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의 요리 - 요리사 이연복의 내공 있는 인생 이야기
이연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누가 나에게 좋아하는 요리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박찬일이라고 대답하지만,

제대로된 대답이 되지않는 이유는 그가 만든 요리고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끔 백년식당이란 책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가 추천하는 식당들을 가서 먹어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맛이 있을때도 있고 내 입맛에 영 아닐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쓰는 글만큼은 언제나 맛깔스러워서 혹하게 되는데,

이 책도 본문보다 '아이고, 형, 연복이 형'이라는 '추천의 글'을 더 열심히 읽었다는 걸 조심스레 밝힌다.

 

텔레비전에서 그를 몇번 보고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며 멋지다고 생각했었지만, 박찬일이 쓴 '추천의 글'을 볼때까지만 해도 나의 선택을 신뢰할 수 없었다.

요리 뒤로 그가 인사를 나왔다. 꾸깃꾸깃한 싸구려 조리복 상의에 아무렇게나 입은 낡은 청바지, 요리 모자 삼아 대충 눌러쓴 게리슨모, 게다가 앞주머니에는 누런색 말보로 담배가 떡하니 꽂혀 있었다.(5쪽)

그와의 첫만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데,

나를 혼란스럽게 한건 꾸깃꾸깃한 싸구려 조리복 상의나, 요리사의 자존심이라는 모자를 아무거나 대충 눌러쓴 때문은 아니었다.

음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감각이 그렇지만 미각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라, '앞주머니에 꽂힌 누런 말보로 담배란 단어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이 둘의 첫 만남이 십년도 더 전의 일이고, 담배를 끊은지가 13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계속 그랬다.

책을 읽으면서 이십대에 축농증 수술을 잘못 받아 후각이 마비되어 냄새를 못 맡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요리사로서 그가 지키는 철칙에 관해 읽고나서야 '역쉬~, 나의 사람보는 눈은 틀림없구나. 음화화화~'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가 요리사로서 지키는 철칙은,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 내 배가 부르면 미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예전에는 피웠는데 어느 날인가 담배가 혀를 텁텁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어 끊어버렸다.

폭음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3가지인데 다 미각과 연관된 것들이다.

 

언젠가 김제동의 모친이 '가식도 10년이면 예절로 봐주어야 한다' 고 했다던게 떠올랐다.

처음엔 가식이었다 하더라도, 몸에 익어 버릇이나 습관이 되어버리면...성격이나 본성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미 일텐데,

그런 의미의 연장선 상에서 이 책이 참 좋았었다.

다른 요리책들처럼 레시피를 공개한 책이 아니어서 좋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가 직접 썼다고 폼잡지 않고 녹취했다고 고백해주어서 더 좋았었다.

솔직히 중화요리라는게 레시피가 있고,

그 레시피를 고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맛이 똑같이 나는 요리라고 생각하지 않기도 하지만 말이다, ㅋ~.

 

 

암튼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엿본 것은,

43년 경력을 넘어 이 시대가 기억해야 할 땀과 맛을 일깨워준 중화요리사 이연복의 인생이야기 였다.

물론 세월이 세월이니 만큼 생략되고 미화되고 각색되었겠지만,

그래도 한가지 일을 43 년동안 했다는 것은,

기술자 장인의 경지를 넘어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킨 자의 내공이 느껴지기에 부족함이 없다.

난 개인적으로 달인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게 숙련된 자의 매너리즘으로 비춰져서 였다.

그런데, 이연복 님이라면 달인이 아니라 달관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때문에 그가 하는 얘기들이 요리와 관련된 얘기들인데도 불구하고 삶 전반에 관한 얘기로 읽혔고,

그렇기 때문에 주방의 후배들이 그를 지칭할 때 사용한다는 '사부'란 호칭으로 나도 불러보고 싶어졌다.

ㆍㆍㆍㆍㆍㆍ내가 만들었던 음식들은 한식, 일식, 중식이 섞여 있는 스타일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바로 중식이 갖고 있는 장점 때문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세계 어느 나라에나 중국 음식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쉽게 배달해 먹는 만큼 중식은 어떤 환경에서든 변형이 쉬운 음식인 것이다. 한식이나 이탈리아 음식만 해도 확고한 자기 스타일이 있는데 중식은 상대적으로 응용이 빠르다. 전 세계적으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고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그 이유가 클 것이다.ㆍㆍㆍㆍㆍㆍ일본에서 직접 가게를 운영하면서 크게 느낀 것은, 열심히 하려고 시작했으면 사람들의 성향에 맞춰서 메뉴를 연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ㆍㆍㆍㆍㆍㆍ

일본에 있으면서 사람 대하는 법도 많이 배웠다. 친구 고르는 법부터 사람을 파악하는 법, 배짱 있게 사람들을 대하는 법까지 다양하게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욱하던 성격도 많이 죽었다. 대사관에서 일하던 시절만 해도 48킬로그램에 눈에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날카로운 모습이라, 대사에게 웃는 연습을 좀 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한번은 대사가 자기처럼 아침, 점심, 저녁에 거울을 보면서 미소 짓는 연습을 해보라고 했다. 2~3개월 동안 내가 제대로 연습했는지 확인할 정도였다.(82쪽)

그가 일본에 있으면서 사람 대하는 법을 배웠다는 부분은,

나를 포함하여 사람을 상대로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배우고 적용시켜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이게 그의 자존심이나 자신이 만드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관련한 올곧음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한다.

음식을 팔아서 매출이 오른다는 건 당연히 재료비도 예전보다 더 든다는 뜻이다. 그래도 매출이 엄청나게 올랐으니, 전보다 훨씬 많이 남기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런 걸 생각도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장님이 그랬다. 나는 말해봐야 소용없는 사람들과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세히 이야기해봤자 이 사람에게는 변명밖에 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73쪽)

 

'주방사람들의 뒷모습만 봐도, 앞에 들고 있는 음식 온도가 몇 도인지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호통을 칠 수밖에 없다.(117쪽)'는 대목 같은 경우는 연륜이나 내공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그의 정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내 몸이 조금 편하자고 변칙을 쓰면, 그건 요리사가 아니다.ㆍㆍㆍㆍㆍㆍ그건 막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청결이 몸에 배야 하기 때문이다.(176쪽)

ㆍㆍㆍㆍㆍㆍ

"음식 만들때 가장 중요한게 뭐라고 생각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 있게 '간'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다 뒤이은 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간도 중요하지만, 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나는 그때까지 그런 말을 입밖에 내어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 그게 기본이었지.ㆍㆍㆍㆍㆍㆍ그러면서  내 마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음식을 대하는 마음을 표현하자면 '정확하게, 정직하게'이다.(177쪽)

 

음식 만드는 사람이냐, 장사하는 사람이냐?(242쪽)

 

간혹 병원이나 약국 등도 이익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 학교나 학원도 수업료나 강의료를 내야한다...따위의 얘기를 한다.

여러가지 생각이 복잡하지만 이연복을 흉내내어 한 마디만 하고 싶다.

사람 몸으로 가는 거,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거 갖고 장난치지 말자.

음식이 사람 몸에 들어 가서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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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10-07 18:36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이 제대로 보신 분이라면~~두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책 재미나겠어요~~
근데 오랜만이어요?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5-10-19 14:21   좋아요 0 | URL
제가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이 있는게 아니라,
인생의 간난신고를 겪은 사람들 끼리 통하는 일종의 `찌찌뽕`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데 잘 지내세요, 책 읽는 나무 님~?

세실 2015-10-07 20:53   좋아요 0 | URL
모든 요리사가 음식=정직한 마음으로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요리는 영 젬병이네요...

양철나무꾼 2015-10-19 14:23   좋아요 0 | URL
세실 님처럼 미모로우신 분이라면,
요리 정도 젬병인거... 용서할 수 있습니다~ㅅ!

저라면 세실님 얼굴만 쳐다보고 살아도 배부를 것 같거덩여~^^

세실 2015-10-19 17:05   좋아요 0 | URL
호호호 울 신랑은 전혀 그리 생각안하는게 문제죠?

해피북 2015-10-08 09:04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이세요~~양철나무꾼님^~^
저희 엄마두 어릴때부터 냄새를 맡지 못하셔서 엄마 코대신 식구들이 냄새를 맡아서 말해주곤 했는데 이연복님 사연듣고 엄마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ㅎ 43년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것. 저는 물질적 부유함보다 그런 가치관이 더 멋져보이더라구요 ㅋㅂㅋ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5-10-19 14:25   좋아요 0 | URL
전 달인이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지만,
삶이 배어있고 생활이 녹아있는 그런걸...이길 것은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