면, 사랑이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물이 나가온다면,

상처를 활짝 열고 물에 내맡기고 볼 일이다.

잘 정화된 물이어서 상처를 씻고 소독을 해서 아물게 할지,

곪게해서 덧나게 할지는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그리고 곪더라도 결국 옹이라는 훈장을 남긴다.

 

분위기를 바꾸어, 스스로 불통을 도모한 이가 있어 옮겨본다.

스스로 꿰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멋지다, ㅋ~.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이지누 지음 / 알마 / 2012년 8월

 

 

더구나 아늑한 것은 물론 고요하기까지 하니, 산중 선방이 따로 없다. 굵은 바람에 서로 부딪히는 나무들을 선실에서 사용하는 간당 틀로 삼아 선에 들고 다시 나갈 때까지 아처럼 고요한 곳에서 말을 그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더냐. 명나라의 운서 주굉(1535~1615)스님이 말하지 않았던가. 세간의 술이나 식초 따위들은 갈무리해둔 지 오래될수록 맛이 좋은 법이라고 말이다. 그 까닭은 단단히 봉해 깊이 넣어두므로 다른 기운이 스며들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서 주굉스님은 옛 선사의 말을 전한다. "20년 동안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런 후에 어찌 부처를 이루지 못할 것이냐"고 말이다. 그말을 전하며 주굉스님도 한마디 거든다. "아름답다, 이 말씀이여!"

  외롭고 높으며 쓸쓸한 정령치 마루의 마애석상틀 앞에서 열네댓 차례쯤 머물고 대여섯 밤을 자고 난 후에야, 나는 주굉스님의 마지막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어느 날부터는 이곳에 부처님을 뵈러 오는 것이 아니라 말을 멈추러 오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녕 몰랐다. 말을 멈추려면 생각부터 그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대뜸 말은 멈췄지만, 그것은 단지 말할 상대가 없는 것일 뿐 나 스스로 말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 뿐 말은 내 속에서 풍선처럼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웃자란 말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날부터 마치 종기처럼 흉측한 모습을 하고 겉으로 돋아났으니, 그 무슨 꼴불견이었을까. 그렇게 진세塵世를 떠돌다 다시 이곳으로 향하기를 예닐곱 차례, 그때서야 깨달았다. 말을 그친다는 것은 곧 남을 향한 것은 거두지만 나를 향한 것은 더욱 넓고 깊게 펼쳐야 하며, 내 속에서 생각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삭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단순한 진리조차도 산중 선방이 고요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깊이 참구해 급히 깨달으라고 했거늘, 스스로를 깊이 참구하기에 고요함보다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고요할 때에는 고요함도 모르고, 또한 고요하지 않음도 모르는 법이다. 움직임에 다다르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전의 고요함을 아는 것 아니겠는가. 진세에 머물지 않았다면 이 고요함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지 못했을 터이니, 아! 나에게 이곳에서 맞닥뜨리는 고요는 참으로 넓고 깊은 선물이자 아름다운 것이다.(90~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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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1-21 03:51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대로 굳이 4대강에 대한 비판 같은 것을 떠올리지 않아도 글이 참 좋네요. 김선우 시인이 4대강도 그렇고, 강정 문제도 그렇고 관련해서 좋은 글들을 많이 썼긴 하지만요. (참..이제 그분은 푸른기와집 떠나시면 그뿐입다만, 그가 망가뜨린 이 산천은 도대체 어찌 되려나요?)

프레이야 2012-11-21 09:17   좋아요 1 | URL
상급학교 진학한 애인과의 대화가 늘 재미나요. 전 그런 애인도 하나 없고 ㅎㅎ 하나밖에 없는 재치있는 애인과 하나밖에 없는 애정돋는 남편분과 오늘도 행복하게요.~~~ ♥

숲노래 2012-11-21 09:55   좋아요 1 | URL
오늘도 즐겁게 예쁜 이야기를 빛내는 하루 누리셔요

루쉰P 2012-11-21 11:30   좋아요 1 | URL
아,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그 시가 너무 좋네요. 노래는 지금 듣고 있어요. ㅋ 애인과 아들과 사이좋게 사시는 게 전 그게 정말 무한한 사랑인 듯 보입니다. ㅋㅋㅋ
아 근데 노래 부르는 가수 예쁘네요. ㅎㅎ 오전 근무가 여유가 있어 ㅋ 이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요. ㅋㅋ

감은빛 2012-11-21 11:42   좋아요 1 | URL
책 뒷표지 문구에 대한 말씀들 저도 공감합니다.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문구 하나 때문에 부담스러워 이 책을 외면할 이들도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양철님의 일상이야기 늘 재밌어요! ^^
 

실은 난 목숨을 걸고 하는 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남편을 만났고,

6년의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 삶이 늘은 아니고 때때로 축복이라고 믿으며 지금까지 무난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난 '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서 어떤 환상이나 로망 같은 걸 가지고 있었나 보다.

처음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 이라는 이 책의 제목만을 보고도 가슴이 설레였으며,

즐겨찾는 이들의 서재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책 소개와 리뷰를 보고서는 홀라당 반해,

당장 밤을 새워 읽을 것처럼, 친구를 졸라서 구해놓고는 여태 '홀라당 발라당~'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 '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 또는 '숨가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운명의 장난'이나 '불장난' 또는 '숨가쁘기만한 열정'이라고 대치했을 때 하등 문제될게 없는 것으로 미루어...

해피엔딩과는 동떨어진 결말로 이어지게 마련인 것을 짐작했으면서도,

난 어째서 이들의 숨가쁜 사랑을 마냥 부러워했던 것일까?

 

그들이 영화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다가 간것을 부럽다고 하기에는,

스포트라이트는 그들의 사생활마저도 여과없이 비춰냈으며,

심지어 어두운 단면들에 굴곡을 부여하여 심하게 굴절시키기까지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도록 운명지어진 이들이 있다지만,

운명의 신은 참으로 얄궂어 때와 장소 등 그밖의 모든 조건까지 맞춤하게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 둘의 경우가 그랬는데,

스물네 살의 나이 차이도 그렇지만,

40대 중반의 로맹가리야 그렇다고 쳐도,

스물 하나의 진 세버그도 이미 결혼을 한 후라는 것도 그렇다.

내가 진 세버그였다면 로맹가리가 아무리 멋있다고 해도,

중후한 매력을 가진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매력은 사랑이랑은 또 다른 것일 것 같은데 말이다.

 

백번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이 둘의 삶은 어느 누구 하나 일반적이지는 못하다.

스물한 살에 이미 성공과 친근해진 진 세버그도 그렇지만,

유대계에 러시아에서 출생, 프랑스로 이주하는 등의 이력을 가진 로맹 가리가,

사회적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군인, 외교관,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두루 섭렵하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로맹가리는 다양한 직업편력만큼이나 여성편력도 구사한다.

 진은 연약했다. 가리는 당시 일시적 우울 증세를 보이며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했고, 인간 본성에서 비롯한 온갖 일관성 없는 언행에 낙심했다. 그것은 전쟁 때문이었고, 그의 광적인 성생활 때문이었고, 또한 나이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가 진을 길가에 핀 개양귀비처럼 꺾어서 웃옷 주머니에 꽂았을 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115쪽)

이 책은 문장이 참 좋은데, 그걸 번역하는 과정에선 십분 발휘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수식이 화려하거나 함축적인 문장의 경우,

수사가 놓이는 위치에 따라, 문장을 이렇게 저렇게 제한하는 정도가 달라지는데 말이다.

 

문장이 좋다는 건,

로맹 가리가 레슬리와 만나는 과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가리는 레슬리에게서 분신같은 나그네의 영혼을 알아보고 춤이라도 추려는 듯 그녀의 손을 잡았다.ㆍ사실 두 사람은 존재와 사물의 영靈을 제 것으로 삼아 변화시키려는 욕망을 가졌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렇게 그들은 마치 스스로 무대에 올라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바꿔놓으려는 자신들의 욕구에 응하려는 듯 했다.ㆍ레슬리는 그가 그 자신을 알게 하는 데도 분명 기여했다.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명 작용을 통해 그 역시 그녀가 최고의 자기 모습을 닮게 만들었다. 때로는 한쪽의 자아를, 때로는 상대 쪽의 '나'를 성가셔하며 레슬리와 가리는 미숙하거나 유감스런 행동의 한계를 일러주고 인도해주는 특별한 직감을 갖춘 관계를 유지했다. 은밀한 떨림이 적절한 때에 찰칵 하고 당신을 관용으로, 신중함으로,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관계 말이다.(68~70쪽)

우리는 흔히 같이 살면 닮는다는 말을 한다.

난 이 말을 '좋아하면'이나 '사랑하면'쯤으로 바꾸고 싶은데, '공명작용'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공명 작용'이라는 것이 상호간의 것이어야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것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때론 '존경한다'는 말로 이 방향성을 일방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는데,

요즘은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데,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존경이나 사랑은 고사하고 의사 소통도 불가능할테니 말이다.

 

얼마 전에 존경하는 분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멘.붕.임~--;"

전화가 곤란하여 매번 문자를 보내는 줄 알면서도, 대번에 전화가 걸려 왔다.

"멘홀(이 붕괴되어 속)에 빠졌다구?"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가 8년을 같이 살았고,헤어져서 12년을 그렇게 지냈다고 하더라도...

책에는 숨가쁜 사랑이라고 사랑에 방점을 찍어가며 멋지게 표현하려 노력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비극적 결말은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도 가리도 육욕과 매력을 소유한 존재라는 자신들의 운명을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운명이 마술을 부려 사랑의 제1계명, "달려들라. 때가 되면 알게 되리라"를 강력히 부추길 때는 그저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다. 누구도 행복을 거슬러 노를 젖지 못하는 법이다.

  정신적 품성이 끌림과 유혹의 요인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품성에 감성과 매력과 아름다움까지 더해진다면 그 힘은 절정에 이른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는 그 모든 걸 팔고 남을 정도로 가졌으니 그들의 결합은 "행복의 비밀은 엉덩이와 마음에 있다."라고 한 자크 프레베르의 생각에 넉넉히 부합할만했다.(108쪽)

책에서는 이들의 헤어짐을 24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빚어내는 신체적 차이쯤으로 언급했는데, 비단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제 두 여자 사이에는 경쟁심까지 끼어들었는데, 그것은 소리 없이 진의 자존심을 긁었고 레슬리의 악의를 부추겼으며 가리를 괴롭혔다. 레슬리에게는 신체적 차원에서 불공정한 싸움이었다면, 진에게는 지적 차원에서 똑같이 불공정한 싸움이었다. 요컨대 서로가 상대편은 가졌거나 숙달했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한 것을 질투했다. 특히 진이 괴로워했다. 레슬리는 자신도 많은 연인을 가졌고, 누구보다 일탈적이고 모험적인 여행도 햇다고 자부하며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여자로서 자신이 이젠 스무 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였다. 그녀는 젊은 남자가 자기보다 진을 선택한 경우라면 훨씬 관대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늙은 부부의 정원에 웬 지각없는 여자가 끼어들어 논 것이라면 훨씬 관대했을 것이다ㆍ. 하지만 이 미국 여자의 침입은 레슬리에게 '그 자리에서 비켜. 내가 앉을 테야'를 의미했다.(112~113쪽)

 

 진 세버그는 왕성한 혈기로, 사회에서 소외 받은 약자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으며 흑인 인권 운동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FBI는 그녀를 빨갱이로 간주해 사생활을 감시했고 '흑인들의 창녀'라고 부르며,그녀의 명예를 실추 시킬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언론에 공개했다. 악의적인 가십은 그녀의 사생활을 파괴했고 보수적이었던 진 세버그의 가족은 그녀를 버렸다. 급기야 영화 경력은 쇠퇴 일로였고, 알콜 중독에 걸렸다.

 로맹가리는 언제나 유보적이었고, 불의와 차별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 세버그에게 행동하지 않는 소설가라고 매도당했다. 하지만, 그의 출생 이력을 안다면 그가 평생을 인종차별과 소외의 경계에서 줄다리기 했다는 것도 헤아리고도 남을텐데 말이다.

세상에는 끓는점 이상으로 움직여야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낙숫물이 바위를 뚫기도 하더라, ㅋ~.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폴 세르주 카콩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진 세버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깨진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길."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상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죠."(231쪽)

로맹가리의 죽음을 놓고서도,

이 책의 231쪽에선 그의 유서의 부분이 인용되어, 앞에서처럼 '사랑'에 방점을 찍으려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유서 전문을 보게 되면, 그의 문학적 작업의 연장선 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진 세버그와는 아무 관계없다.

상심한 마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른데다 호소하도록 초대받는 법이다.

사람들은 아마 신경쇠약 탓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 신경쇠약이라는 것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계속되어 왔으며,

내 문학적 작업을 완수하게 해 주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인가?

아마도 『밤은 고요 할 것이다 ; La Nuit sera calm』라는 내 자서전적 작품의 제목과,

‘사람들이 달리 더 잘 말할 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 마지막 소설의 말 속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암튼, 목숨을 걸고 하는'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 또는 '숨가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의 기우를 살짝 얘기해 보자면,

사랑은 꼭 그런 설정이 아닐 수도 있으며,

유명작가와 이쁜 배우가 나와 죽여주는 그림이 되어야만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주 보통의, (어찌보면 어떤 점에서는 보통에도 못 미치는) 사람들이 지지고 볶고 사는 일상이 사랑이지 뭐, 별거 있겠나 싶다.

아니, 죽여주는 그림 또는 순애보적인 이야기는 영화나 책 속에 나오는 것이고,

난 아주 보통의 사람들과 지지고 볶고 사랑하며 살겠다.

그걸 이 책에선 멋지게 '공명작용'이라는 말로 표현하던데...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관한 유쾌한 실험과 흥미로운 이론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ㅋ~.

 

 

 

 

 

 

 

 

 사랑의 실험실
 김형자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신체적으로 좀 더 가까워지려고 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에겐 공식적인 사람과 만날 땐 상대와 나 사이에 평균 122센티미터를 유지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는 46센티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심리가 있다. 나란히 앉았을 때 상대방을 향해 다리를 뻗는 것도 '친밀 거리'인 46센티미터 안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강한 호감의 표시다.
_ ‘46센티미터의 법칙’ 중에서

언젠가 친밀거리는 사정거리내로, 손뻗어 닿을 수 있는 범위를 말하고,

공식적인 거리는 양팔길이에서 어깨 넓이를 뺀거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럼 내가 말하는 insure safety distance에서는 안이라는 건가, 밖이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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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1-14 16:58   좋아요 1 | URL
얼마 전에 주말연속극 속 국민 딸 서영(별로 효녀는 아닌데)이가 온갖 역경 속에 어렵사리 판사가 됐는데(!) 자기가 살아온 처지와 위치, 가족들과의 관계를 돌이켜볼 때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형을 내리는' 행위로 인생을 좌지우지해도 되는 사람인지 고민하다 결국 판사를 관두고 변호사가 돼요. 반드시 어떤 행동을 적극적으로 해야만 행동가일까, 소극적으로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적극적 행동가보다 그들이 옳을 수 있는 게 아닐까..보이는 상처는 물론 보이지 않는 타인의 상처까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로맹 가리를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니까 슬퍼서요..

그래서 결혼을 하면요, 불 같은 사랑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나요? 더 심해지나요? 저는 어떡하나요..( 먼 산..)

양철나무꾼 2012-11-21 03:22   좋아요 1 | URL
어쩌긴 뭘 어째요~?
아이리시스님은 지금처럼 알라딘 서재 이 동네를 잘 지키시면 되는 거예요, ㅋ~.
결혼을 하면 불같은 사랑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지의 욕구는 말이죠~
비법 전수에 들어가니 맨입으론 곤란하죠, ㅋ~.

감은빛 2012-11-15 11:35   좋아요 1 | URL
저는 철없을 때, "이 사람이 아니면 살아갈 의미가 없어!" 라거나,
"이건 운명이야!" 라는 태도로 불같은 사랑을 몇번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열정을 태우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니나,
너무 한 사람에게 치우치다보니 생활이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더라구요.

사랑은 사람 수만큼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저는 가끔 불타오르는 사랑을 해보고 싶단 욕망을 가지곤 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2-11-21 03:28   좋아요 1 | URL
어허~~~~~!
이거 이거 아줌이 대답하기 좀 곤란한 댓글이다, ㅋ~.
패쓰하고,
날이 많이 추워요, 감기 안 걸리셨죠?
둘둘 말고 다니세요.

가끔 불타오르는 사랑을 해보고 싶단 욕망'만'을 가지고 있을뿐 실천이 안되는 우리들은 둘둘 싸고 말고 다니는 수밖에 없어요, ㅋ~.

숲노래 2012-11-15 16:29   좋아요 1 | URL
'보통'이라는 사람은 없고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보통 사랑' 또한 없이 모두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느껴요.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사랑을 말하는 글'을 쓸 수 없겠지요.

양철나무꾼 2012-11-21 03:31   좋아요 1 | URL
된장님 말씀이 맞아요.
사람이나, 사랑 따위 보통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것들이 좀 있지요, ㅋ~.

루쉰P 2012-11-20 09:31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교주는 돌아왔습니다. ^^ 먼저 복귀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 했네요. 1년 총 결산의 리뷰를 어제 저녁에야 마무리해서 올렸어요.
근데 양철나무꾼님 페이퍼에 사랑이 올라와 있다니 ㅋㅋ 뭔가 역시나 우리는 통하는 것 같습니다. 기다려 주시고 또 기다려 주셔서 감사해요. T.T
교주 그만둘 뻔 했는데 역시나 광적인 신자가 있어야 교주도 할 수 있어요. 감사해요. 진심으로여 ^^

양철나무꾼 2012-11-21 03:34   좋아요 1 | URL
교주님 돌아오신 기념으로다가, 신도가 잠수를 타 주셔야 하려나, ㅋ~.
저도 사는 게 변변치 못하여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워 (요즘은 새벽에 돌아다니는 티는 가급적 자제하는데)저도 모르게 그만 이렇게 댓글을 달고 있네여, 헤에^________^
 

며칠전 친구가 문자로 "점심은?"하고 묻길래,

넘 힘들고 지쳐 "별로~--;"라고 대답을 했더니,

"허걱, 점심으로 별을?"하는 답문자가 돌아왔다.

발상의 전환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고,

그렇고 그런 일상에 통통 스카카토처럼 느껴져,

그 후 배시시 해시시 거리고 다녔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난 별★ 하면, 이 책이 생각난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이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글쟁이 다섯과 그림쟁이 다섯이 만난 그 순간 들이, 한권의 책으로 결실을 거뒀는데 그게 '그림에도 불구하고'란다.

그중 '별'을 직접 언급한 '이원+윤종석'의 글과 그림을 조금만 옮겨보도록 하겠다.

ㆍㆍㆍㆍㆍㆍ매달려 있다는 것은, 움켜쥔 것이,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뜻. 애절해서 반짝인다. 별은 옷에 박혀있다. 대지처럼, 별이 거기 태생이라는 거다.

  별은 크지 않게, 많지도 않게 그러나 그곳에 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놓여 반짝인다. 별은 등에도 배에도 목에도 있지 않다. 별은 가슴에 있다. 심장이 뛰는 곳에 잇다. 별은 가슴에 있다. 심장이 뛰는 곳에 있다. 별은 심장의 다른 이름. 시간의 다른 이름. 별이 놓이는 곳에서 심장이 뛴다.

  별이 있는 옷은 정교하게 접을 수 있다. 정교하면 더없이 간명해진다. 어느 방향으로 접어도 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어느 방향에도 시간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10~12쪽)

 

  별을 주머니에 키링처럼 넣고 다니며 아무도 모르게 만지작거리고 싶고, 별사탕을 입속에 놓고 살살 굴려가며 맛보다가 딱 깨물고 싶고, 대놓고 훈장처럼 달고도 싶은 순간이 있다. 누구도 그것이 별이라는 것을 몰라도 좋다. 그 순간 내가 알면 된다. 열정이 출렁거리고, 모험심이 생기고, 별을 갖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도 달게 치루겠다는 마음이 커지는 시간 - <가슴에 별을 달다> 선언하는 포즈에서 별은 나타나기 시작.(20쪽)

 

 

 

(윤종석, 작품명 'she'80X130cm,acrylic on canvas,2009)

 

윤종석의 옷은 말한다. 침묵으로 말한다. 소리 없이 말한다. 소리 없는 말로 말한다. 그러므로 옷은 입이다. 소리로 말하지 않고 입으로 말한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입 모양으로 말한다.

 

윤종석의 작품에서, 얼굴은 옷 속에 들어 있다. 입이 극단의 시간에 닿고 있어, 얼굴은 입에 삼켜진다. 사랑의 본질을 붙잡은 그것은 수줍지만 완강한 입이며(둘이 만나 완성되는 하트, 그것은 하나의 사랑이 아니라 <두개의 사랑>이다. 두 개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 비로소 사랑은 게속된다), 꽃마이크(she)는 하고 싶었으나 참아온 말이 너무 많이 쌓여 쏟아내도 쏟아내도 계속 터져 나오는 입이며, 공격적인 색으로 웅크린 형상은 (<보호색을 입다>) 사실은 가장 연약한 입이다.

옷 속에 들어있는 얼굴에서는 극단의 시간에 닿고 있지만 고함, 비명, 통곡이 나오지 않는다. 얼굴은 입의 깊은 곳에 삼켜져 있기 때문이다. 화가는 기억의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낸 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최소한의 것만 내려놓는다. 그것이 '입'이다.(30쪽)

 

'이원+윤종석'의 글과 그림, 별 또는 옷이 좋았던 것은,

그동안 내가 별에 대해서, 또는 옷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때까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았었는데,

문정희 시인의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를 읽다가, '머풀러'라는 詩를 발견했는데...

웬걸... 내 마음 속에 들어왔었나 싶게, 내  마음을 나보다 더 맞춤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문정희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8월

 

 

              머  풀  러

                        - 문 정 희 -

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길에 나서면

사람들은 멋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녀의 상처를 덮는 날개입니다

쓰라린 불구를 가리는 붕대입니다

물푸레나무처럼 늘 당당한 그녀에게도

간혹 아랍 여자의 차도르 같은

보호벽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요

처음엔 보호이지만

결국엔 감옥

어쩌면 어서 던져버려도 좋을

허울인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바람 부는 날이 아니어도

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길에 나서면

사람들은 멋있다고 말하지만

미친 황소 앞에 펄럭이는

투우사의 망토처럼

나는 세상을 향해 싸움을 거는

그녀의 깃발입니다

기억처럼 내려앉은 따스한 노을

잊지 못할 어떤 체온입니다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81쪽)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패션에 신경을 엄청 쓴다.

몸에 붙이는 악세서리를 주렁주렁 거는 건 피부 트러블이 있어서 못하는 대신,

패션에 엄청 신경을 쓴다.

그렇다고 엄청 비싼 부띠끄의 옷을 입거나 화려하고 현란한 의상을 입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옷은 단순하게 입되 디자인으로 파격을 준다든지,

무채색의 옷을 입되 길이를 초미니로 입는다든지,

또는 머풀러나 모자 등으로 액센트를 준다.

그게 나의 상처를 감추는 위장이고 보호색이고 하다는 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었는데,

문정희 시인은 '머풀러'에서 '별'과 등가로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는, 시를 사랑하고 시를 왼다는 것은 마음에다 별 하나를 매다는 것이다. 이 산만한 세상에서 내가 아름다운 인간이라는 자존을 스스로에게 조용히 속삭여주는 것이다.(113쪽)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은 마음에 은하수 별길을 매달고 사는 사람이리라~.

 

난 마음에 은하수 별길을 매달고 사는 사람은 아니고,

가끔 시집을 사는 것으로 반짝이는 가짜 별이라도 매달려고 노력을 한다.

밥하늘에 반짝이는 것 중에는 인공위성도 있다더라, ㅋ~.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제목이 맘에 들어 구입한 시집.

외국 시인의 시는 아무래도 정서가 달라서 그런지, 겉도는 느낌을 어쩔 수 없다.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아담 자가예프스키 지음, 최성은.이지원 옮김 /

 문학의숲 / 2012년 10월

 

 

 

 

몇 년이나 지난 후 너에게 돌아왔다.

회색빛의 아름다운 도시,

과거의 물속에 잠겨

변하지 않는 도시.

 

이제 나는

철학과 시와 호기심의 학생이 아니다

너무 많은 시를 써 대던

젊은 시인도 아니다

 

이제는좁은 골목과 환상의

미로에서 헤매고 잇다

시간과 그림자의 지배자가

내 이마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그러나 나를 인도하는 것은 아직도

밝은 별,

밝음만이 나를

잃거나 구원할 것이다.

 

얼굴

 

저녁 무렵의 광장에서 빛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는 게걸스럽게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저마다 다른,

각자 뭔가를 말하고, 설득하고,

웃고, 아파하는 얼굴들을.

 

나는 생각했다, 도시는 집을 짓는 게 아니구나,

광장이나 가로수길, 공원이나 넓은 도로를 짓는 게 아니라

등불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짓는구나,

늦은 밤, 구름처럼 피어나는 불꽃 속에서 땜질을 하는 용접공의 점화기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내용은 금방 파악이 안 되어도,

오랫동안 입속에서 둥글리며 읊조리다 보면,

뭔가 몽글몽글 마음 속 한가득 차오르는게 있다.

 

암튼, 시 한편 외지 못하더라도...

단지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은하수 별길은 아니어도,

졸졸졸 맑은 물 흐르는 물길 하나 열리는 느낌이다.

 

'★로'를 '★을'로 슬쩍 발상 전환했을 뿐인데,

그리하여 내 마음에 졸졸졸 맑은 물 흐르는 물길 하나 만들어준 친구에게,

이 페이퍼를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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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5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도 손석희를 들으며 아침을 먹는데...

히야~, 거참...

가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던 그 누군가의 땅이,

누군가의 아내의 것이 되었다가,

처남 소유가 되었다가,

딸에게 상속이 된것이 밝혀졌단다.

근데 그 과정에서 무려 250배 뻥튀기가 되었단다.

이는 1673억이라는 추징금의 공소시효 만료를 1년여 남겨놓고 있는 시점이었다.

아니, 검ㆍ경의 수사는 오래전에 끝난 상황에서,

어느 기자가 87년부터 하나 하나 이잡듯 파헤치고 끈질기게 추적하여 밝혀낸 것이란다.

1억6천, 아니 1천6백만원이었어도...언뜻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숫자에 둔한 나는, 한참을 형광등처럼 눈을 꿈뻑거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 코너에서 경제전문가란 사람이 나와,

'지금은 경제위기이고,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발끈~'하고 말았다.

 

숫자야 기상천외한 액수여서 언뜻 감이 오지않아 형광등처럼 꿈뻑거리고 앉아 있었지만,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잘 파악한다.

게다가, 흥분도 잘하는 성격인지라...

서둘러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손 놓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렇다고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감정을 이입하여 이 책을 읽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신현림 글.그림 / 현자의숲 /

 2012년 8월

 

이 책에서 말하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나를 사랑하기 좋은 날'이라는데,

실상에서의 나는...아무것도 하기 싫을뿐더러, 나를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는 날이다. 에효~--;

 

「갓 태어난 수달은 물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어미가 어린 수달을 개울가나 호수로 데리고 가 물을 조금씩 뿌려준 다음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점차 물에 적응시킨다. 그렇게 하면 어린 수달은 두려웠던 경험이 기쁨과 좋은 것이 됨을 알게 된다.」

이렇게 수달이 기뻐하니 강가의 물은 더 즐겁게 찰랑거리는 듯 했어요.

ㆍㆍㆍㆍㆍㆍ

아기 수달과 엄마 수달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ㆍㆍㆍㆍㆍㆍ

"엄마랑 있으면 뭐가 달라도 달라요. "

"뭐가 다른데?"

"강물 색은 더 푸르고, 해는 더 빨갛고, 엄마도 더 반짝여서 특별한 수달로 보이고, 엄마랑 있어 편안해선지 나도 멋져지는 거 같아요."

"그래, 우리가 사람이 아닌 수달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엄마 수달은 아기 수달을 끌어안고 무척 행복해하는 표정으로 말했어요.(15~16쪽)

 

그래, 난 수달도 아닌 사람이면서 무슨 배짱으로 사람 하나 끌어안고..

강물 색은 더 푸르고, 해는 더 빨갛고, 그대는 더 반짝여서 특별한 수달로 보이고, 그대랑 있어 편안해선지 나도 멋져지는 거 같아요...읊조리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나의 행복이, 곧 그대의 행복인 따위는 천연기념물인 수달의 세계에서나 가능할 수 있는 일이고,

인간의 세계에서는 절대 금지 사항 인가 보다.

 

그렇고 그런 감정들이 헤프게 흩어져 있는 사이를 이리저리 유영하듯 건너다가,

'손편지로 울게 해봐'에서 '손편지'란 단어에 제대로 낚여 주셨다.

 

ㆍㆍㆍㆍㆍㆍ

오늘은 컴퓨터 냄새가 싫으니까

손으로 쓴 편지로 나를 울게 해봐

ㆍㆍㆍㆍㆍㆍ

 

암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곧, '나를 사랑하기 좋은 날'이라는걸 그냥 터득하게 되지는 않았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톨스토이 옹의 말처럼, 상대가 있기에(상대가 북돋워 주기에) 가능한 상호적인 것이라는 걸, 몸소 체험한 결과이고 소산이다.

 

또 한 권, '나는 가수다'의 '김영희'PD의 책 '소금사막' 되시겠다.

 

 

 

 

 

 

 소금사막 
 김영희 지음 / 알마 /

 2011년 10월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김영희 PD는 혼자만의 여행을 택한다.

혼자하는 여행이 참 외로웠습니다...라고 한다.

나는, 외로워서 나를 사랑하기 좋았습니다...라고 조용히 덧붙인다.

 

남자는 일단 강해야 돼!

 

 

 

그러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강한 것이지만

강하다고 마음대로 해서는 안되지요.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변하지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처럼 말이다.

 

안데스가 나에게 준 것.

사람!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

어떤 이유로든

그 사람을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

신현림도, 김영희 PD도 같은 얘길 단어와 어법만 바꾸어 하고 있는듯 하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라.

돈처럼 대접받고 싶으면 돈처럼 대접하면 되고,

내가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으면 나도 사람으로 대접하면 된다.

내가 꽃으로 대접받고 싶으면 나도 꽃으로 대접하면 된다.

그런데, 실상은...

해처럼 떠받들었는데, 해바라기로 되돌아 오기도 하더라만...ㅋ~.

 

 

'그리워하다보면 닮나봐'하는 이 그림은 누가 봐도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비참하고 구질구질한 생각이 들때면 가끔 꺼내보고,

나를 되돌아 보고 자극하는 계기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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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the way you are

 

Don't go changing, to try and please me
You never let me down before
Don't imagine you're too familiar
And I don't see you anymore
I wouldn't leave you in times of trouble
We never could have come this far
I took the good times, I'll take the bad times
I'll take you just the way you are

Don't go trying some new fashion
Don't change the color of your hair
You always have my unspoken passion
Although I might not seem to care

I don't want clever conversation
I never want to work that hard
I just want someone that I can talk to
I want you just the way you are.

I need to know that you will always be
The same old someone that I knew
What will it take till you believe in me
The way that I believe in you.

I said I love you and that's forever
And this I promise from the heart
I could not love you any better
I love you just the way you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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