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데 어떤 특별한 규칙은 없다.

책 한권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다주는데,

예를 들자면, '왕의 한의학'에서 비롯되어 '왕의 밥상'으로,

거기서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박시백의 '만화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의 '세종편', '신병주'의 '조선평전'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서 읽으면서 든 생각은, 

역사 책이라는 것은 너무 읽기 어렵고,

역사 책을 읽으면서 나름 소신이나 가치관을 갖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역사적 자료와 유물, 실록 등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쓰여진 것들을 근거로 했을테니까,

진위여부를 떠나서 역사에 대해서 개인적인 사관이라는게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니,

한가지 관점에서 기록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하나의 사건이나 사안을 두고서,

오늘날에는 책마다 약간씩, 혹은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걸 보니,

다시말해 개인적인 사관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아가서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편향되지 않고 '중도','중용','中'을 지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08년 2월

 

 조선평전
 신병주 지음 / 글항아리 /

 2011년 4월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의문이 들었던 사람은 '세종'이었는데,

어느 책에서고 그는 성군으로 분류되고 있어서 였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고 '성인'의 기준이 달라졌지만,

그리하여 그처럼 젊은 시절 부왕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잘 받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성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세종에 관해 이렇게 궁금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자료와 유물, 실록 등에서 그에 관한 것이 많이 남아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세종의 경우에도 이런저런 궁금증들이 생기는걸 보면,

다른 왕들의 경우엔 자료가 그나마도 없는 것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세종의 경우, 무엇보다 궁금하였던건,

그의 식습관과 관련하여 육식을 좋아하여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않았다는 말과 관련해서였다.

왜냐하면, 무신이었고,

무신과 결탁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 사냥 등을 즐겼던 다른 왕들과는 달리,

책만 읽었다던 세종의 성향으로 미루어 고기를 좋아 했다는게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조선평전에도 보게 되면,

고려시대에도 삼국시대를 이어 소가 운반용, 농사용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그러나 고려의 국가 이념으로 채택된 불교의 영향으로 가축살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듯 하다. 12세기 송나라 사신 서궁이 고려의 풍속을 기록한 『고려도경』은 "그 정치가 심히 어질고 불교를 좋아하여 살생을 경계했다. 고로 국왕이나 높은 신하가 아니면 양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또한 도살하는 방법도 능숙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소의 식용이 일부 이뤄지기는 했으나, 농사를 짓는 대표적인 가축이었기 때문에 식용을 위한 소의 양육은 매우 제한되었다.

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겉으로는 고려와의 단절을 위해 억불 정책을 썼던 그가,

기실은 불교와 무속신앙에 심취했었다는데,

그리하여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가 학질에 걸렸을때,

학을 떼기위해 그가 종종 사라져 행했다던 방법은 다분히 불교적이고 무속신앙적이다.

나중에 원경왕후를 모실 탑 문제로 아버지인 태종과 마찰이 있었다는걸 보면,

농사를 짓는 대표적인 가축인 소를 식용을 위해서 일부러 살생을 했을 것 같지도 않다.

 

 

위 내용은 '한권으로 읽는 세종실록'에 나오는 내용인데 세종이 스무 살을 갓 넘겼을 때란다.

'주역'으로 점을 치는 것은 유교적으로, 다시말해 학문적으로 접근해야할 문제인데,

나이 스물을 갓 넘긴 세종이 주역에 정통했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깊고 넓었을지 궁금했다.

 

그동안 세종이 유교적 정통성과 사고 방식에 입각한 인물처럼 비춰졌지만,

어머니 원경왕후의 병환을 두고 불교적이고 무속신앙적인 기원을 드린 것과 관련하여,

인간적인 면모라고 하는데,

백번, 천번 양보하여 상왕 태상왕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입지를 지키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고,

유교에 입각한 효의 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그걸 두고 인간적이라고 한 것과 관련하여서도,

무고한 장인이 목숨을 잃고,처가가 쑥대밭이 되는데도 함구하고 있었고,

나중에 그의 힘으로 복권을 할 수 있었을 때에도 그냥 넘어간 것은,

인간적인게 아니라 비겁하게 비춰져서 말이다.

 

아래 내용은 '한권으로 읽는 세종실록'에 '세종1년'의 일로 표시되는데,

당시 가뭄이 심했으므로 백방으로 기우제를 지냈다. 심지어 도롱뇽에게까지 기우제를 지냈으며, 호랑이를 잡아다가 그 머리를 개성의 박연폭포에 담그는 행사도 있었다고 하였는데,

반면 승려들의 기우제는 반대하였다고 되어 있으니 말이다.

"숱한 사람들이 정성으로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한 것을 7명의 중으로 되겠는가? 사정이 딱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으로부터 믿음이 생기지 않는 행동이다."라며 유학에 심취했던 세종은 이렇게 불교적인 기우제는 거부감을 표시했다고 되어있다.(163쪽)

이쯤되면 인간적인게 아니라, 일관성이 없고도 남음이 있지만,

실록이 왕의 사후에 쓰이는 것이니,

둘 중 하나는 희망사항을 기록한 것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암튼 세종을 인간적이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학자로서의 성과나 연구 업적 또한 추앙받아 마땅하겠지만,

왕과 태상왕이 건재하고,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폐위된 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한 나라의 왕으로서의 면모로 봤을때는 '글쎄올시다~(,.)'이다.

왕권국가라 할지라도, 왕이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대로 정치를 하는 독재국가는 아니고,

추구하는 목표와 이상향이라는 것이 있을텐데,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일관성이나 공정성, 결단력이라는 면에서 봤을때는 많이 아쉬웠다.

매관매직이나 뇌물을 받고 쫒겨났던 사람을 용서하고 다시 들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의견이 다를때 의견을 수렴하여,

심지어 농부들의 의견까지 수렴하여 듣고 중론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도 알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나이 서른 이전이고,

서른이 넘은 뒤부터는 주장이 강해져서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거의 대신들의 의지를 꺾어놓았다(224쪽)고 한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얘기할때 생각나는게 '中'이다.

근데,유교에서 말하는 중(中)의 본래적 의미는 희노애락의 未發,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일심불생(一心不生)과 다르지 않다.

 

다름을 주장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근본이 같다는 것을 깨닫기는 어렵다.

인간의 근본 심성인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그자리는 유교로 말하면 희노애락의 미발(未發)이고, 불교로 말하면 무심(無心)이다.

미발과 무심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세종이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으로 불리우는 성군이라는걸 이해할 수 있는데,

세종도 성군이기 이전에 그러고보면 인간이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5-03-11 20:17   좋아요 2 | URL
저는 박시백님 책보구 좀 놀랐어요
세종대왕이 원나라에 공녀로 팔려가는데도 어쩔수 없다는 표현과 백성들은 허덕이는데 통통한 임금의 풍채 그리고 도적들이 많았다는 배경 때문에요 유유부단한 성격도 놀랍고 말씀처럼 역사에 관한 소신을 갖기엔 한 권의 책은 위험하구요... 깊은 공감을 해봅니다

양철나무꾼 2015-03-16 18:13   좋아요 1 | URL
이렇게 나누는게 좋아서,
나눔을 통하여 고민이 나혼자만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게 좋고,
위안이 되어서 알라딘서재에 글을 쓰게 됩니다.

단발머리 2015-03-12 11:50   좋아요 2 | URL
양철나무꾼님의 페이퍼 읽고 보니, 100번 양보해도 양보 못 했던 세종대왕=성군에 대한 믿음이 조금 흔들리네요.
저도 박시백님 책 보았는데, 위에 해피북님이 말씀하신거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저는 조선사 전반에 대한 박시백님의 평가를 좋게 보는데, 기존의 해석에서 조금 다른 부분을 주장할 때 조선왕조실록의 자료를 근거로 하시는 게 신뢰가 되더라구요. 박영규님의 해석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틀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던 것 같구요.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5-03-16 18:17   좋아요 1 | URL
전 박영규님의 해석은 재밌기는 했는데,
글쎄요, 뭐랄까~
왜곡의 오류를 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밌게 써서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정사와 야사의 구분이 모호했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