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윤승철 지음 / 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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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대 난 무인도가 필요없는 사람이다.

어디에서든지 주변을 배경으로 흐리게 지워내고 홀로 오롯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무인도는 고사하고 여행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일탈은 가벼운 경쾌함을 동반한 설레임이 아니라, 살 떨리는 두려움인걸 보면,

일부러 스트레스를 자초할 일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 '윤승철'은 '내가 무인도를 찾는 이유'라는 글 꼭지에서,

내가 무인도를 다니는 이유는 나만의 세계에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방에 혼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때문이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된 이유들이 따라온다. 혼자 있으니 누군가의 것을 뺏으려 하지 않아도 되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며 신경쓰거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그럴 일조차 일어나지 않는 곳이고, 내가 나서서 무엇을 억지로 할 필요도 없는 곳이다. 바쁠 필요도 없고 딱히 무엇을 꼭 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평화로워지며 내게 더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좋다.  감사한 사람들을 떠올리거나 사두고 읽지 못한 책을 읽는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진다. 물론 다 벗고 뛰어들 수 있는 자유도 함께.(233쪽)

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윤승철을 향하여, 무인도를 찾으려 들지 말고 마음부터 고쳐 먹으라고 한마디 하고 싶다.

一切唯心造라고 마음 먹기에 따라 해골바가지의 물을 먹고도 해갈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가 무인도를 찾는 이유는 폼나게 얘기한 것이고,

그냥 혼자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여력과 여건이 된다고 하면 그만이 아닐까?

 

 

 

이 사진은 아무래도 설정샷이겠지만,

무인도에 갈때 이런 것들을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완전 럭셔리 라이프겠다, ㅋ~.

 

그런데, 그가 쓴 글들은 필 충만하여 감성이 뚝뚝 떨어진다.

시인이 사진을 곁들여 만든 책은 아무래도 뭐가 달라도 다르지 싶다.

첫날은 바닷물로 밥을 했습니다.(54쪽)

이 문장을 읽다가 '허걱~!'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맛은 별개로 하고 밥이 제대로 되었을까?

밥이라고 먹을 수 있었을까?

 

역시 시인이라서 좌절스러운 결과를 놓고도 멋스럽게 말을 한다.

한 번 더 넣어준 물까지 다 졸아갈 즈음에는 역시 밥은 어떻게 먹느냐, 어디서 먹느냐, 어떤 물로 만드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뜸을 들인다고 말하듯 더 풍성한 밥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너무 많은 아픔을 가지지 않은 물을 넣어야 합니다.

반찬도 없이 흰밥을 힘껏 불어가며 먹는 저처럼 또 외로운 곳에서 먹어야 합니다. 속이, 마음이, 사람이, 나의 존재가,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역시 뭔가가 부족할 때 더 맛깔나나봅니다.

  그렇다고 요리사처럼 매번 황금비율을 재량할 수도, 시인처럼 언제든 외로워질 수도 없으니, 우리는 밥을 지을 때마다 뜸이라도 들이나 봅니다.(55쪽)

 

여기까지 읽다가 딴지걸기를 중지했다.

그는 '시인'이고, 시인은 언제나 외로워질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의 글들은 아주 훌륭하지만,

내가...나이를 먹을수록 에고가 강해지는지,

아니면 세상이 눈물겹도록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터득해서 그런 것인지,

몰입하기가, 몰입은 고사하고 공감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런 류의, 신변 잡기 위주의 아름답기만 한 글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무뎌졌나 보다.

 

혼자 있고 싶다고 하여 모두 무인도에 갈 수 있는 건 아닐게다.

그런 사람들에게 一切唯心造를 권한다.

 

추석 무렵 시댁 근처 앞바다에서 발견한 혼자 있는 갈매기.

나무 부표 위에 홀로 앉아 있지만, 너울거리는 파도, 살짝 흐린 하늘이 전부 친구가 아닐까?

갈매기는 외롭지 않을 것 같았고,

바다를 바라다 보고 있었던 나는 '홀로' 외로워서' 오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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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22 18:57   좋아요 1 | URL
무인도에 가게 되면 스마트폰 없어도 참을 수 있는데, 책이 없으면 진짜 심심할 것 같아요. ^^

양철나무꾼 2016-09-23 10:0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오래전 얘기지만~,
전 무인도는 아니었지만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 책 한권 없이 자발적 유배를 경험한 적이 있어요.

저자는 시인인데 밤하늘의 별을 보고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고 하는데 좀 구태의연하다 싶었어요.
심심하면 하루키나 김연수 따위,무기력할때는 클래식 음악 따위를 얘기하는데,
너무 멋져서, ㅋ~.
시인보다는 독서처방사나 독서치료사를 추천하고 싶더라구요~^^

근데 전 요즘 책보다는 스맛폰이 금단 증세가 심하더구요~--;

꿈꾸는섬 2016-09-22 20:19   좋아요 1 | URL
저는 무인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았는데 윤승철작가 만나고나서는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호사를 누린다기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을 맘껏 살아보는 청춘이 부럽더라구요.
감상에 빠져 미사여구만 화려한 허세 가득한 청년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청년의 열정이 엿보이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6-09-23 10:18   좋아요 1 | URL
저도 이 분이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호사를 누리진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혼자 있기 위한 방법이라면 다른 방법도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깨달음의 깊이에 관한 것이었으니까요.
뭐랄까,
동굴이 깊을수록 소리의 울림도 깊어진다고 해야 하려나?
(아, 말로 설명하기 어렵네요~--;)

아무리 꽃중년인척하는 저이지만,
제가 하는 무인도타령은 책임회피가 될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그의 청춘이 저도 몹시 부러웠지만 말입니다~^^

나와같다면 2016-09-22 21:32   좋아요 1 | URL
Stay with me 도 잘 들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09-23 10:20   좋아요 1 | URL
일부러 트랙백해서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님의 간단한 댓글이 `Let`s cheer up~!`하는 것처럼 들려,
이 아침 기분 좋아졌습니다.

초딩 2016-09-22 22:38   좋아요 2 | URL
아 외로운 짝대기를 생각했는데
갈매기가 주인공이었네요 :-)

양철나무꾼 2016-09-23 10:27   좋아요 2 | URL
외로운 짝대기 주인공일수도 있고 갈매기가 주인공일수도 있고,
만조의 바다 또는 흐린 하늘,
저 사진 속에는 제가 담아내지 못한 `바람`이 주인공일수도 있을 거예요.

때로는 저들 모두가 제각각이라는 자신의 경계를 지워내서,
`자기만의`라던가 `혼자`라는 걸 지워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립간 2016-09-23 07:46   좋아요 2 | URL
`자발적 가난`은 `가난`이 아니라는 말에 `가난`에 적합한 단어가 무엇일까 생각했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09-23 10:34   좋아요 2 | URL
님의 프로필 소개글을 보면서도 느낀 거지만,
님은 경계가 분명하고 쫌 논리적이신듯~^^

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자발적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가난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성인이 틀림없습니다.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치사한지를 알게 된다면,
이렇게 극도의 상반된 수사는 구사할 수 없을테니까 말예요.

짧은 댓글인데, 생각해볼 `꺼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__)

2016-09-26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9-28 13:48   좋아요 2 | URL
제가 님께 이리 사랑받는걸 보니 감지덕지,감개무량하여서,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봅니다.
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