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6 : 무협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6
좌백.진산 지음 / 북바이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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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하고 절규하던 유지태의 그것을 빌리지않더라도,

이젠 사랑뿐 아니라 우리네 삶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변한다는 걸 실감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의 그것이 상대방을 향한 것이라면,

이제 하게 되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는 일종의 되뇜이고 자조에 가깝다.

 

한때 장르소설에 미쳐있었다.

좋아했다거나 즐겨 읽었다는 고상한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도 그땔 생각하면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하며 혼잣말을 하며 배시시해시시 거리기 때문이다.

첫 단추는 장르소설 중 무협소설이 시작이었고,

무협소설깨나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보통소설은 한 권이어도 장편으로 분류되지만, 무협에선 그렇지 않다.

짧아도 서너 권, 길면 스무 권, 서른 권을 넘어가는 초장편이 보통(28쪽)인 장르니까 말이다.

 

때문에 얘기를 어떻게 시작했건 간에, 연대기적인 서사가 되게 마련이고,

난 그럼 그에 걸맞게 (이과라서 국사, 세계사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주제에) 인물들을 가지고 족보, 가계도를 그려가며 열독을 해주셨으니 말이다.

나중에는 무협소설의 첫 단추인 독서실 총무 아저씨가 나의 족보 그리는 실력에 반해서,

당신도 안 읽은 책을 먼저 읽으라고 내어주실 정도였다.

 

암튼 그렇게 시작한 무협소설이지만,

중간에 장르소설로 한번 갈아탔고, 이젠 그마저도 잘 안 읽는다.

뭔가 이유가 있나...하고 이번 기회에 돌이켜 보니까,

새로운 작품이라고 해도 제목만 다를 뿐이지 그 얘기가 그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럼 더 이상 장르소설을 읽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웹소설 작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이 책을 왜 사읽었냐고 한다면,

한때 좋아했던 '좌백'에 대한 오마주 쯤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처럼 얇은 책의 정가가 9800원이라고 해서 한번 툴툴거려 주셨을 뿐이고,

'KT&G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웹소설 작가 지망생을 위한 강의'였다니까,

이렇게라도 책으로 나와서 여러 사람이 좋은 강의를 접할 수 있는 것도 괜찮은 기획의도인것 같아서,

기꺼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동안 좌백을 대단하다고 생각했었고, 보통 내공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었지만,

요번 책을 읽는 내내...강의로 들었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은 글을 잘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말이나, 말로된 강의를 잘하는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좌백의 경우, 기승전-무협으로 이어지는, ㅋ~.

완전 논리정연한데다가,

요점만을 딱딱 집어내고 있어서,

일목요연하게 내용이 전달되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좌백의 그것들을 좋아한 이유가,

무협소설이란 것이 황당무계한 얘기를 하는 것이기는 하나,

좌백의 경우 논리적으로 탄탄한 위에 쌓아올리다보니,

소설의 기본요소라고 할 수 있는 개연성과 핍진성이 제대로 확보되어 그럴듯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그를, 무협소설을 쓰는 작가로만,

아내인 '진산'과 함께 부부가 무협소설을 쓰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는 철학과 출신인데다가,

청소년을 위한 철학 판타지 소설인 '논리의 미궁을 탈출하라', '소크라테스를 구출하라', '제자백가를 격파하라'등을 쓴 교양물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암튼,

그가 쓰는 무협소설이 내게 재밌었던 이유가,

그가 무협소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었고,

그중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맞는것을 적절히 골라 버무려 냈기 때문이다.

 

그는 무협을 이루는 키워드를 '무, 협, 중원, 과장'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러나 무협적 병기의 개념에는 제한이 있다. 어디까지나 신체의 연장선상으로서의 병기이며 결국 그 병기를 쓰는 사람의 격투 기술에 방점이 찍힌다. 미사일도 병기지만 누가 더 미사일을 잘 쏘나 하는 이야기는 무협의 영역이 아니고, 무협에도 수많은 보검신검이 등장하지만 만약 순수하게 '마법검'의 능력에 기대는 이야기라면 판타지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16쪽)

라고 하는데,

분석이 명쾌하고 문장이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엔 제약이 따른다.

그는 박학다식하기까지 하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예로들며, 공간적 배경인 middle Earth를 중간계, 가운데 땅 등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그걸 국내출판사에서 '중원'이라고 번역해서 화제가 된적이 있다고 한다.(22쪽)

 

궁금한걸 못참는 난, 가지고 있는 책을 찾아보니 '가운데땅'이라고 번역되어 있더라, ㅋ~.

 

그동안 나는 '중원'을 '중화'인민 공화국이라고 할때의 그 '중원'이라고 생각했었다.

반지의 제왕에서의 'middle Earth를 중간계'라고 짐작했음은 물론이다.

 

무협에서 말하는 과장이란 동양적인 정서에서 근거한 것으로 판타지와는 또 다른 허세와 고도의 멋 정도로 표현해 낸다. 그 정도라면 대리만족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그 정도가 아닐까? 완전 멋지다, ㅋ~.

 

기본이 안된 사람들은 사상누각 위에서 글을 쓰다보니 언제 허물어질지 알 수 없지만,

그의 경우는 김용을 예로 드는 것으로 중국사를 꿰뚫고 있음을 알수 있고,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연개소문 부분을 예로 드는 것으로 볼때, 논란의 중심에서 회자되는 이슈에 대해서도 흐름의 맥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무협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본소용 무협소설이고,

이걸 번역하는 과정에서 편저자라는 말이 사용됐다.

이 과정에서 글보다는 스토리에 재능이 있는 스토리 작가라는 말도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좌백이 기본기가 아무리 탄탄하고,

무협의 현주소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해도,

이것만으로는 그를 향하여 멋지다고 설레발을 치진 않는다.

 

그는 웹소설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무협을 개척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무엇이 무협소설인가'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 '왜 무협소설을 읽는가'와,

더 노골적이라고 할 수 있는

'왜 한국인이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인이 활동하는 이야기를 읽고 있는가?' 의문을 제기하고,

해답 또한 스스로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얘기하는데,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을 배경으로 했다고 해서 한국인의 무협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고,

무협의 틀을 빌어 한국의 얘기를 한다고 해서,

무협의 중심이 중국적인 것이라면 한국의 얘기라고 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어찌보면 무협이 지극히 중국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어떻게 한국적인 무협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은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할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의 끝에서, 좌백은 '무협을 쓰려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작법을 얘기하는데,

대단한 것이 없고 다독, 다작, 다상량이 그것이다. 

다음 이야기를 전개 시키고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숙성시키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파리리뷰의 '작가란 무엇인가'의 3권을 숙지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좌백같은 훌륭한 작가도 그런 책을 읽고 꾸준히 연구하는 것 같아서,

나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아서 가슴이 마구 벅차 올랐다.

 

마지막으로 이 부분을 인용하며 끝을 맺으려 한다.

20여 년간 작가 생활을 하면서 글을 못 써서, 혹은 잘 쓰지만 운이 안 맞아서, 또는 끈기가 부족해서 붓을 꺾은 작가는 많이 봤지만 성질이 고약하고 친구가 없어서 그만뒀다는 작가는 본일이 없습니다. 이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성격 개차반인 작가들도 수두룩하지만, 사실 저부터 그렇지만 작가로는 잘 사는 게 보통입니다. 글도 잘 쓰고 성격도 좋아서 대인관계가 원만하면 좋겠지만, 솔직히 그런 작가는 본 일이 드뭅니다.

  무언가 빈 곳이 있거나, 결함이 있거나, 트라우마가 있어서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사회부적격자, 병자에 가까운 사람들이 오히려 글에 색깔이 있어 읽을 만한 글을 쓴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죠. 그리고 그게 사실입니다.

ㆍㆍㆍㆍㆍㆍ그러니 외로움은 작가에게 있어서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필수인 거고, 외롭지 않은 것,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기간이 오히려 작가에겐 독이라고 생각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행복한데 왜 글을 쓰겠어요.(104~105쪽)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가 될 구실도 없거니와

만약 작가라고 한다면 그만 둘 구실도 없다.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끈기는 좀 되어주시고,

대신 성질이 고약하고 친구가 없어 '스.스로를 따. 시켜' 혼자놀기의 달인으로 등극할 지경이면서도,

외로움을 오히려 즐기니 말이다.

 

그러고보면, 외로움이 사무칠때도 있지만,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나를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외로움도 아무나 느낄 수 없는 재능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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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25 23:46   좋아요 1 | URL
무협지는 김용이지 말입니다..ㅋ^^..

양철나무꾼 2016-05-26 10:41   좋아요 1 | URL
김용은 만인의 필독서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이 연사 주장하는 바입니다~!!!

2016-05-26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5-26 10:46   좋아요 1 | URL
창작을 하는 건 언감생심이고,
한때 번역을 해볼까 했었던 적이 있는데,
번역도 만만하게 볼게 아니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내로라하는 번역가들도 때로 마리앙또와네트처럼 번역하는걸 보고,
포기했습니다.

이젠 좋은 책들, 건강이 시간이 허락할때 읽자는 주의라서요~^^

2016-05-26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6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6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6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6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5-26 09:19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영웅문>도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것만 보았고 무협지는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무림고수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롭네요.

특히 인용해주신 마지막 문단 좋아요.
행복한데 왜 글을 쓰겠어요....
외로움을 느끼는 재능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아침이예요. 좋아요~~

양철나무꾼 2016-05-26 11:11   좋아요 2 | URL
영웅문을 텔레비전에서 보셨다니,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네요.
우주삼라만상이 책속에 들어있는 느낌이랄까?

전 그중에 김용이 깊이가 있어서 좋았는데,
김용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좌백과 한상운을 들 수 있었는데,
한상운이 요즘 드라마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같더라구요.

뭐든 개발하고 계발하면 재능이 된다는 거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들려, 근사하잖아요?^^

해피북 2016-05-26 10:55   좋아요 2 | URL
저는 오늘 양철나무꾼님 덕에 좌백이란 분을 알게되었어요 ㅎ 그리고 요즘 우연인지 필연인지 외로움은 결함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힘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ㅋ 저두 혼자 있는 시간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양철나무꾼 2016-05-26 11:15   좋아요 1 | URL
혼자있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는 거,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를 사랑하는 시작인것 같아요.

해피북님 인생의 주인공은 해피북님이고,
제 인생의 주인공은 저인 것이고,
우린 지금 현재 이 시간을 사는 것이니까.
지금 이 시간을 사랑하고 즐기면 그만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