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준점은 어디에 있는가

 

ㆍㆍㆍㆍㆍㆍ

말 그대로 '각자'의 인생인데, 뚜벅뚜벅 내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그게 용납되지 않아요.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나의 '자존'을 찾는 것보다는 바깥의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ㆍㆍㆍㆍㆍㆍ

기준점을 바깥에 두고 남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안에 두고 나를 존중하느냐일 겁니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 21~22쪽, 부분 발췌)

 

며칠전 '박웅현'의 '여덟 단어'를 읽다가 이 부분에서 멈추고, 그의 '책은 도끼다'를 찾아 다시 읽었어.

그때는 나를 멈추게 한 그 이유가 뭔지 몰랐었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알겠어.

 

 

 

 

 

 

 

 

 

 여덟 단어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우리는 다커서 만난 친구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격도 비슷하고 취향도 닮고 해서,

어떤 사안에 대한 반응도 똑같을 때가 많아서,

쌍둥이라며 좋아하며 웃기도 많이 하지.

 

그런데 가만보니...닮은 점이 워낙 두드러져서 몰랐지만, 두드러지지 않게 다른 점도 많이 있더라구.

같은 책에 관심을 갖고,

똑같은 상표의 커피를 마시고,

이리저리 오지랖을 내세워가며 두루두루 잡기에 능하고,

이렇게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다 닮았지만,

아니, 판박이라고 할 정도로 똑같지만...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어서 잘 알지못했던 '본성'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

내가 지난 번 강신주 리뷰를 쓰면서도 잠깐 언급했었는데,

우리 사이에 필요한건 '역지사지'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삶'인것 같애.

 

얼마전에 나한테 창의성이 풍부하다고 했잖아.

우린 쌍둥이라는 논리대로라면,

너도 마찬가지로 창의성이 풍부해야 하는데 말야.

제도권 안에서 규칙과 틀에 맞게 하는건 바른생활이라고 할 정도로 잘 해 내고 있지만 말야,

창의성은 좀 아닌거...맞지?^^

 

얼마전에,

난 너한테 집착이라고 할 정도로,

집착이 되어 거추장스러워질지도 모를 정도로,

의지하고 모든걸 털어놓고 얘기하고 그러는데 ,

성향 상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넌 나한테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

혼자 안으로 움추러드는 것 같아서,

내가 그런 것만큼, 넌 내가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을때,

 

네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어.

 

내가 참 솔직하지 못하지?

맘을 자꾸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건 아닌데...싫음 싫다, 힘들면 힘들다...말을 바로 하지 않잖아.

그게 너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배려하면서,

나쁜 말로 말하자면 눈치를 보면서

그런 게...몸에 배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쌍둥이라는 선입견에 갇혀서,

나만 바로보고,

내 본위로만 사고하고 행동하고...하면서 너의 진면목을 바라보지 못했던 거였네.

 

나 또한 제도권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틀을 버거워 하고,

나만의 기준이나 잣대를 다시 만들려고 했었거든.

 

물론, 나라고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

이렇게 되기까지는,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고,

내 자신을 격려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했어.

 

내 스스로 '스스로 따 시킨' '스.따.'라고 하고 돌아다녔고,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짬뽕공 입네,

감성만 풍부해가지고,

머리는 옵션으로 들고 다니네...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뭐, 신경쓰지 않았어.

 

덕분에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게 됐어.

그렇다고 제도권 교육을 받은 내가 뭐, 크게 틀에서 벗어나거나...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을 일을 하지는 않게 되더라고...ㅋ~.

대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게 됐어.

 

주변에서 만든 규정이나 틀은 나 자신을 옭아매기 위한 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나를 위한 배려'라고 하는데, 그거 고맙지만 이젠 사양할래.

그리고 그게 눈치라면,

난, 나만은...네게 눈치 따위는 주지 않으니까,

눈치 따위는 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

 

나랑 꼭 닮은 쌍둥이는 말야...

편안하기는 하지만,

나랑 너무 닮아 익숙해서 새롭다거나, 가슴 아슴아슴한 떨림이나 설레임 따윈 없잖아.

 

너만의 멍석을 깔고,

내가 아닌,네 자신을 배려하면서...

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고 부탁하고 싶어.

 

난 네가 멍석을 제대로 깔 수 있도록,

내 오지랖을 최대한 넓혀 둘테니까 말야...

날개를 충분히 펼치고,

아니, 충분히 도움 닫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기꺼이 내 곁도 내어줄테니까 말야...

여지껏은 때를 기다려 움추린 거라고 치고,

자아, 이제 날아오르는 거야~.

 

근데 말야.

내 오지랖도 내 곁도 넉넉하게 내어줄 수는 있지만,

내가 네 건강은 어찌할 수 없는 거 알지?

돈이나 물건 따윈 없거나 부족하면 남의 것을 구걸하거나 훔칠 수도 있다지만,

건강은 돈으로 살 수도,

구걸하거나 훔칠 수도 없는 거, 알잖아~.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책은 도끼다' 6쪽)

 

 

 

 

그리고 그렇게 얻은 돈오를 잊지 않고 게속 살아가는 것이 점수, 차츰차츰 정진하라는 겁니다. 깨달음이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살면서 게속해서 그 깨달음을 기억하고 되돌아보고 실천해야겠죠.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좋은 책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책에 대한 긍정적인 편견이 있습니다. 책이면 다 좋다는 편견이죠. 하지만 읽는 시간이 아까운 글들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점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돈오하려면 깨달음을 줄 만한 좋은 책들을 찾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책은 도끼다' 345쪽)

 

그동안 책은 다 좋은 책인줄 알았어.

그런데, 박웅현은 책도 좋은 책과 나쁜책이 있어서, 좋은 책을 가려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네.

카프카 식으로 말하면, 우리 안의 인습이나 편견, 매너리즘, 타성을 깨뜨려버리고 끄집어내 변화시켜 주는 도끼 같은 책이 좋은 책일거야.

저기 책의 자리에, 친구를 대입시켜도 좋을 것 같애.

그렇다면 네게 난 두끼가 될 수 있을까?

(사람을 도끼에 비유하다니 좀 무시무시한가~--;)

그래도 네게 난 도끼같은 친구가 되고 싶은 걸, ㅋ~.

 

책의 자리에 대입시킨다면 이왕이면 고전이 좋겠어.

왜 고전이었으면 좋겠냐구?

세상 모든게 변하게 마련이고,

요 밑의 인용 구절을 보렴, 온 세상을 품을 것 같던 사랑도 지워진다지 않니, ㅋ~.

내가  짬뽕공 같다는 얘기는 바꿔말하면,변덕이 죽끓듯 하다는 얘기니까,

그런 변화무쌍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고 싶었다고 할까?

아니, 변화무쌍함 속에서도 각자의 본질을 잃지 않고

오래 오래 살아남자는 프로포즈라고 해야 할까?

 

인생의 한때를 같이 하는 친구가 아니라,

오래 오래 같이 갈 수 있는,

각자 중년을 살고, 각자 노년을 맞이하더라도...

언젠가 고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듯, 그렇게 같이 갈 수 있는...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

어느 순간...축복처럼,

돈오의 문이 열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서로의 몸과 영혼을 막힘없이 타고 흐를 수 있을테니까 말야.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 그렇습니다. 온 세상을 품을 것 같던 사랑도 지워지고, 아름답던 얼굴도 시들고,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던 치욕의 순간도 흐려지고, 날아오를 듯한 환희의 순간도 희미해지죠. 이렇게 잊히는 인생인데 우리가 살다 간 흔적을 얼마나 남길 수 있을까요?ㆍㆍㆍㆍㆍㆍ그런데 고전은 시간과 싸워 이겨냈어요.ㆍㆍㆍㆍㆍㆍ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위대한 문학이나 미술, 음악 등 예술작품들은 본질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한테만 좋은 것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만 좋은 것이 아닌, 전 세계 다수의 인간이라는 종이 느끼는 근본적인 무엇을 건드린 것이기 때문입니다."('박웅현'의 '여덟 단어' 78~79쪽)

 

그러니까 준비할 수 있어야 해요. 클래식, 고전을 만나기 위해서 함부로 씹다 버린 껌처럼 여기지 않으려면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가리고 있다는 말을 자주합니다.ㆍㆍㆍㆍㆍㆍ

진짜 알려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궁금해질 겁니다. 그 대상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그걸 알기 전에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ㆍㆍㆍㆍㆍㆍ알려고 하기전에 우선 느끼세요. 우리는 모두 유기체잖아요? 고전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느껴야 해요. 그러다 보면 문이 열려요. 그다음에는 막힘 없이 몸과 영혼을 타고 흐를 겁니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 86쪽, 부분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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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22 18:07   좋아요 0 | URL
좋은 마음으로 잘 읽으면 좋은 책 되고
나쁜 마음으로 제대로 못 읽으면 나쁜 책 되지요

세실 2013-06-23 08:18   좋아요 0 | URL
박웅현 참 멋지죠.
독서는 사고를 유연하게 하고 감성을 키워준다는걸 요즘 느끼고 있어요.
박웅현이 좋아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하루키도 좋아한다는것! 물론 유명한 곡이기도 하지만~~~
둘은 은근히 닮았더라구요^^
 

나는 성이 '서'가다.

오랫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던 이가, 갑자기 볼 일이 생겨 OO에 가신다며,

- 이러다가 언제 얼굴 보노?

하고 톡을 보내오셨길래,

- 보고싶지가 않은게지~(,.)

하고 대구를 했다.

그랬더니,

- 서쪽으로 가야하는데, 자꾸 동쪽으로 가네?

하신다.

난 또 질세라,

- 달마가 동쪽으로 가겠다는데, 凡人인 내가 어찌 알겠어요?

   못보더라도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잘 살면 되는거죠.

라고 했다.

잠시 후,

- 혜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내가 알지.

하시길래,

- 왕오천축국전 쓰러 갔겠죠, 뭐~.

   아님 말구~(,.)

하고 끝냈어야 하는데,

- 빈스플린 기사 보셨죠?

  너무 일만 열심히 하다 젊은 나이에 요절 하는 수가 있으니, 건강도 돌봐가며 잘 사세요.

하는 토를 달았다.

 

빈스 플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자세하고 세세하게 개연성을 심어놓는 사람이라면, 삶도 그렇게 성실하고 진솔할 것 같다.

더구나, 미치 랩 같은 이를 주인공으로 그려내는 그라면...

자신의 건강 관리 또한 철두철미할 거라고 생각했었던 터라,

3년 전부터 전립선암을 앓았고, 47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하니...

게다가 나보다 겨우 서너 살 많을 뿐이라고 하니,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빈스 플린의 것을 서너권 읽은 것 같은데...집에 와서 찾아보니 쉽게 눈에 안 띤다~--;

 

 

 

 

 

 

 

 

 

 

 

 

 

 

 

 임기종료
 빈스 플린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2008-10-22 쓴 글>

이 책은 분량은 엄청 나지만,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내려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정치 스릴러'라는 타이틀로 미루어 볼때,우리나라의 지난 대선을 겨냥하여 나온 것 같은데...
난 얼마전 미국의 구제금융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는 과정에서 '상원이 어찌되고 하원이 어찌되고' 하는 현실과 연결시켜 읽으니 더 재미있었다.

사건의 발단은,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지 않는 상원,하원 의원 들이 암살을 당하고,이 죽음이 대통령의 예산안 통과와 밎물려 정치적으로 이용된다.
이런 킬러가 나오는 내용이다 보니,아무래도 '프레더릭 포사이스'와 비교가 된다.'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작품들은 많은 것을 극도로응축시켜 간결하다면,빈스플린은 자상하다.

좋은 사람 뿐만 아니라 나쁜 놈의 속내도 너무 잘 알고 있고 장면 묘사도 세세하다.때문에,개연성에서는 완벽하고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시각적이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 할 수 없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좋고 나쁨에 대한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오루크 하원의원이, 예산안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에 반대하였지만,그리하여 서민의 입장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한들...그게 국회의원의 본분인데,그걸 '잘 했다''멋있다'할 수는 없지 않나?
암살자의 경우,감정을 극도로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좀 멋있기는 하지만,암살을 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지만,그렇다고 하여 청부살인업자를 두고 '잘 했다''멋있다'할 수도 없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비서실장에 의해,언론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은...내가 가장 어이없어 하면서도 재미있어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그런 대통령을 향하여 감정이입은 되질 않는다.

암튼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복잡하다.
정치형태도 그렇고,군,경,법률체게도 그런 것 같다.FBI나 CIA,NSA...이런 용어들이 복잡한데다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아(그러다보니 작가는 계속 부연설명을 한다)혼란스러웠다.
여기서,각 분야별로 힘을 키우기 위해 모종의 암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FBI의 스킵 맥마흔을, 엘리트요원이라고 애기하면서도 자기의 할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으로 표현한다든지,
CIA의 테러전문요원 케네디를,월등히 높은 아이큐를 이용하여 암살범의 범위를 좁혀가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부분 등은,다소 주관적이어서 혼란스러웠다.
'...특수부대원은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을 경멸합니다.정치인과 관료를 싫어해서 그들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죠.특수부대원은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법을 훈련받은 사람이며,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정의롭고 합리적인 문제해결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주 추악한 일들을 시킵니다.그러면서 그것이 전부 미합중국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말하죠.특수부대원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세상에서 나쁜 놈들을 제거하고 있으며,미국을 지키고 있다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라는 부분은,결국에는 암살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임을 짐작하겠다.

세상에는 머리로 생각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있지만,경험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것도 있게 마련인데...암살자를 찾아내는 케네디박사의 경우,그녀가 어떻게 머리를 써서 암살자를 찾아냈는지의 과정은 미미하고 어린 아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부분만 확대 묘사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암튼 너무잘게 잘라주어 씹는 맛이 없었다고 해야하나?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놈인지의 판단은,그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판단은...독자의 몫으로 내버려 둘 수 없었을까?

미국 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가정하에 지역을 넓혀보면,독자가 미국만이 아닌 전세계에 있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라면,
'한사람의 테러리스트는 다른 곳에서는 자유투사일수도 있는 것'이니까...열린 결말이 되어 읽는 이가 스스로 상상하고,읽는 이가 카타르시스를 느꼈음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권력의 이동
 빈스 플린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권력의 이동>2010-4-23 쓴글

 

이 책의 제목만 봤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이었다.

<정치스릴러 소설>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에,이 소설에서 역동성과 액션,빠른 전개 들을 느껴줘야 할텐데,

나는 이런 모든 것이 충족되었으며 더불어 사람들의 감정이나 심리상태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이 소설이 참 좋았다.

그 때문에,

'미국 대통령과 비밀 검찰국의 보안을 위해 백악관의 레이아웃을 조금 바꾸거나 비밀검참국의 작전 중 어떤 부분은 조금 생략하기도 하였다.'

라는 책 앞장의 일러두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빈스플린'의 전작 ,<임기종료>에서 자상하게 살을 발라주는 걸로는 부족해서,잘게 씹어주는 느낌을 받았던 터라...

요번에도 세밀한 묘사 쯤은 기본 옵션이라고 생각했었고,

책 속에 빠져들어 버린다면 책속의 가상현실을 사실로 착각해...

백악관을 상대로 엉뚱한 호기를 부려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이 책의 상황 설정이나 백악관을 비롯한 비밀검찰국 전반에 대한 묘사가 직접 경험한 누가 묘사한 것처럼 사실적이다.

 

때문에 남이 자상하게 살을 발라주고 씹다만 걸 마저 씹고 싶지는 않은 나만의 책읽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 책을 정치스릴러 소설로가 아니라,사람의 감정상태나 심리상태를 따라가며 읽는 것이었다.

 

이 책을 심리 소설로 봐도 좋은 것은,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국인이건,그들과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는 테러리스트이건...

모두가 트라우마를 치료를 통하여,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절제력으로 잘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여기서 '백지 한장 차이'라는 말이 생각나는데,

이건 '니편 내편'이나 '좋은 사람 나쁜 놈'같은 판단의 기준이 백지 한장만큼이나 불분명하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미국과 백악관을 무차별 공격하고 죽이는 테러리스트는 무조건 나쁘고,

미국이 어떤 방법으로든 그 테러리스트를 응징하는 것은 괜찮고 한...그렇고 그런 정치 스릴러 소설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일을 벌이는 것이고,

때문에 니편 내편이나 선악의 잣대를 가지고 이책을 읽지 않겠다는 내 자신과의 다짐이기도 했다.

 

이렇게 감정상태를 따라가며 책을 읽다보니,

사건의 인과관계나 개연성을 따지는데 다소 무디어져 버려 그냥 지나갈 뻔 하였는데,책이 묘한데서 삐그덕거린다.

(하긴 분량이 엄청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지만서도...ㅠ.ㅠ)

그러니 살짝 재미가 반감되는 듯도 하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이리도 완벽하게 빚어낸 작가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번역에서의 오류가 아닌가 원서를 뒤져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잠깐 했지만,

내가 믿어 의심치않는 이창식님의 번역이어서 작가 쪽에 무게를 두기로 하였다.

(그래도 그렇지...이창식님이 누구인가?

당신이 먼저 재밌게 읽으시고 우리에게 또 우리정서에 맞게 리라이트해 옛날 얘기를 들려주시듯 번역해 주셨던 분이 아니었나?)

 

이 책에 다소 생소한 단어가 등장하는데,'스웨트셔츠,스웨트 팬츠'라는 용어이다.

우리말로 땀복(운동복) 정도 되시겠다.

처음 대통령의 옷장을 이용하려 할때,우리의 훌륭한 '밀트 애덤스'(-은퇴한 백악관 경비원)께서 영부인의 옷장이 또 있다고 얘기하고,

거기서 옷을 가져오는 걸로 되어 있는데,뒷부분에는 계속 대통령의 옷을 빌려입었다고 얘기한다.

대통령이 입던 웨스트포인트 스웨트 셔츠라고 했다가,(428쪽)

검정색 스웨트 슈트(434쪽)라고 했다가 오락가락이다.

 

이것 말고도 몇가지 더 오락가락하는게 있다.

 

그렇다고 마냥 감정선을 따라 읽어갈 수가 없었던 건,

'간간히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다 말았다.'

감정이란 건 없는 듯이 담담히 써내려간 문장들만 나열되어 있다면 좋을텐데,

'체포하다가 발각되느니 제거해버리는 게 낫다.'

다소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문장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하여,

'미국이란 나라는 절대선이고 다른나라는 죄다 나쁜놈'이란 사고를 강요하고 있다기 보다는,정신적인 반어법을 썼다고 생각하고 싶다.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이 겪었던 트라우마가 치료되거나 희석되는 게 아니고,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트라우마를 들쑤시고 들춰 내서 사건과 결부시켜 버무려낸다.

여자친구를 죽인 범인에 대해 복수를 꿈꾸는 미치 랩의 그런 폭력성을 잘 살려 인간병기로 길들인다거나,

성폭행 당했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여기자의 경우,

그걸 잘 살려 테러리스트와 얽어낸 품이나,구해준 미치랩과의 러브라인의 형성 또한 그럴 듯 했으며,

은퇴한 백악관 경비원 밀트 애덤스의 경우,

나이로 인한 잦은 화장실 행을 사건 속에서 경험으로 승화시켜 결정적인 사건해결이 실마리로 만드는 등 이다.

 

"다른사람들은 몇 살이 되기 전에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싶다거나,중국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아이를 갖고 싶다는 따위의 소망이 있는데,내겐 그런 것들이 없어요.그 대신 나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파라 하루트와 아지즈를 죽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죠."(61쪽)

이 부분에서 미치 랩의 폭력성에 분노한다기보다는,그의 트라우마를 알고 있어 서글펐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빚어내는 솜씨에도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는데,

79세의 토머스 스탠드필드를 사람을 단번에 간파해 내는 사람으로 묘사해 내는 게 참 적절하다.

113쪽의 '범인들의 비뚤어진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

188쪽의 '위대한 지도자는 어려운 상황에서 두각을 드러낸다.위기에 맞섬으로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같은 표현은,79년이라는 세월을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살아온 토머스 스탠드필드니까 가능한 판단이니까 말이다.

 

전형적인 미국인의 사고방식 답게 얘기는 끝나 버리지만,

생각없이 쏴대는 총알만큼이나 시원하게 끝나 주시지만,

여기서 생각도 같이 스톱을 해버려야지,생각이 꼬리를 물면 파장이 커질 수도 있다.

 

권력의 이동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분히 중의적이지 싶은데,

대통령에서 부통령으로 잠깐 옮아갔다 온것이 될 수도 있고,

그러면서 테러리스트들에게 잠깐 넘어갔다가 온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사나흘의 천하에서 CIA,FBI,군장성,법무부 등의 권력 다툼도 볼만하다.

내 생각에는 에필로그에서 미치랩이 끝내 라피크 아지즈를 처단하는 걸로 미루어,

어떤 힘이 있으면 그에 동조하는 힘과 반대하는 힘이 있게 마련이고...

이 모두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이건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이고,

일상에서는 거기서 한쪽으로 조금만 쏠리게 되더라도 힘의 크기와 방향이 변하는 삶의 연속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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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몹시도 내렸다.

바람은 또 얼마나 거세게 불던지,

꽃이 져야 열매가 맺을 수 있다는 말은 다 까먹어버리고,

비바람에 꽃이 떨어져 버리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었다.

점심시간에 친구랑 베란다 캐노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운치있다면서 카.톡.으로 노닥거렸다.

창문을 여니, 해가 환하길래...

서울은 해가 쨍쨍이라고 했더니,

그 동네의 해를 이곳으로 출장보냈기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ㅋ~.

 

어찌 되었건,

지난 주말 난 꼼짝 안 하고 이런 책을 봤다.

 

두명의 만화가가 쓴 책, 두권...ㅋ~.

 

 

 야구생각
 박광수 글.그림 / 미호 /

 2013년 3월

 

 미생 6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요즘 아무래도 일이 힘들어서 그런지,

아니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읽든지 간에,

거기에서 '열정과 재미'라는 글자가 돌출되어 다가온다, ㅋ~.

 

이숭용  그날 땅이 너무 불규칙해서 다칠까봐 못했어.

           우리들은 몸이 재산이잖아.

나        야, 우리는 맨날 그런 곳에서 해.

이숭용  그러니까 나 사실 그날 형네 팀에서 뛰고 많은 걸 배웠어.

        정말? 프로인 니가 아마추어인 우리한테 뭘 배워?

이숭용  프로인 우리에게 없는 것. 열정과 재미.

        열정과 재미?

이숭용  나도 처음에는 야구가 좋아서 시작했거든.

           근데 시간이 지나고 그게 직업이 되니까 어느 순간 내가 야구를 즐기지 못하고 있더라고.

           근데 그날 형네 팀에서 뛰어보면서,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야구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반성했어.
           그날 이후 내가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게 되었어.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야구가 즐거워지더라고.(88쪽)

 

 

 평소 생활이 자유롭지 않을 만큼 연습을 하면 운동장에서는 그만큼이 더 자유로워진진다.박광수 (155쪽)

 

 

 

 

봄...하면 아무래도 프로야구가 먼저 떠오르는걸 보면,

그동안 남편과 아들의 주입식에 가까운 세뇌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ㅋ~.

 

또 한권,

내 마음의 겨울에 불을 지른 또 한 권, 미생 6권 되시겠다.

 

기존의 판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후,

나 역시 판 위에 있었음을 새삼 자각했다.

판을 흔들려는 자가 함께 흔들리는 것은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50쪽)

 

 

 

 

술은 열을 올리거든.

즐겁지 않은 기운으로 술을 마시면 뇌가 울어.

크게 울어.

그러다 후회가 쌓이게 되는 거야.

 

기쁘고 싶을 때,

가장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마셔.(158~159쪽)

 

 

 

 

일을 기획할때까진 불덩이를 껴안은 심정으로 확 태워버려야 해.(154쪽)

 

불이다!

 

바둑의 고수들은 대개 다혈질이다.

승부를 결정하는 그 순간만큼은 불이다.

불이어야 한다.

난 불을 꺼내지 못해 프로가 못 된 것이다!(258~259쪽)

 

 

 

 

 

 

 

양미리는 언제 어느 계절에 먹어야 하는건지,

그래야 통통한 알이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난 오늘 양미리에 소주 一盞을 하며,

내린 봄비를 기념하든지,

또는 출장 나온 해님을 환영하든지, 해야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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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3-04-29 20:29   좋아요 1 | URL
이상하게 5월 대구의 날씨는 예전 같지 않네요. 서울 경기도는 날씨가 많다던데 여기는 비 오다가 흐리네요. 흡사 선선한 가을 날씨 같아요. 옛날에 대구 날씨는 봄이 아니라 초여름 정도였는데..

하늘바람 2013-04-30 02:49   좋아요 1 | URL
만화책을 보셔도 시집같은 느낌으로 ㅎㅎ

세실 2013-04-30 10:40   좋아요 1 | URL
오랜만이예요. 바쁘셨나보다~~
미생 볼수록 재밌더라구요.
봄이라 그런가 저두 많이 파곤하네요.
밤이면 꾸벅꾸벅 졸아요. 어제도 11시에 취침. 애들 시험공부하는 동안 옆에 있어주어야 하는데.....

다크아이즈 2013-05-01 18:45   좋아요 1 | URL
양철님 잘 계시지요?
미생을 여기서 만나네요.
지인 왈, 아들이 말하길 어른들께 선물할 마땅한 거리가 없다면 미생 1,2권을 포장해서 말 없이 드릴 거래요.
그 다음 권은 알아서 사보게 될 거라네요. 사실 전 내용 모르거든요. 양철님 덕에, 지인 덕에 읽어볼게요.
오월도 잘 맞이하시어요.^^*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책을 읽어도 문장들이 내 눈을, 음악을 들어도 선율이 내 귀를...비껴갈 때가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꽃들이 만발한 봄날에 독서나 음악 감상 따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만...

만발하다는 건 다른 의미로 흐드러졌다는 얘기이고,

흐드러졌다는건 이내 지고 열매 맺는다는 말일테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쿨하게 털어버리고 일어나야 할텐데 요번엔 자꾸 엉뚱한 상념에 젖는다.

 

요즘 민음사 刊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다고 이곳 서재에 광고를 했더니,

누군가 땡큐하게도 톨스토이는 '박형규' 번역본으로 읽어야 한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어디선가,

국내 번역가 1세대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 권위자라는 기사를 봤었던 것도 같다.

올해 82세인 그는 내년 말까지 '톨스토이 전집'(뿌쉬낀하우스)을 펴낼 계획인데,

그 뿌쉬낀 하우스에서 현재 '안나 까레니나' 한권이 먼저 나왔다.

요번 '안나 까레니나'는 문학동네에서 나와 현재 반값에 후려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뿌쉬낀 하우스의 것을 한권 한권 콜렉션하고 싶은 마음에 구입해 주셨다, ㅋ~.

 

 

 

 

 

 

 

 

 안나 카레니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13년 4월

 

암튼,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새 책을 집어들도록 내 마음을 움직인건 '권위자'라는 단어였는데,

시대에 뒤지지 않도록 유행어를 바로 바로 반영해야 하는 언어의 속성 상,

나이 80이 넘어 시대상을 반영하는게 가능할까 하는 우려를 했었고,

또 간담회에서 노환으로 청력이 떨어져 같은 질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해 전달받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 한 구석에선 한분야에 60년 이상을 매진한 노학자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유명한 이 첫문장을 보는 순간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청력은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청력외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시대와 소통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당신 만의 더듬이로 언어에 대한 감을 유지하고 계셨던 거다.

'권위자'란 그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를 일컫는단다.

언어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언어에 대한 감을 유지하는게 중요한데,

그 감이라는건 세월이 흐를수록 무디어져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허를 찌른 것이다.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박형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민음사)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불행하다.(김의기)

 

자신의 분야에서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나 권위자까지는 아니어도,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신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의 신뢰 구축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의 '영거한 외모'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내 스스로는 이미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뻑.하고 있지만, (언젠가 썼던 '타인의 취향' 링크)

그런 나도 한 번씩 좌절을 겪긴 한다.

내가 이 부분에서 자.뻑.이 아니고 진짜 달인이어도 해결을 볼 수 없는 세 부류가 있는데,

환자가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이어서 의학의 효능을 신뢰하지 않거나,

치료방법을 신뢰하지 않거나,

치료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그런 예이다.

 

이들 부부를 알고 지낸건 7, 8년 정도 된다.

할머니는 키 크고 곱고 늘씬하였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활달하였다.

음식 솜씨 좋아 음식을 해서 나눠 먹기를 좋아하여 주변에 할머니 친구들이 끊이질 않았다.

반면 할아버지는 곱상하게 생기신데다가 말을 많이 아끼셔서 선비 같은 성품이라고 짐작했었는데,

한번 화가 나면 할머니에게 욕을 하고 손찌검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고 살아온 세월 때문인지 잘 참고 살아오셨다.

 

나의 오너께서는 엄청 부자니까 비싼 약재 팍팍 넣어 약을 권하라고 종용하셨지만,

구시대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의 최첨단을 걸으시다가도,

둘이 합해 이천 원 남짓한 진료비를 계산할때만 되면,

신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더치페이를 구사하시는 이분들에게 이도 안들어갈 소리 같았다.

내가 결정적으로 이들 부부, 아니 할머니에게  충격을 받은건,

할머니가 편찮으시다고 동네에서 왕계란 두판을 들고 병문안을 왔는데,

계란말이 좋아하는 손주들 오면 해주려고 모셔 두느라고 하나도 드시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를 들었을때 였다.

 

그런 할머니가 얼마전에 오셔서는 많이 편찮으시다면서,

좋은 약재 넣어 약 한재 지어달라고 하셨는데,

당뇨가 심하여 인슐린 주사까지 맞으시는 기왕력에다가,

요즘은 그나마 그 인슐린 주사로도 혈당 수치를 조절하지 못하시는 듯 하여...

더구나 등쪽 날개쭉지 끝나는 부분이 아프다는 말씀에,

간에 부담을 주는 한약이라니 싶어,

큰병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시라고 돌려보낸게 한달쯤 전이었다.

다른 한의원에 가서 보름치 한약을 지어 드시고는 차도가 없으셨는지 여기저기 병원을 돌고 돌았으며...

검사 결과, 췌장암이란다.

 

물론 내 말이 설득력 있게 작용하여 한 달 전에 큰 병원에 가셨다고 한들,

검사결과나 진단명을 번복하지는 못했을테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좀 길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내가 일하는 분야에 있어서 나의 권위나 신뢰라는 것은,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할 정도,

나중에 후회하며 연락해 올 정도, 밖에 안되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것이다.

 

박형규 님의 안나 까레니나를 읽으면서 단어와 문장을 벼리는 품이 남다르다는 걸,

언어를 가다듬는 센스랄까 하는게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이게 타고나기만 한 게 아니라, 오랜 삶의 체득을 통하여 둥글린 느낌이다.

그렇다고 세월이나 나이만큼 올드하거나 고루하지도 않다.

소위,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깨닫는다는 '온고지신'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박형규 님의 권위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권위나 신뢰라는 것이, 외모나 나이 같은 것으로가 아니라  그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성으로 판가름나는 것이니 좀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 하다가도,

내가 가꾸고 노력해야 할 것이 외모나 나이 따위 또는 학문에 힘쓰는 등 나의 노력으로 성취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성이라는, 어찌보면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인 다른 사람들의 판단력이 개입되는 문제라고 생각 하니...앞으로 무엇을 더 갈고 닦아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며칠전에 읽은 <뇌미인>이라는 이 책을 보면,

사람들은 지적 활동을 해야만 뇌에 알통이 생긴다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더하다.

 

 

 

 

 

뇌미인
나덕렬 지음 / 위즈덤스타일 /

 2012년 10월

 

사람들은 지적 활동을 해야만 뇌에 알통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뇌 알통을 만드는 가장 효율적이고 쉬운 방법은 신체 운동이다.ㆍㆍㆍㆍㆍㆍ우리 치매 연구팀에서는 뇌 유연성에 대한 연구를 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들에게 뇌 유연성이 많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젊은 사람에게서 근육 알통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노인들에게서 오히려 뇌 유연성이 좀 더 많이 나타났다. 물론 똑같은 과제를 하면서 젊은 사람과 노인을 비교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ㆍㆍㆍㆍㆍㆍ노인들은 은퇴 이후에 아무래도 뇌를 덜 쓰게 된다. 고령이 될수록 더욱 그렇다. 따라서 쓰지 않던 뇌에 자극을 주면 더 큰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인도 뇌를 사용하는 횟수를 늘리거나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뇌 알통이 생긴다는 것이다.(28~29쪽) 

 

박형규 님을 보면서 든 생각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행운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행운이지만,

적어도 그 일을 하면서 밥을 안 굶을 수 있고 가족들 밥을 안 굶길 수 있어야겠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자리가 잡히고 가족들 밥은 안 굶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준비는 갖추어 졌는데,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배우고 또 배운대로 실천할 수 없다면 다 부질없다.

 

그러니 한번 사는 인생,

죽을 때 돈을 싸들고 갈 수 있는것도 아니니,

아등바등 하고 참지 말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 하고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라는 저 자리에 대입시켰을때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건,

'보고싶은 사람' 이다.

보고싶은 사람들이 많아 미치겠는,

미치고 팔짝 뛰겠는,

근데 아직 '꼴까닥~'내지는 '깰꾸닥~'까지는 아닌,

그런 비 내리는 봄밤이다.

이 비 그치면 목련이, 그리고 벚꽃이 이울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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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4-21 09:24   좋아요 0 | URL
번역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은,
또 저처럼 한국말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은,
헌책방에서 박형규 님 '여러 가지 번역책'을
일부러 하나하나 사서
견주어 읽기도 해요.

박형규 님이 번역한 톨스토이는
'시대에 따라' 말투가 조금씩 다르답니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책이 나온 때에 따라서
말투가 조금씩 바뀌곤 해요.
스스로 꾸준하게 가다듬고 손질하시거든요.

늘 스스로 번역을 새로 하고
당신 스스로 한국말을 날마다 새롭게 배우시거든요.

북극곰 2013-04-22 09:18   좋아요 0 | URL
안나 까레리나의 저 첫 문장은 아주 어릴 적에 보고도 참 기막힌 말이다. 싶었는데. ^
삼중당 문고판이었던 것 같은데, 같은 번역가였을까요? 꼭 저 문장이었거든요.
나름나름, 고만고만.... ^^

나무꾼님 잘 지내시죠?

간만에 어젠 남한산성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너무 과식하는 바람에
저녁도 건너띄고 아침도 조금 먹었는데도 아직 위가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소화도 못 시키면서 식탐이 이렇게 많아서야. ㅠㅠ
 

오늘도 우리 가족은 여전히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으며 아침을 먹는다.

아직 덜깬 눈을 비비고는,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이런저런 이슈를 반찬 삼아 밥을 우겨넣다가는 어느 대목에서 목에 걸린 듯 '케겍'거린다. 눈물을 눌러 삼키느라 맨밥을 서둘러 눌러 삼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며칠전에는 쌍용차와 관련 인도 마힌드라 경영진이 제 2의 론스타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불거져 애를 태우더니,

오늘 새벽엔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되어 있던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천막이 기습 철거되고, 거기에 화단을 만들었단다.

분향소 천막이 철거된 명분이 시민들이 다니는 인도를 점유해서라고 하는데, 그럼 그 자리에 설치된 화단은 시민들이 짓밟고 다녀도 된다는 말인가, 끙~=3=3=3

내가 이 책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러니까 '시선집중'의 <토요일에 만난 사람'> 코너가 있을 당시,

누군가가 나와 손석희와 얘기를 풀어나가는데, 그게 너무 군더더기 없는것이 진솔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였다.

유명 만화가라는데,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끼'라는 작품으로 이미 이름을 날렸다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암튼, 그가 하는 얘기 하나하나가 다 솔깃했는데...

그는 몸으로 부딪쳐 경험한 것을 직접 만화로 그려내 나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노숙을 밥먹듯 한것이라든지, 허영만 문하생으로 들어가기 까지의 고생 과정...그리고 들어가서, 살아남기 까지의 과정을 하나 하나 차근 차근 밟아 나간다.

예전에 피카소가 왜 유명한 화가인지 모르겠었을 때가 있었다. 인상파 화가라 불리우는 그의 어떤 그림들을 놓고 봤을때 아이디어는 몰라도 비슷하게 흉내낼 수는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의 사실주의 작품을 봤을때 '흡~!'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기본이 제대로 됐기 때문에 다른 어떤 그림이든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생의 '윤태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이 만화를 단숨에 2권까지 읽은 지금...

난 다른 이유에서 '킹왕짱' 이 책을  재밌고 그를 멋지다고 설레발을 칠 수 있겠다.

 

처음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하고 세상으로 내몰리게 되는 과정은 차라리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멜로 드라마다.

 

기재가 부족하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집 차 패배를 기록했다는 것보다는,

열심히 하지 않은 쪽을 택하기로 하는데...이때부터 좀 멋지다, ㅋ~.

 

그러면서 바둑을 포기하면서 들고나온 유일한 재산은 집중력이란 말을 한다.

생각이 번져가는 것은 잡념에 빠졌다는 뜻이란다.

 

이 만화책에서 또 나오는 개념.

솔직한게 진실된 거라 생각하는 착각

변명이나 핑계를 위해 사람은 얼마든지 솔직할 수 있다.

진실과는 별개로.

 

암튼, 어찌어찌하여...인턴 사원 딱지를 떼고,

신입사원으로 살아 남은 이들을 데리고 간 곳이 이곳이다.

 

 

 

근로자로 산다는 것.

버틴다는 것.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

이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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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4-05 22:27   좋아요 1 | URL
다들 '살아남기'보다 '즐겁게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알케 2013-04-05 23:35   좋아요 1 | URL
오늘 자 연재 미생...울컥. 저도 겪어 본 상황이라..윤태호는 정말.

saint236 2013-04-06 12:05   좋아요 0 | URL
흠...꼭 구매해야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