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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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선악이나 정오(正誤)처럼 이분법으로만 나누어야 할까?

예를 들어 '비가 내리는 것과 그 비가 내리다가 그치는 것이 잠시 멈춘 시간' 따윈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침묵하지 않고 말은 하되 섞지는 않는다'정도가 될까?

이 책은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황량하고 황폐하지만,

오아시스를 품고 있어서 아름다운 사막 같은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다 읽고난 지금은,

1권 중반부를 읽을때까지만 해도 뻥이라고 생각했던 호킹지수에 대한 신뢰는 어느정도 회복됐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줄거리를 따라가며 읽어도,

중후반에 이르면 스토리라인이 뛰어나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

워너브라더스사에서 판권을 확보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책을 읽은 사람 중에 몇 퍼센트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도나타트는 '비밀의 계절'때도 '천재작가'라는 소리를 들었었다지만,

이번 작품도 명성에 걸맞게 다분히 중의적으로 읽힌다.

겉으로는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라는 그림을 모티브로,

미술관테러에서 엄마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소년의 성장과정을 그리고 있는듯 보이지만,

중의적으로는 아인슈타인도 설명하려다가 실패한 이론이라는,

자연과 우주의 근원을 물질과 힘에 있다고 믿는 '통일장이론'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담고 있다.

 

통일장이론과 비교되는 초끈이론이 있는데,

수학적으로 완벽할지라도 실험을 통한 실제적인 끈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이라기 보다는 수학적 이론이나 불완전한 이론, 철학적 차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인 운명이나 신 따위도,

보는 '관점'이나 '기준'을 강조하는 등 '우연'을 가장하는 듯 보이지만,

그 마저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철학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ㆍㆍㆍㆍㆍㆍ나는 좀 지쳤어. 내 방이랑 우리 개, 내 침대가 그리웠지. 그때 아빠가 행사장에서 나를 높이 들어 올리더니 달을 보라고 했어. 아빠가 말했지. '집이 그리우면 하늘을 봐. 어딜 가든 달은 똑같으니까.' 그래서 아빠가 돌아가시고 베스 이모네에 같을 때, 아니 뉴욕에 사는 지금도, 보름달을 보면 꼭 아빠가 나한테 말하는 것 같아. 뒤돌아보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어디든 내가 있는 곳이 집이라고 말이야." 엄마가 내 코에 입 맞췄다. "아니. 네가 있는 곳이 내 집이야, 우리 강아지. 나라는 지구의 중심은 너야."(1권, 344쪽)

꺼벙한 안경을 쓴게 해리포터와 닮았다고 하여 '포터'라고도 불리우는 '시오'가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이 말은 '관점'이나 '기준'을 강조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관점'이나 '기준'은 우리가 어찌 증명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나와 파브리티우스에게 무작위로 닥친 재난은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보지 못했던 똑같은 지점에서, 즉 우연이라는 점에서 만났다. 아빠는 그것을 빅뱅이라고 불렀는데, 비꼬거나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의 힘을 존중하며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몇 년 동안 연구해도 인과관계를 절대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나로 합쳐지는 것들, 여러개로 나뉘는 걸들, 시간 왜곡, 엄마가 미술관 앞에 서 있는데 시간이 흔들리고 빛이 이상해지는 것, 광대한 빛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불확실성. 모든 것을 바꿀 수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는 길 잃은 확률.(1권, 413쪽)

과학적인 용어처럼 들리는 '빅뱅'은 '우연'이라는 용어로 바꿀 수 있겠고,

'우연'이 반복되면 '신' 또는 '운명'이 되는데,

그걸 몇 년 동안 연구해도 인과관계를 절대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며,

'시간왜곡' 또는 '불확실성'이라고 하며,

바꿀 수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는 '확률'이라는 수학적인 용어를 과학적인 용어인양 사용하지만 과학용어는 아니다.

 

"왜냐면 웰티는 말하자면 광장기호증이었거든. 사람을 정말 좋아하고 시장을 정말 좋아했지. 시장의 그 끊임없는 움직임을 좋아했어. 거래, 상품, 대화, 흥정, 전부 말이야.ㆍㆍㆍㆍㆍㆍ웰티는 골동품상으로서 재능이 있었단다, 누구에게 어떤 물건이 맞는지 잘 알았지. ㆍㆍㆍㆍㆍㆍ학생이 물건을 보고 감탄하며 구경하려고 들어오면 웰티는 조그맣고 비싸지 않은 판화를 내놓는 식이었어. 모두가 행복했지. 웰티는 모두가 이 가게에 들어와서 크고 중요한 물건을 살 형편은 아니라는 걸 잘 알았어. 중매를 하는 것, 맞는 집을 찾아주는 게 중요했지."ㆍㆍㆍㆍㆍㆍ"웰티는 자기한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좋은 판매원이 될 수 있는 거라고 항상 말했는데, 나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동정심이 가는 절뚝발이.' 딴 속셈이 없어. 항상 외부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는 사람인 거지."

"아, 웰티는 어디서도 절대 외부인이 아니었어."(1권, 538쪽)

 

물건을 치켜세우면서 팔 때는 (한발 물러나서 속이기 쉬운 고객이 덫으로 걸어 들어오게 놔둘 때와 반대로)고객을 평가하여 그들이 투사하고 싶은 이미지를, 즉 실제 모습(잘난 척하는 실내장식가나 뉴저지의 주부, 남들 눈을 의식하는 동성애자)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을 파악하는 것에 승부가 달려 있었다. 아주 훌륭해 보이는 사람도 교묘한 속임수일 뿐이었고, 다들 무대 세트를 꾸미고 있었다. 비결은 내 앞에 서있는 자신감 없는 사람이 아니라 투사된 환상 속의 인물 - 감식가, 안식이 있고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약간 머뭇거리면서 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나는 곧 옷 입는 법(보수와 유행의 경계)을 배우고 공손함과 오만함의 정도를 조금씩 조정하면서 까다로운 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어떤 유형의 고객이든 골동품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고 가정하고 얼른 비위를 맞추다가 딱 적절한 순간에 얼른 흥미를 잃은 척하거나 한발 물러나는 것이었다.(2권, 44쪽)

골동품상을 하는 '웰티'와 '시오'를 묘사하는 대목인데, 묘하게 대조를 이루며 비교가 된다.

웰티는 고객들을 향하여 '관점'과 '기준'의 잣대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딴 속셈이 없는 마음.

반면 시오는 고객을 평가하여 그들의 유형을 나누었고, 주관적으로 가정하고 비위를 맞추다가 어긋나기도 한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고나 할까?

그러니  '관점'과 '기준'의 잣대에 따라 딴 마음, 속셈과 동의어가 될 수도 있는 셈이고,

'관점'과 '기준'의 잣대라는 것은 일정하게 유지하고 볼 일이다.

영혼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와서 과거와 현재 사이의 안개 낀 어딘가에서 다른 영혼들 사이를 떠다니는 것 같았다.(2권, 134쪽)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여러편의 책들이 겹쳐졌는데,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그 하나였고,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데이워치'나이트워치''더스크워치' 시리즈가 또 하나였다.

 

'관점'이나 '기준'의 잣대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멋지구리한 말로 탈바꿈한다.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으면 말이야."

ㆍㆍㆍㆍㆍㆍ

"그 여자를 사랑하는구나. 너무 많이는 아닌 것 같고."

"왜 그렇게 말해?"

"미친 듯이 화를 내지도 않고 난리를 피우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네 손으로 그 여자 목을 조르겠다고 펄펄 뛰지 않잖아! 그건 네 영혼이 그 여자의 영혼과 너무 깊이 얽혀 있지 않다는 뜻이거든. 좋은 거야. 내 경험을 생각해보면, 너무 사랑하는 사람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아. 네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널 죽일 사람이거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여자는 자기 삶이 있고 너에게도 네 삶을 갖게 해주는 여자야."(2권, 237쪽)

그동안 '너무'나 '아주' 따위의 수식어가 사용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사랑 또한 일방적인 '너무, 아주, 많이'는 '집요함'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ㆍㆍㆍㆍㆍㆍ나한테 먹을 것도 주고, 이야기도 나누고, 시간도 같이 보내고, 자기 집에 들여보내주고, 옷도 주고ㆍㆍㆍㆍㆍㆍ. 넌 아빠를 정말 싫어했지만 너희 아빠는 어떤 면에서는 좋은 사람이었어."

ㆍㆍㆍㆍㆍㆍ기백이 대단했어. 그래서 정말 힘드셨던 거야! 너희 아빠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줬어.ㆍㆍㆍㆍㆍㆍ"(2권, 441쪽)

 

그리고 '부모에게서 자식으로의' 한방향으로의 맹목적인 그것 또한,

나 또한 부모 보다는 자식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바라본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내경험으로는 선이 틀린 적도 많아. 선과 악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야.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는 존재할 수 없어.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면서 내가 아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넌 -판단에 둘러싸여서 항상 과거를 후회학, 자신을 저주하고, 자신을 탓하고, '만약에 이랬다면.''만약에 저랬다면.'묻지.'삶은 잔인해.' '그냥 죽어으면 더 좋았을걸 그랬어.' 음 - 이렇게 생각해봐. 신이 볼 때 너의 모든 행동과 선택이 선하든 악하든 아무 차이가 없다면? 패턴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아니, 아니야-기다려봐-이건 고민해볼 만한 문제야.우리의 악함과 실수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고 우리가 선에 다가가게 만든다면? 만약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길을 통해서만 그곳에 도달 할 수 있다면?"(2권, 444쪽)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때로는 세상을 선악이나 정오(正誤)처럼 이분법으로 보는 데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분법으로 보는 세상마저도 '관점'이나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서 수많은 경우의 수로 나뉠 수 있다.

 

흔한 예로 '내가 아는 최선'이라는 것마저도,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에 따라서 결과가 천양지차이다.

 

저 그림 속의 '황금방울새'도 그렇다.

발목에 매단 쇠고리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족쇄가 되기도 할 것이고,

편안하고 안락한 새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할테니까 말이다.

 

시오의 그 무엇도 부럽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보리스 같은 친구를 두었다는 사실이 내내 부러웠고,

이 책의 호킹지수 98.5%에 일조한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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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8-27 22:04   좋아요 1 | URL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 저는 참 좋아라하고 봤는데...^^ 그 워치 시리즈 3개 ..흥미로웠어요. 악과선이 태어나는 것을 마법사들이 지켜보는 것도..어스름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도.. 이 황금 방울새 열어놓고 얼른 나가지지는 않는 다는...ㅡㅡ;(빨리 읽는 편인데 요즘은 게으름이 포텐 터진 게 틀림없어! 그러는 중! 입니다~) 건강하게 8월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양철나무꾼 2015-08-28 08:59   좋아요 2 | URL
`세르게이 루키야넨코`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던데, 반갑습니다, 와락~((__))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또 다른 영역이 있다는 발상은, 그 시리즈를 읽은 후여서 자유로웠다고 할까요~^^
1권 중반부만 넘기면, 속도가 붙으실겁니다~!!!

마녀고양이 2015-08-28 15:16   좋아요 1 | URL
책보다는 자기 리뷰가 더 좋다눈~
참으로 꾸준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네. 나는
성격이 하두 끈기가 없다보니 한동안 열나게 쓰던 리뷰는 거의 손 놓았어.

말을 하되 섞지는 않는다, 그거 슬픈 관계지... 아무 상관 없는 사이인거네. ^^

[그장소] 2015-08-30 23:49   좋아요 1 | URL
루키야넨코~♥ 좋지않아요?^^전 이런 차원이 화기애애~한 스토리가 좋아요!^^저도 양처나무꾼님과 동지애가 모락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