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같은게 필독서여서, 열심히 읽었지만,

독후감을 써서 상도 받았던 거 같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면, 내용도 이해할 수 없는걸 가지고 작문을 하는 수준이어서, 취향이고 말고 할 게 없었다.

하지만, 글에 슬픔과 우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서,

읽으면서 같이 슬퍼지고 했던 기억이 있다.

 

작년인가? <작가의 붓>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화가'헤세'와 작가 '헤세'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에서 슬픔과 우울의 정서가 짙게 느껴졌다면,

그림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워서,

늘 명랑하고 해맑은 기운, 삶을 사랑하는 자의 여유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고 상상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붓
 도널드 프리드먼 지음, 박미성.배은경 옮김 /

 아트북스 / 2014년 3월

 

 

 

 

 

 

 

 

 

 

 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아니나 다를까?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글을 쓰면서는 온갖 종류의 강박증에 시달렸지만,

그래서 글에서는 그런 것들이 느껴졌지만,

나이 마흔 넘어, 우울증을 치료할 요량으로 시작한 그림을 그릴 때만은,

'내가 이 세상에서 수채화를 제일 이쁘게 그린다'는 주관적 자부심에 넘쳤다고 한다.(헤세로 가는 길, 112쪽)

 

사실 '정여울'이 쓴 '헤세로 가는 길', 이 책을 여행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헤세가 쓴 책들을,

나에겐 중학교 이래로 게속 어렵다고 인식되어진 책들을,

정여울이라는 문학평론가가 알기 쉽도록 해설해 주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하고 여지껏 미뤄 왔었다.

 

그런데, 정여울은 헤르만 헤세는 스스로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였기에 수많은 독자들에게 깊고 따뜻한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었다, 고 하며,

그런 자신이 헤세에게 받은 치유의 에너지를 나누고 싶어서,

자신 또한 상처 입은 치유자, 나아가 상처조차 사랑할 수 있는 강인한 치유자가 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치유자가 되어준 헤세를 그리며'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로 시작할 정도로,

작가 정여울에겐 헤세가 치유자였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헤세가 그녀라는 매개자를 통하여 우리에게도 치유자로 다가오는,

힐링 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우리에게 치유자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아파봤고 고민해 봤기 때문에,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이 어떤 문제로 왜 고민하게 될지를 예측할 수 있었으며,

그가 치유받았던 그 방식들을 작품 속에서 우리에게 해법으로 제시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가 신앙인도 아니고 무신론자이면서도 '영적인 삶'을 꿈꿨기 때문에,

아플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그가 자기 자신과도 객관성을 유지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픈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고,

마침내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사실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깨닫기까지 오랜시간을 돌아서 온 것 같지만, 후회는 없다.

타인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직접 온몸으로 관통하며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헤세의 작품들을 이해할 수 없음은 물론, 뭐라고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어릴땐,

그의 작품들이 왜 높게 평가받는지를 알 수 없었다.

 

어른이 되면서,

누군가를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고민하던 중,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터득하게 되었는데,

'데미안'을 통하여 그 누군가를 사랑하면 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와 친하지 않았다. ㆍㆍㆍㆍㆍㆍ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누구의 마음에도 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할 때 자신을 잃어버린다.(데미안)

 

사랑이란 말은 좀 추상적이고,

난 그 사람이 쓴 글씨나, 그림들을 보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헤세는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에 편지를 곁들이는 것을 좋아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작품을 소장한 사람은 내가 죽고 나서 큰 돈을 벌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작가의 손글씨로 직접 쓴 다정한 편지를 받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실제로 헤세의 세 번째 부인 니논과 헤세의 인연도 독자의 팬레터와 저자의 다정한 답장으로 시작되었다. 우스트리아 태생의 유대인이었던 니논은 헤세가 새로운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그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듬뿍 담아 지적인 흥취가 물씬 풍기는 팬레터를 띄웠고 외로운 헤세를 감동시켰다. 독자 편지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10년 넘게 이어졌고, 헤세보다 무려 18년이나 어렸던 니논은 마침내 꿈같은 결혼에 이르게 된다.(헤세로 가는 길, 56쪽)

여기선 18세가 더 적절할 것 같다, 어리다는 건 나이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냥 18년이라고 하는것보다 명확할 것 같다.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작품 때문만이 아니다. 나는 그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을 동경한다. 그는 인생을 즐기는 비밀이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에 달렸음을 알고 있었다. 유쾌한 천성, 끝없는 사랑, 그리고 삶을 즐길 줄 아는 낭만과 서정, 그것이이야말로 삶을 축복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그는 「정원의 친구들」에서 그 자잘하고 소소한 삶의 기쁨을 노래한다.(114쪽)

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정원의 친구들」이 책의 제목인지, 책 속 글의 제목인지 모르겠다.

책 제목이라면 『』를 사용했어야 했을 것 같고,

시중에 『정원일의 즐거움』이란 제목으로 번역본이 있으니 그걸 따르든지 원제목을 원어로 병기하는게 좋았겠고,

책 속 글의 제목이라면, 책의 제목을 따로 밝혀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행기라서 그런지, 책 속 사진들 하나 하나 다 느낌을 갖고 있고,

나에게 소근거리는 것 같아 멋진 프로포즈처럼 생각되었다.

 

아쉬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어렵기만 했던 헤세에 한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헤세가 어렵다는 인식을 극복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 체화하여 정여울의 것으로 만든 얘기를 하고 있어서,

막상 헤세의 작품들을 트라이 투 했을때,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헤세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 버린게 아닌가 아쉽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부럽고 갖고 싶었던건, 책상의 상판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저 책상과 걸상이었다.

저 책상에 앉아서 나도 글이 쓰고 싶으면 글을 쓰고,

꽃과 나무가 그리울때는 정원을 가꾸고,

날씨 좋은 날에는 풍경을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이 책의 긍정적인 면을 꼽자면, 방콕족인 내가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는 거다.

헤세가 걸어간길, 살아간 길을 그렇게 그렇게 따라 걸어보고 싶어졌다.

난 무신론자이지만,

어떤 영적인 깨달음은 언감생심이어도,

삶이 힘겹게 느껴질때면 그렇게,

'나는 그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을 동경한다. 그는 인생을 즐기는 비밀이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에 달렸음을 알고 있었다' 던 정여울이 말한 그 방식대로 치유받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는게 먼저여야 할텐데,

'이다'의 '끄적끄적 길드로잉'같은 걸 보면서 시동을 걸어야 겠다.방식대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치유받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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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7-15 17:48   좋아요 0 | URL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헤세라지만 글과 그림에 재능있는 그가 부러운걸요^^
이다의 작게 작게 읽고 싶어서 구입했지요.
제게도 힐링이 필요해요!!

양철나무꾼 2015-07-17 18:16   좋아요 0 | URL
그쵸?
우울증을 적절하게 다스릴 수만 있다면,
그걸 할 수 있다는 건 보통 내공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니,
거의 구도자의 수준이겠지만,
가끔은 부럽기도 하죠.

그러니까 `공평하신~`이란 말을 할 수 있는 걸거예요~^^

cyrus 2015-07-15 18:22   좋아요 0 | URL
저 사진 속 책상, 제가 다녔던 대학 강의실 책상과 비슷해요. 책상과 의자가 연결된 형태. 정말 앉기가 무척 불편했습니다. 의자를 앞으로 바짝 당길 수 없거든요.

양철나무꾼 2015-07-17 18:17   좋아요 0 | URL
실은 저도 저 강의실 책상 썼었어요, 좀 불편하죠?
하지만 나를 위한 맞춤이라면,
거기다가 저 원목느낌은 소박하고 왠지 젠틱하게 느껴져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