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의 영혼 - 경이로운 의식의 세계로 떠나는 희한한 탐험
사이 몽고메리 지음, 최로미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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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읽은 지금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제목만을 보고는 이런 발상을 하는것과,

이런 발상과 연구과정을 책으로 옮길 수 있는 것 자체가 기발하고 경이롭다고 생각 했었다.

다 읽고나서는, 뭐~(,.)

이 책은 남편 하워드 맨스필드(작가이자 편집자인가 보다) 덕분에 탄생한 책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연구 대상으로의 접근 방법이나 실험 방법이 생소하고 신기했을 수도 있는데,

요즘 텔레비전에서 강아지 훈련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강아지의 심리를 읽어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등장해서,

거기다가 이 책을 쓴 '사이 몽고메리'로 말할 것 같으면,

돌고래, 유인원, 돼지 등의 동물과 교감을 나눈 전적이 있는지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뭐, 다른 점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알던 건 척추동물이라는 거고,

얘네는 흐물흐물거리는 연체동물이라는 것 정도.

 

난 조카가 키우는 장수풍뎅이도 봤고,

소문이지만 달팽이를 키우는 사람들 얘기도 들었다.

마광수의 꽁트 속에서는 재주를 부리는 개미를 데리고 레스토랑에 갔다가,

종업원 앞에서 자랑을 하다가 압사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내가 원했던 건,

문어가 혹 외계인이 아닐까 추측난무하는 '~카더라'통신이거나,

그냥 똑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신과 영접하여 로또 번호를 점지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ㅋ~.

 

이 책에는 '사이 몽고메리'가 만난 네 마리의 문어가 나온다.

아테나, 옥타비아, 칼리,카르마.

문어마다 개성이 다분하다, 는 얘기를 하면서,

문어는 인간 역시 개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고 한다.(27쪽)

그 이면에는 문어도 개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때문에 '문어는 누가 자신의 친구인지 파악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28쪽)' 것이다.

 

'문어가 개체'라는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이면서 감동적인 구절은 다음이다.

"소매를 걷어올리고 시계를 풀어놓으세요." 빌이 일렀다. "우리는 늘상, 문어 손가락은 무지 끈적끈적해서 어쩌면 우리 모르게 반지나 시계를 슬쩍 풀어갈 수도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죠. 하지만 우리 역시 문어를 해칠 수 있는 까닭에 무엇이든 날카로운 물건은 몸에 걸치지 말아야 해요."(78쪽)

이 구절은 은연중에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겸허하게 만들어주었다.

칼이 나를 지키는 무기가 될 수 있는 동시에 타인을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문어가 가장 부러웠던 점은 멀티테스킹이 자유자재라는 점이다.

우리는 멀티테스킹이 쉽지 않으며,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게 되면 산만해지고, 어느 한쪽 소홀해지기 마련인데,

문어는 여러 개의 팔을 제각각 뻗어 다수의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

문어는 모든 것들을 팔에 붙어있는 빨판들을 통하여 하고 있는데,

그 빨판 하나하나를 제각각 통제한다는 얘기이다.

 

암튼 문어는 무척 똑똑한 반면 개구장이인 모양이다.

고대 로마의 자연사학자 클라우디우스 아에리아누스란 사람은 문어를 이렇게 관찰했다고 한다.

"못된 짓과 술책은 이 생물의 특징이 분명해 보인다."(82쪽)

 

문어의 먹물에는 멜라닌 색소 외에도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여러가지 물질이 있단다.

'티로시나아제'라는 효소 얘기도 나오고,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얘기도 나온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어들을 계속 '그녀', '그녀'라고 인칭대명사로 받아버리고,

용어들도 지시대명사로 받아버리는데,

때로 이것들이 무엇을 가리키는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게 문어를 얘기하는 저자 시어 몽고메리를 얘기하는지, 그녀와 같이 연구를 한 친구를 얘기하는 지,

 지시대명사가 가리키는게 색소인지, 효소인지, 신경전달물질인지 혼란스러웠다.)

 

소싯적 영어를 배울때 마음이나 영혼 따위의 경계를 놓고 구분짓지 못했었다.

그때 'soul'을 이렇게 외웠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영혼은 계속된다고 믿는다'

이 책 'the soul of Octopus'을 보고 문어는 죽고나면 영혼이 어찌될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만약 문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이 계속 된다면,

영혼의 세계에서는 사람이나 동물 따위,

또는 척추동물이냐 연체동물이냐, 를 구분짓지 않는, 그런 곳이 아닐까?

 

그러고보면 우리가 너무 의미를 부여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이든 문어든 간에 저마다의 의식세계를 가지고,

나름 경이롭게 살아가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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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08 17:12   좋아요 0 | URL
옛날부터 문어를 ‘못된 짓’과 ‘술책’을 상징하는 동물로 생각했을 정도면 유럽인들의 문어, 낙지 공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어요. ^^

양철나무꾼 2017-12-11 17:15   좋아요 0 | URL
유럽인들은 아직도 오징어, 낙지, 문어 이딴걸 즐겨먹지 않는대요.
맛도 맛이지만,
왠지 과거 공포의 연장선인듯 해요~^^


2017-12-08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12-08 18:23   좋아요 0 | URL
아니 이 책이 그 자갈치 준다는 이벤트했던 책인가요. ㅋㅋㅋ 그 이벤트 보면서 엄청 웃은 기억이... 감동적이라고 인용하신 문장에서 저도 고개를 끄덕이고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7-12-11 17:22   좋아요 1 | URL
자갈치가 뭔가 봤더니 자갈치 과자네요.
전 못 받았어요~--;
이벤트 기간이 지났나 봐요.
전 과자라면 뭐든 다 좋아하는데, ㅋ~.

모든 자연을 만날때마다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실상은 ‘거대 자연‘을 만났을때나 경이로움에서 그리 되는 것 같아요.
저부터 반성해야 할듯~^^

서니데이 2017-12-08 18:46   좋아요 0 | URL
이제 문어 못 먹을지도요...
양철나무꾼님, 좋은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7-12-11 17:23   좋아요 1 | URL
거대 문어는 못 드시더라도,
작은 문어는 어떻게...ㅋ~.
문어가 여자 몸에 좋다네요~^^

오늘 완전 완전 추워요.
뜨뜻한 국물 드세요~^^

sprenown 2017-12-08 19:51   좋아요 0 | URL
우리 옛 선비들은 문어를 엄청 좋아했고 귀하게 여겼죠. 글월 문자를 쓰고 머리에 먹물이 가득 했으니까요.그래서 제사때는 빠지지 않는 제물이 지요.문어가 머리만 좋은게 아니라 신통럭도있어요 월드컵때 기억나시죠? 점쟁이 문어..^^

양철나무꾼 2017-12-11 17:26   좋아요 0 | URL
그랬다는데,
저는 제사에 문어 쓰는 건 못 봤어요~--;
근데 제사가 아니라도 멜라닌 색소나 도파민 등 아주 유용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