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사계 - 자급자족의 즐거움
김소연 지음 / 모요사 / 201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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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무렵 구입은 했었으나 한쪽 구석에 덩치로 쌓아놔 잊혀졌었다.

얼마전 책정리를 하다가 눈에 띄어 읽어 보게 되었는데,

그러고 보면 사람 뿐만 아니라 책도 적당한 시기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책들은 사서 쌓아놨다가 잊혀지기 마련인데,

이렇게 간간히 간택되는 책이 있는걸 보면 인연 같은게 있기는 한가 보다.

 

책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사람도 그러한데,

때론 엉뚱한 사람이 보고싶어지기도 한다.

엉뚱한 사람이란 옛 사람의 어머니이다.

엉뚱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보고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고,

어머니 같은 경우는 실제로 뵌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블랙커피(원두가 아니라, 그냥 다방커피에서 설탕과 프림을 뺀 그것)를 좋아하신다고 하여,

'블래기'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간혹 안부를 여쭸었는데,

그런 블래기가 꿈에 선명하게 나타나다니 말이다, ㅋ~.

 

처음 이 책을 들였을때는 김진송 님에게 열을 올렸을때라 우리 숲의 나무로 가구 만드는 목수 남편이 멋져보였었다.

책을 읽으면서 먹는 정원을 가꾸고 손으로 만드는 아내로 옮아 갔는데,

사람이 선하니 글이 한없이 착하게 나오는 것 같다.

 

나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자급자족의 삶을 꿈꾸지만,

망설이게 되는게 자급자족을 한다는 이유로 안으로 파고들어 외부와 단절을 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수작사계'에 나오는 자급자족은 소통과 대화를 표방하고 있어 매력적이다.

여러가지 안을 설명해드리고 적절한 선에서 디자인과 견적의 타협을 보던 날, 협상의 마지막 메일에 그분은 이렇게 썼다.

제 사정에선 상당히 무리해서 주문하지만

금액을 깎아주십사 부탁하기보다는

잘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솔직한 그말에 목수와 나는 마음이 움직였다. 언제나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스스로 목수가 아니라면, 이렇게 좋은 가구를 돈을 주고 사서 쓸 수 있을까? 의자 하나에 수십만 원을 줘야 하는 식탁 세트를 마련할 수 있을까? 이렇게 좋은 나무의 감촉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살고 있는데, 단지 돈이 없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의 기술이 주는 풍요로운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야 하다니.(269쪽)

이 부분에서 나도 마음이 움직였는데,

이 부부의 가구 값은 차치하고라도,

옛날 옛적 김진송 님의 경우, 목마가 너무 갖고 싶었지만 살인적인 가격에 포기를 했었다.

목마는 일종의 유희이고 사치품이라고 쳐도,

가구가 되더라도 쉽게 지갑을 열게 되진 못할 것 같다.

 

부부는 자신들의 작품을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분들이라고 가구의 허술한 틈, 목수의 채 영글지 않은 손끝을 알아채지 못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장 부부는 진심으로 가구를 환영하고 집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주셨다. 만든 것은 목수지만 완성한 것은 주인장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 오디오장을 보고 잇달아 주문이 들어오기 사작했다. 사람들은 한참 부족한 이 오디오장을 좋아했다. 따뜻해 보인다고 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다. 논리적인 설명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가구가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는 것은 사실이다.(56쪽)

나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해지는 경험을 했다.

가구나 풍경을 보여주는 사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글도 한몫했는데,

이건 그녀의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스승이나 참고서적 따위는 필요없다던 목수가 '조지 나카시마'의 'The Soul of a Tree(나무의 혼)'을 곁에 두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도 참 좋았다.

사진만 보게 될 지라도 나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어졌다.

 

  바느질할 때 내 자리는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탁자 앞이었다. 흙벽돌에 자연 그대로의 황토를 발라 내부마감을 한 산너울 마을의 집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한낮에도 약간 어둑했다. 나는 그 아늑한 어둠을 좋아했다. 그 집에서 빛은 상대의 눈이 아프도록 자신을 과시하지 않았다. 나를 위로해준 빛의 역할은 눈부심보다 따뜻함이었다.

  창가 자리는 따뜻했다. 앵두꽃은 환하게 피어올랐다. 생의 소중한 기억들이 바느질을 통해 오롯이 손끝에 집중됐다. 어느날 인형은 완성되었고 그 자그마한 생명체에 나는 '애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94쪽)

 

  살면서 계절의 영향을 그토록 선명하게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사무실에서 근무할 땐 더위가 살짝 피하고 싶은 대상, 냉방기 리뫀컨으로 멀찍이서 조절할 수 있는 상대였지만 시골 작업실의 더위는 달랐다. 씨름판의 적수 같았다. 때로 질 때도 이길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한결같이 내 몸으로 타고 넘어야 했다.(109쪽)

이런 구절은 그녀의 필력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었고,

  그녀들의 말에는 '정말'. '너무' 따위의 강조의 부사가 섞여들지 않았다. 그들은 강조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냥, 가끔씩 고개를 흔들었다.

  이 풀이 참 징혀. 입술에 물고 댕기다보믄 살이 닳고 찢어져.

  목소리가 낮아졌다. 별로 크게 떠들 일은 아니라는 듯.(168쪽)

모시를 하는 어머니들을 상대로 '농촌마을 컨설턴트'를 할때의 일화를 적어놓은 것 같은데,

그녀의 글 또한 이를 닮았다.

과장이 없는 것이 소박하고 수수하다.

 대칭, 기술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보완하지 않는다. 오로지 왼쪽과 오른쪽을 똑같이 만들기 위한 보완은 목수에겐 보완이 아니다. 대칭 자체는 목수에게 목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문득 이해했다. 가구를 보는 뷰파인더의 눈은 날카로운 심판관의 눈이 아니었다. 빛을 양껏 받아들일 줄도 절제할 줄도 알며 자유롭게 심도를 조절하는 그 눈은 원칙을 따지는 나의 눈과는 달랐다. 너그러운 그 눈앞에 의자는 자유로워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가구의 틀에 갇히지 않는 가구야말로 목수의 가구라는 것을, 나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그만의 날개짓이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받아들였다. 이해라는 것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얼마만한 시간이 걸리는 걸까. 아주 조금 비뚜름한 듯 다른 몇 밀리미터, 잴 수 없는 각도의 차이로 빙긋이 웃고 있는 의자의 팔꿈치들이 나를 쿡 찔렀다. 웃음이 났다. 아주 조금 비뚜름한 목수의 성질머리가 거기서 보였다.(211쪽)

목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전체를 보는것 같아서,

그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번지고 스며 물들듯 조화로운 것 같아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구절은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목발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었다. 보통 가구는 공간을 실측하는데 목발은 사람을 실측해야 했다. 가구를 원하는 분들은 손을 뻗어 '저기'에 '그것'을 놓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목발이 필요한 이분은 자신의 몸을 보여주셨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목발을 짚고 앞뒤로 걸어 보이셨다. 목발의 머리가 닿는 겨드랑이의 굳은살에 대해 알려주셨다. 걸음의 각도, 집 안팎을 다닐 때의 차이점, 움직일 때 힘이 많이 들어가는 부위를 알려주는 그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보통 사람들보다 좀 길고 상세한 자기소개를 듣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목발은 정말로 그걸 사용하는 분의 몸이라는 것을.(215쪽)

옛날에 광화문 육교 근처에 가면 '보장구'라고 하여 마네킹 인형을 만드는 재료들로 만든 한 손 모양, 다리 모양들이 쇼윈도우에 진열되어 있었다.

지금은 조금 더 세련되고 의학적인 기능들을 지닌 보장구로 바뀌는 과정에서 없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목발 하나 만드는데 이런 정성을 쏟는다는 측면에선 괜찮지만,

목발의 기능적인 측면을 조율하는 건 보장구사(지금도 그런 이름으로 불리우는 지는 모르겠다)들의 몫이다.

적어도 그들과 협력을 하던지,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면 시간과 정성이 많이 단축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자급자족이나 수작업이라는 얘기가 혼자 안으로 궁그리는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타인이 아니면서 타인을 이해한다, 알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일인지 독선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어찌됐건, 이렇게 아름다운 아내 분의 글을 보는 것만으로 이 책을 읽는 수확이다.

어쩌면 이렇게 수더분한 문체로 가슴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원~(,.) 

이 책 덕분에 오는 겨울이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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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2017-11-07 01:44   좋아요 1 | URL
꼭 봐야지 하고 마음에 담아두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애먹고 있던 책이 있었어요. 오늘 여기서 발견해서 뛸듯이 기쁩니다. ‘The soul of a tree‘! 아마 저도 한두해전 ‘수작사계‘에서 이 책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엄청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7-11-07 09:3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풀꽃놀이님~^^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책을 찜해 두고...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묘한 인연인것 같습니다.
알라딘 서재가 아니면 경험하기 힘들 인연이고 쾌감이겠죠.
앞으로도 좋은 책, 글들로 아껴 뵙도록 하죠.
제가 오히려 고맙고,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