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까지만 해도 짧은 반바지를 부담없이 입었었는데,

올 들어 살이 급격하게 찌거나 한건 아닌데도, 

노출이 심하거나 몸에 꼭 끼는 옷을 입으려고 하면 채신머리 없어 보일까봐 불편하다.

 

며칠 전 토요일 한낮,

때이른 불볕더위라서 그런지 더워도 너무 더운날,

퇴근 길 직장 근처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에어컨을 준비하지 못한 채, 창문을 활작 열어놓고 달리고 있었고,

난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버스 안으로 눈길도 못주고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그렇게 서있었다.

그런데, 나와 조금 비껴 앉으신 할머니 한분이 바람에 항아리모양으로 부풀어오르는 내 롱티셔츠를 쳐다 보시고는,

이윽고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서자, 할머니는 일어서시며 내 손을 잡아 끌어 자기 자리에 앉히시는거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을 못 잇는 나를 향하여,

"색시, 임신 했잖수, 나 이래뵈도 강단이 있어서 괜찮아요~^^"

같은 여자끼리 다 안다는 듯 한쪽 눈을 찡긋하신다.

 

임신을 한듯 연기를 하며 편하게 앉아서 가는 호사를 누렸어야 했을텐데,

난 그러질 못하고,

"아닌데요~ㅠ.ㅠ"

하며, 손사래와 함께 머리를 강하게 도리질 쳤다.

 

버스 안의 누군가가,

"선생님은 좋겠수. 그 나이에 새댁 소리도 듣고~."

하며 위로의 말을 건냈지만, 술이 불콰해진듯 얼굴이 벌개진 내게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 책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를 쓴 다나베 세이코가 쓴 대표적인 에세이라는데,

일본소설을 즐겨읽지 않는 나는 그니를 몰랐던 터라,

그니의 지명도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고,

'환상의 빛'과 '금수'를 쓴 '미야모토 테루'가

'다나베 세이코의 대단함을 가장 많이 느꼈던 작품이 바로 이 책들에 실린 에세이다.'

라고 해서, 미야모토 테루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되었는데,

그 저변에는 책이 나를 비껴가는 나날의 연속이었던 것도 한몫한다.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것은 '다나베 세이코'가 1928년 생으로 지금은 파파 할머니, 여성이라는 것이고,

이 책의 에세이들은 어딘가에 연재되었던 것인가본데,

그때만해도 아기가 없는 비혼녀였으며, 마흔 근처의 중년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니가 아기가 없는 비혼녀, 처녀를 추구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오는데,

전시에 '낳아라, 번식하라'를 외치며 '교배'에 힘쓰고 나온 배를 보란 듯 내밀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던 임산부를 보며 수치심을 느끼고 부끄러워 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수치스럽지 않은 얼굴을 하고 수치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여학생이 바로 나였다.'라고 하고 있었으며,

그 반대급부로 라고 해야 할까,

'요즘 들어서 갑자기 나잇살이 찐 나는 다른 사람이 혹시 "임신하셨어요?"라고 물어오면 큰 소리로 "아니요, 제 배인데요"라고 대답한다. 일반 기성복은 맞지 않아서 임부복 코너를 헤매는가 하면, 때에 따라 일부러 배를 내밀고 전차 안의 노약자석을 감쪽같이 낚아챈다.(161쪽)

라고 하는걸 보고 일종의 위안을 얻었으니, 이런걸 두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그니를 연애소설을 쓰는 소설가 내지는 음담패설을 쓰는 에세이스트로 기억한다는데,

내가 그니의 작품들을 안 읽어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었던 게 이 책을 재밌게 읽는데 한몫한 것 같다.

더우기 역자후기에서,

그니가 전쟁과 고도성장을 겪은, 남성 중심 사회를 겪은 일본의 여성작가라는 점을 감안해주면 좋겠다고 하는 걸 보면,

이런 글을 여자가 써낸다는건,(여자가 쓴 글이어서 나는 제대로 감정이입을 하고 몰입을 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일본이고, 연애소설을 쓰는 작가여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보니까 알겠는데,

이 얘기가 단지 연애소설도 아니지만,

그냥 얘기하기는 좀 껄끄럽다고 하여 음담패설로 분류될 에세이 들도 아니다.

 

창피한 얘기지만,

나만해도 내 자신을 당당하게 주장하고는 싶지만,

내가 어떤걸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조차 모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원하는 걸 주장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추상적이라고 해야할까, 뜬구름 잡기라고 해야할까 그렇다.

그렇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당당한 주장을 넘어서 문란하게 비춰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땅의 중년 여자와 중년 남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청년이고 중년이고, 남자이고 여자이고, 를 떠나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 없이 자기 자신만을 고집하게 되면,

그것은 독선이고 아집이고,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의 엮임은,

정신적이냐 육체적이냐, 의 차이는 있지만 '불륜'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다.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평상시에는 그렇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던 국가색 따위가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 대신,

남자와 여자를 구분짓는 문제들에 쉽게 공감을 하겠는걸 보면,

국가보다는 남녀의 성별이,

무언가를 나누고 경계짓는 더 큰 구별 요인인가 보다.

 

솔직히 이 책에 나온 얘기들은 내 의견과 일치하는 것도 있고, 그럭저럭인것도 있고, 아니올시다, 인것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배 나온 남자를 싫어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머리가 벗겨진 남자도 숱이 적은 남자도 싫지 않다. 첫인상부터 싫은 남자는 뭘 해도 싫을 수밖에 없겠지만, 내가 사랑에 빠진 남자라면 배가 나왔든 머리가 벗겨졌든 옆에 앉아 있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행복해진다. (115쪽)

라는 구절은 내가 쓴 것처럼 정확히 일치한다, ㅋ~.

 

이 책의 제목은 '여자는 허벅지'라고 해서 다소 야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지만,

나라면 이렇게 바꾸고 싶다.

여자고 남자고 종아리는 제2의 심장이다.

건강하게 살려면 그 운동 뿐만 아니고, 종아리를 가꾸고 종아리 운동 열심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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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5-26 09:59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여자는 허벅지`보다 `여자는 종아리`가 더 야하고 화끈한 느낌이 드는 제목인 걸요~^^
저도 요즘 책읽기가 영 신통치않아서,
봄에,
먼산 지천에 깔린 꽃에,
별의별 핑계를 다 댑니다여~^^

님도 좋은 하루요~^^

cyrus 2016-05-24 19:16   좋아요 0 | URL
사람은 무언가를 구분지어서 자신의 소속감을 유지하고 싶어 해요. 그래야 사는 게 편해지잖아요. 구분지어진 것과 반대로 행동하면 아웃사이더로 낙인찍히기 쉽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6-05-26 10:25   좋아요 0 | URL
언제던가 우리아들이 아싸이러고 카.톡을 보냈길래,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했더니,
아웃싸이더의 약자인데 것도 모르냐면서,
그러니까 엄마는 아웃싸이더인게 맞는거라고 해서,
엄마를 놀려먹는 나쁜넘이라고 툴툴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여.

님의 댓글을 읽는데, 왜 그 생각이 나는 걸까요? ㅋ~.

2016-05-24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5-26 10:31   좋아요 0 | URL
전에 그럼 트레드밀 사진은 설정 샷~? ㅋㅋㅋ~.
트레드밀보다는 운동장이,
것도 트렉보다는 흙길이 여로모로 좋죠~^^

임산부는 무조건 우대되어야 마땅하지만,
세계적인 저출산국가라고 해서,
아이들이 귀하다보니 너무 버릇없이 키우는 경향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