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다.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이 가장 긴 날이다.
태양도 가장 높이 뜨고 낮도 가장 길고 정점에 치달았으니,
이제 태양의 고도도 낮아지고 낮도 짧아질 일만 남았다.
그렇게 놓고 보면 세상은 참 공평하지 싶다.
뜰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고, 필때가 있으면 이울때가 있게 마련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옷을 잔뜩 껴입고 움추리고 추워추워 했었는데,
이제는 옷을 풀어헤치고는 더워더워 노래를 부른다.
독한 것들
정준호.박성웅 외 지음, EBS 미디어 기획 /
Mid(엠아이디) /
2015년 5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꼭지가 팽 돌면 사람들이 독기가 오를대로 올랐으니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화가 났을때 달래줘야 화가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드리면 더 독을 내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때 말하는 독은 독한 기운, 즉 사납고 모진 기운이나 기색이지,
사람에게 치명적인 독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또 아침에 먹는 사과는 약, 저녁에 먹는 사과는 독이라고 한다.
이쯤되면 독이란 것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는데,
같은 물이라도 누가 얼마만큼 먹느냐에 따라 우유가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인지,
또 사과를 아침에 먹는냐 저녁에 먹느냐 하는 때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것인지, 하고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되는 면을 가지고 있고,
한쪽 끝에 다다르면 정점을 찍고 다른 쪽으로 이동을 하게 마련인가 보다.
가끔 동전의 앞면이 어디인가를 놓고 헷갈리는 나로서는, 독과 약도 마찬가지이다.
독은 무엇이고 약은 무엇인지,
독은 나쁘고 약은 좋은 것인지,
그렇다면 나쁘고 좋은 걸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천지만물, 사람과 동ㆍ식물 가리지 않고 자연이라면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이 책을 읽고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
약과 독을 구분하는 기준은 '인간의 주관'적인 견해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서 약과 독으로 구분을 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독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다른 동식물에게는 약이나 음식(먹이)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우리 인간이 약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독은 동종(同種) 사이에는 그토록 치명적이지가 않고,
독이 되더라도 치료약 내지는 해독제가 존재한다.
문제는 동종이 아닌 이종( 異種)사이에,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이해받을 수 없는 상황일때 발생하게 되는데,
동종 사이에는 어떤 단계에서 어떤 치료제나 해독제로 사용되던 것들이,
이종에서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그 과정의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돌연변이를 일으켰는지,
어디로 튀거나 섞여 잡종이 될는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계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하면서, 종족을 보존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쉽게 말해 약과 독을 가르는 기준은,
기준을 정하는 것(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들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이로우면 약,
해롭거나 치명적이면 독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고, 인간의 기준으로 약 또는 독이라 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인간은 착각만 하는 동물이 아니라 이기심과 욕심도 가진 종족이기 때문에,
눈 앞의 이기심과 욕심에서 외래종이나 변종을 유입하게 되고,
그리하여 스스로 평형을 유지하던 생태계가 교란된다.
인간은 그들이 독이라고 부르던 것들을 이용하여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그건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종의 입장에서만 해롭거나 치명적인 독일 뿐이지,
인간을 제외한 그들, 동족의 입장에서는 독이 아닐 수도 있고,
독으로 작용해도 치료제나 해독제가 있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 메르스가 기승을 부리는 것을 두고도,
변이되었을지 모른다,
변종의 가능성이 있다, 고 해서 조심스럽게 의심해 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그것이 변이ㆍ변종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라도,
메르스의 변이 또한 자연에 인간이 개입하게 된것이고,
자연에 인간이 개입하게 되면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짬뽕되면서 출처나 근본을 알 수없는,
어떻게도 되돌릴 수 없고 수습 불가능한 외래종이나 변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독과 약의 구별이 분명하리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리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15세기 화학자인 파라셀수스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모든 물질은 독이며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 다만 올바른 용량만이 독과 약을 구별한다."(17쪽)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처럼,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되었던 소금도 농도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햇빛도 거의 모든 생명체가 의지하고 있는 에너지원이지만, 질병을 가진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하는 걸 보면,
올바른 용량이나 용법이란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 만큼 모호한 것 같다.
오늘은 하지다.
하지 감자를 먹는 날이란다.
오늘 밥에 감자를 넣어 먹어야 감자 풍년이 든다고 했다는 걸 보면,
먹을 게 귀하던 시절 구황작물 노릇을 톡톡히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사랑을 받은 감자도 처음 유럽에선 감자싹의 솔라닌 때문에 악마의 음식이라고 하여 다 버렸다고 한다.
한쪽 끝에 다다르면 정점을 찍고 다른 쪽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고,
메르스도 이제 충분히 정점을 찍었으니 수그러들때도 됐고,
날씨도 메말라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걸로 바닥을 쳤으니,
이제 기우제가 없이도 비를 뿌려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귀곡자
박찬철.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7월
귀곡자
귀곡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1월
귀곡자 교양강의
심의용 지음 / 돌베개 /
2011년 9월
내가 '귀곡자'를 이리저리 들추고 있으니,
누군가는 '정치 처세'서적 쯤으로 알고 치부하는데,
그렇지 않다, 중국 최초의 심리학 서적쯤으로 볼 수 있겠다.
처한 상황을 분별해서 심리를 파악하고,
우호적인 말을 하여 서로 간의 뜻을 소통시키는 것이다.
상대의 심리에 맞추어 그의
신임을 얻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고,
기회를 틈타 상대의 약점을 장악해서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둬야 한다는 내용도
있으며,
상대를 잘 위무(慰撫)해 그의 진심을 끌어내 확인함으로써 상황을 추측하고
파악해서 책략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신영복 님의 '담론'에서도 언급된 내용인데,
귀곡자를 교언영색하고 약삭빠른 정치인들의 처세서로 볼 것이냐,
아니면 상대의 상황을 분별하고 파악해서 나를 맞추어서 서로 간의 공감과 소통을 끌어낼지는 사용자의 몫이다.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지 않던가?
그런데 오늘 날 우리나라 정치인은 우리 국민에게 우유를 만들어내는 소인가, 독을 만들어 내는 뱀인가?
그게 가끔 헷갈린다,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