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모 에 렉 투 스

 

                                                                                                  - 백  무  산 - 

 

  타이어를 껴입고 배를 깔고 바닥을 기며 구걸하던 걸인이 비가 오자 벌떡 일어나 멀쩡하게 걸어가는 모습에 어이없는 배신감을 느낀다지만

 

  상인에게 상술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걸인에게 동냥의 공정거래를 요구할 참인가 정치꾼들의 쇼는 전략이라는 건가

 

  사지 멀쩡한 놈이라고 혀를 차지만 사지 멀쩡한 거지가 없는 세상이라면 모를까 구걸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구걸 가운데 어떤 구걸이 도덕적인가

 

  비참해야 하는데 덜 비참한 것이 문제였을 것 발밑에서 계속 기어야 하는데 머리를 쳐들었기에 혐오가 생겼을 것 고귀하고 선한 본성에 상처를 입혔다는 건가

 

  머리를 땅에 닿도록 굽신대며 표를 구걸하고 신분을 위장하고 머슴입네 간을 빼줄 듯이 가난한 자의 발바닥이 되겠다던 정치인들의 계급 위장은 고상한 전략인가

 

  생존을 위해 직립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들뿐인가 진화를 교란하고 기적을 연출하는 인간들이 그들뿐인가

 

  배를 깔고 바닥을 기다 멀쩡하게 일어나는 기적과 숙였던 고개와 바닥에 깔았던 신분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거만한 지배자가 되는 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도덕적인 기적인가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 중에서-

 

 

 

 

 

 

 

 

 

 

 폐허를 인양하다
 백무산 지음 / 창비 /

 2015년 8월

 

 

20대 총선일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여당과 야당이 꼴난 의석 수를 두고 싸우는 것을 보면 웃기지도 않는 것이,

한편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 기분이랄까,

자충수를 두는 걸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4년 주기로 총선이 치뤄지다보니, 4년마다 한번씩 비슷한 광경들을 목도하게 된다.

올해도 어김없다.

언제부턴가 아침 출근길 거리 곳곳에서 밝은 목소리를 가장하여 인사하는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라는 이들이 눈에 띄고,

목 좋은 건물 외벽에는 이들의 얼굴이 대형 현수막에 걸려 나부낀다.

 

그런데, 이들이 내건 대형현수막이 건물 전체 유리창을 막아,

건물 안으로 햇살 한줌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려나 모르겠다.

 

햇살 한줌이 나같은 서민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중요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서라고 했던 디오게네스의 용기가 닮고 싶은 오늘이다.

하긴 그 전에 우리에게 알렉산더 대왕 같은 왕은 없는 것인가 툴툴거리게 되지만,

역사상 그레이트를 붙인 왕이 몇 명이나 되던가 말이다.

 

오늘 강헌을 읽는데, '목(木)'의 기운을 이렇게 얘기하더라.

ㆍㆍㆍㆍㆍㆍ물론 넝쿨처럼 옆으로 자라는 나무도 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대부분의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나무의 성질이나 나무가 있는 풍경을 떠올리기보다는 지표면에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상승의 기운을 상상하길 권한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지구의 중심으로 떨어진다. 나무로 표상되는 목(木)의 상승하는 기운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멋진 개념이다.(63쪽)

 

 

 

 

 

 

 

 

 

 명리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12월

 

 

그래서 생각난 것인데,

'직립'을 내마음대로 '배를 깔고 바닥을 기다'로 재정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혼란스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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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06 18:11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출간된 강헌의`명리`, 저도 읽어보고 싶긴 한데, 조금 더 찾아봐야 겠어요.
양철나무꾼님, 편안한 저녁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01-08 09:22   좋아요 1 | URL
강헌 님 명리, 기초 지식이 없으면 산만하고 어려워요~--;
예제가 많고 설명이 잘되어 있는 편이지만,
군데군데 본문내용과 상관없는 원국표도 등장해요.
좀 더 찾아보시고 신중한 선택을 하시는게 좋으실 듯~^^

서니데이 2016-01-08 11:48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앞부분 조금 읽어봤는데 망설여져서 질문드렸어요. 실제 책을 보고 사야 될 것 같아요. 설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좋은 금요일 되세요.^^

2016-01-06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8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9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