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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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넷 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진과 함께 청와대를 산책하는 사진 한장이 화제였다.

사진 한장을 놓고도 다방면에서 여러가지 정치적인 언급이 나올 수 있겠지만 차치하고,

산책이 주는 풋풋함이랄까, 삶의 활력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로베르트 발저의 이 책 '산책자'를 읽었다.

 

실은 책을 읽다가 몇번을 집어던질뻔 하였다.

뭐, 특별하게 바쁜 일도 없고,

그렇다고 '바빠~'를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부류도 아닌데,

독백조의 너무 느린 호흡이 답답했다.

그걸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읊조리듯이 쏟아낸다.

호흡이 느리긴 하지만 생각의 전개방식과 어조가 느긋한 것이고,

내용은 뒷부분의 '산책'을 제외하고는 한호흡에 내달린 것처럼 짧다.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을 해야지 하고 페이지를 넘기면 어느새 끝이다.

중심에 다다르지 못하고 변죽을 울리는 꼴이다.

글이 그렇다는게 아니라, 읽는 내가 그러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벌써 끝이 나 있다.

 

 

로베르토 발저는 어찌보면 이솝우화를 닮았다.

간결하면서도 해학적이다.

독일어 특유의 어떤 운율을 구사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글만을 놓고봤을때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저자는 때때로 우울한것 같고,

어떤 때는 우울이 몰고온 슬픔 속에 침잠하는 것 같다.

이 책 속의 글들은 소설집이라고 되어있지만, 어찌보면 수필같기도 하고 꽁트 같기도 한데,

정작 발저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시인'이었나 보다.

ㆍㆍㆍㆍㆍㆍ아주 드물게 슬픔이 나를 방문했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무모한 무용수처럼 구석진 내 방으로 불쑥 뛰어드는 바람에 웃음이 터진 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옆으로 비껴나 있었다.(8쪽)

이 글의 제목은 '시인'이고, 곳곳에 보이게 보이지않게 '시인'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그는 '시인'에서.

자연이나 시간, 주변의 모든 사물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8쪽)

고 표현하고 있다.

 

아무려나,

그는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들을 구사하지만,

그래서 글들이 가볍고 경쾌하지만,

글 속에 담긴 내용은 무게감이 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있어서 산책이란 단순히 발을 내딛어 걷는 것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붓 가는대로 쓰는' 수필이라는 형식의 결과물로 등장한다.

 

발저에게 있어서 산책은 '여러 가지의 번쩍이는 발상이 번개처럼 동시에 떠올라 한꺼번에 마구 밀려오는 것이 보통이니까. 그래서 생각을 차분히 정리를 좀 해보려고(309쪽)' 하는 것이다.

 

'산책'의 앞부분엔 이런 구절도 나온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오로지 내 길을 갈 뿐입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겉으로 보이는 외양이란 진실과는 다른 모습일 경우가 흔하고, 그러니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그 사람 자신에게 맡겨두는 편이 가장 좋겠지요. 어떤 사람을, 더구나 이미 충분한 경험과 식견을 쌓은 사람을 그 사람 자신보다 더 잘 안다고 자신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나는 종종 안개 속에 갇힌 채 불안에 휩싸이고 수천 가지의 곤경을 겪으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비참하게 혼자 남겨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투쟁의 시간을 소중하다고 여깁니다. 남자가 긍지를 얻는 원천은 기쁨이나 쾌락이 아닙니다. 남자가 영혼 깊숙이 긍지와 희열을 느끼는 것은 큰 어려움을 담대하게 극복하고 끈질긴 집념으로 고통을 견뎌냈을 때뿐입니다. (289쪽)

그가 글을 쓰는 이유, 산책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책이 충분히 좋기는 하지만,

그의 이력을 잘 모르거나,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서 사전지식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좀 지루할 수도 있겠다.

 

무릇 산책이란 어떤 목적도 띠지 않는 것이고,

그리하여 좀 지루할 수도 있는 법이라고 하면,

내 또 할말은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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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16 21:33   좋아요 1 | URL
내 길 알아서 잘 가고 있는데, 그거 대해서 말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가는 길에 의심이 생겨요.

양철나무꾼 2017-05-17 14:33   좋아요 1 | URL
전 때론 고집불통이고 때론 팔랑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은건 오지랖 넓은, 바꾸어 말하면 말 많은 그 사람들 때문인것 같아요.
나이를 먹을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랬는데, 자꾸 반대로 하고 싶어져 큰일이예요~--;

서니데이 2017-05-17 15:2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오후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7-05-23 17:10   좋아요 1 | URL
오후되니까 좀 꾸물거리고 빗방울이 떨어져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이라서 그런가 봐요~--;

2017-05-23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3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3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