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품격 - 맛의 원리와 개념으로 쓰는 본격 한식 비평
이용재 지음 / 반비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박찬일'님은 이 책의 발문을 '당대 음식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일 것이라는 말로 시작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이 책을 훑어봤을땐 글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재밌고 문제 의식도 겉돌지 않는다고 여겨졌었는데,

주의깊게 읽다보니 논쟁의 여지가 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지만, 난 논쟁이 싫은고로 리뷰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책 뒷표지에도 등장하는 박찬일 님의 발문 한구절에는,

'음식과 식당이 주례사 같은 칭송을 버리고 비평의 대상이라는 걸 입증했으며,

그의 비평은 지식과 관점의 논리적 융합이라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을 보고 호감을 갖게 되었지만~,

 

그런데 한걸음 떨어져 이 책을 보게 되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박찬일 님이 '백년식당' 등 당신의 많은 책에서 언급했던 '우래옥'을 책의 곳곳에서 대놓고 반박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나가는 방법도 많이 다르다.

물론 세상에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렇게 대표적인 식당을 놓고 의견이 대립되다 보니(물론 이 책에선 박찬일 님의 의견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뢰감이 반감되었다.

 

난 저기서 말하는 비평이 '남의 잘못을 드러내어 이러쿵저러쿵 좋지 아니하게 말하여 퍼뜨림'이 아니라,

'사물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전체 의미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며, 그 존재의 논리적 기초를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용재 님의 주장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부분적인 것을 전체적인 것인양 일반화하여 전면에 배치한다.

한식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는게 아니라 일단은 한번 비틀어 부정하다 보니,

냉소적이라는 인상은 주지만 전체적인 주제가 자꾸만 모호해 진다.

 

어떤 음식이나 조리법을 가지고 잔뜩 열변을 늘어놓는다.

손맛과 정성이 배제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맛의 짜임새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내겐 어떤 촉매가 없이(손맛과 정성이라는 감성적 매개체 없이)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으로 읽혔다.

 

그렇게 제시하는 조리법은 나을게 없다.

문제점만 잔뜩 나열하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어 보일때쯤,

에필로그라고 하여 '한식 발전을 위한 제안 20선'이 등장한다.

암튼 그러하다.

 

결정적으로 나를 혼란에 빠뜨란 이유를 이 사진으로 대신하겠다.

이 사진은 '대한민국 누들로드'라는 2011년에 나온 책 속의 황교익 님 관련 꼭지의 일부이다.

 

'한식의 품격', 이 책에서 '담백함과 슴슴함'을 '인지부조화의 맛'이라고 하며 힘주어 얘기하는데,

황교익 님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다.

책의 출간연도와 '대한민국 누들로드'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을 보건대,

이용재 님이 황교익 님을 따옴표 없이 인용한 것 같다.

 

내용이 이상한 부분도 있었고 논리적으로 취약한 부분도 있었다.

 

123쪽의 경우만 하더라도,

지금도 충분히 하나의 맛을 이루는데,

균형과 색채를 위해 태국음식을 모방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또 143쪽 '쓴맛의 활용법'에서,

주로 약용이지만 감초도 있다. 서양에서는 단맛을 아예 곁들이지 않은 감초맛 젤리를 즐겨 먹는다. 말하자면 은단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같은 경우,

감초를 쓴맛으로 분류한 것이 좀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감초라고 하면 '약방의 감초'라고 하는 '단맛'을 지닌 그것을 떠올렸는데,

그리고 이 감초의 경우, 다량으로 장복하게 되면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젤리로 만들어 먹는다고 하니 이 감초와는 다른 종류인가보다.

 

또 351쪽의,

한편 샌프란시스코에는 치오피노(cioppino)라는 수프가 있다. 이름이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이탈리아 음식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조금씩 보태다(chip in)'라는 영어 표현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게 정설이다. 부이야베스의 고향 마르세유처럼, 각자 잡아 조금씩 보탠 해산물(특히 팔 수 없는 것)을 같이 끓여 선착장의 공동 끼니로 삼은 음식이라고 한다.(351쪽)

같은 경우,

샌프란시스코는 1900몇년, 이탈리아 이민자가 정착한 지역으로 알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행한 음식이겠지만,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주로 만들어 먹었을테니 이탈리아 음식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모든 살아있는게 그렇지만,

음식의 역사 또한 인간과 더불어 거슬러 올라가는 근원을 모르게 되면 근본 없이 뚝 떨어진 음식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감정적인 가치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다며 과학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요리 이론을 얘기하는데,

이용재 님이 쉽게 담그신다는 깍두기만 하더라도,

계절에 따라서 수분의 함량이 다르고,

따라서 레시피대로 뚝딱 담가낼 수는 있으되,

그 오묘한 맛까지 장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여러가지 맛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매운 맛은 맛이 아니고 통각이고 고통이라며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데,

한식을 얘기할때 매운 맛을 제외하고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목표를 높이 잡는다고 품격이 하루 아침에 고상해지진 않는다.

그보단 현 위치를 파악하고 거기에서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전체적인 상관 관계를 파악하고 모색해 보는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하어 우리는 단독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과 우주의 기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스스로 그렇게 존재하는 햇볕이나 바람, 비나 눈 따위가 우리가 사는 이 땅과 음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우리는 나름 거기에 적응을 한다.

사막에선 낙타와 선인장이 생존 방식이고 유목민에겐 목초지와 가축이 생존 전략이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서양 요리 이론을 차용하는 것에 반기를 드는 것은,

그게 전통과 습관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런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알고 원하는 한식의 품격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7-08-24 15:51   좋아요 3 | URL
저도 미국에 감초사탕이 있다고 들었을 때, 한약재인데, 그렇게 먹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어요.
먹어본 적이 없어서 더 궁금하더라구요.^^
양철나무꾼님, 여기 비랑 바람이 계속 되고 있어요. 축축한 하루예요.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7-08-24 16:40   좋아요 3 | URL
제가 아는 감초는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그렇게 마구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는 거 하나,
거기다가 제가 먹어본 그 감초젤리는 설탕이 들어있는 거였는데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맛이었거든요.
같은 감초인지, 자연 의구심이 생기더라구요~^^

이곳은 하루종일 오락가락이예요.
거세다가 잦아들다가요.
비랑 바람이랑 모두 다요.
축축하지만 많이 젖지는 말자구요, 몸도 마음도~^^

박균호 2017-08-24 16:45   좋아요 2 | URL
책은 잘 모르겠고 문학과지성사 건물 지하에 있는 박찬일 세프 레스토랑 가봤거든요. 맛납디다. ㅎ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8-24 16:57   좋아요 2 | URL
전 박찬일 님이 직접 만드신 음식은 못 먹어봤고, ㅋ~.
광화문 몽로 한번 갔다가 자리 없어서 그냥 나온 적 있어요.
암튼 제가 왕. 왕. 왕 애정하는 분이세요.
글도 재밌지만,
토욜아침 ‘노중훈의 여행의 맛‘이라는 라디오 프로에서도 맛나기 이를 데 없죠.

박찬일 님은 셰프라고 불리는 걸 싫어하신대요.
주방장이라고 불리우는 걸 좋아하신다죠~^^

어쨌거나 ‘한식의 품격‘ 추천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꾸벅~(__)

박균호 2017-08-24 17:21   좋아요 2 | URL
그 책 장바구니에 넣어놨는데요 ㅎㅎ 재미날 것 겉아요

양철나무꾼 2017-08-24 17:42   좋아요 2 | URL
ㅎ,ㅎ,ㅎ...누가 말리겠어요.
암튼 님 책이나 어여 내주세요.
제가 박찬일 님 만큼 애정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서니데이 2017-09-01 18:53   좋아요 1 | URL
얼마전까지 더웠는데, 갑자기 서늘한 여름을 지나 따뜻한 오후가 있는 9월이 되었어요.
기분 좋은 일들, 행운 가득하고 재미있고 좋은 한 달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양철나무꾼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2017-09-05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