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눈이 여려졌다.

마음이 여려져야 하는데,

마음은 빡빡하니 무미건조하기 이를데 없고, 눈만 여려졌다.

 

하루에 한번쯤은 눈물을 쏟아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은데,

어제 아침엔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서 이용마 기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랬고,

(책이 완전 괜찮은가 보다, ㅋ~.)

저녁엔 텔레비전 프로의 임종체험을 보면서 그랬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용마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오늘은 책을 읽다가 그랬다.

책은 감성을 자극하는 소설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몰입할 수 있는 다큐물도 아니었다.

 

 

 수작사계
 김소연 지음 / 모요사 /

 2014년 9월

 

변명을 하자면,

이런 구절이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나는 궁금했다. 목수는 정식으로 목공을 배운 적이 없고 이력으로 보자면 미술을 전공한게 전부인데, 어떻게 이런 의자를 만들 수 있었을까?

목수는 두 가지 대답을 들려주었다. 하나는 의자의 모양에 관해, 또 하나는 만드는 기술에 관해서였다. 모양에 관한 설명은 간단했다.

 "가져온 나무들을 보고 의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에 따르면 나무는 앞으로 만들어질 물건의 모습을 안에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의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은 숨어 있는 모습을 찾아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했다.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기 때문에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겼다. 우리의 대화는 살짝 열어둔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침마다 변기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목수의 습관 때문에 매일 우리의 첫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수작사계 31쪽)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상들이 모여서 개인의 삶을 이루는 거라는 숙연함이 눈물을 나게 했달까.

 

별 내용이 아닌 것 같지만,

내가 감동을 먹은 건 이런 구절 때문이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서 '사람을 선생으로 두지 않는 부류의 목수였다.'는 문장이나 '책은 참고사항이었다'(35쪽)

는 구절로 목수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목수의 아내마저도

'무엇이든 책으로 배우는 책상물림의 습관은 어려서부터 익힌 것이라 쉽사리 변하지 않아 그 후로도 텃밭과 흙, 정원에 관한 책을 틈틈이 사 보았지만, 매일 밭에 나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책 속의 지식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은 언제부터인가 저절로 알게 되었다.'(42쪽)

라고 하는 것이 내 마음에 꼭 들었다.

나랑 완전 닮음꼴이다, ㅋ~.

나도 마찬가지 이유로 이 책의 목수 내외가 눈물나게 좋았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한참 부족한 이 오디오장을 좋아했다. 따뜻해 보인다고 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다. 논리적인 설명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가구가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는 것은 사실이다.(수작사계 56쪽)

언제부턴가 사람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따뜻해 보이는 것이 좋았다.

완벽하진 않아도 소탈하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사람이 있고, 물건이 있고, 글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내 화두는 따뜻함 내지는 편안함이고,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내 화두는 귀촌 생활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귀촌 생활이 아닌 전원 주택 생활이지만,

뭐, 아무렴 어떻겠는가.

 

내가 요즘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유튜브 프로그램 중에 '서울부부의 귀촌일기'라는 것이 있다.

초보 귀촌인들의 현주소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잼나게 시청하고 있는데,

첫회부터 꾸준히 보다보니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를 알겠다.

속속들이 다 알진 못하더라도 이런 따뜻함과 편안함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가 있겠다.

오늘은 제룡이라는 친구와의 끈끈한 우정을 보고서 완전 감동을 했다.

그동안 남자들의 우정을 가까이서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으레 남자들의 우정은 욕설을 남발하거나 주먹다짐을 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이렇게 섬세한 따뜻함이라니,

이런 멋진 남편도, 아내도, 친구도 ,

완전 부러워지는 거라.

 

실은 요즘 나는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라치면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들곤 했다.

아들과 대화가 되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고나 할까.

길거리나 공원, 버스 안에서 보면 욕을 '개XX'따위 접두사처럼 붙여서 사용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의견을 묻거나 설명을 요하는 데도 단답형의 대답으로 끝나서 대화가 단절되는 걸 경험했었다.

 

나이가 먹을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했다고,

점점 입을 다물어야 하고,

입을 다무는게 미덕처럼 여겨져서,

대화를 나눌 상대를 갖는다는 것,

누군가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걸,

지금도 감사하게 여긴다.

 

하나,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진다고 매번 이런 책과 영상만 볼 수는 없는 일,

10권까지 산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가 11권이 나와서 완결이다.

지금 4권에서 진도를 못 나가는데,

기회를 만들어 읽어야겠다.

 

 춘추전국이야기 1~11 세트 - 전11권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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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11-02 18:32   좋아요 1 | URL
저도 스케치북을 뚫어지게 보는 편이에요. 화면에 어떤 이미지가 나타나길. 제 생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겠지만 사물이 주는 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넘 애니미즘 일라나ㅎㅎ; 그런데 이런 태도는 세상을 참 아끼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귀하지 않은 것, 가치 없는 게 없다는.
그런데 백지는 일단 쓰지 않는 이상 글줄 비슷한 것도 안 보여요ㅋ;

양철나무꾼 2017-11-03 13:46   좋아요 1 | URL
넘 애니미즘일것 없습니다, ㅋ~.
저도 모시는 신 있습니다.
북을 토템으로 한다나 뭐라나~(,.)

정말 병적인게 가지고 있는 책들을 읽어야지 하다가도,
신간만 나오면 지름신이 강림하셔서리,
안 읽으면이 아니고 안 사면 미칠것 같습니다~(,.)

sprenown 2017-11-02 20:28   좋아요 1 | URL
저는 나이가 들면서 눈도 여려지고, 마음도 여려 지네요.^^

양철나무꾼 2017-11-03 13:48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면 마음은 눈물에 의해 단련되나 봅니다~^^
미립이 날 그날을 기다리며,
일단은 그저 읽는 수밖에요~(,.)

서니데이 2017-11-03 15:39   좋아요 1 | URL
저 어제 작은 화면으로 제목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눈이 어려졌다, 라고 읽었어요.
다시 보니 여러졌다, 더라구요. 어쩌면 양철나무꾼님은 예쁜 조카가 있어서, 눈이 어려지고 계실지도요.
바람이 밖에 너무 많이 불어요. 따뜻한 금요일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7-11-04 09:50   좋아요 1 | URL
저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어려졌다‘는 말이 나쁘지 않네요, ㅋ~.

좀 많이 춥고 쌀쌀한 토요일 아침입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자구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