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의 책수다는 라디오 북클럽 얘기로 시작이고,

방현주는 이권우의 '여행자의 서재'로 시작을 했으며,

이권우는 김두식의 '다른 길이 있다'를 소개했는데,

나처럼 책밭, 책탑, 책무덤에서 노는 사람도 오늘 소개했던 '김두식'의 '다른 길이 있다'는 생소해서 귀를 기울이게 됐다.

듣다보니 한겨레 토요일판에 연재되던 김두식의 인터뷰들을 묶어낸 것이더라는~^^

 

 

 

 

 

 

 

 다른 길이 있다
 김두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암튼 내가 오늘하려는 얘기는 이권우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거다.

실은 얼마전 '여행자의 서재'를 읽으면서 '죽도록 책만 읽는'이나,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에서 느껴지던 달인의 느낌이 들지 않길래 나의 그의 대한 애정이 예전만 못한건가, 아님 그의 책에 대한 애정이 예전만 못한 건가 했었는데,

오늘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가 수박겉핥기 식의 책읽기를 박학다식한것처럼 위장한게 아니었었나 하는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었다.

"이 뮝미?@"하고 나를 잠시 화딱지 나게 만들었던건,

책 속의 내용 중 고미숙 편을 소개하면서 연암에서 동의보감, 거기서 넓혀 사주명리로까지 관심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방현주 아나운서와 나눈 대화 때문이다.

명리학을 일컬어 길흉화복을 점치는게 아니라 자기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학문이라고 하는 고미숙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수의 기질을 타고나면 유머러스하지만 꼼수를 부리게 되고, 토의 기질을 타고 나게 되면 식욕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자,

방현주가 저는 "목인데요, 그럼 목은요?"라고 되묻는다.

그러자 이권우는 전혀 당황하지도 않고 "안나와있어요."라고 퉁쳐 버린다.

되새김질해 생각해보니,

수와 토의 기질이면 연암과 다산을 라이벌 구도로 그렸던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를 얘기한 것일테고,

이권우가 읽은 김두식 책의 고미숙 부분에 수와 토의 기질 외에 다른 기질에 대한 설명이 안 나와있다는 것이지,

그동안 수많은 책들을 읽고 서평을 쓴 그가 '오행'정도를 못돌려서  '풍'의 기질 정도를 모르고 설명할 수 없어서 안나와 있다고 한 것은 아닐게다.

단지 그가 소개하려는 책과는 상관없는 얘기로 짧은 시간을 잡아먹고 싶지 않아서라는 걸 눈치채게 되자,

그의 내공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고, 나또한 반달 눈썹을 만들어가며 '역쉬, 멋져~^^'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라디오 방송을 듣다보면,

어디까지가 잡담이나 수다이고, 어디까지가 방송인지 모르겠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 수위를 적절히 조절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6월

 

이렇게 수위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게 또 있는데, 요번엔 책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이제는 절필을 선언한 '고종석'이 번역을 하고,

그리고 서평집을 여러권 낸 작가로 유명한 라디오 PD 정혜윤이 강추한 책인가 보다.

 

 

 이게 다예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고종석 옮김 /

 문학동네 / 1996년 3월

 

근데, 이 책을 접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걸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걸 책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품이 훌륭한 '문학동네'와 '고종석'의 조합이 아니었다면,

이런 책이 되어 나왔을 수 있었을까?

이건 죽음을 앞둔 사람의 죽음에 관한 푸념이나 읊조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다가 여든 둘 할머니의 서른 다섯 연하의 애인을 상대를 향한 그것이어서 상품가치가 있었을게다.

글로 쓰여진 모든 것이라고 해서,

종이에 적혀진 글이라고 해서 모두, 책이라고 해도 좋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서른 다섯 연하의 애인을 두고라면 더 더욱 그럴 수 있겠지만,

암튼 난 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가 난 저 '두 손의 아름다움'이란 구절을 놓고 엉뚱하게,

영화 '박하사탕'의 '손이 착하게 생겼던' 그 남자가 떠올랐다.

 

우리는 눈에 익은걸 아름답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성형외과를 영어로 '플라스틱 서저리'라고 하는데,

난 그말이 꼭 인조인간처럼 여겨져서 말이다, ㅋ~.

요즘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참 많다.

그리고 웬만한 눈썰미로는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비슷비슷하다.

알게 모르게 성형외과 동창생들이 많아서 그렇단다.

겉으로 봐서 그렇고 그그렇게 비슷한 아름다운 사람들을 구분하는건, 아름다운 마음, 즉 착한 마음일텐데...

요즘은 착하다고 하는건 칭찬이 아니라 욕이란다.

그럼 영화'박하사탕'에서 '손이 착하게 생겼던 남자'는,

마음이 착한데 착하게 생긴 손으로 사람을 두들겨 패는 남자를 편들고 위로하기 위해했던 말인가 보다.

여기서 '손이 착하게 생긴'은 '손이 아름답게 생긴'으로 대치되어도 좋겠다.

그리하여 '손이 아름답게 생긴'은 '손이 이쁜 남자'와 동격이 되어 내가 입에 침을 튀기며 열을 올리는 딱 내 스타일 되시겠다.

 

얘기가 이리저리 메뚜기 튀듯 엉뚱한 데로 튀지만,

엉뚱한 데로 튀는 게 내 주특기이고,

가만히 곱씹어 보면 아주 엉뚱하지만도 않다.

 

눈은 또 다시 비처럼 추적추적 내리고,

여러가지 할 일들로 머릿속만 분주하고,

엉덩이는 땅에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오늘 같은 날은,

(뜨뜻한 아랫목에서 군고구마 먹으며 책이나 보는것이 나의 희망사항 되시겠고)

눈싸움 한판을 벌린다아, 으다, 아다~아다, 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아

하늘이 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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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3-12-16 17:17   좋아요 0 | URL
걱정마세요. 전 성형외과 동창생은 아니에요. 제 동창은 찾기가 힘들거에요. 제가 그래도 이런 건 자신있게 얘기할 수가 있네요. 하하하하
전 항상 엉뚱한 생각이 꼬리에 이어집니다. ㅋ 라디오 북클럽이라 그런 것도 있군요. ㅎ
양철나무꾼님은 여전히 책과 책 속에서 사시네요 ㅋ 부러워요 ㅋ 리뷰도 쓰시고 ㅎ

양철나무꾼 2013-12-17 10:34   좋아요 0 | URL
'부러워요'가 앞의 말과 호응인가요, 아님 뒤의 말과 호응인가요?
책탑에 갇혀 사는 제가 부러우시면,
빨랑 왕자님이 되어 나타나 절 구해주시면 되고,
리뷰도 쓰는 제가 부러우시면, 전 양보다 질로 승부하시는 교주님의 리뷰가 부러울 따름이라는~--;

다크아이즈 2013-12-16 20:52   좋아요 0 | URL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 장바구니에 넣습니다.
양철님의 서재에 오면 믿고 고를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
아니 제 기준에는 넘쳐난다는 것. 어떤 걸 골라야 하나 즐거운 고민. 다 살 순 없으니^^*

양철나무꾼 2013-12-17 10:38   좋아요 0 | URL
어쩌죠, 팜므님~--;
전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가 좀 어려워서 읽다 팽개쳤다는~--;
제가 팜므님 서재에서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얼마나 고민을 하는지 아실랑가 몰러~(,.)
 

카피를 써서 먹고 살았으니 내게 글은 쌀이고 카피는 밥이다. 그러나 글을 씻어 카피 짓기를 멈추고 말하기, 가르치기 같은 천렵과 낚시에 넋을 판 지 오래, 아궁이 느리게 치우고 옛 기억 더듬어 불 피우고 거친 글을 씻어 책을 지었다. 밑이 보이는 쌀독을 기울여서 무딘 손이나마 계속 먹거리를 지으라고 다그쳐주는 인생이 고맙다.

ㆍㆍㆍㆍㆍㆍ

책을 마무리하는 지금, 깨닫는다. 밥의 맛은 씹어서 입안에 퍼지는 것만이 아니라 오래 지켜온 아궁이의 온기, 열망이 세월의 장작과 어우려져 타올라 뿜어내는 부엌의 훈내 그것이 모여 만든다고. 쟁여놓은 쌀독 다 털어 여한 없이 지었으니 열심히 살아 마음곳간 채워야겠다. 모른다는 말이 편안해지는 데 사십 년이 걸렸다.

                                                                  - 윤수정의 '한 줄로 사랑했다'의 '나오는 말'중에서 -

 

 

 

 

 

 

 

 

 

 

 

 

 


'맹난자'의 '주역에게 길을 묻다'를 집어들었는데 그만,

주역에게 잠을 물었는지 침을 질질 흘리고 졸다가 안되겠다 싶어 집어든 책이,

카피라이터 윤수정의 '한 줄로 사랑했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유를 하면 어떤 책에게 미안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맹난자는 너무 어려웠고, 윤수정은 겉도는 느낌이었다.

맹난자는 서너 번째 읽기를 시도하는데,

번번히 길을 구하려다가 잠의 세계로 빠져들어 뭐라고 할 말이 없어주시고,

윤수정의 '한 줄로 사랑했다'는  글은 좋았다.

매 꼭지꼭지 글은 뛰어났고,

감성은 빛났으며,

명 카피라이터답게 제목으로 뽑은 한줄 한줄은 시처럼 반짝였다.

근데, 한데 어우러지지가 않았다.

물론 그간의 카피를 갈무리해놓은거니까 어울리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내용만이 아니고, 본문의 그림들도 통일성이 없이 다 따로따로이다보니,

책이 산만하게 느껴지고, 그러다보니 글마저 산만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표지 디자인, 본문 디자인, 그리고 본문에 들어간 그림이 다 다른 사람의 작품 같은데,

영화 한편 만큼의 짤막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니까,

적어도 본문의 디자인과 거기 들어간 그림이라도 어떤 통일성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하나 하나 떼어놓고 봤을때는 다 훌륭해서 빼어날 것 같은데,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들쑥날쑥 어째 좀 이상해져 버렸다.

모두가 나같이 생각하지는 않겠지 하고 있는데,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누군가가 삼겹살 굽는 법도 가지가지라며,

그걸로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며 한참 설명을 하였다.

손하나 까딱 안하는 공주형, 왕자형은 차치하고,

고기가 익든 말든 수수방관하는 타입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단다.

그리고 고기가 익을까 무섭게 뒤집는 사람은 다른사람을 배려해서 그런게 아니고 재 성질을 못 이겨서 그런거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기를 열맞춰 가지런히 올리고 자르고 뒤집고 하는 사람은 편집증이 있는 사람이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첫번째와 세번째가 해당한단다.

 

그러고 보면, 같은 Fact를 놓구서도 사람마다 반응하는 방법, 해석하는 방식, 대처하는 행동 양식이 다 가지가지이다.

저 러브스토리의 명대사 "Love i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만 하더라도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것'이라고 해석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원 뜻은 미안하다고 말할 일을 만들지 않을 거라는 의미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교과서처럼 꼽는 영화<러브스토리>의 유명한 대사 "Love i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처럼 미안하다고 말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즉 상대방을 위해 희생할지언정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흔히 말하는 사랑의 교본인데 <물고기자리>의 사랑은 미안함을 넘어서 잔인하기까지 한 사랑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넘어서는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인데도 그 사람을 가지기 위해 모든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 감정이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문득 흔히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은 얼마나 시시한 것인가. '사랑해'라고 말해놓고 '아니야'라는 말을 들으면 '아 그래?'하고 털어낼 수 있는 사랑, '엄마 나 그 사람을 사랑해요' '안 된다'라는 말을 들으면 '예'하고 잘라낼 수 있는 사랑, 이런 것들은 사랑이 아닌 게 아닐까. 그렇게 카피가 출발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사랑이 특이한 게 아니라 너희들의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게야. 정말 사랑이라는 건 이 영화 같은 게야,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카피가 '멈출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니다'였다.(52~53쪽)

주역이란 책에게 길을 물으려 했으나, 뜻하지 않게 잠에 빠져들게 될 수도 있고,

좀 산만하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명문장이 적힌 책에 반응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가지각색일 수도 있다.

그 어느 것보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사람에 따라 스스로 통제할 수 없어지기도 하는 그것,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그것이 어쩜 제대로 된 감정이 아닐지도 모르는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난 사랑에 서툴다.

그동안 사랑에 관하여 나의 오롯한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동안의 나는 '사랑해'라고 했다가 '아니야'라고 했으면 '그래, 아님 말구~(,.)'라고 했었을 것이고,

'아빠 나 그 사람을 사랑해요'라고 했다가 '안된다'했다면 '예'하고 며칠 들어앉아 울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남이 하라는 대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진실하고 진정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그건 마음으로부터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테고,

때문에 이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빈자의 미학'으로 유명한 건축가 승효상은 '유명한 건축가'와 '좋은 건축가'의 차이를 말했었다. 좋은 건축이란 사람의 선함과 진실함,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어야 하며, 눈에 띄는 근사한 건물을 만드는 유명한 건축가는 대개 좋은 건축가가 되기 어렵다고.(69쪽)

저 건축가의 자리에 '사람'을 대입시켜도 용케 말이 성립된다.

난 좋은 사람이란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움과 더불어 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집이 편해야 하듯이, 좋은 사람도 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상자의 '물고기자리'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편집증적인, 누군가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잘못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불리워선 안된다.

 

난 아무래도 '주역에게 길을 묻다'를 그냥은 읽어내기가 힘들것 같고,

내가 편안해 하는 종류의 책에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책마실을 다니다보니, 이런 책이 나와주셨다.

딱 내 스타일이다, ㅋ~.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고진석 지음 / 웅진서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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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그러니까 소싯적에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나서는, 도대체 이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됐는지를 모르겠었었다.

뭐랄까~,

약간 우울하고 애조띤 것같은 분위기,

하지만 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무게를 두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 가 참 낯설었다.

 

소싯적에 그런 느낌을 받았던 책들도,

나이가 들면서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웬만한 책이나 작가들을 향하여서는 고개 끄덕여가며 수긍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나이를 먹도록 수긍을 할 수 없는 사람 중에 '고은'시인이 속해 있었다.

고은 시인을 두고는,

왜 그의 시가 좋은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지에 대해서,

수긍할 수도, 내 자신을 납득시킬 수도 없었다.

급기야, 문학외적인 무언가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으로 내 자신을 합리화하려 들었었지만,

한편으론 작가는 작품 속에서, 작품을 통하여 얘기해야 되는 존재라는 이중적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인 중에 고은 시인과 가까운 분이 한번씩 당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실때도,

훌륭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건 작품이랑은 별개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이란 것은 삶의 반영이지, 삶과 별개의 어떤 것은 아니지 싶다.

 

내가 생각이 이렇게 너그러워진건,

지난 수요일날 들은 '시선집중'의 '미니인터뷰' 코너가 결정적이었던듯 하다.

때마침, 고은 시인이 나왔는데,

나이 여든에 55년동안의 작품 생활을 해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벼린 칼날 같은, 말 매무새 또한 깊은 감동을 주었다.

607편의 대작으로 구성된 '무제시편'이라는 시집을 향하여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무제 시편
 고은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하지만, 무엇보다 내게 큰 감동을 준건,

시인의 작품을 향한 열정이었는데, 시인의 말씀중 기억나는 부분만 대충 옮겨보면 이렇다.

시 한편을 가지고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시 자체로 운명을 개척하기도 한다.

시는 나의 내부에서도 오지만, 우주의 저끝에서 달려오기도 한다.

시를 쓰기위해서 깨는게 아니라, 시심 자체가 잠을 깨우게도 한다.

 

시가 우주 저끝에서부터 나에게로 달려오는 상황을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 내게 주어졌다면,

난 시인처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시를 쓰기 위해서 깨는게 아니라, 시심 자체가 나를 잠깨우고, 깨어있게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채 여물지 않은 생각들을, 글로 옮겨써야 할 때가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도 글의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을때,

머리를 싸매고 치열하게 고민을 한적도,

생각을 묵혀두어 글이 무르익기를 기다린 적도, 없었다.

글이 나의 내부에서 샘솟듯 퐁퐁 솟아날 줄로만 알았었지,

우주의 저 끝에서 글들이 나를 향하여 달려오는 경험을 한 적도, 그런 상상을 한 적도...없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글을 잘 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글이 막 샘 솟을때,

글을 쓰지 않고 묵혀둬 보는 것도 글쓰기의 방법 중 하나일거라며, 떠벌리고 다녔었다.

반성한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3년 10월

 

요즘 이윤기 님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묵혀두고 야금야금 아껴 읽는다.

한장, 한쪽, 한문단, 한문장, 한단어, 한글자...허투루 할 수가 없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이윤기 님은 입말과 글말, 이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신 분이다.

글의 골짜기 골짜기마다, 구비 구비, 그런 고민의 흔적,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나도 따라서, 좋은 글이란,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좋은 글이란, 좋은 책이란...사람을 어떤 방향으로든 변하게 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한권 만들어지기 위해 베어넘어지는 나무가 아까운 줄 안다면,

그런 나무를 애도하기 위해서라도,

글이나 책은 사람에게 어떤 빙향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리라.

 

암튼, 나의 이런 생각들을 엿보기라도 한듯,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에는 이런 얘기가 등장한다.

 

10월 13일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고은 시인이 수상자가 될 경우 그분과의 개인적 친분과 문학 세계에 관련된 글을 두 신문사에 써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6시부터 잔뜩 긴장한 채 서재와 안방을 오가면서 신문 원고를 메모하거나 TV 화면을 힐끔거리거나 했다.ㆍㆍㆍㆍㆍㆍ고은 시인이 수상할 경우, 밤늦게까지 써야 할 원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ㆍㆍㆍㆍㆍㆍ고백하거니와, TV 앞에서 일어서면서 내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아이고, 살았구나."

ㆍㆍㆍㆍㆍㆍ이런 의례적인 인사 끝에, 발표 당일 내가 했던 마음고생과, 발표를 듣는 순간 내가 보였던, 이기적인 반응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긴장했다.

ㆍㆍㆍㆍㆍㆍ그러나 아니었다. 고은 시인은 나의 고백을 듣고는 한동안 탁자를 치면서 박장대소하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 안 섭섭해. 이 사람아, 그게 인간이야. 우리는 그런 인간에 대해서 써야 해!"(86쪽)

이리하여, 난 좋은 글쓰기란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누구는 호평을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악평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좋은 글이란 그런 인간에 대해 솔직히 쓰는 글이란다.

솔직히 쓰는 글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니까 말이다.

 

알라딘 서재, 이 동네에서 지금 이시간에도...

내가 아는 누군가가,

또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있다.

그 누군가의 글과 책은 내게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시샘의 대상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모두의 건투를 빈다.

그리고 부디,

사람에게 어떤 방향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좋은 글과 책에 대한 무게감을, 기억하고 가슴으로 느끼기를 바란다.

 

 

 나는 자랑스러운 이태극입니다
 이상미 지음, 강승원 그림 / 파란정원 /

 2013년 11월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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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3-11-22 17:29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나무꾼님 페이퍼를 보고, 이윤기님의 책 담아갑니다. ^--^

양철나무꾼 2013-11-26 11:49   좋아요 0 | URL
어머머~북극곰님이시다, 와락~( )
아흑~--; 이윤기 님 완전 죽음이예요.

숲노래 2013-11-22 17:35   좋아요 0 | URL
다 다른 사람이지만 다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요. '사랑' 하나를 놓고.
다만, 다 다른 사람이기에 '사랑'을 놓고 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3-11-26 11:55   좋아요 0 | URL
따로 또 같이, 그렇게 그렇게 어울려지내는게 삶이겠지요.
그리고 삶과 사람, 삶과 사랑은...이음 동의어 같아요.

프레이야 2013-11-23 10:51   좋아요 0 | URL
으악! 주욱 읽어내려가다가ᆞᆢ 다락방님 책이잖아요!! 그래서 그랬구나ㅎㅎ 아주많이 축하해요.
양철나무꾼님 서재에서 축하인사를ㅎㅎ

양철나무꾼 2013-11-26 11:5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넘 멋지죠?
전 많이 부럽고, 솔직히 좀 배가 아프기도 해요, ㅋ~.

근데, 프레이야 님은 왜 이리 뜸하신거예엿, 췟~=3
 

난 이력제, 경력제...이딴 지나온 자취에 대해서,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하면 이런 자취에 '등급이 매겨진다는데 대해서' 발끈하는 편이다.

얼마전 지인과 노닥거리면서,

소의 등급을 얘기할때는 마아블링의 상태를 가지고 얘기하는거다, 아니다...해가며 카톡으로 몇차례 설왕설래를 했었는데...

그만, '그류' 하는 '단어'를 노안이었는지 잠시 잠깐 '2류' 로 읽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갑자기 꼭지가 '팽~' 돌아서 'what?'했더니,

'아이참, 우리 말 못 알아 듣네...Yes라고요.'하는 소고기를 사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난 민망한 마음에,

'내가 미류나무 꼭대기의 '미류'는 들어봤어도 '그류'는 첨 들어봤네, 참~--;'

이러고 말았는데,

이 책 <충청도의 힘>에서 원없이 '그류'를 접한다.

 

 

 

 

 

 

 

 

 

 

 충청도의 힘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3년 7월

 

 

"그류!ㆍㆍㆍㆍㆍㆍ"(31쪽)

"히히히ㆍㆍㆍㆍㆍㆍ 그건 그류!"(62쪽)

 

처음 이 책의 제목과 겉표지만을 보고선, 별로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직업성 특성 상,

저런 깜장 비닐 봉지를 든 어르신들이 낯설지 않은 나로서는,

충청도든 서울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 같고,

"인생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를 너무 일찍 터득해 버렸다고 자만했었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낄낄 거리고 웃고 말 수 있을 책일 줄 알았다.

 

"인생 별거 있간디?"하고 읽으면 그냥 웃으며 지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발목을 붙잡혔다.

처음에는 그것이 서울촌놈 특유의 사투리가 주는 생경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편집과정의 지나친 자상함이 부른 과실이다.

 

46쪽의 '코를 박고 조시(시작)를 살피지는 못할망정'의 경우에,

네이버 국어사전에 '조시'가 '시작'으로 나온다고 하여,

일본어이고 ちょうし, 조건,상태, 컨디션의 뜻으로 쓰였는데,

'시작'이라는 해석을 달아준건 왠지 좀 씁쓸하고 아이러니 하다.

87쪽의 전(田)도 그렇고,

해석이 맞나 틀리나 검사하며 읽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ㅋ~.

 

실은, 내가 이 책을 페이퍼로 쓸 결심을 한 건

들추기도 싫은 이력등급제 때문이 아니라, 이 똥냄새 나는 사랑 얘기때문이다.

인연은 미수꾸리가 안 되는 것이구, 현다 혀도 헐렁하게 쩜매야지 흘릴께비 꽁꽁 묶으믄 못쓴다, 낭중에는 반다시 도로 풀르야 쓰는 것이 인연인디 꽉 쩜매믄 손톱 발톱 다 빠져두 절대 못 푼다, 그라니께 집이를 지 옆이다가 꽁꽁 묶아 둘라고 허믄 못쓴다 맴먹었슈.(110~111쪽)

 

미수꾸리(に-づくり , 作り, り 는 일본어로 묶어서 포장한다는 뜻이란다.

저 미수꾸리 같은 단어에는 해석이 없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저 인연이 부산에서의 만남이라 미수꾸리 같은 단어가 일반화되어 사용되었나 보다.

이 책에서, 저 인연에서는 보따리의 네 귀퉁이의 매듭을 묶듯 인연을 묘사했는데...

난 인연은 저런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런 것이어도 네 귀퉁이를 모두고 여미어 꼭 묶어도 나중에 묶은 시발점을 알면 그 반대방향으로 하면 잘 풀린다.

저건 무책임하고,

덜사랑하고,

(아니 한순간 뜨겁게 사랑하겠다, 가 아니라 오래 영원토록 사랑하겠다...

강신주 식으로 얘기하면 구속하겠다가 부른 욕심이다, ㅋ~.)

감정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그런 칠칠 맞은 사람의 그것으로만 여겨진다.

아님? 아님 말고~(,.)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색깔을 가진 실로 삶이라는 옷감을 짠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과 만나면 얽히고 섥히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엮이기도 한다.

만나고 스치고 헤어지고 다투고 하면서

옷감을 짜고 겹치고 모두고 자르고 매듭짓는다.

뜨게질을 생각하면 좀 쉽다.

매듭을 찾을 수 있으면 실을 풀어 거두어 들일 수도 있다.

 

'낭중에는 반다시 도로 풀르야 쓰는 것이 인연'이라고 하여,

'꽉 쩜매믄 손톱 발톱 다 빠져두 절대 못 푼다'고 두려워,

그리하여 감정을 질질 흘리고 다닐 것이 아니라...

여러사람에게 못할 노릇 만들지 말고,

묶고 풀르는걸 야무지게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꽉 쩜매 손톱 발톱 다 빠져두 절대 못 풀르면 가위로 잘라내면 된다.

 

내가 맨날 하는, 만석꾼 며느리 얘기가 있다.

쌀을 빌어 죽을 먹지 말고,

쌀로 밥을 지어 배불리 먹고 그 힘으로 일을 해서 쌀 살 돈을 벌면 된다고~.

 

난 배불리 쌀밥을 먹고 삯바느질을 하여야 한다, ㅋ~.

지난번에 만든 인형은 키보드 손목 보호대였다.

말인형이어서 이름은 '마군'이었고,

마우스용으로, 말인형과 짝으로 당근을 만들었는데 이름은 '당근군' 줄여서 '당군'되시겠다.

근데, 문제는 얜 넘 크고 동그래서 마우스 용으로 부적절하다.

그래서 '당근'이 미운 털이 되어 '호박'신세가 됐다.

 

 

요즘은 알라딘 서재에서 노는 일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알라딘 서재에서 놀다보면 곳곳에 지름신인고로, ㅋ~.

그래도 이 책은 꼭 사고 싶은 책이다 싶은 것 몇 권만 살짝 찜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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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22 06:53   좋아요 0 | URL
시골 할매 할배가 일제강점기 영향으로 일본말을 자꾸 섞어서 쓰시는데,
그런 낱말 아닌 먼먼 옛날부터 쓰던
지역말, 고장말로 고소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얼마나 고울까 싶으면서도
이제 그런 말은 다 잊혀졌고
시골도 텔레비전 연속극 말투에 길들여졌으니
이만 한 말투로나마 이야기를 듣는 일도
대단한 셈이리라 생각해요.

2013-08-22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도 책 얘기다.

한동안 책 얘기가 나의 화두가 될 것 같다.

그동안도 책을 열심히 들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책에 치여 책탑을 쌓느니,

책으로 테트리스를 하는 꿈을 꾸니 할 정도는 아니었다.

 

요즘 유난히 책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은 책을 읽는 속도가 아주 빠르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되어,

책을 읽는 속도와 책을 들이는 속도가 나름 균형이 이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전이 땡기고(당기고),

('당기다'가 옳은 맞춤법인줄은 아는데, 이상하게 '땡기다'라고 해야 맘이 편안하다, ㅋ~.)

책 읽는 방법도 바뀌고 하니,

독서 속도가 마냥 더뎌진다.

 

스스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이렇게 고전에 관심을 보이나 의아해했는데,

다 나이를 먹기 때문인가 보다, ㅋ~.

ㆍㆍㆍㆍㆍㆍ배움은 노소가 다르다. 젊어서는 정력이 남아도니 모름지기 읽지 않은 책이 없어야 하고, 그 의미를 궁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이가 들게 되면 주력할 것을 가려야 한다. 한 가지 책을 읽다가 뒤에 공부하기가 어렵겠다 싶거든 다시 읽어 깨달아 이해해야 한다. 침잠하고 따져 살펴 지극한 곳까지 마저 살펴야만 한다.

                                                                                        - 양응수, 「독서법」

ㆍㆍㆍㆍㆍㆍ

 젊어서는 확산하는 독서가, 나이 들어서는 수렴하는 독서가 필요하다. 젊어서 너무 한 가지에만 몰두하면 안목이 좁아지고 균형이 무너진다. 나이 들어 계속 벌이기만 하면 망망대해에서 돌아갈 곳을 잃는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에 맞게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년 이후의 독서는 집중처가 있어야 한다. 하나의 화두를 들고 찬찬히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 맞다. 여기저기 기웃대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깊이 보는 것이 맞다.

                                                                                                                     ('오직 독서뿐'107~108쪽)

그동안의 책 읽기는 다독이었다.

그만그만한 책들을 폭 넓게 많이 읽기만 했었다.

곰곰 생각을 해야하거나, 성찰을 요구하는 책읽기는 일부러 피해왔었는지도 모르겠다.

책만이 유일한 친구라고 외쳐댔으면서도,

책에서 무언가를 얻거나 느끼게 되기보다는, 그냥 킬링타임용이었다.

(물론 책에서 무언가를 얻거나 느꼈고,

 그리하여 내 삶을 변화시켜 왔겠지만...인식하지 못했었다.)

난 친구의 조건으로 다른 무엇보다 내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걸 꼽는다.

적어도, 나보다는 똑똑하고 지식이 풍부하여...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친구의 조건에 대해서는, 이렇게 명확하게 기준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독서, 다시말해 책에 있어서는 아무런 기준도 없이 두루뭉술이었다.

 

언젠가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를 했고,

그런 독서 중에 얼마전에 읽은 고전작품에서 우연히 물리가 트이는걸 경험하게 되고 보니,

책을 고르는 취향이 점점 고전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정독을 하게 된다.

얼마전에 읽은 '이권우'에선 그걸 이렇게 얘기한다.

책을 읽으려면 꼼꼼하게 읽고 비교하며 읽고 비판적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그리 읽어 왔다고 자부하고, 그리 읽어야 한다고 떠벌리기도 한다.('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14쪽)

 

암튼, 책을 읽으면 뿌듯하고 만족스럽기 보다는,

말할 수 없는 갈증과 열망으로 어쩌지 못하겠는 날의 연속이다.

에를 들어, '오직 독서뿐'을 읽다보면,

책에 언급된 아홉명의 원전을 주먹구구식으로라도 읽고 싶고,

이권우의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을 읽다보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그가 읽었다는 책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는, 읽은 책에서 씨실과 날실이 풀어 엮어내는 그물처럼 연관서적을 언급해주고 있는데, 그 양이 자못 방대하다.

게다가 그가 언급한 책 중의 한권은, 그는 잘 모르고 언급했을수도 있는데...

강신주가 펴낸 '철학VS철학'과 책의 배열이나 편성법이 비슷하다.

강신주를 들추고, 강신주의 '철학VS철학'에 언급된 철학자들로 관심이 뻗어나간다.

 

문제는, 이렇게 언급된 책들 중 내가 안 읽은 책들은...

절판이나 품절이 될까봐서 부랴부랴 구입한다는 것이다.

 

요며칠,

책에 치여 책탑을 쌓느니,

책으로 테트리스를 하는 꿈을 꾸니,

하면서도 어제는 황현산을, 오늘은 이탁오를 넘보고 앉아있다.

 

나의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친구는 이렇게 조언을 한다.

 

책을 말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맘도 참 이쁜 마음이야.

근데, 애착은 좋은데,

강신주를 애정하고,

그런 건 좋은 건데,

집착이 되는 건,

좀 훌훌 털어버릴 수도 있어야 좋을 것 같애.

쉽진 않겠지만,

 

힘들고 속상할 걸 '감수' 하는 감수성 훈련을 해야할 거 같애.

다 본 책 중에서 불필요한 책은 과감히 방출하기도 하고,

기증하기도 하고 말야.

 

ㅇㅇ이 맘이 이해가 되면서도,

차츰 나아질 거라 생각하면서도,

책에 대해서 넘 애정이 넘치는 ㅇㅇ이를 보면서,

책탑의 라푼첼을 구하고 싶은 맘에 ㅋ~

 

그런데,

난 말이쥐~~~~~,

감수성 훈련은 전혀 되어주시지 않고 있고,

차츰 나아질지도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이익의 글이나 옮겨적으며 '자기합리화'를 하기에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은 '고전'읽기나 정독을 포기할 수 없고,

독서 속도를 향상시키는 것 뿐인데,

얼마전까지 내 알라딘서재의 타이틀이 'where is my mind'였듯이,

일단 구방심求放心을 하고 볼 일이겠다.

예전 진열 선생이 기억력이 없어 고생했다. 하루는 『맹자』를 읽는데, "학문의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방심을 구하는 것뿐이다"라고 한 것을 보고 문득 깨달아 말했다. "내 마음을 일찍이 거두어들이지 못했으니, 무슨 수로 책을 기억하겠는가?" 마침내 문을 닫아걸고 고요히 앉아 1백여 일 동안 책을 읽지 않고 흩어진 마음을 수습하였다. 그러고 나서 책을 읽자 마침내 한 번 보면 빠뜨림이 없었다. - 양응수, 「독서법」

  진열은 송나라 때 학자다. 머리가 나빠 읽고 돌아서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자책만 하다가 『맹자』의 한 구절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부의 요령은 '구방심求放心'에 있다는 그 말. 방심은 마음을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놓아두는 것이다. 이 방심의 상태에서 마음을 먼저 건져 내야 한다. 한 줄 보고 이 생각 하고, 한 장 보고 저 생각 하면 백날 읽어도 안 읽은 것과 같다. 열심히 할수록 성정만 나빠진다.ㆍㆍㆍㆍㆍㆍ

                                                                                                                            (오직독서뿐, "84쪽) 

    

근데, 실은 난 구방심求放心도 중요하지만,

책에서 읽은 것을 책 안의 지식으로만 놓아두지 않고...

실생활의 경험으로 적용시키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험보다 더 좋은 암기법이나 이해법, 즉 감상법은 없다는게...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며 독서를 통하여 내가 터득하고 깨달은 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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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11 01:16   좋아요 0 | URL
나이에 따라 책을 살펴 읽기도 해야겠지만,
나이보다도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되리라 느껴요.

스스로 좋아하지도 않는 책을
나이에 맞추어 굳이 읽어야 할까 잘 모르겠어요.

왜 한우물을 파야 할까요.
한우물 안 파도 돼요.
마음이 가는 책을 읽을 때가 바로 한우물 아닌가 싶어요.

학자나 지식인이나 전문가 들 말하는 한우물은
이녁 삶에 맞춘 한우물일 뿐,
우리들 한우물은
아주 다른 자리에
저마다 고운 빛으로 있다고 생각해요.

양철나무꾼 2013-07-11 02:49   좋아요 0 | URL
ㅋ,ㅋ...님 아직 젊으시다는 얘기겠죠.
젊어서는 확산하는 독서가, 나이 들어서는 수렴하는 독서가 필요하다잖아요, ㅋ~.
저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님의 생각에 가까웠었는데,
지금은 정민님의 생각쪽으로 기운다는...ㅋ~.

그 논리대로 정리해보자면,
님은 영거, 전 엘더한 건가여?^^

알케 2013-07-11 12:35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미친 듯 책사기 러시' 중인데요. 택배 기다리는게 싫어서 교보가서 사는데
차가 안 굴러가요. 책 무게에 ㅎㅎ

문제는 끙끙거리며 책방에 옮겨놓고 방치한다는 거.
그냥 '책 산다'는 행위에 집중하는건데
막 택배상자들로 꽉찬 방에서 매일 밤 홈쇼핑 틀어놓고 전화기 들고 앉은 쇼핑중독자 몰골이예요. ㅎㅎ

스트레스 수치가 임계점인가 싶네요.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아주 좋죠.

양철나무꾼 2013-07-11 15:44   좋아요 0 | URL
전 책을 주문해 놓고는 팽개치고는... 택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는~ㅠ.ㅠ
안 읽은 책이 그만큼 줄줄이 밀렸다는 얘기죠.

독서취향이 참 많이 겹치던 님이랑 저랑 다른 점은,
님은 홈쇼핑 버전,
전 (TV를 안 보는 고로) 알라딘 죽순이~ㅋㅋㅋ

북극곰 2013-07-11 13:26   좋아요 0 | URL
첫 번째 연두 박스 무척 공감가는 말이네요. ^^ 나무꾼님 잘 지내시죵?

양철나무꾼 2013-07-11 15:47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고밥습니다.
제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애기 초등학교 입학 얘기 본것 같은데...벌써 여름방학이네요, ㅋ~.
덥고 습한 여름이지만 우리 몸이랑 맘은 뽀송뽀송하게 건너가자구여.^^

아무개 2013-07-11 13:28   좋아요 0 | URL
니체였죠.
제가 이렇게 책 읽는일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 시작점.
읽어도 읽어도 이해도 안되고 읽었던곳 다시 읽고 또 다시 읽으니 속도도 안나고.
세달 가까이 책을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어요. 완전히 슬럼프에 빠졌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오랫만에 탄력받아 이틀만에 읽어내고 나니 왠지 기운이 불끈불끈.
연이어 읽은 오직, 독서뿐에서 저도 양철나무꾼 님과 같은 구절을 옮겨 적었었는데
저는 앞으로 수렴하는 독서를 해야겠다는 계획보다는 신체적 나이는 중년이지만
독서 수준은 아직도 청소년 수준이라 좀 더 발산하는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읽고 있는데
혹시 철학VS철학 읽으셨나요? 욕심은 나는데 엄청 두꺼워서 망설이고 있어요.

양철나무꾼 2013-07-11 15:51   좋아요 0 | URL
혹시, '마중물' 닉을 쓰시던~?

암튼, 반갑습니다.
'아무개'란 닉이 주는 익명성도 매력적이구여, ㅋ~.
철학VS철학, 네...좋습니다여, ㅋ~.
try to해보셔염.

아무개 2013-07-12 08:54   좋아요 0 | URL
넵 얼마전에 닉 바꾸었어요.^^

역시 철학VS철학은 이제 그만 장바구니에서 꺼내줘야 겠군요.
네 시.도.해보겠습니당~

하늘바람 2013-07-11 17:12   좋아요 0 | URL
어쩜 저리 글을 이쁘게 쓰세요
샘나서리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