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맛 한겨레 동시나무 1
이정록 시, 오윤화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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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말미에 2016년 가장 짧은 달에 '옥수수수염 머리 이정록'이라는 서명으로 미루어, 책 앞 날개 안쪽의 이 그림도 옥수수수염인고로 이정록 시인이 손수 그리신 자화상이 분명하다. 그림 밑에 날짜와 낙관을 흉내낸 돋을새김'록'자 하며 시인 특유의 자상함과 재치, 기발한 아이디어가 도드라진다.

 

그동안의 나는 어른과 어린이로 연령 상의 분류는 피치 못할 것이지만,

언어의 바다에서 아름다운 시어를 길어올려 시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런 시를 읽고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동시 또한 쓸 수도 있고 감상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시와 동시를 구태여 경계 나누는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었다.

 

'동시는 유치하다'고 할 친구들을 위해 요번엔 생각이 깊고 의젓한 동시를 묶었다고 하길래,

시인의 세심한 배려라기보다는 심한 과장법이구나 싶었었다.

그런데,

그간 시를 공부하며 느낀 하나는

좋은 시집에는 분명 빼어난 동시가 알알이 박혀 있다는 것이에요.

좋은 동시집에 뛰어난 시가 숨어 있듯 말이죠.

그건 본래 시와 동시가 한몸이기 때문이죠.

동심이 바탕이 돼야 기가 막힌 시가 탄생하죠.

어른 시와 동시는 동심원이 같아서 딱히 경계선을 긋기 어려워요.

시를 품은 동시, 동심을 꼭 감싸 안고 있는 시를

한곳에 모아 보고 싶었어요.

                                                                                                                  ('시인의 말' 부분)

라고 하는데,

어린아이의 마음을 일컫는 '동심'과 수학용어 동심원에서 원의 중심이 같고 반지름이 다른 원에서 동음이의어의 묘를 살려내는걸 보면,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가 틀림없다.

일반적인 언어를 벼리고 모두어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걸 보면 확실한 스페셜리스트 같기도 하고 말이다.

 

좋은 시가 참 많지만,

그동안 시인의 전작을 읽었던 이들이라면 정서가 크게 새로울게 없다고 느껴질 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이래서 '요번엔 생각이 깊고 의젓한 동시를 묶었다'고 했구나 하고 느껴질 정도로,

어려운 시들도 있었다.

 

나도 뛸래

 

 

처음으로 차를 산 담임 선생님

운동장에서 주차 연습하다가

축구 골대를 박았다.

 

"조기축구회 공격수라면서요!"

 

"뒷발질로 골인시키기가 쉽냐?

 후진은 너무 어려워."

 

그날 밤,

축구 골대가

꺾인 골대가

꺾인 무릎을 쓰다듬으며

달에게 소리쳤다.

 

"보름아.

나도 너처럼 공을 차올릴 수 있겠어.

이제 한쪽 다리가 접혔거든."

 

이 시는 축구골대를 주차라인 삼아,

차를 후진시켜 주차연습을 해본 어른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쉬운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난 모든 사물을 의인화해서 의미를 부여하며 혼잣말하기를 즐기는 사차원이라 이해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부자되세요

 

목욕탕에서

아빠 등을 밀어 드리는데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부자 되셔!

 

서커스 공연장에

아빠 손잡고 들어가는데

매표소 누나가 빙긋이 웃는다.

 

--부자 되세요!

 

느낌표가 아니라

아빠와 아들 사이냐 묻는

물음표란 걸 나도 안다.

 

--네 부자예요.

벌써 부잔걸요.

 

난 아빠의 웃음이 좋다.

더운 나라에 사시는 외할머니는

우리가 부자인 걸 단박에 아셨는데.

 

이 시는 요즘 애들 말로 하면 '아제 개그'도 아니고, 썰렁 개그 정도 되시겠다.

아, 춥다, 추워~--;

 

어떤 시들은 시인이 과거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쓰였고,

또 어떤 시들은 시인의 자녀 정도의 설정이지 싶고,

또 어떤 시들은 요즘 뉴스에서 차용했지 싶은것이, 시대가 제각각이다.

 

달이 환하게 웃는다.

구름에 숨은 달처럼

엄마 아빠는 조금만 웃는다

                     '보름달 돈가스' 중에서

같은 경우, 설정도 그럴 듯 하고 상황도 애잔한 것이,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마음  가운데를 파고 든다.

 

'우유주머니'라는 시는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아침에 우유주머니가 하교시 현관 열쇠주머니가 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요즘은 지문인식키, 비밀번호 설정키가 대세를 이루니,

요즘 아이들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일 수도 있겠다.

왼손과 오른손이 번갈아 어긋나는 상황을,

'이제야 짝을 맞춘다'고 한 것도 참 긍정적인 발상이고 말이다, ㅋ~.

 

'골고루', '골목', '압력밥솥', '사랑', '네가 나를 부를때', '왜가리' , 등 재미있거나 기발하거나 재미있고 기발하고 이쁘기까지한 시가 넘쳐난다.

말 못하는 아기들은 궁금한건 일단 입에 넣고 본다.

난 아기는 아니지만,

한가득 머금고 입안에서 궁글려서 조금씩 음미하듯 베어 삼킬 것인지,

한꺼번에 눌러 삼킬 것인지, 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달라요~!'되시겠다.

그러다가 얹히거나 소화불량이 되는 건?

팔자소관 되시겠고, ㅋ~.

 

 

이런 팔방미인인 이정록시인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서둘러 리뷰를 썼다.

(시집이 나온것에 비해 한참 게으르지만~--;)

6월26일 오후 3시, 충남홍성 홍주문화회관에서 열리는 <2016 문학콘서트>에 가시면 만나실 수 있겠다.

(자세한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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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6-22 23:22   좋아요 0 | URL
동시는 그야말로 마음이 순수한 사람만이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동시를 썻던 윤동주 시인도 생각나네요....

양철나무꾼 2016-06-23 13:37   좋아요 1 | URL
점심 드셨어요?
윤동주를 말씀하시는데, 내 고장 칠설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하는 이육사가 떠오르는 뜬금없음이란...ㅋ~.

2016-06-23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9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4 0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6-29 10:4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내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은 시에서나 가능한 거고,
청포도는 이 무렵이 젤 맛날 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