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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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끝에 가면,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의 동화 『어린요한』중 '버섯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산책로에 버섯 군락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 버섯 중 하나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아들아, 이건 독버섯이야!"

하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을 것이지만,

독버섯이라고 지목된 버섯은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옆에 있던 버섯 친구가 그동안 베푼 친절과 우정을 들어 절대로 독버섯이 아님을 역설하지만, 위로가 되지 못한다.

지팡이 끝이 자기를 가리키며 독버섯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위로하다 지친 버섯 친구는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라고 한다.

 

'독버섯'은 사람들 '식탁의 논리'일뿐 버섯세계의 논리가 아니다.

버섯은 버섯세계의 언어로 얘기하고 버섯세계의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신영복 님이 '죽지않은 이유'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단다.

 

이 책 <담론>은 신영복 님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를 달았다.

신영복 님의 지난 책 <강의>가 어려웠던 나로서는 이 책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거기에서 조금 업그레이드 됐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학문이나 기술의 일정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가르치는 것'을 '강의'라고 한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봤을때,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는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겠다.

전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알아 듣지 못하면,

조금 어렵든지 많이 어렵든지 큰 차이는 없다,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이 책의 강의 1회를 팟캐스트에서 맛보기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강의는 교재를 함께 읽는 것부터 한다고 하여서 쉽고 편하게 생각했다.

하루종일 제각기 바쁘고 지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니,

미리 공부해 올것 없이,

같이 교재를 읽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모두어 보는 식으로 강의가 진행된다고 하길래,

책도 그런 형태에서 크게 안 비껴가는 줄 알고, 요행을 바랬었나 보다.

 

책의 내용은 강의의 취지에서 크게 비껴가지는 않았지만,

강의는 이끌고 나가주는 사람이 있다면,

책은 스스로 읽고 깨우쳐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게 강의 내용과 책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마무시하게 큰 변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때문에 지난 <강의>에서 무슨 내용인지 알아먹지 못한 사람은,

요번 <강의>에서 더 깊어지고 넓어진 그것들을 마찬가지로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지난<강의>와 이번<담론>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시말해 떠먹여줄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하겠다.

 

옛날에는 공부를 구도求道라고 했고, 구도에는 반드시 고행이 전제된단다.

구도자와 도인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겠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적유산을 물려받고, 그것을 토대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실천이기 때문에,

고전공부는 텍스트를 읽고,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최종적으로는 독자자신을 읽는 삼독三讀이어야 한다,그리고 텍스트를 뛰어넘고 자신을 뛰어넘는 '탈문맥'이어야 한다." 는 이 부분은 <강의>의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녹록치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책을 읽은 이유가 있다.

언제부턴가 책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내가 하나라도 배울 게 있는 그런 책이 좋고, 그런 사람이 좋았다.

알기 쉬운 내용으로 이루어진 책이나 배울게 없는 사람,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깨우침과 깨달음을 주지 못하는 고로,

마음을 움직이거나 삶에 변화를 가져 오지 않는다.

그 변화가 눈곱만큼씩 더디고 느리게 오는 것이라도 말이다.

 

신영복 님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선입견을 통렬히 깨부순다.

이 글의 처음, '버섯 세계의 논리'는 내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내 자신의 논리'이기도 한 것인데,

고전이라고 하여, 무조건 취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맹모삼천지교'를 예로 들면서, 맹모 보다는 한석봉의 어머니가 나을 수 있다고 하며,

교언영색에서 귀곡자를 인용하는 예는 많은걸 생각케 한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와의 대화가 기쁜 것이어야 한다. 자신의 지식과 도덕성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면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게 마련이다. 귀곡자는 언어를 좋은 그릇에 담아서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을 誠이라고 했다.(55쪽)

 

또, 고전을 읽는 것이 삶의 기본이고 근본이라고 하여,

그리고 저자 신영복이 감옥에 있는 동안 동양고전을 주로 공부하였다고 하여,

강의에서 동양고전만을 취하지는 않는다.

 

문사철, 시서화로 회자되는 동양고전은 물론이고, 서양고전까지 회자되고 있으며,

게다가 현대문학이라고 할 수있는 안도현의 연탄재,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가 등장하고,

베토벤의 심포니 5번, 차잌코프스키의 심포니6번의 명명된다.

엘리엇의 '황무지의 명구는 초서의 켄터베리이야기에서 착상했다고 하고,

아인슈타인, 갈릴레이, 뉴턴까지 종횡무진으로 넘나든다.

기승전결의 4단개 전개구조와 헤겔 변증법 정반합 3단계를 비교한다.

관계론이란 것이 글씨 이야기가 아닙니다. '관계'가 바로 우리 강의의 화두입니다.ㆍㆍㆍㆍㆍㆍ'愚公移山'을 쓴다고 합시다. 첫 획을 너무 위로 치켜 그었다고 해서 그것을 지우고 다시 쓸 수는 없습니다. 인생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우고 다시 쓰거나 개칠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다음 획으로 그 실수를 만회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字가 잘못된 경우에는 그다음 자 또는 그다음다음 자로 보완해야 합니다. 한 행은 그다음 행으로, 그리고 한 연은 그 옆의 연으로 조정하고 조화시켜 가야 합니다. 그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서 써야 합니다. 그것도 필맥과 전체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써야 합니다. 그러려면 굉장한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전에는 두 시간쯤 계속 쓸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시간이 힘에 부칩니다.(314쪽)

 

버섯에게 '버섯의 논리'를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은 내 자신을 관계속에서 자리매김 할수 있다는 얘기이다.

 

어렵지만 이 책이 좋은 이유는, 폼잡지 않아서이다.

 

머리로, 가슴으로, 폼 나는 얘기를 하기는 쉽지만,

발을 내딛는 실천, 니체의 '철학은 망치로 한다'는 '탈문맥'을 얘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신영복 님의 낱말이나 문장 등은 단순한 화두로 들리지 않고,

행동지침으로 들린다.

하지만,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머리에 무언가 자극을 주고, 그리하여 가슴에 울림을 주고, 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겠다.

그래서 이 책이 단순히 책 한권으로가 아니라, 내게 중압감으로 무겁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영복 님은 내인생 한권의 책을 고르라는 기자의 질문에 한권을 고르지 못하고 세권을 골랐단다.

논어, 자본론, 노자가 그것인데, 나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추사의 죽기전에 쓴 글씨가 있는 것은 강남 '봉은사'로 알고 있다. 편집실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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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4-28 19:07   좋아요 0 | URL
큰일입니다..... 저는 이번주 이 책 읽겠다고 나의문화유산 답사기 다음으로 줄세워놨는데 말이죠 양철나무꾼님이 어렵다 느끼셨다면 전 아마도 계속 졸고 있을꺼 같아요 크흡!

저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뭔가 생각이 남고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책들이 좋고 어렵지만 자꾸 구입해 곁에 두게 된다는. <강의>와 요 <담론> 둘 중에 뭘 먼저 읽어볼까하다가 최근게 더 잘 읽힐꺼란 기대심이 컸는데 마음 단디 먹어야겠어요^~^ 잘 배우고 갑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아참 그리고 팟캐스트 음질이 좋지 않아서 아쉽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5-04-29 00:27   좋아요 0 | URL
음~, 신영복 님의 이 책은 녹록한 책은 아니지만 해피북 님의 내공이라면 거뜬하실거예요.
사서삼경과 제자백가의 철학을 훑고 있는데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으세요.
신영복 님은 특히 묵가를 힘주어 얘기하고 계십니다.
주역의 경우도 그 어렵다는 퇴계와 다산을 한꺼번에 언급하고 계시는 걸 보면, 숙연해지더라구요~^^

2015-04-28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04-29 00:35   좋아요 0 | URL
네, 저를 통렬히 깨부순 부분은 바로 저 부분이었어요.
대화가 기분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바로 저 부분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바로 그 부분이고,
그 부분이 바로 발로 내딛는 실천가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님에게도, 저에게도~^^

2015-04-29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9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5-04-29 01:0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서재오면 제 독서계획이 자꾸 헝클어져서 고민입니다. 좀 더 자유로워져야 겠어요ㅎ 하지만 기억에 담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인사는 남깁니다/

양철나무꾼 2015-04-29 09:08   좋아요 0 | URL
Agalma님, 누가 할 소리를요~(,.)
님 대문에 걸려있던 다뉴브15일날 ttb 들어갔죠?
그거 저거덩여, 이렇게 자수하게 만드시네~--;

AgalmA 2015-04-29 09:39   좋아요 1 | URL
이히히. 그런데 이의 있습니다. 다뉴브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읽은 사람이라면 기필코 관심이 갈만한 책이라 생각되거든요. 저 아니어도 사셨을 책이란 말씀이지요. 하여간 감사는 또 감사죠~ (책사탕 사먹어야지. 흐흣)
그나저나 다뉴브 책,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참 멋지지 않던가요? 빨리 읽고 싶은데 진도가, 진도가 ㅜㅡ

낭만인생 2015-05-11 21:09   좋아요 0 | URL
중국 고전에 흠뻑 빠져 있을 때 <강의>를 읽고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구나 싶어 꽤나 고마웠습니다. <감옥으로부터 사색>을 읽은 후 신영복 교수의 광팬이 되고 말았죠. 이 책도 꼭 읽고 싶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글이 달짝지근합니다.

양철나무꾼 2015-05-13 16:40   좋아요 0 | URL
전 신영복 님은 우러르겠다는 생각도 언감생심이더라구요.
팟 캐스트 `담론` 맛보기 강의에서 우스개소리를 하시는데,
그게 어르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 섞인 욕같은 그런 거였는데,
그것도 시처럼 음악처럼 들리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가지셨더라구요~^^

제 글이 달짝지근하다는 건가요?
저도 글이 사탕이어서 책바꿔 먹고 싶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