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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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쯤으로 표현할 수 있으려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잘 살펴보면 내 몫의 다름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건 아주 미세하고 미미한 변화이지만 순환이 만들어 내는 원은 눈곱만큼씩이라도 커지기 마련이다.

 또 사람들 사는게 천차만별이고,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과 개천에서 태어난 사람은 태생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사람들 지지고 볶고 사는 모습은 고만고만한 것이 다 거기서 거기다.
 프랙탈 이론의 창시자는 자연과 우주의 모든 것을 프랙탈로 보았다. 난 여기서 우리네 삶 속에도 이런 것들이 숨어 있음을 읽어내고는 스스로 대견해 했는데, 장강명과 이 책 속의 남자는 이걸 '패턴'이라고 얘기하고, 패턴을 두세개로 단순화시키면, 마침내 어떤 외부 자극에도 비슷한 반응(9쪽)을 보이기에 이른다고 한다.

  패턴을 돈다는 것은 궤도를 움직인다는 것이고, 패턴을 지워가다 보면 두세 개만 남고 마침내 하나도 안 남게 되었다는 것은 궤도를 이탈한다는 것일게다. '처음'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겠고 '시작'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겠다. 이렇게 조목조목 의미를 되짚는 것은 기준 뿐만 아니라 방향 또한, 나로 '비롯함이냐, 말미암음이냐'처럼 엄청나게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구별이기 때문이다. 

  남자여자에게 '처음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한 이 말은 '굉장히 인간적인 것'을 가장한 인간적이지 못한 인간 말살 행위이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자신의 잘못 앞에서는 '처음'이라는 잣대나 기준을 들이대고 너그러워진다. 나로 비롯함은 처음이고 몰라서라던 관대함일 수 있지만, 상대방으로 방향성이  바뀌는 순간 말미암음이 돠어 지나침으로 돌변한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개념을 버려야 해'라는 말은 내게 선입견이나 편견을 배제하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말言과 칼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기준을 정한 후의 방향성과 시간적 경과를 사이에 두고, 말을 한 사람과 말을 듣는 사람이, 칼을 휘두른 사람과 그 휘두른 칼에 맞는 사람이, 정반대 선상에 있다는 것을 종종 간과하게 된다. 우리는 비롯함에 대해서는 시작의 서툼이라는 이유로 관대한 경향이 있지만, 말미암음이랑 관련하여선 숙련된 것의 편안함만을 얘기하지 달관이 만들어낸 매너리즘이나 지나침(또는 과함)으로 인한 실수를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비롯함이건 말미암음이건 간에, 기준점으로부터 똑같은 거리와 시간만큼 경과한 것일 뿐이다. 꼭 칼을 휘둘러야만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처 입고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데도 자신의 상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게도 되고, 환상통처럼 잘려져 나가 이미 없는 부위의 통증을 가지고 소리지르기도 한다.

  진실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서 함께 경험하고 깨우쳐 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이유이고, 누군가에게는 책을 쓰는, 누군가에겐 칼을 벼리는 이유일 것이다. 세상은 같은 패턴의 무한반복이지만,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그럴 것이라고 믿으며 살고 싶다. 우리가 흔히 자연이라고 부르는 우주원리의 근본은 변하지 않지만, 자기유사성과 순환성을 가지고 눈곱만큼씩 변하는 모순된 구조이기도 해야 희망적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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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9-05 00:53   좋아요 0 | URL
멋진 글입니다.잘 읽고 가요! 프렉탈이 나오는 군요! ^^

양철나무꾼 2015-09-18 17:52   좋아요 1 | URL
멋진 글이라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곳에서 간혹 엿보게 되는 님의 문학적 내공이랑 감수성은 보통이 아니신듯 하던데,
그런 분한테 칭찬을 받으니 기쁜 걸요~^^

[그장소] 2015-09-18 18:08   좋아요 0 | URL
그..감수성~!!^^ 장군~!?
감수성을 사수하고 지키고 있는 ㅋㅎ.. 장군임을..알아봐 주시다니..제가 더 기쁩니다. ^^ (언제적 유머 인지..그춍?) 칭찬에 어후~ 저야말로후덜덜...
양철나무꾼 님에 전 곁가지일 뿐입니다. 저는 솔직히 내실없음..속이 텅빈 문학 ㅡ문학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ㅡ그냥 읽기쟁이 일뿐..저 위의 글같이 좀 일목이 요연하게 보고 정리해 쓰는 능력 이라도 있었음..싶은걸요..완전 과찬에 손발 다리 몸 통이 어쩔 줄 모릅니다. (이렇게 칭찬토스로 밤을 꼬박 지새우..응?!^^ 아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