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 가고 싶은 카페에는 좋은 커피가 있다
구대회 지음 / 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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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관계 맺으며 어울려 사는 존재이고,

나도 사람인지라 이웃 알라디너의 서재를 기웃거리고 마실 다니다보면 어느새 장바구니가 불룩해진다.

그렇게 구입하는 책들은 취향이 나랑 비슷하면 익숙해서 좋고,

나와 다르거나 비껴가면 그런대로 새롭고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좋다.

 

혼자 읽는 책과 관계 맺으며 책을 읽는 행위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책 속에 아무리 많은 정보와 지식이 담겨있더라도 혼자 읽어서는 오독이나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는고로, 독선이나 편견, 아집으로 흘러갈 수 있는 반면,

관계 속에서 읽게 되는 책은 설사 오독이나 오류가 있더라도 어울리는 동안 닳고 둥글어지고 말랑해지고 유연해지는 과정을 통해서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고, 그렇게 우리 삶 속에 녹아드는 것일테고,

우린 관계 속에서의 그걸 '삶의 지혜' 또는 '혜안'이라고 부르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미루어 짐작한다'고 이웃 알라디너의 페이퍼에서,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원두를 로스팅하기 전에 한 번, 로스팅하고 나서 한 번 결점두를 골라내었다'는 대목을 읽다가,

이 책과 이 책의 저자 구대회가 궁금해졌다.

번거롭기도 하지만 미미하기도 해서, 결점두를 골라내는 일은 보통 생략되거나 시늉이기가 쉬운데,

결점두를 골라내는 일을 한번으로 끝내지도 않고 고르고 또 고르는 것이나,

단골이긴 하지만 고객까지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결점두를 골라낸다는 건,

웬만한 소신을 갖고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겠어서 였다.

 

보통 이런 책들을 보면,

커피집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춰  정보 수집과 전달에 치중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소홀하거나 무시되곤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이 사람의 가치관과 성품, 말빨과 글빨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장력, 일을 하는 추진력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의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좋았고,

거기다가 책으로 만들어낸 상품성까지 훌륭했다.(이병률시인의 달 출판사이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셋집 보증금으로 약18개월동안 40여개국을 다닌 커피 여행기 부분에 비중을 두었어도 좋았을것 같은데,

너무 과감하게 뭉텅이로 생략했지 싶다.

 

암튼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커피집은 하기가 힘들다 내지는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따위가 아니라,

하고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겠다는 기본 줄기와 이 사람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곁가지 정도였다.

 

커피집을 하고 싶어서 잘 다니던 대기업(증권회사였던듯)을 그만둔 것은 흔치 않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털어 커피여행을 다닌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커피집을 하다가 중간에 가배무사수행을 떠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 모두를 순조롭게 기꺼이 행할 수 있도록 필요조건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는 한가지였고 가장 잘 하는 일이라는 충분조건으로 나타난다.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는데,

난 여기에 이 사람이 미각이 뛰어나고 감각적인 사람이다, 에 한표를 걸겠다.

그러나 어깨를 타고 허리까지 매끈하게 흐르는 군더더기 없는 이탈리아 남성 정장 같은 깔끔한 쓴맛과 각선미 좋은 여성의 검은색 긴치마 아래로 보이는 가늘고 하얀 발목 같은 신맛 그리고 커피를 다 마시고 난 다음에도 위胃에서부터 코까지 치고 올라오는 기품 있는 노년의 잔향까지. 바로 이맛을 찾았었다.(26쪽)

그냥 수더분하고 두리뭉실한 사람이 이런 문장을 구사하기는 힘들다.

 

쿠바를 여행하며 모히토를 들이키고 살사실력을 뽐내는가 하면,

최고급시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담배를 처음 피우는 그가 누리는 호사도 그렇다.

에스프레소-럼-에스프레소를 넘나드는 향연을 줄기면서,

입안에 남은 럼의 잔향과 커피 향이 섞이면서 오묘한 맛을 냈다. 설탕의 단맛으로 마무리. 10여 분 만에 각성과 몽환의 두 세계를 경험했다. 뭐든지 지나친 것보다는 조금 서운한 듯해야 다시 찾게 된다.(31쪽)

며 소회를 밝히는 부분도 그렇다.

그들은 왜 서로 마주보지 않고 카페 밖을 향해 앉아 있을까.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싶어 물어보니 그저 지나가는 사람을 보기 위해서라는 조금 허탈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게 무슨 큰 재미가 있을까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따라해보니 처음엔 지루하고 무미건조했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옷맵시 그리고 걸음걸이를 관찰하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모로코의 커피 맛은 기대할 게 못 된다. 이 역시 눈으로 마시는 커피라고 해야 정확한 것 같다. ㆍㆍㆍㆍㆍㆍ머리 희끗희끗한 카페 주인이 포터 필터에 커피 가루를 담고 그룹에 장작한 후 손으로 레버를 내려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은 맛을 떠나 그 행위만으로 멋스럽다.(42쪽)

 

아래 문단을 보면,

그의 뛰어난 미각과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면 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와 지리를 넘나드는 그의 방대한 지식과 내공도 알 수 있다.

칠레를 떠올리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체 게바라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인류애를 느꼈다는 아타카마 사막도 아니고, 기가 막힌 비경을 간직한 토레스델파이네 산도 아니다. 그저 도심에서 만난 평범한 카페다. 그리고 환한 웃음과 활기찬 서비스로 카페를 가득 채우는 직원들이다.(42쪽)

 

하지만, 아무리 미각을 비롯한 다른 감각이 뛰어나고,

다방면에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과 깊은 내공을 자랑한다고 해도,

그의 이런 가치관과 소신을 보지 않았더라면, 난 이 책이 좋다고 설레발을 치지 않았을 것이다.

 

커피가 좋고 그래서 커피집을 하고 싶다고 해도,

커피가 자라나는 지리적 조건과 커피농장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 주변환경과의 연대나 유대관계 따위는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익히려 하지, 직접 보고 느끼겠다고 찾아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타페데보고타에 있을 때 같은 숙소에 머물던 여행객들은 내가 커피농장에 가려고 한다니까 왜 가냐고 되물었다. 커피 농장에 커피밖에 더 있냐면서. 틀린 말은 아니나 커피 농장에 가는 이유는 커피를 보려는 이유도 있지만 농장의 지리적 조건, 농장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주변 환경 등을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서였다. 이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는 곳이 콜롬비아였다.(58쪽)

 

그는 스스로 맛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고, 그 결과 지금의 구대회커피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동안 그를 이룬 모든 것들이 그가 좋아하는 커피를 하기 위한 밑걸음이었고 여정이었던 것 같다.

그가 카페를 창업하기까지의 과정,

카페를 창업하고나서 영업과 소비 계층을 분석 하고 이익을 창출하기 모든 과정이,

그의 입장에선 일반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었겠지만 일반인의 시선으론 쉽지 않은,

그의 전직장이 증권회사에서 가능한 수완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그렇다.

커피를 향하여 미각과 온갖 감각들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발휘하는 만큼,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그 이유때문에 쉽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도,

모두 고객으로 아우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러구 저러구 해도 내가 이 책을 향하여 좋다고 설레발을 치는 것은,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라는 이 책이 커피집을 하려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의 일반적인 '관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으며,

그것을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라고 예외를 두지않고 엄격하며,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쿨하게 인정하기 때문이다.

  대개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한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의 논리로 상대방에게 자신이 맞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커피가 팔리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내 커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카페의 근본인 커피를 소비하지 않고, 공간과 위치를 소비하기 때문에 내 커피가 소수에게만 소비된다고 여겼다. 고객들의 커피에 대한 식견이 높아지면 내 커피는 지금보다 더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다. (141쪽)

 

 

커피 공부는 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다양한 커피를 많이 마시고, 눈으로 보며, 코로 느끼고,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본인이 바라고 원하는 커피를 볶거나 추출할 수 있어야 한다.(178쪽)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인 삶이라는 것도 우리가 머리라고 하는 이성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건 아닐 것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더불어 자꾸 관계를 맺고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맡고 숨쉬고 입으로 먹고 음미하게된 공감각을 말과 분위기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자각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걸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유지하고 그 간극을 줄이는 비결이 아닐까?

 

여지껏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겠다, 그런 그가 부럽다고만 했지,

자신이 좋아하는 그 한가지를 위하여 올인할 수 있었던 열정,자기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의 이면인, 다른 것들을 포기할 수 있었던 용기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었다.

 

선택한 것을 앞에 두느라고, 그것을 위하여 포기한 수많은 것들은 배경이나 여백으로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양손에 쥐고 꾸물거리다가 넘어지면 코가 깨진다는 걸 명심하고,

포기한 것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내야 한다.

 

'나'라는 존재는 그런 모든 경험과 실수가 모여서,

존재 뿐만이 아니라 배경과 여백이 어우러져서, 이루어진걸 잊지말아야 하겠다.

 

요즘의 내 상태를 반영해서 그렇게 읽힌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단지 커피책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만 삶이 버겁거나, 관계 속에 머물지만 관계가 힘든 사람에게는 위로나 치유의 대용으로 읽혀도 좋겠다.

책 속의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지만, 이 카페 안은 느리게 움직여요. 세상에서 상처받고 지친 사람들이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내 커피로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어요.(87쪽)

오래간만에 책을 읽으면서 위로받고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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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7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8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27 22:36   좋아요 0 | URL
소소한 경험을 자주 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6-04-28 10:27   좋아요 1 | URL
`소소하건` `광대하건` 경험을 통해서 얻는 것들은 그것이 설혹 즐거움의 형태를 띠지 않는다고 하여도 삶을 행복하게 만들겠죠?
님도 소소한 경험들을 일궈가는 행복한 하루되시길~^^

2016-04-28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8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4-28 16:12   좋아요 1 | URL
보통 이런 책들 예의상 주례사 서평을 하게 마련인데,
전 성격 상 빈말 못하는 편이고...그래서 전 웬만하면 책을 다 사 읽습니다.
(제가 별점에 후하지 않다는게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좋았습니다.

커피집 창업하실분들이 아니라도,
마음이 폭폭하거나 꿀꿀할때 읽으시면,
한번쯤 위로 받으실 수 있을실 듯~!^^

2016-04-28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8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nomadology 2016-04-29 06:43   좋아요 1 | URL
읽어보려고 생각하지 못했던 책인데 나무꾼님 서평덕에 땡기네요. 요즘 책을(사모으고 읽지않는 걸) 좀 줄여볼까 생각중인데 가능할까요?

양철나무꾼 2016-05-02 10:49   좋아요 1 | URL
제가 님의 독서 취향을 몰라서리~,
그리고 저도 요즘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어서,
뭐라고 훈수를 둘 형편은 못 되고~,
저는 참 좋았습니다~^^

2016-05-01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2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