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도 각기 다른 가정 환경과 성장 배경, 지방색, 학력 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향하여 '입장 바꿔 생각해본다'는 뜻의 '역지사지'를 생각해 보거나,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보이니까 가섭이 웃었다'는 뜻의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어 보이겠다는건,

그 생각이나 미소만으로 가상한 일이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했는지, 를 놓고 보자면 대부분의 대답은 '글쎄올시다'정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과 미소를 수많은 말줄임표가 대신해서 그렇지,

그래서 우리는 입장바꿔 생각하는게 아니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일수도 있고,

가섭이 웃은 그 웃음은 부처님과 연꽃 때문이 아니라 햇살이 눈부셔서 얼굴을 찡그린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두는 글로 풀어쓰거나 말로 뱉어낸게 아닌 이상,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했는지 어쨌는지 따위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호감을 갖고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얘기이지만,

내가 그(또는 그녀)가 아닌 이상, 속속들이 공감하고 이해한다는건 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일부 과묵한 사람들이 상대를 향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말줄임표나 기타 등등, 이하 생략으로 대신하고서는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데,

상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하는 '관심법'의 대가 '궁예'가 아니다.

조곤조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로 바뀌어야 한다...'情'은, ㅋ~.

 

이 책은 꼭 분류를 하자면 로맨스 소설로 분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간의 로맨스소설이랑 다른점은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점과,

인간의 품위있는 죽음에 대해서 그간의 관점과는 다른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선하고 참신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책의 설정이 완벽하게 그럴듯 하지는 않다.

가장 어설펐던 것은,

척수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인 남자 주인공과의 대비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서, 였겠지만,

여자주인공의 할아버지를 뇌졸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만들어 버리고,

그런 할아버지를 한 집안에서 며느리가 간호를 한다는 설정이다.

 

근데 영국은 의료보험제도가 아주 발달한 나라여서, 외국인에게도 의료보험혜택이 주어지는 나라로 알고 있다.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한명의 일손이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할아버지를 요양시설에 보내고,

나머지 한명의 일손이 생업에 뛰어드는게 더 현실적인 설정이었을 것 같다.

더구나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배변 컨트롤을 하고 하는 것은,

가족이니까 성적인 것을 배제한다는 것은 이성의 일일뿐, 실상이 되면 쉬운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영국의 가정 생활이나 풍습 따위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므로 이쯤  해두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픽션이라는 건 재미를 위하여 가감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번역을 칭찬해주고 싶다.

의학용어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자칫하면 이야기의 흐름이 깨질 수도 있었을텐데,

이야기의 흐름을 깨지않고 찬찬하게 잘 번역해 나갔다.

다만 한가지 정강이에 부목을 대고 40킬로미터를 뛰는 일정을 소화해 낼 수는 없다.

'정강이부목'이란 일종의 피로골절과 구분하기 힘든 증후군으로,

마라톤 등의 오래달리기나 점프 등의 높이 뛰기 후에 정강이 부위에 부목을 댄 것처럼 뻣뻣하게 느껴지는 증상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강이에 댄 부목의 최근 상황이 아니라, 정강이 부목 증후군의 차도라고 하는게 적절하겠다.

이 소설 전체를 통하여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클래식 음악을 처음 듣게 되는 상황을 표현한 부분이었다.

그때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리자 갑자기 만물이 순전한 소리가 되었다. 음악이 실체가 있는 사물처럼 느껴졌다. 음악은 내 귀에만 머물지 않았고, 온몸을 타고 나를 에워싸고 흐르며 온 감각이 공명하게 했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윌은 이런 체험을 전혀 설명해주지 않았다. 지루할 거라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서 들어본 적이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였다.

  그리고 음악으로 인해 내 상상력이 뜻밖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앉아 있자니 몇 년 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해묵은 감정들이 나를 덮쳤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상이 내 몸에서 술술 뽑아져 나왔다. 마치 나의 지각 능력 자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쭉쭉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멈추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슬며시 윌을 바라보았다. 그는 문득 자기 자신을 잊은 듯 황홀경에 에워싸여 있었다. 황급히 눈길을 돌렸다. 갑자기 그를 보는 게 무서웠다. 그가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는 감정들이 두려워졌다. 심연처럼 깊은 상실. 그 두려움의 바닥이 겁이 났다. 지금까지 살아온 윌 트레이너의 삶은 내 체험을 까마득히 넘어서는 것이었다. 내가 뭔데 그에게 삶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논할 수 있단 말인가?(233~234쪽)

 

내가 클래식 음악에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건 미샤 마이스키의 첼로였다.

그때 그 느낌이 꼭 저랬다, 음악으로 온몸을 샤워하는 것 같았다.

음악은 내 귀에만 머물지 않았고, 온몸을 타고 나를 에워싸고 흐르며 온 감각이 공명하게 했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암튼, 우리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착각하에,

다른 사람의 삶을 내 입맛에 맞게 바꿔 놓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 친구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억지로 살라고 하는 건 당신도, 나도, 아무리 우리가 그 친구를 사랑해도, 우리는 그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하는 거지 같은 인간 군상의 일윈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적절한 예는 아닐 수 있지만,

우리는 어른이 되도록 살아온 나날만큼 습관에 길이 들어서,

그 습관에 의해서 기준을 만들고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상대방의 날개를 꺾고 잘라서 내 좁은 틀 안에 가두려하는 건 하는 건 아닐까 반성해 본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이해하고 싶다는 것이고,

그건 바꾸어 말하면 자신을 상대에게 공감시키고 이해시키고 싶다는 얘기이고,

때문에 수다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대가 나에 맞추어 바뀌길 바라지 않고,

내 스스로가 상대에 맞추어 바뀌게 된다.

 

그러니까 나를 강요하는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저 위 박스의 윌의 간병인 친구의 말처럼,

선택권을 박탈하거나 나를 강요하는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그동안 '알겠어(요)'라는 말을 습관처럼 자주 사용했었다.

상대방의 얘기가 지루하게 늘어진다 싶거나,

상황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싶을 때 사용했었다.

그런데, 내가 하는 많은 '알겠어요'중에서 진짜 '알았어(요)'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누군가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은 머리나 가슴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몸의 경험, 체험으로까지 연결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내가 온몸으로 통과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일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역지사지'나 '염화시중'을 놓고 내가 충분히 공감했는지 '미지수'라고 한것은 그런 의미에서이다.

생각이나 미소라는건 공유할 수 있는 체험이라고 하기엔,

말줄임표 속의 의미가 천가지 만가지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보았던,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인가(?)의 '사랑해요'를 뜻하는 말이라는 'I see you'가 훨씬 설득력인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한 것만 믿는다고 하면...왠지 야박한것 같지만,

공감이나 이해는 그들 사이의 공통 분모가 존재해야 가능한 것이고,

같이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한 것보다 더 실제적이고 실체적인건 없다.

 

난 그동안 나이나 연륜을 내세워 틀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봤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갖혀서 연연해 하는 사람도 봤고,

고집이 쇠고집이어서 빡빡우기다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리 무리 속에서 따돌림을 받는 그런 백조 같은 사람도 봤다.

 

내 삶의 주인공이 나인 것은 맞지만, 세상은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혼자서 살아가고 싶다면 무인도로 가든지,

아니면, 공주나 왕자...아니 적어도 성의 주인 정도 취급은 받을 수 있는 성주 정도는 되어야 하고,

이도저도 아니면, 신선이 되는 수밖에 없다, ㅋ~.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얘기는 뭐냐 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내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내가 읽기엔 이 소설이 그동안 읽던 장르소설과 비교하여 군데 군데 허점 투성이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로맨스소설에 별반 흥미를 못 느끼는 것인 모냥이다, 끙~(,.)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트랑 2014-07-25 18:02   좋아요 0 | URL
공감 1번, 귀감이되는 글, 공감백배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하는 글이었어요
좋은 글에 감사를...

하늘바람 2014-07-26 07: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생각 많이 해요 특히 함께 웃고 지나갔거나. 침묵일때 우린 동상이몽일거라는 음악 샤워한 느낌 느껴보고 싶네요 많이 더운 요즘 건강 조심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