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싶은 집은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이 책을 시작한 건 '이일훈'님 때문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분의 '뒷산이 하하하'를 접하게 되었는데 좋았던 터라,

한번 필 꽂히면 전작을 두루 섭렵하는 나의 취향에 맞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를 읽어 주셨다.

그런 후에 읽게 된 이 책은, 어떤 의미로든 좀 당혹스러웠다.

왜냐하면 건축가야 집을 건축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손 쳐도,

송승훈 샘이야 (이때까지는 ''책.따.세'의 일원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냥 국어샘일 뿐인데,

집을 지을때 발생하는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속물스런 나는 돈과 연관시켜 생각이 이리저리 널을 뛰었는데,

땅값에, 설계비에, 건축비에...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 하는 기우(杞憂)가 주를 이뤘다.

 

책을 읽다보면,

송승훈샘이 왜 이런 집을 짓게 되는 지,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하게 되는지,

가 조곤조곤 설명되어 있어...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이고 눈물 바람을 하게 되지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처럼, 그건 또 그때뿐이고...

평범한 소시민인 나로서는 복권에 당첨되거나 일확천금을 갖게 되지 않는다면,

평생 꿈꿔볼 수조차 없는 그런 집이어서 읽는 내내 부러움으로 배가 아팠던 것도 사실이다.

암튼 이 책은 중심을 잘못 잡아 읽으면 얼마든지 당혹스럽고 불편한 책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건축가인 이일훈님과 건축주인 송승훈샘이 지은 이 집의 이름은 '잔서완석루'이다.

해석해 보자면,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 이라는 뜻이란다.

건축가 이일훈 님이야 '채나눔' 이라고 하여 '불편하게 살기, 밖에서 살기, 늘려 살기' 따위를 주창하신 분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송승훈 샘의 그것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송승훈 샘은 국어샘 답게 서재에 힘을 주려고 하셨는데,

서재는 공부를 하는 장소이므로 너무 편한 것보다 다소 긴장감이 드는,

어찌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 장치들을 해달라는 대목에서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송샘의 책을 대하는 자세를 미루어, 나의 책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됐다.

 

이 분이 꿈꾸고 계신 집은 이 분이 그리는 삶에 대한 이상향을 반영하고 있고,

이건 '어떻게 살것인가'하는 삶의 근원적이고 궁긍적인 문제, 즉 자아성찰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는것 같다.

다시말해, 삶이란건 외부로만 무한히 열고 소통하려 해서 되는게 아니라,

그와 보조를 맞추어 안으로 자기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삶은 넓고 풍요롭고 풍성한 동시에 안으로 충분히 깊이 있어야 한다.

 

발상을 조금 바꾸어,

건축가 이일훈 님의 이 물음들을 꼭 짓는 집에만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집을 꿈꾸고 계신가요?"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인터넷에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라면 한 번씩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고,

의미를 더 축소시켜 집을 '서재'에 국한시켜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서재를 꿈꾸고 계신가요?"

- 책을 보관하고 쌓아두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읽고 생각을 키우고 나누고 발전시키는...말하자면, 열린 소통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 넓고 깊게, 풍요롭고 풍부하게.

 물에서 뜨기 위한 전제조건은 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소통의 전제 조건 또한 마찬가지이다. 소통의 아우라나 파장이 얼마나 넓고 깊세 미칠 수 있는지 따위는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멋드러지게 대답해야 겠지만...어디까지나 준비된 답변일 뿐이고,

읽지 않은 책들로 날마다 책탑을 쌓고 살아가는 일개 중생일뿐이다.

책탑은 날마다 높아지고,

난 야한 생각을 할수록 머리카락이 빨리 긴다는 속설을 믿어 매일 꾸준이 야한 생각을 해서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머리카락을 드리우면 왕자님은 아니어도 누군가 책탑에 갇힌 나를 구하러 와줄것만 같다, ㅋ~.

 

요즘 책 정리를 하고 있다.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책은 더더욱 그런고로, 책들은 그렇게 쌓여 책탑을 이루는 형국이었고,

이게 심각한 사태구나 하는것을 깨달은건 우리 아들의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일기장이나 비밀노트 따위를 안버리는거야 그럴 수 있다손 쳐도, 초1때의 알림장이 그대로 책꽂이에 꽂혀 있는 거였다.)

급기야 책을 이고 자야 되는건 아닐까 걱정되어, 난 자못 심각하게 왜 안버리냐고 묻자,

우리 아들 曰,"버리는 건 줄 몰랐어~--;"

 

책은 단지 책꽂이에 꽂아놓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읽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책은 돌려 읽고,

생각을 나누고,

생각이 이렇게 저렇게 마음을 건드리고,

그게 어떤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어디다 내팽개쳐 버렸는지도 모를 수도 있고,

보이기 위해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아는 놓았으나 읽지는 않았을 수도 있고,

책을 그저 뚝딱 읽어버리고 말았을 수도 있고,

책을 읽고 이런저런 일련의 과정의 변화를 거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나는...마다했다고 우기던, 서재에 연연해 온것이 된다.

이제 책탑을 허물고 걸어나와,

책을 읽고,

책에서 배운대로 실천하도록 해야겠다.

 

비록 나의 그것은 송승훈 샘의 '구름배'같은 그것은 아닐 것이다. 

 ‘구름배 같으면 좋겠습니다. 구름이 부드럽게 감싸 안고 공기 잘 통하는 하늘로 사람을 두둥실 띄워가는 듯 편안한 방이길 꿈꿉니다.’ (32쪽)

 

삶이란 것이 몸으로 통과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듯이,

책도 자기가 읽고 감동 받았을때,

그 감동이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 체화하는 과정을 겪었을때,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독서가 된다.

 

독서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독선이나 독단에 빠지는 것이다.

그랑제의 소설 <검은 선>에도 그런 사람이 나오고,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에도 보면,

책을 누구보다도 많이 읽지만, 해석을 자기 마음대로해서 독선이나 독단에 빠진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니 책을 읽는 사람들은 계속 자신을 돌아봐야하고, 주변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 서재는,

독선과 독단에 빠지지 않고 타성에 빠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이중적인 잣대가 된다.

 

집이란 '어드메 한 구석 기둥을 부여잡고 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말이 책을 읽는 내내 입가를 맴돌았다.

이 말은 이렇게 저렇게 바꿔 적용시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둥 대용의 친구와 책은 그럭저럭 확보한 셈이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런 의미에서 이일훈 님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도 많은 물음을 던지는 그런 책이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일훈 지음 / 사문난적 /

 2011년 1

 

숲 닮은 도시가 갖춰야할 최소한의 덕목은 '경계'를 없애는 일이다. '영역' '구획'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숲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자연의 공간의 경계가 생기지 않는다. 나무와 바위 사이에도, 계곡과 능선 사이에도 경계가 없다. 숲이 숲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그 경계 없는 자연공간들이 바로 숨통이기 때문이다. 모든 흐로고 지나가는 것들이 그 경계 옶는 사이에서 작용하고 존재하므로 숲과 나뭉와 동물들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럼 도시는? 그 반대다. 경계를 확보하려고 혈안이다. 영역 표시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구획을 지어야 마음을 놓는다. 개체의 구획이 전체를 죽인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구획된 경계는 불통의 공간이 된다. 건물이 두 체면 불통의 공간도 두 배가 된다. 그 사이를 허물어 나무 심고 사람이 다니면 그게 바로 소통이다. 숲은 자연이 소통되는 상태다. 숲 닮은 도시를 꿈꾼다면 모든 것을 통하게 하라. 그러면 아무도 콘크리트 숲을 욕하지 않으리.

 

숲이 말한다. 경계를 없애야 숲이 된다고.

도시에 묻는다. 우리는 오늘 몇 배의 불통을 참고 있는가.(40쪽)

 

자연이란 말의 의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진 무엇'이라는 정의(定義)이다. '~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이 자연스레 다가왔다'하는 자연스러움은 역시 사랑의 묘사에 제격이다. 하는 이도 모르게 저절로 맺어지는 사랑이 있는가 햐면 꾐ㆍ 설득 ㆍ도전ㆍ 쟁취의 사랑도 잇다. 저절로 이루어진 사랑이 자연의 숲이라면 계획된 작전 같은 사랑은 인곡 숲이다. 모든 사랑이 다 소중하듯이 숲도 자연이든 인공이든 다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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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2-08-16 20:37   좋아요 1 | URL
책을 쌓아두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읽고 소통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언니 서재 정리하실때 제게도 좋은책 보내주세요.ㅋㅋ

하늘바람 2012-08-17 01:25   좋아요 1 | URL
한 때 책으로 집을 도배하던 떄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어느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 책은 장식용이 아니라고.
그다음부턴 책을 가능하면 모으지 않으리라 하고 있지만
그게 참 안 되더이다^^
오늘 이상하게 님 생각 많이 했는데
님이 페이퍼를 올리셨네요^^
전 사실 책을 뒤죽박죽 정리 못하기의 달인인지라
어떤 서재를 꿈꾸냐 하면 정리 안해도 되는 서재?
과연 그런 서재가 있을런지.

라로 2012-08-18 00:06   좋아요 1 | URL
이일훈, 잘 모르는 작가인데 여기서 알게 되었네요!!!
찾아서 읽어봐야겠지만 도서관에 자주 못 가는 사람이라 언제 읽을지 장담은 못 하겠어요.
하지만 양철나무꾼님의 페이퍼를 읽고 있자니 꼭 만나고 싶네요!!^^

2012-08-19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백하자면 난 성적소수자에 관심이 없다.

성적 소수자 뿐만 아니라 어떤 경계나눔 자체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경계를 나누는 순간 그 경계에 갖혀 소수자나 약자가 되어버린다는 걸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혹 다수자나 강자가 된다손 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건 어쩜 내가 '세상의 경계들을 향하여' 나로부터 비롯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 하는 도발적인 질문을 해대는 마리앙토와네트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김조광수.김도혜 지음 /

 알마 / 2012년 6월

 

그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건,

김조광수라는 사람이 그동안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학생운동과 인권운동의 현장의 최전선을 넘나들며 보여준 실행력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목소리라면 왠지 귀기울여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이쪽으로 닫아두려 했던건 어쩜...

이들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것으로 힘을 실어주려고 하다가,

오히려 어긋난 방향으로 이목을 집중시켜 총알받이가 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입지가 여의치 않은 이들이 설 자리를 잃고 벼랑끝으로 내몰리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김조광수라는 사람은 나의 이런 우려를 일갈하듯이...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는 이 작업을 마치 축제처럼 해내고 있다.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러면서도 객관적인 인터뷰어 김도혜는 나를 제대로 까발렸다. '이런 것까지 얘기해도 될까?' 나는 가끔씩 주춤거렸지만, 김도혜는 멈추지 않았다. 한 꺼풀 한 꺼풀 벗어야 했고 결국엔 알몸을 보여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과 드러내고 싶은 노출증 사이에서 나는 나락에 빠지기도 하고 희열을 맛보기도 하는 등 감정의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 시작되었고 어느덧 마무리가 되어 책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새롭게 돌아본 '나'는 내세울 건 별로 없고 부끄러운 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부족한 게 있어야 인간미가 있다고들 하지만, 난 부족함에 있어서 평균치를 웃돌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출간하는 것에 동의한 이유는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이 용기를 냈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인터뷰이 김조광수의 들어가는 말 중에서)

 

사실 그를 비롯한 '성적소수자'라는 사람들은 어찌보면 어둡고 우울함이 기본 정서인 사람들이다.

현실의 어두운 부분, 즉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그 부분을 인정하는 순간 삶은 더 진지하고 무거워져 버린다.

그런 '성적소수자'들의 인권을 대변하는 작업이라는건,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깔려있는 어둡고 우울함을 한쪽으로 접고 가는 작업일텐데,

그는 그걸 밝고 명랑하게 치환시켜 축제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가되,

각자의 살아온 세월을 부정하지 않고 투영시키려고 애를 쓴다.

각자 살아온 세월을 부정하지 않는다는건,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에 발 붙인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현실에 대한 인식없이 꿈만 꾼다면 사상누각이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에 기초하여 땅에 발 붙인 꿈만을 우린 희망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거다.

땅에 발 붙이지 않은 꿈은 환타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이 책을 통하여 김조광수가 하려고 한 얘기,

'성적소수자'들의 인권을 대변하느라 그가 하려고 한 얘기, 를 요약하면 이쯤 되겠다.

 

일반인들이 보고 '역시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로 끝나는게 아니고,

동성애자로 사는 건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는 걸 보고,

그 '행복'을 보고,

'아, 내가 그동안 너무 한쪽에서만 봤구나'라고 발상을 전환토록 유도하는걸 꿈꾸고 있다.

일반의 '선입견의 탈피'와 이반의 '행복이라는 희망'을 동시에 꿈꾼다.

 

옛날에 친구랑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우울근, 근사근 하면서 논 적이 있다.

근육을 수의근, 불수의근으로 나누는데 심장근은 불수의근으로 알고 있었다.

사람이 마음대로 심장을 뛰게했다 멈추게 했다 할 수 없는거니까,

사람의 심장은 사람의 맘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의 우울이나 근사함 따위, 감정은

쉽지는 않더라도 조금만 노력하고 연마하면 가능할 것이다.

그랬던 터라, 이 책에서 연애근육이란 단어를 보자 반가웠다.

연애근육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그의 섬세함이 좋고 맘에 들었다.

도혜 정말 못 말리는 김조광수다. 나는 선생님이 나를 친구처럼 대하는 게 기뻐서 내 맘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당신은 연애에 관해서는 아무런 장벽도 없고 매우 용감하고 꿈꾸는 사람 같다. 자신을 회상할 때도 연애와 사랑의 주체로서 자아가 아주 확실해 보인다. ㆍㆍㆍㆍㆍㆍ그러니까 연애 쪽으로는 촉수가 아주 발달한 사람이다. 그래서 열아홉 살이나 어린 애인과도 잘 사귀는 거 아닌가? 나에겐 없는 아주 센 연애근육이 당신에겐 있지 싶다.(73쪽)

이 책을 통하여 새롭게 정립하게 된 개념은 '시민결합'이라는 거다.

*시민결합 :

ㆍ 동성 또는 이성 커플이 법원에 동거계약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사회보장, 납세, 임대차계약, 채권채무 등에서 결혼에서와  같은 권리를 갖는 제도.(189쪽)

ㆍ전통적인 결혼제도를 동성간에도 허용해야 한다는 '동성 결혼 합법화'가 하나고, 나머지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행하고 있는 '시민결합'의 제도화이다. 시민결합은 성별, 애정관계 여부를 가리지 않고, 동거하는 두 사람의 연대를 인정해 결혼에 준하는 사회보장적, 법적 권리를 주는 대안적인 결합 제도다.(193쪽)

ㆍ이에 따라 남편 husband과 아내 wife라는 이성애를 전제로 하는 용어를 없애고 배우자 spouse와 동반자 partner라는 성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194쪽)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걸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성적소수자의 사랑이라고 하여 특별한 것이 아닐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저렇게 잣대를 들이대고 경계를 나누어 그들의 사랑을 분류해 낼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사랑이 있는데...

다르다는게 결코 틀린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성적소수자라고 가정했을 때,

사랑은 당사자 간의 문제이니까, 둘이 좋으면 그걸로 된거다.

'성적소수자' 라는 사회적 편견에 주눅이 들어 어둡고 힘들기만한 사랑을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그 사람도 알고 그걸 받아들여준다면...

그것으로 된거라고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리라.

 

왜냐하면 세상에는 어긋난 사랑도 많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얘기하는게 민망할 정도로 멀리 있어,

두고두고 그리워만 하는 사랑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들을 좀 편안하고 이쁜 시각에서 그려낸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라는 만화도 있고,

핏빛 그리움으로 질펀하게 풀어낸 <브로크백 마운틴>이란 책도 있다.

 

 

 

 

 

 

 

 

 

 

 

 

 

개인적으로 '애니 프루'를 엄청 좋아하는 지라, '브로크백마운틴'이 더 훅~하고 다가오는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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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8-11 00:55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읽지 못했는데 두결한장은 잼나게 봤어요. 그러고보니, 김조광수 영화를 본 게 좀 있긴 하네요.
그 사람에 대해선 잘 모르긴 하지만 영화로 말하고 있는 듯해요.
나무꾼님, 전 며칠 전 참 사랑스러운 일본영화 '하와이언 레시피'를 봤는데요,
거기서 '동성애'를 해석하는 말이 '사랑엔 국경이 없다'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물론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그 말을 푸는데, 좋은 해석이라고 노인이 청년에게 말해요.

숲노래 2012-08-11 04:51   좋아요 0 | URL
동성애를 다룬 만화는 아주아주 많아요.
한국에서도 드물게 있었고 요즈음에는 꽤 많이 나오는데,
'송채성'이라는 분이 그린 만화는 모두 '동성애'가 주제랍니다.
이제는 절판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찾아보실 수 있으면 한번 찾아보셔요.
한국만화 가운데 작품성과 줄거리와 엮음새 모두 아주 탄탄한
참 괜찮은 만화책이랍니다.
<셸 위 댄스>나 <미스터 레인보우>나 <취중진담> 같은 만화들은
여러 번 보아도 물리지 않고 좋았어요.

일본만화에는 동성애가 대단히 많은데
<방랑 소년> 같은 만화책은 초등학생 눈높이로도
동성애와 성정체성을 알아듣도록 그린 작품이기도 해요.

마녀고양이 2012-08-11 08:18   좋아요 0 | URL
내가 아는 사람한테 누가 상담받으러 와서,
처음에는 그런 말을 안 하다가 몇회기 지나서 실은 저는 '호모예요' 라고 했대.
그 순간 듣던 상담자가 입이 딱 벌어져서 다물지를 못한거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담자가 먼저 웃더래.
솔직하게 반응해줘서 차라리 고맙다고 하면서. 그리고 그 상담자는 지도 교수님께 된통 혼나고... ^^

다르다, 그걸 인정한다는 것은 참 어려워.... 모든 일에서.

하늘바람 2012-08-11 10:02   좋아요 0 | URL
와 다 긴긴 댓글 주소만 받아놓고못보내고 있네요 그냥 잊고 계시면 갈거예요 죄송해요
 

올 여름 휴가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행복의 추구'와 더불어서였다.

이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른 관점의 독서가 가능한 그런 책이지 싶다.

난 원제 'The pursuit of Happiness'랑 관련해서 pursuit에 좀 연연했었는데,

역자가 공경희님인데, 요번 번역은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좀 있다.

pursuit를 '추구'라고 번역한 것부터가 그렇다.

차라리 윌 스미스(?)가 나왔던 그 영화처럼 '행복을 찾아서'라고 번역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암튼 pursuit에 힘을 주어 읽느냐, Happiness에 힘을 주어 읽느냐, 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한 그런 책이어서 좋았다.

 

난 pursuit에 힘을 주어 읽었고,

pursuit의 주체로서의 나를 곧추세우는데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뭐, 내용이야 로맨스소설 같기도 하고,

미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나처럼 얕은 앎을 가지고 이러니저러니 할 처지는 아니구 말이다.

암튼 많이 좋고 재밌는 책이라고 그냥 들이미는 수밖에 없겠다.

 

 

 

 

 

 

 

 행복의 추구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행복의 추구 2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반대말 놀이를 했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나 증오 정도가 되어야 할까, 아님 누군가의 싯구처럼 '사랑했었어'라고 해야할까?

모두 아닌것 같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인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어, '용서'를 놓고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용서를 '하고 못하고'는 반의어적 성격을 가졌지만 동의어다.

왜냐하면 용서를 '하고 못하고'는 차치해두고라도 이 모두가 마음 속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어쩌면,

사랑의 반대말이라고 하는 '미움''증오''사랑했었어' 따위,

용서의 반대말이라고 하는 '용서 못함''용서할 수 없어''용서하지 않을거야' 따위,

가 아니라, 무관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에서 언어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아. 단지 약간의 제스처만이 필요할 뿐이야. 제스처는 다른 제스처로 연결되면서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지. 즉 다시 말해 누군가를 용서하면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게 되는 거야."(행복의 추구 2권, 401쪽)

다시 말해서,

사랑뿐만 아니라, 행복이나 증오, 용서 따위의 단어 모두 상대적이어서...

'더'와 '덜'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중량감이 다르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반대말이 될 수 있는 필요ㆍ충분 조건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나 행복 같은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말 뿐만 아니라, 

용서 같은 단어도 어느 정도의 애정과 관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이 모두를 상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들을 스치다가 1,2초쯤 눈이 마주쳤고, 그렇게 힐끗 쳐다본 것 뿐이었는데 45년이 흐른 뒤에도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둘은 (처음 만난게 맞아?) 할말이 뭐가 그리 많은지...

두 시간이나 하나로 이어지고 겹쳐지고 녹아드는 대화를 나눈다.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게 운명인 사람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길모퉁이의 작은 바로 갔다.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잠시도 멈추지 않고 두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게 운명인 사람들처럼. 대화가 하나로 이어지고 겹쳐지고 녹아들었다.(1권, 62쪽)

 

이 부분은 어떤 의미로든 내게도 특별했다.

특별히 할 얘기가 있어서 대화를 나누는게 아니라,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행복한거라는걸,

그리고 그게 어떤 것이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난 경험에 미루어 잘 알겠기 때문이다.

 

같이 있는게 좋고 그게 축복이라고 하는 건 사랑의 과정에서 누구나 한번쯤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대화를 나누는것만으로도 운명이라고 느낄 수 있는건 살면서 흔하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1940년대의 설정이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인습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하지 않고 한계를 극복하려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ㆍㆍㆍㆍㆍㆍ내 미래를 누군가에게 의지해야한다는 개념이 무서워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점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똑같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오류에 빠지니까. 배우자에게 내 미래를 책임지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모순이죠."

ㆍㆍㆍㆍㆍㆍ

"내 행복을 누군가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행복해지려는 욕구를 빼면 뭐가 남죠? 결국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거죠."

잭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당신이 말한 생의 등식에서 사랑은 인수가 될 수 없다는 건가요?"

나는 잭과 눈을 마주쳤다.

"이를테면 사랑은 '나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지?'나 '내게는 당신이 필요하고, 당신에게는 내가 필요해.' 같은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사랑은ㆍㆍㆍㆍㆍㆍ."

나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잭이 내 손을 깍지 끼었기 때문이다.

"그래요, 사랑은 사랑 그 자체여야 하죠."

"맞아요,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1권, 146쪽)

인습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고 해서 딱딱하거나 무미건조하지만은 않다.

남자, 여자 편가르려 하거나 자신의 미래를 배우자에게 떠넘기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사랑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멋진 말들을 만들어내는데...

그게 달콤하고 말랑말랑하고 로맨틱한 동시에 치열하고 가열차기도 하다.

 

 "사람 마음은 알 수 없어.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사랑도 그런가봐. 사람의 몸에서 가장 신비로운 부분은 심장이래. 두 분은 감정 표현보다는 심장으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한 거야."(1권, 119쪽)

 

사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가슴을 비집고 들어와 머리를 탁 치는 느낌을 주는 거라 생각해.(1권, 129쪽)

 

내가 사랑한 사람은 잭 말론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환영인지도 몰랐다.(1권,204쪽)

 

 처음에는 사랑이 나를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줄 거라 기대했다. 사랑이 내 불완전한 면을 보완해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아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아픔을 들춰내고 들쑤시는 경험일 뿐이었다. 사랑은 온갖 감정의모순들로 가득찬 허구의 세계일 뿐이었다.(1권, 324쪽)

장담하고 예측할 수 있으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서 안달나거나 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때때로 기막힌 우연을 가지고 필연이나 운명 등으로 가장하려 한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여기서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당신이 좋으면 나도 좋아요."(2권, 6쪽) 

오히려 사랑하는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무조건 맞춰가겠다는 희생 정신이 그럴 듯 하다.

눈에 콩깎지가 씌면 곰보도 보조개로 보인다는 속담도 있듯이 말이다.

 

"ㆍㆍㆍㆍㆍㆍ산다는 건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대가를 치르는 것."(361쪽)

"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새삼 깨달았어. 삶이란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앙이라는 사실을ㆍㆍㆍㆍㆍㆍ. 인생이라는 이야기에는 사실 해피엔딩도 비극적인 결말도 없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간직한 사연이 있지만 해결을 보지 못하고 그냥 끝나 버리게 돼. 대개는 혼란의 와중에 갑자기 끝나 버리지. 우리의 생이 종착점이 있는 우수라장이라는 사실만 안다면ㆍㆍㆍㆍㆍㆍ."(2권,362쪽)

다시 말해, 사랑이나 행복 따위는 따가움과 따뜻함, 달콤함과 중독, 배신과 용서 등을 동시에 지닌 양가 감정이라는 거다.

어떤 감정을 선택하는 지는 우리의 노력여하에 달린거라는 거다.

노력을 가장한 논리적 오류에 빠지면 위험한데...

사랑뿐만 아니라, 행복이나 증오, 용서 따위의 감정을 대물림 되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의 복이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는 얘기는, 화 또한 대물림 된다는 얘기이다.

이게 설득력 있으려면,

내가 누구의 배우자, 며느리나 사위 따위를 취사선택할 수 있듯이,

누구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들이나 딸이라는 자리는 우리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닌데,

이런 감정들이 대물림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시큰둥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임신 후 첫 삼 개월 동안은 여섯에 하나 꼴로 유산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 병력 때문에 특히 더ㆍㆍㆍㆍㆍㆍ."

"셋 중 하나로 확률이 내려가겠죠.ㆍㆍㆍㆍㆍㆍ"(2권, 229쪽)

 

 

이 부분은 번역이 잘못 되었다.

확률은 '내려가다 & 올라가다'라는 표현 대신 '높다& 낮다'라고 표현하는 걸로 알고 있다.

여섯 중 하나가 셋 중 하나가 되는 것은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다.

 

어찌되었건 오랫만에 참 재밌고 좋은 책을 만났고,

그리하여 남은 이 여름, 아마도 이 사람의 전작을 들추지 않을까 싶다.

 

 

 

 
 

 

 

 

 

 

 

 

임재범 - 정규 6집 To… [CD+DVD]
임재범 노래 / 로엔 / 2012년 7월

 

행복(Happiness)의 철자는,

 'y(=why[waɪ]/왜, 어째서)(Happ'y'ness)가 아니라 'i(=I [aɪ]/나는, 내가)'(Happ'i'ness)이다.

-행복은 '왜? 나에게 없는거지?'하는게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다!'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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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8-07 17:42   좋아요 0 | URL
Y(Why) am I not happy??? 의 자세가 아니라,
I am happy, I must happy now-here.의 자세여야 한단 말인가요???

양철나무꾼 2012-08-07 17:57   좋아요 0 | URL
행복(Happiness)의 철자는,

'y(=why[waɪ]/왜, 어째서)(Happ'y'ness)가 아니라 'i(=I [aɪ]/나는, 내가)'(Happ'i'ness)이다.

-행복은 '왜? 나에게 없는거지?'하는게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다!'라는 의미.

그래서 '추구'라는 제목이 좀 그래요, ㅋ~.

숲노래 2012-08-07 19:31   좋아요 0 | URL
어떤 모습이나 삶을 놓고 '반대말'을 찾는다면,
'사랑'이라 할 때에는,
"사랑을 뺀 모든 것"이 모두
사랑하고는 어긋나거나 엇나가는 말이 되리라 느껴요.

곧, 사랑한테는 사랑만 같은 말이고,
사랑 아닌 모든 말은 '사랑이 아니'니까
반대말이 되겠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미움이든 무관심이든 무엇이든,
사랑하고 반대말이 되겠지요.

양철나무꾼 2012-08-10 16:45   좋아요 0 | URL
저도 누구에게 배웠는데요~^^
반의 관계에 놓인 말들도 여러 종류가 있대요.

1) 모순 관계 : 두 부류로 나뉘어서 넘나듦이 없는 관계
예) 남자-여자, 암-수, 호적상 성인-미성년...

2) 단계적 반의 관계 : 정도가 강하거나 약한 거로 나누어지는 거
예) 뜨겁다-차갑다...의 사이에는 조금 뜨겁다. 미지근하다, 조금 차갑다. 많이 차갑다. 무지 차갑다...

3) 상대적 반의 관계 :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서 반의 관계로 무리지어지는...
예) 조선시대 군대는 육군-수군, 지금은 육군-해군-공군...

하지만, 뭐 이렇게 나눌 필요 있을까요?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모자란 시간인걸요, ㅋ~.

cyrus 2012-08-07 20:13   좋아요 0 | URL
며칠 전에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를 읽고 난 후부터 이 소설도 끌렸어요. 요즘에는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 읽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

양철나무꾼 2012-08-10 16:47   좋아요 0 | URL
네, cyrus님 여름엔 달달한 사랑 얘기도 좋지요, ㅋ~.

이 책의 주제는 말이죠~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고,
행복이라고 볼 수도 있고,
용서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해요.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는 '독자'의 몫인 듯~^^

프레이야 2012-08-07 21:1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대문사진 분위기 있어요.^^
임재범 6집이군요. 노래 좋으네요. 지금 마구마구 지름신 강림하려고 해요.ㅎㅎ
더글라스 케네디의 이 책, 좋더란 말이죠? 양철나무꾼님의 그 정도 말씀이면 저도 꽤 끌리는 책이네요.
공경희씨의 번역문은 대체로 딱딱하다고 느끼게 되더군요. '추구'라는 말을 저도 한 번 붙잡고 곱씹어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 행복의 반대말은 뭘까요? ......

양철나무꾼 2012-08-10 16:50   좋아요 0 | URL
대문 사진, 정말 분위기 있어요?
프레야님처럼 센스있는 분에게 분위기 있다는 소리 들으니 좋아요.^_____^
임재범도, 더글라스 케네디도 올 여름 완소 콜렉션이랍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행운'이 아닐까요?ㅋ~.
잘 지내시죠?

L.SHIN 2012-08-08 13:29   좋아요 0 | URL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 동감할 수 밖에 없는 정의입니다.

갑자기, (아니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계속 추구해왔는지는 모르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대화다운 대화는 뭘까, 하고 생각을 해야만 해서 이 소망은 또 다시 무의식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2-08-10 16:55   좋아요 0 | URL
전, 대화의 기능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마음이 그 또는 그녀에게 가 닿을 수 있고,
또 그 또는 그녀의 그것이 내게 전해져 올 수 있다면...
소리가 되어져 나오고 아니고는 차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론 기다림도 대화가 되고, 그리움도 대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진짜 그러게요, 닉 까먹을뻔 했다는~ㅠ.ㅠ

감은빛 2012-08-08 15:33   좋아요 0 | URL
해피니스의 철자에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군요!
저는 자꾸만 Y가 들어간 철자의 자세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저자의 전작들 표지가 제법 낯이 익네요.
저도 한번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더위에 잘 지내시나요?
빨리 무더위가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양철나무꾼 2012-08-10 16:57   좋아요 0 | URL
올 여름은 님도 저도 바빴나 봐요~--;
작년 여름만 해도 복근을 이쁘게 만든다고 상상하며 해피해하셨는데 말예요, ㅋ~.

전 엄청 좋았어요.
근데 감은빛님은 소설 잘 안 읽는다고 하시지 않으셨었나, 쿨럭~(.,)

북극곰 2012-08-17 08:48   좋아요 0 | URL
저도 집에 있는 '위험한 관계'를 시작해보는 걸로~~ 이 리뷰에 답례합니다~
나무꾼님 잘 지내시죠? 그래보여요. ^^
 

엊그제 복날이라고 이런저런 인사치레의 문자와 메일 들을 받았는데,

양은 냄비 속에 예쁜 강아지 얼굴이 담긴 그림 문자가 인상 깊었다.

그때 사석원의 '꽃을 씹는 당나귀'를 보던 중이어서,

그중에서도 '복날, 생애 마지막으로 짖어 볼까나'를 보던 중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엽기적이란 느낌과 더불어 만감이 교차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석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 좋은건 조금 좋은대로,

많이 좋은건 많이 좋은대로,

좋다고 설레발을 치고 다니지만...

아주 좋은건 꼭꼭 숨겨두고 나 혼자 몰래 슬그머니 훔쳐보듯 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와도 나눠갖고 싶지 않다.

 

 

 

 

 

 

 

 꽃을 씹는 당나귀
 사석원 글.그림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06년 6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석원을

내가 또 아주 좋아하는 손철주가 책머리에 '이 책에 부쳐'라는 글을 써 거들었으니,

이 책은 내게 '킹왕짱' 아주 좋은 책이 되시겠다.

'이 책에 부쳐'를 조금만 옮겨보면 이렇다.

 

'찰나의 황홀'은 '영원'이 부럽지 않다.

그리하여 기꺼이 눈먼다.

손철주 미술칼럼니스트, '학고재'주간

 

 ㆍㆍㆍㆍㆍㆍ

  나는 사석원의 그림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 그것은 '영원을 부러워하지 않는 찰나의 황홀'이다. 사석원은 나에게 말했다. "나에게 내일은 없어요." 무슨 게송이나 읊조리는 투로 '그림 그리는 건달'의 적막 또는 행복을 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그는 적막에 싸여 색칠로 올인 하고 행복에 겨워 붓질로 밤새운다. 그에게는 내일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없다. 있다면 오직 그리는 순간만이 있을 따름이다.

  ㆍㆍㆍㆍㆍㆍ그 순간 그는 '내일은 없어요'가 아니라 '죽어도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섬광처럼 명멸하는 황홀, 영원과 맞바꿔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환각, 그 황홀과 환각을 부르는 극소량의 미약을 사석원은 캔버스에 살짝 뿌려놓는다. 그의 미약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즐거이, 서둘러, 눈먼 지지를 보낸다.

ㆍㆍㆍㆍㆍㆍ

 몇 순배 소주잔이 돈 뒤 묻고 답했다. 그림 그릴 때 떠오르는 작가가 따로 있는가. "어릴 때부터 반 고흐를 모사해서 그런지 색감이나 터치, 마티에르에서 그의 영향이 남은 것 같다. 형태는 피카소가 좋고, 동물을 그릴 때는 치바이스(劑白石)가 떠오른다." 치바이스가 그랬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두 손이 있다지만 사람들 가려운 곳 긁어주기가 가장 어렵더라.' 감탄할 만한 작가는 있는가. "이우환 선생의 내공이 대단하더라. 김종학 선생의 새를 보고 놀랐다. 나의 새는 발랄하기만 한데 그의 새는 애처롭다. 그 그림 앞에서 의기소침했다." ㆍㆍㆍㆍㆍㆍ사는 고통과 세상의 모순을 그려볼 생각은 없나. "세상은 뭐라 해도 아름답다. 억압과 독재 속에서도 별은 빛나더라."(6~13쪽 부분 발췌)

 

내가 킹왕짱 좋아하는 이 책의 제목은 '꽃을 씹는 당나귀'이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글씨로 '우울한 당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마술 같은 그림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내가 킹왕짱 좋아하는 책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선뜻 권하기가 좀 망설여지는 이유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 또한 치명적이고,

그림에서 풍겨나오는 유혹의 아찔함도 치명적이고,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도, 그가 빚어내는 글을 통해서라면 치명적으로 바뀌어 버린다.

 

일단 그를 알게 되면,

그가 만들어내는 마법에 '푹~'빠져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손철주를 빌리지 않더라도 제대로 홀리게 된다.

 

그런데, 내가 '홀리다'라는 한순간의 꿈같고 야릇한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건,

그의 책을 보는 동안 '잠깐'이지 '내내' 마법이 지속되지는 않아서이다.

깨어나보면 마법이나 꿈이었던 듯, 일상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평생 마법이나 꿈 속인양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되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 아닐까?

현실에 단단하게 발 딛고 있을때 마법이 놀라운 것이되고, 꿈이 황홀한 것이 되지 않을까?

우울이 바닥과 뽀뽀를 할 정도로 참담해 본 사람만이, 마음이 치유되는 기쁨을 제대로 흠뻑 누릴 수 있듯이 말이다.

난파를 당하고 상처를 입어 후회하지만,

배는 또다시 항구를 향해 항해를 계속한다.

굳은 의지 때문이라고?

아니다, 심각한 건망증 때문이다.(39쪽)

늘 난파당하고 상처만 입는 사람이라도,

난파에서 구조되고 상처를 치료 받아, 치유되어본 경험이 없다면 상처를 덤덤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프지 않은게 아니라, 남들도 그정도쯤 아프리라고 생각하고 견뎌낸다.

그런 의미에서,

상처 따윈 받지 않고 단조롭게 살거나,

상처를 받으나 고통을 인식조차 못하고 무미건조하게 살기보다는,

감정이 끝에서 끝으로 치닫기를 밥먹듯 해서 bipolar라는 소리를 듣고 살더라도 풍성하고 입체감 있게 사는 삶을 택하겠다.

 

난파 당하거나 상처가 깊을 때는 분명 고통스럽고 힘들테지만.

상처를 치료받고, 마음이 치유되는 기쁨 또한 온몸으로 통과하듯 느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처도 힘이 될테고,

그런 의미는 상처를 치료받고 마음이 치유되는 기쁨일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테니까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때론 심각한 건망증이 은혜로운 축복일 수도 있는 것이고,

때론 좋은 기억력이 지독한 형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장미꽃 백 송이

_달밤

 

난 살면서 장미꽃 백송이를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다.

휴, 아무래도 인생 헛살았다.(45쪽)

그런 의미의 연장선 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예쁘고 고운 것만 눈에 들어왔었다.

현실을 왜곡하고 굴절하더라도,

눈물 그렁그렁 달린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왠지 멋드러져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본질은 없는 화려하고 현란한 수식에 눈이 멀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땅바닥에 발디디지 않은 현실은 사상누각이라는 걸 알겠다.

누추하더라도 경험하고 체화하여 내것으로 받아들였을때만,

소박하고 수더분한 일상이 되는 것이다.

 

혹자들은 사석원의 그림을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이라고 폄하한단다.

그 혹자들을 향하여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고 감동받아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묻고 싶어진다.

축하카드가 됐건 땡큐카드가 됐건 마음이 담긴 카드를 보내거나 받아본 경험이야말로

춥고 모진 세상을 따뜻하게 건너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걸 경험하지 못한 걸테니,

그들을 향하여 혀를 끌끌 차고 싶어진다.

 

암튼, 그의 꽃들이 너무 예뻐 친구에게 꽃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난 실체적인 꽃은 가꿀 자신이 없는 위인이다~ㅠ.ㅠ)

'꽃그림도 그려보고 하겠지만~'하면서 되게 튕긴다.

그러면서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혹시 알아 30년 뒤에 내 그림이 자기 팔자를 고쳐줄지~, ㅋ~.

아무리 둘러봐도 파랑새를 찾지 못해

통닭을 파랗게 칠했다.

아쉬운 대로 쓸 만하다.

 

_파랑새와 소녀

 

아주 소중한 존재라도 놓칠 때가 많아.

너무 가까이 있으면 더욱 그래.

가까이 있는 건 더 안 보이나 봐.

지금껏 엉뚱한 곳에서

바보 같은 꿈만 꾸고 있었으니ㆍㆍㆍㆍㆍㆍ.(49쪽)

그래서인지 요즘은 내곁의 작고 누추하고 소박한 일상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파랑새를 날려 보내고 울 것이 아니라,

내 그릇이 통닭을 담을 여건 밖에 안되면,

기꺼이 통닭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여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꾸 의심하고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 발명이란게 가능하고 세상은 좀 나아지는 걸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통닭에 만족하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에서 세상의 어떤 아트는 출발할테고,

만족과 수용의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가짐과 시선을 익혀가면서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느끼는게 어떤 아트가 아닐까?

효도란 어른들과 오래오래 수다 떠는 것

 

 

싱싱한 생선회 같은 맛은 아니야. 쫄깃한 맛은 없거든. 똑 쏘는 짜릿한 맛도 없고, 상큼하게 입맛을 돋우지도 않고, 매콤한 양념을 넣은 칼칼한 맛도 없고, 자르르 윤기 흘러 군침을 삼키게 하지도 않고. 어떤 맛인가 하면, 넉넉히 물 부어서 푹 끓인 누룽지탕에 곰삭은 젓갈을 얹어 먹는 맛이랄까. 유별난 맛은 없어도 질리지는 않잖아. 뱃속도 편하고.

도대체 그게 무슨 맛이냐고? 뭐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아오신 이야기 맛이지.(59쪽)

그런 의미에서 어떤 아트는 유별난 맛은 없어도 질리지 않고 뱃속이 편한 그런것이 아닐까?

적어도 내가 추구하는 아트는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의 그림도 그렇지만, 그가 쓴 글을 보고 있으면 겸손해진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마리앙토와네트적 사고는 하지 않게 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발상 자체가 인간 중심적 사고의 단적인 예가 아닐까?

사람의 목소리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건 우리가 사람의 목소리만을 해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때 새의 입장에선 사람의 목소리는 아무 의미없는 것이다.

 

발상을 조금만 전환하여 인간 중심의 단조로운 사고에서 탈피하면

의미있는 것의 기준이 충분히 바뀔 수도 있다.

세상은 획일된 의미를 부여하기엔 훨씬 다채롭고 버라이어티하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다 인간의 삶만큼은 의미있는 것이 되고,

그렇게 되면 마냥 겸허하고 넉넉해진다.

 

새들의 울음소리에는 왜 귀 기울이지 않나.

_새와 염소

 

뉴스에 나오는 사건만 사건이 아니다. 맑게 갠 하늘도 사건이고 붉게 노을 진 하늘도 사건이다. 지난 수천억 년 동안 똑같은 풍경은 한 번도 없었고 또 앞으로 수천억 년이 지난다 해도 똑같은 풍경은 단 한 번도 없을 테니까. 그런 걸 사건이라고 받아들일 때 세상은 신비롭고, 그런 세상에서 사는 인생이 즐거운 법이다.

 

 

피카소처럼 새들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사람의 목소리만 의미 있는 게 아니라고 깨닫게 될 때, 세상은 아름답고 그런 세상에서 사는 인생이 행복하다. 모두 모두 만세, 만만세다.(61쪽)

 

오늘은 누굴 붙잡고 석양주를 마실까.

_황혼

 

 

평생 앞을 보지 못했던 헬렌 켈러가 그랬지. 만약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날엔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자신을 돌봐준 선생님과 마주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고. 석양은 매일 봐도 언제나 감동적이야. 신이 내린 축복이고 선물이지. 그런 기쁜 순간에 그냥 갈 수 없잖아.

대포 한잔 어때?(65쪽)

 

그의 모든 글들이 시에 가까운 격을 지녔고 그래서 더 감동적이지만,

이 글이 유독 내 마음에 와닿은 이유는 이현세의 '해질무렵 한걸음만 딱 더 걷다보면'이 연상되어서이다.

 

섬에 사는 당나귀

_동백꽃과 당나귀

 

 

섬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사람도, 강아지도, 물새도, 망아지도 모두들 똥구멍을 조심해야 한다.

바람 때문이다. 어찌나 드센지 똥침보다 더 무섭게 파고든다.

몸속으로 바람이 들어오면 간지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한참을, 아주 한참을 뛰어다녀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심하병도 난다.

그러나 그런 바람도 아무한테나 가지는 않는다. 자기가 좋아해야지 바람을 넣는다.

섬에선 바람이 왕이다. 바람이 싫어하면 섬에선 너무 외롭다. 더 이상 섬에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니 너를 열어봐. 굳게 닫힌 너 자신을 활짝 열어 바람을 맞아봐.

바람과 네가 한 몸이 될 때 넌 비로소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이 작은 섬에선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제주는 에로틱해서 좋다. 바람과 바다가 어쩜저리도 진하게 몸을 섞을까. 온종일 그러고도 모자라 밤새도록 부둥켜안고 요동친다. 두 점만 먹어도 후끈거린다는 제주 해삼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그러니 제주 여자는 제주를 떠나지 않는다. 비실한 육지 사내론 성이 안 찰 테니까. 평생 본 것이 으르렁대는 음란한 바다와 바람의 성난 욕정인데 바보인가, 뭐가 아쉬워 육지로 나갈까. 그래서 제주엔 여자가 많은가 보다.(185쪽)

이 두편의 글들은 완전 죽음이다.

어떻게보면 해탈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한껏 에로틱한 것이 섹쉬하기까지 하다.

음란하면서도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다였으면 예술적이라고 하기 민망할텐데 말이다.

힘있고 역동적인것이 화끈하기까지 하다, ㅋ~.

 

왕중왕

_호랑이와 모란

 

 

어느 더운 여름날 동물원 구경을 갔다.

호랑이가 보였다. 호랑이가 동물 중의 왕이라면서? 그런데 너무 놀랐다. 그 누렇고 커다란 이빨을 가진 무서운 호랑이 옆에 나무가 버젓이 서 있는 거다. 나무는 아주 용감했다. 호랑이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자 잎사귀까지 흔들어대며 깔깔 웃는 거였다. 호랑이는 얌전히 나무 옆에 엎드려 있었다. 그 모습이 매우 비굴하게 보였다. 그렇게 힘센 나무가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동물원의 '짱'은 바로 그 나무였다.

그래서 호랑이 대신 하루 종일 나무만 바라보다 왔다.(91쪽)

이 글은 바라보는 시각이 신선하다.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빛 바래기 시작한 인생은 다시 반짝거릴 수 있고,

글은 양념을 친 듯 재밌어지는 예인 것 같아서 좋았다.

 

나는 짜다. 씀씀이가 인색하다는 얘기다. 한번 내 손안에 들어오면 그걸로 끝이다. 모두 내 것이다. 엄청난 욕심이다.

음식도 그렇다. 맛난 음식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도로 내보내기가 아깝다. 어떻게든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더니 그만 변비에 걸렸다. '자업자득.'

우여곡절 끝에 욕심을 버리기로 맘먹었다. 힘을 준다. 용맹정진이다. 숨죽이며 기다린다. 해ㆍ탈을 기다린다.(101쪽)

이 글에선 의학적 조예까지 느껴진다.

변비치료의 제 1원칙, 욕심을 버리고 붙잡지 말고 다 내어주자, ㅋ~!

만화방창萬化方暢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_좋은날

 

 

일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한다고?

그렇다면 그것들과 더불어 놀 줄도 알아야지.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거든.

놀자, 한바탕 징하게 놀아보자.

즐거운 인생을 위하여!

 

 

만화방창 : 봄이 되어 만물이 한창 자라남(115쪽)

이 글도 좋다.

일도, 사람도, 세상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즐겁고 신 나게 놀면 좋은날은 도래한다는 듯 하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고 사랑도 잘한다, ㅋ~.

 

술 마시고 필름이 끊겨봤다면

드디어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 거지.

 

술 마신 밤

 

그린 그림이 우쭐해서 한잔.

그린 그림을 잊으려고 한잔.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재기를 다짐하는 한잔.

그러니 그림 그리는 한 끊임없이 한잔.(143쪽)

 

나도 그림을 그리고 안 그리고를 떠나서 적어도 술 한잔은 할 수 있어야 할텐데 싶은 마음이 들게 한 글이다.

필시 자아도취 수준이지만,

난 열정도, 재주도 어느정도 갖추었는데...'끊임없이 한잔'이 안 되어,화가로서 자격미달에, 함량미달이다.

요밑에 고독해야 화가는 진정한 행복을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선 무난히 합격점인데 말이다, ㅋ~.

난 은근 스스로를 따 시키는 걸 즐기는데, 자발적인 유폐생활 속에서 자유로운 삶이 실현된다는 거랑 일맥상통한다.

ㆍㆍㆍㆍㆍㆍ

지금껏 나는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따라서 늘 혼자 일하다 혼자 노는 게 하루의 일과다. 말을 배우기 전부터 지금까지 주로 외톨이였다. 외톨이의 고독이 좋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몰려오는 고독을 사랑한다. 고독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겐 행복이니까.

화가의 길은 고독해야 된다고 믿는다. 화가가 외톨이라는 건 숙명이다. 외톨이가 될 때 비로소 화가는 진정한 행복을 가질 자격이 생긴다. 외톨이만이 자유롭기에 그렇다. 자유롭지 못한 화가는 불행하다. 자발적인 유폐생활 속에서 자유로운 삶이 실현된다. 유폐기한이 지나면 훨훨 날다가 때가 되면 다시 유폐다. 나는 평생 그렇게 살 것이다.(149쪽)

나와는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세상은 비로소 내게 다가온다.

 

 

기분 나빠도 머릿속에선 받아들여야지 그러는데, 실제로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30년 넘게 사귄 친구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다.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안 보게 될 때도 있다.

오히려 별로 보지 않았던 사람은, 나와는 다른 면이 많아도 꽤나 너그러이 인정해주고 자상하게 배려해준다. 그러나 오래 사귄 친구나 가족에겐 나 좀 봐달라는 투정을 즉각즉각 부린다. 참지 않고 심술을 내는 것이다.

그런 어리광은 나이 든다고 적어지는 게 아니리라. 나는 그렇지 않은데 남들은 모두 잘못됐다는 식이면 천상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153쪽)

이건 언뜻 외톨이라는 의미로 읽혀,

언뜻 그래서 외롭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난 낯을 가린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낯을 가리지만, 일단 내 안에 들이고 난 후에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다.

아니 믿을려고 노력한다.

내편을 향하여서는 감추지 않고 내어보일 수 있고,

나와 달라도 조건이나 토달지 않고 감싸안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은, 옷을 고르는 취향과도 비슷하다.

난 좋은 걸로 용도에 맞는 몇 벌 이상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반면,

누군가는 좋은 옷 자체가 사치라며 싼 걸로 여러벌 구입해서 자주 바꿔 입는 걸로 기분 전환을 한다.

어느 쪽이든 취향과 개성의 문제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의 문제는 아니지 싶다.

 

사석원의 그림은 당나귀나 새도 좋지만, 꽃도 좋다.

당나귀나 새와 꽃이 같이 있는건 더 좋다.

난 그동안 어쩌다가 받게 되는 꽃선물이 별로였다.

이건 꽃 자체가 좋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잘 키우거나 돌볼 자신도 없으면서 나혼자 보고 좋자고 들이는 건 직무유기라는 생각에서였다.

근데, 이런 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잘 보관할 수 있을 것 같고, 돌볼 수 있을 것 같고,

소위 길들일 수도 , 길들인것에 대해 책임을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석원의 그림에 등장하는 당나귀나 새나 꽃이라면 무한 애정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딨어? 널 부르고 있잖아.

_붉은 튤립

 

<록키>라는 영화는 실베스타 스탤론이라는 무명 배우를 단번에 스타로 만든 히트작이다. 주인공 록키는 별 볼일 없는 삼류 복서. 우연히 기회를 얻어 챔피언에 도전하게 된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끝까지 버틴 록키는 시합이 끝난 링에서 애인의 이름을 외친다. 어눌하지만 비장한 목소리로 절규하는 그 모습이 참 오랫동안 기억났다.

 

당신은 누군가를 그렇게 애타게 불러본 적이 있는지. 부르고 또 불러서 널 사랑한다며 와락 껴안아본 적이 있는지. 으스러질 만큼 껴안고는 "널 사랑해, 죽도록 널 사랑한다"라고 고백해본 적이 있는지. 시간이 별로 없다. 인생이란 그리 길지 않다. 심장이 타버릴 만큼 장렬하게 사랑해보고 사라지자!(167쪽)

이런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해본적도...

목청껏 외쳐 불러본 적도...없는 것 같다.

화끈하고 열정적이고 그래서 단도직입적이었음 졸겠다.

그 누군가와 나 사이에 사랑하는, 죽도록 사랑하는 마음들로 가득 차서

중간에 다른것들이 끼어들지 못했으면 좋겠다.

 

 

 

너를 만나기 전엔 난 우는 법을 몰랐는데ㆍㆍㆍ

_반달

 

 

함께 있고 싶은 남자,

지켜주고 싶은 여자가 되기까진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란 다름 아닌,

희생과 인내가 범벅이 된 사랑의 아픔.(169쪽)

 

위의 글, 반달은 밑의 글 보름달과 묘한 대구를 이룬다.

솔직히 반달의 그림과 글은 좀 형이상학적이어서 제목 반달을 보기 전까지는 의미가 모호했다.

사석원의 그림 중에서 내겐 가장 어려웠다.

보름달

 

내 소원은 오직 한 가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갑자기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174쪽)

 

글은 보름달처럼 풍성하진 않지만,

보름달을 두고 저렇게 염원하는게 갸륵하고 가상해서...

만약 내가 만남과 이별 따위를 관장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들어줄 것 같다.

당근 난 만남과 이별 따위는 관장하지 않고,

그래서 어떻게도 할 수 없으니,

저 기도에 마음을 보태 염원하는 수밖에 없다.

부디, 제발, 적어도 '갑자기' 이별하지 않게 해주세요, 네에~?

 

이런 글과 그림을 구사할 수 있는 사석원이, 그의 이 책이 진짜 예쁘고 맘에 든다.

그런 그의 '마무리 하는 글'은 더 예쁘기만 하다.

 

ㆍㆍㆍㆍㆍㆍ

이 책이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있을 멋진 꿈과 사랑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그리하여 우리들의 신나는 인생을 부추기는 친구가 되길 바랄 뿐이다. 모두들 힘을 내자.(213쪽)

 

사석원과 '함께'라면 좀 더운 여름이지만,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덥다고 땀 흘리고 주저앉아 버리기엔 쫌 신나는 인생이지 않은가 말이다.

볕이 있어 덥고 땀나지만,

빛이 있어 밝고 환하지 않은가 말이다.

 

 

 

 

 

 

 

사석원과 더불어,

내가 또 아주 좋아하는 손철주의 새 책이 나왔다.

세상에 읽을 책들은 넘쳐 나고,

책만 읽기엔 세상은 재미난 일로 가득하다.

사석원 뒤에 줄 서는게 빠를까, 아님 손철주 뒤에 줄 서는게 빠를까?

꽃그림을 그려달랬더니 30년 뒤 운운하며 튕기는 친구 뒤에 줄 서는게 가장 빠르겠다, ㅋ~.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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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7-25 16:37   좋아요 0 | URL
39쪽 인용문을 읽고 그 다음 부터는 휘리릭 내려 읽었어요..........
저도 홀린듯 장바구니에 이 책을 폭 담았습니다.^^

양철나무꾼 2012-07-25 16:5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마중물님~^^
전에도 댓글 남겨 주셨었는데...
답방 했었는데 빈 서재여서 인사를 못드렸었어요.

이제 알라딘 서재에 재미 좀 붙이셨어요?^^

근데, 죄송해서 어쩌죠~--;
품절인 책을 이렇게 부추겨서~.

그림, 나중에라도 사진으로 몇장 찍어 올려보죠, ㅋ~.

2012-07-25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6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7-25 22:21   좋아요 0 | URL
나에게 내일은 없어요.
죽어도 좋아요.

아..옛그림..저는 르네상스 그림을 좋아하고 양철님은 옛그림을 좋아하시는 구나..(깨달음) 전에도 이런 책을 여기서 봤어.. 저는요, 그런 문자 보내는 사람도 같이 죽여버릴 거예요!(단호)

양철나무꾼 2012-08-07 18:07   좋아요 0 | URL
단호하신 아이리시스님~!

그런 생각을 해요.
소나 돼지나 닭이나 개나...뭐가 다르다는 건지~.
어쩜 인간 중심의 독선적인 사고가 아닐까 싶어요.

그들이 중심이 되면,
그들은 어쩜 '단호'한 우리의 입장에 허를 찌를지도 몰라요~ㅠ.ㅠ

오늘 말복인데, 보양식 드셨어요?^^

책읽는나무 2012-07-26 11:27   좋아요 0 | URL
30년뒤에 꽃그림 그려주는 친구 뒤에 줄을 서시는 것이 빠를 정도라면??
음~~
더운 여름에 힘을 낼 수 있는 작가라면??
음~~
믿어도 되는 거죠?ㅋㅋ
넘 더워요.지금!
얼음을 입에 물고 있어볼까?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석원이랑 함께 하라는거죠?지금..^^
눈이 시원하면 마음도 시원해질 것같네요.
일단 보관함에 담습니다.정말 줄 빨리 서야겠어요.ㅋ

양철나무꾼 2012-08-07 18:12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에 소나기가 내려서 그럴가요?
아님, 오늘이 말복이면서 입추여서 그럴까요?
아님, 얼음을 입에 무셨다는'책~나무'님의 댓글 덕분일까요?
그럭저럭 견딜만해요, ㅋ~.

전 오늘 기필코 '초계탕'을 먹어야 하겠습니다.
30년 뒤 꽃그림 그려주겠다는 친구 뒤 말고,
오늘 초계탕 먹여주겠다는 친구 뒤에 줄 서려구요~^^

말복인데, 님도 보양식 드셨겠죠?

글샘 2012-07-26 16:10   좋아요 0 | URL
저도 사석원 그림 참 좋아하는데요~ 글도 참 멋지네요~
속이 뻥~ 뚫린 사람 같아 보입니다.

손철주는 '옛 그림 보니 옛 생각 난다' 보신 분이라면 리바이벌 느낌이 날 겁니다.
데자뷰인데... 좀 말투가 다르달까? 암튼 그래요. ^^

양철나무꾼 2012-08-07 18:17   좋아요 0 | URL
사석원은 그림 빨, 글 빨 다 멋지잖아요.
근데 '막걸리 연가'까지 쓰신 분이 술은 혼자서 드신대서 말빨이 어떤지는 모르겠어요~--;

손철주의 '옛그림~'에선 글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면,
요번 책에선 '말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느낌이랄까?
암튼, 그를 통과하면 말이 됐든지 글이 됐든지...성찬이지 싶어요.

말복인데 말이죠~^^

꿈꾸는섬 2012-07-27 16:5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킹왕짱이라니, 꼭 찾아봐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2-08-07 18:19   좋아요 0 | URL
우와~, 꿈섬님이다.
방가,방가~.헤에~^_____^

여기 소개한 책들 다 좋아요.
카톡 보니, 현수는 무럭무럭이더군요~^^

차트랑 2012-07-31 12:30   좋아요 0 | URL
효도는 어르신들과의 수다에 있다....
이거 참 공감가는 말씀이로군요..

요즘은 날이 무척 더워 어르신들께서 힘들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력이 약해지실 수도 있는 계절인지라
자주 문안인사를 드려야 할 때 인 것 같아요.

몇년 전 프랑스에서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 옆에서 숨을 거두신 어르신들의 사례를
보도한 적이 있어 기억이 납니다.
특히 덥거나 특히 추울 때
어르신들께 좀더 신경을....

전화는 울리라고 있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들어 저도 어르신들께 안부를 여쭈어야 겠다 싶습니다.
한동안 서재에 결석하는 바람에
인사를 못드렸습니다.

더위 날,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세요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2-08-07 18:22   좋아요 0 | URL
전화는 울리라고 있는 것이라는 논리라면 말이죠~--;
제 폰은 '캔디폰' 수준이 되셔서 말이죠.

올해는 유독 더운것 같은데,
그 더위가 게다가 9월까지 계속 될 거라네요~.

님도 더위에 기운 잃지않도록 맛난것도 적당히 드시면서 체력안배하시길~!!!
 

철학자 '김영민'은 사람들이 흔히'동무론'이라고 하는, '동무와 연인'이라는 책을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었다.

그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겨레21'에 연재되었던 것을 한권으로 묶어 책으로 낸 것이라는데,

철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품과 '수식어'라 불리우는 형용사나 부사의 사용을 남발하지 않아서 글이 소박하면서도 투박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었다.

 

 

 

 

 

 

 

 

 봄날은 간다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요번에 책을 내셨다는 걸 좀 지나서 알게 되었고,

그랬던 터라 책의 내용까지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은 못하고 일단 책을 구하고 봤다,'봄날은 간다'

어째 제목부터가 그동안 접해왔던 철학서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딱딱한 것보단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게 낫지, 뭐~...

이런 말로 내 자신을 위로하기엔 제목부터가 너무 신변잡기적이었다.

앞의 몇 장을 들추다가 문체가 너무 낯설어, 내가 아는 그 '김영민'이 맞나 책 겉장 앞날개의 프로필을 한참 들여다 봤다.

철학자가 '봄날' 운운하며 날씨나 자연을 들먹이는 것부터가 생경하기만 했는데,

내용이 신변잡기 위주인 걸로도 부족해서 길이까지 짧은 것들이 많아...

그런 길이의 글로는 철학자 아니라, 철학자 할아버지라도 생각을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으로 펼쳐나가기 힘들것 같았다.

과연 글들이 날 것은 아닌지, 풋내가 나는건 아닌지, 뜸이나 들었는지, 상상력이 이리저리 널뛰기를 하는건 아닌지, 지나친 생략으로 심한 비약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익기를 놔두었다가 물러버린건 아닌지, 나의 걱정이 기우가 되길 바랄 뿐이었지만 솔직히 그마저도 종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수필집을 읽는 기분이었다.

어느 부분까지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누워 설렁설렁 넘기다가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았고,

두번, 세번 거푸 읽고는 '서문'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내 곁의, 치자꽃에 물드는 것은 운명이다. 그 운명을 값싼 낭만주의로 벗겨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허영이다. 그러므로 내 물듦을 가장 낮게 예찬하는 것은 (R.지라르의 말이 아니라도) 겸허한 개종이다. 오직 그 개종에서야 치자꽃의 진정한 향기는 다시 피어오른다!

 

 

 

나는 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말보다 빠르게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 그 말은 다시 허영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갈 수 없음을, 오직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서 증명하는 것만이 유일한 개종이다.

 

내 선물은, 마치 내 편지처럼, 네게 너무 쉽게 전달되거나 영영 전달되지 않는다. 그 사이 선물은 온통 오해이거나 허영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방식 그 전체가 하나의 선물로서 (어느 순간, 휘영청!) 떠오를 때에만, 그 선물은 자신을 잊은 채 고스란히 네게 도착한다.                                                          ('치자꽃'  전문)

내가 두번, 세번 거푸 읽고 자세까지 고쳐 앉아 가며 다시 읽은 글은 '치자꽃'이다.

이 말은 곧 행동이나 실천이 동반되지 않은 말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고, 그걸 여기서 '허영'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말보다 빠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그럭저럭 너 없이 살아간다는 거다.

결국 빠다 발린 말(= 감언이설)이었고, 위 문단의 표현을 따르자면 '허영' 또는 '오해'이다.

행동이나 실천이 하나도 약속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저렇게 위험한 일인데,

그래도 한번쯤 감언이설을 꿈꾸는 걸 보니, 내 운명은 치자꽃에 물드는 것이든지 값싼 낭만주의 쯤은 두눈 질끈 감고 극복해 낼 수 있다는 배포인가 보다~--;

 

3. 산책은 술보다는 차(茶)와 같아, 혼자 걷는 게 좋다. 물론 혼자 걸으면서 '생각'을 하라는 게 아니다. 혼자 하는 생각은 대개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종종 자익적(自溺的)이다. '공부'하지 않는 이들에게 오히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산책의 요체는 오히려 생각과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거울의 바깥으로 몸을 끄-을-며 외출한다.

동무들과 나누는 산책의 기쁨도 결코 적지 않다. 하늘과 나무와 바람에다가, 다정하고 서늘한 대화까지 섞인다면 인생의 천국을 따로 구할 노릇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요체는 중용인데, 말이 걸음을 죽여도 곤란하고, 걸음이 말을 놓쳐도 안 된다. 다변(多辯)인 자는 말수를 줄여야 하고, 눌변인 자는 걸음에 의지해서 입을 벌릴 수 있다.

  

3-1. 그러면 동무가 아니라, 연인과 산책할 수 있는가? 내 답변은 '노'(努)! 즉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연인과 더불어 산책하기 어려운 것은, 우선 연정은 욕심이지만 산책은 의욕이기 때문이다. 양보, 눈치 보기, 그리고 들뜸은 모두 산책에는 치명적이고, 연정이란 무릇 의도의 옹두리에 얹혀 근근이 성립하는 것이니, 산책이라는 그 허소의 길과 어긋난다.                                     ('산책, 극히 실용적인 지침들' 중 부분)

그가 '봄날은 간다'며 우리에게 무덤덤하게 들려주고 있는 얘기는 언뜻 보기에는 붓 가는대로 쓰여진 신변잡기 위주의 글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런 글에서도 자연의 이치는 배어나오고 있다.

방심하고 잊고 있다가, 어느 순간 극도로 절제된 문장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인생과 인간이라 불리우는 것들의 존재의 의의를, 다시말해 자연의 이치를, 소위 '철학'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흔히 철학자들이라고 하면, 어려운 철학사상이나 철학이론 들로 중무장한 사람들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어여삐여겨서 쉬운 한글을 만들었다지만,

철학자는 어려운 철학사상이나 철학이론을 일부러 어려운 철학용어를 써서 구사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원어로 된 철학 사상이나 사람이름을 따라읽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난,

철학용어를 쉬운 우리 말로 풀어쓰는 건 엄두 내기 힘들더라도,

예를 일상 생활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적당한 쉬운 말이 없다면 자연에서 일례를 찾아 연관시켜서 생활에서 터득하게 하려 노력한다.

일상에서 깨닫게 되고, 깨달은 연후에야 비워내게 되는 그런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일상, 자연과 철학을 연결하는 그 비워냄의 매개가 그에게는 걷기로 대표되는 '소풍'또는 '산책'이다.

 

ㆍㆍㆍㆍㆍㆍ

인문은 한 치 타인을 포섭하지 못한 채 제 그림자 주위를 실없이 돈다. 볼테르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식은 심오한 방식으로 도덕을 불러오지 못하며, 선의와 계몽은 심오한 방식으로 동무를 불러오지 못한다.

 

'동무'는 무엇보다도 그 '폐허'를 피하는 길이었지만, 적조했던 동무 셋을 만나 맥주를 마시는 오늘, 다시 동무보다 빨리 달리는 폐허의 속도를 무력하게 바라볼 뿐.                  ('동무'보다 빨리 달리는 '폐허' 중 부분)

 

계속 신변잡기 위주의 일상, 또는 자연만을 얘기하나 보다 했는데...어느 순간에 홀연히 본심을 드러낸다.

아무래도 그는 '인문'이 타인을 포섭하고 설득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듯 하고,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물어 일상으로 대중 속으로 다가오려 한다.

그 일련의 노력 과정이 '산책'으로 나타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무는 그 '비워냄'의 노력이 '산책'이 될 수 있는 연유이다.

 

그녀가 내 사랑을 증명하라고 하였다. 차가운 달을 보면서 먼 길을 홀로 걸었다. 길은 무서운 곳이다. 길 위에 놓인 몸이 먼저 알아채기 때문이다. 길의 기하학 위로 좌표 속의 사랑이 증명될수록 그녀는 점점 멀어진다. 식(蝕)이다! 증명하고 죽을 텐가? 아니면 길이 되시려는가?   ( '식(蝕), 혹은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법(1)' 전문)

연정은 욕심이기 때문에, 연인과의 산책은 그저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는데...

노력은 시간이 개입된 일이고, 연정이 그렇듯이 사랑도 몸이 먼저 알아채는 것이 인지상정인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랑을 증명하라는 그녀 너머로 차가운 달이 보인다.

왠지 모르게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생각나고,

'시간이 좀 먹느냐?' 던 말도 생각난다.

시간을 좀 먹듯, 차고 이우는 달을 바라보며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것이 사랑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식(蝕), 혹은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법(4)' 에서 시간의 벌레(蝕)와 함께 과거 속에 기억을 양도하거나, 부지런히 욕망하다가 벌레처럼 죽는 길...둘 중 하나라고 하였고 난 부지런히 욕망하는 '버러지(蝕) 과'인가 보다~--;

왜? 나의 사랑은 머리나 마음이 아닌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걸 보면 말이다.

적어도 나의 사랑은 몸으로 하는 것인가 보다.

 

암튼 나는 이 책의 저자 '김영민'의 가는 봄날을 스토킹 하였나 보다.

그는 오전 11시쯤 일어나 저녁 해질 무렵에 산책을 나갔다가 하루 일식을 한다.

일식의 반려로 차를 한다.

독신이다.

(여기서 독신은 제도로서의 혼인 여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일종의 장소이므로 장소를 대하는 방식에 의해 독신의 질이 결정된다고 한다.)

 

나는 나의 봄날이 가는 걸 아쉬워 하진 않는다.

다만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물고 비워내지 못한건,

그리하여 늘 욕심내고 더 많이 사랑하려 한건 후회하여야 한단다.

왜 증명하고 죽어야 하는가?

사랑하다가 죽는 방법도 있는데 말이다.

 

오랫만에 읽는동안 우아하게 말하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책이고,

솔직히 말하면 변덕이 죽끓듯하며 읽었던 책이다.

 

 

언젠가 썼던 '동무와 연인'의 리뷰도 있어서 옮겨 본다.

 

 

 

 

 

 

 

 

 동무와 연인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3월

 

류종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꿀 수 있도록 그노력을 함께 하는 사람을 '동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책의 제목 <동무와 연인>을 놓고 한참 생각을 했다.

 

'서문'의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

가능하지만, 오히려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진 사연들을 일컬어 연인이라고 부른다.

가족을 버리지 않으면 스승을 따를 수 없었던 경험처럼, 스승 혹은 그 지평으로서의 도움의 가능성을 증명해주는 세속의 덕으로 우리 모두는 친구를 구하고 연인을 사귀며 가족을 얻어 다시 세속에 보은한다.'

를 보고,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버린 나는...

뭘 이렇게 길고 구구절절히 얘기해 놓았나 싶었으나,

<한겨레21>에 한동안 실렸던 글들이어서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들을 요약해 보면,

  • 동지:이성적 일체감(말)
  • 친구:정서적 일체감(몸)
  • 동무:이성적 일체감 + 정서적일체감(말+몸)

동지나 친구라면 몰라도, 동무가 되기위해선 둘 중 어느 하나만을 갖곤 충족시킬 수가 없는데...

몸으로 맺어진다는 게, (어릴 적 부터 친구가 아니구선)...

동성 간이라면 좀 힘들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동성애자가 되니까.

→그래서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라고 서문에서 얘기한다.

그리고, 이성의 경우는 연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데...

영원을 맹세하지만, 영원한 경우는 거의 없는고로...결혼 후에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불륜'으로 불리운다.

→그래서 '가능하지만, 오직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지는 사연'이 되는 것 같다.

 

결국,저자는 문장화하지 못하지만,최선은 동무,차선은 연인이라는 얘기다.

 

이러면서 여러가지 관계설정이 나오는데...

일반적인 '이성관계'에서 여자들은 육체로만 승부하려 했기에 '연인'밖에 될 수 없었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경우

'보부아르가 두려워 한 여자는 육체로 승부하는 여자가 아니라,'지적반려의 자리'였다.'

에서 알 수 있듯이...

'몸으로 맺어진 관계'즉 성욕 이후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지적반려'에까지 이르렀으므로 동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이책에서는,

<볼테르와 에밀리 샤틀레>의 경우도 동무의 범주에 집어넣었는데...그들의 말년을 제법 자세히 알고 있는 나로선 찬성하기 힘든 부분이다.

 

동성의 관계에서도,

<부처님과 가섭>의 염화시중의 미소나,

<유영모와 김흥호>의 관계처럼,

동성애가 아니고도 동무가 될 수 있었던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이런 사제 관계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극복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기에,

'동무'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처럼 배신자가 될 수도 있다.

 

-무릇 아버지는 죽여야 하고,스승은 능가해야 제맛이다-

이걸 동무론 제1義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책이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은, 동무와 연인의 구별과 나열에 끝나지 않고 이상향을 제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타성에 젖어,

'연인의 살이 고기肉로 느껴질 때에도 그 고기를 다시 살로 되돌리는 법은 오직 말 밖에 없다.'

라고 얘기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 통하게 되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려 주고 하는 배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기다려 달라고 목놓아 부르짓는 김광석을 한번 떠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책을 읽은 느낌은...이정도로 정리하여야 하겠다.

'동무'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 불가능함을 뛰어넘어 '동무'가 된 경우엔 박수를 쳐주어야 하지만,

그외 경우에는 그냥 적당히 몸과 마음을 보대끼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자라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이 책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중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구절이 인용되고 있어 옮겨본다.

 

언어는 살갗이다.ㆍㆍㆍㆍㆍㆍ나는 그 사람(연인)을 이 말 속에 둘둘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이 만짐을 얘기하며, 우리 관계에 대한 논평을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

 

 

 

 

 

 김광석 - 다시 부르기 1,2 [재발매] [2CD]
 김광석 노래 / 씨제이 이앤엠 (구 엠넷)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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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6-16 03:13   좋아요 0 | URL
사람 몸을 빌어 태어났을 때에는 즐겁게 살고,
몸이 기운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면 넋으로 예쁘게 사는 길도 있겠지요..

하늘바람 2012-06-17 10:49   좋아요 0 | URL
봄날은 간다 영화가 생각나네요.
그 영화 오래오래 기억에 남고 다시 봐도 마음에 여러가지가 남았는데
같은 제목으로 책이 나왔네요.
그러게요 이제 우리 봄은 아니죠
하지만 언제나 봄처럼 싱그럽게 살아요 님.

2012-06-20 23:46   좋아요 0 | URL
흠. 그러고보면 양철님은 어디서 이렇게 양질의 책들을 잘도 찾아내어 읽으시는지! 김영민님의 이 책, 예기치 않게 참 좋군요. 철학자의 수필인데, 여느 시보다 더 시예요.!
+ 이 페이퍼의 양철님 글도 좋아요. 기분이 상큼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