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노먼 F. 매클린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완벽하다: 결함이 없이 완전하다.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완벽한 책이란 어떤 책일까?

완벽한 책이란, 좋은 책일 수도 있고, 훌륭한 책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책일 수도 있다.

언제부턴가 '완벽함'이란 좋음, 훌륭함, 아름다움, 이딴 것과는 별개로,

무미건조한데다가 아무맛이 없이 맹숭맹숭하기만 한데,

그 맛이 더할 것이 없는게 아니라, 더 이상 뺄것이 없는,

간결하게 응축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시킬 수 있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의 내공이 부족하여,

다양한 형태의 책들을 접할 기회가 부족한 것이 한몫하였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은 기억에 남는 것이 '애니프루'의 '시핑뉴스'였다.

 

그런 내게,

우리나라에서 근간에 재출간된 이 책의 서문을 애니프루가 썼다고 하니, 혹할 수밖에 없었다.

 

역자의 말과, 애니프루의 서문과, 저자의 감사의 말 등이 장황하게 책의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영화로 각색되어 유명해져서 그런지,

그런 외적인 요소들을 쭈욱 연관시켜 읽다 보니까,

무미건조하여 아무맛이 없이 맹숭맹숭하여, 더 이상 뺄것이 없다, 는 그런 맛을 처음엔 느낄 수 없었다.

 

무궁무진한가 하면 흥미진진하기도 한데,

옥토를 흐르는가 하면,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결코 끊기지도 않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꾸준한 수량을 자랑한다.

4대강처럼 녹조, 적조, 부영양화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소진하고 나면 재충전될 시간을 염려할 필요 또한 없으며,

새록새록 샘솟는,

소진하거나 탕진하지도 않고,

범람하거나 고갈되지도 않고,

그렇게 안으로 흐르는 꾸준한 넉넉함에 관하여서 말이다.

 

 

'우리 집안에서는, 종교와 플라이 낚시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39쪽)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을 가만히 읽고 있을라치면, 처음에 삶은 종교나 플라이 낚시의 동의어인가 싶었다가는,

이내 흐르는 세월이나 흐르는 강물의 동의어가 아닐까 싶아진다.

그리고 결국, 흐르는 세월이나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고 변해가는 삶 속에서,

변하되 변하지 않는 그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걸 깨달아 갈 즈음,

이 책은 '나는 언제나 강물 소리에 사로잡힌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때문에,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아름답다'라는 감동의 여운으로 충만한 것이,

종교와 플라이 낚시에 관한 것인지,

흐르는 세월이나 흐르는 강물에 관한 것인지,

흐르고 변해가는 삶 속에서,

변하되 변하지 않는 '사랑'에 관한 것인지, 를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흘렀다.

 

그런 만큼 언뜻보기에 이 책의 주제는,

종교나 플라이 낚시처럼 보이기도 하고, 

흐르는 세월이나 강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흐르고 변해가는 삶 속에서 변하되 변하지 않는 '사랑'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다보면,

이 책의 진짜 주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걸 깨닫게 된다.

부처를 만나게 되면 내 안에 있는 부처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고,

조사를 만나게 되면 내 안에 있는 조사에 대한 편견을 배제할때만이,

진정한 부처와 조사를 만날 수 있게 되고,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시말해,

기준을 제대로 정할때,

자신의 현재 위치를 예측할 수 있고,

상대사물이나 상대방의 위치를 비교,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이건 무엇을 얘기하냐 하면,

상대사물이나 상대방의 위치를 비교, 가늠하여...

의미를 부여해 주고 이름을 불러주기 이전에는 '한낱'이었던 것들이,

의미를 부여해 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온통'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녀는 언제나 닐을 '버스터'라고 불렀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남자와 섹스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려면 머리에 쥐가 날 것이다.(121쪽)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말 속에는,

내 안에 있는 부처와 조사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지워야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 말은 다른 의미로 하나를 포기하여야만, 다른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양손에 모두를 쥐고 있다가 넘어지면, 코가 깨지니 말이다.

힘은 아무 데서나 발휘하라고 있는게 아니고, 진정한 힘이란 그것을 어디다 쓸 것인지 아는 데서 나온다.(46쪽)

 

"그걸 뭐 하러 신경 써?ㆍㆍㆍㆍㆍㆍ플라이 두세 개를 나무에다 갖다 바치지 않고눈 하루 몫만큼의 낚시를 했다고 할 수 없어. 과감하게 물고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낚시는 영 못하는 거야.ㆍㆍㆍㆍㆍㆍ"(103쪽)

 

이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를 명확히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사람이나 사물을 객관화 한다는 의미의기도 하고,

이건 바꾸어 말하면, 삶에서 죽음을 분리해 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공기나 햇살 따위가 없으면 살 수 없으면서도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통해서 형태를 이루고 정형화 되는 것이면서도,

몸의 일부가 아파서 내게서 분리되는 경험을 해보기 전에는,인식하지 못했었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얘긴, 그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얘기이다.

삶이 자연에서 비롯되었듯,

죽어 사람은 자연으로 분해되어 흡수되고 스며들고 물들어간다.

때문에 사람이고 사물이고, 에 대하여 알게 되는 방법 중 하나는 탄생을 생각해 보는 것일테고,

또 하나는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일게다.

나는 무더운 오후 더위 속에서 비버는 잊어버리고 맥주를 생각하고 있었다. 비버를 잊어버리는 김에 처남과 올드 로하이드도 함께 잊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여기 이렇게 오래 앉아서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ㆍㆍㆍㆍㆍㆍ나는 거기 앉아서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렸으며, 마침내 흘러가는 강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만이 남았다. 강물 위에서 더위의 아지랑이들이 서로 춤을 추었고, 이어 서로 관통해 나가더니 다시 서로 손을 잡고서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마침내 강물을 바라보던 자는 사라져버리고 거기에는 오로지 강물만 남았다.

  심지어 강의 모습도 앙상하게 드러났다.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하류에는 한때 물이 흘렀으나 지금은 메마른 강바닥이 있었다. 어떤 사물에 대하여 알게 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사물의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ㆍㆍㆍㆍㆍㆍ나는 또한 강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깨달음으로써 나 자신이 강이 된다.(134~135쪽)

사람이고 사물이고, 간에... 탄생과 죽음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감정이입이고,

또 바꾸어 말하면 역지사지겠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는 그것이 어떤 이해와 깨달음을 주긴 어렵지 싶다.

ㆍㆍㆍㆍㆍㆍ

"누군가를 도와주기에 너는 너무 젋고 나는 너무 늙었어." 아버지가 말했다. "도움이란 초크체리 젤리 를 발라주거나 돈을 주는 것이 아니야."

 "도움이란." 아버지가 말했다.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고, 또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어떤 사람에게 네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거야. (이 부분에서 문장부호의 한쪽이 빠졌다. 예를 들자면 '"'같은 것이.)

ㆍㆍㆍㆍㆍㆍ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제대로 도와줄 수가 없어. 우리가 우리의 일부를 내어주기 싫어하거나, 아니면 그 어떤 부분이든 내어주기를 싫어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종종 그 정말로 필요한 부분은 상대가 원하지 않는거야.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필요한 부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야.

ㆍㆍㆍㆍㆍㆍ"

"아버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도움이 그처럼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165쪽)

그러니, 아버지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이렇게 추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때문에,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에는,

사람의 마음을 상대로 하는 일에는,

너무 젊거나 너무 늙었다거나, 하는 때가 필요없을 뿐더러,

그것이 우리의 일부인지, 어떤 부분인지, 아니면 온통인지, 를 놓고서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형의 말과 같이,

실제로 그처럼 거창해야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들어줄 수 있는, 열린 귀와 열린 마음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생각한다는 건 말이야, 먼저 뭔가 눈에 띄는 것을 주목하는 거야. 그러(고 나)면 주목하지 못했던 것을 보게 돼. 그 결과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주목하게 돼."

ㆍㆍㆍㆍㆍㆍ"이 지구상에서 햇빛과 그늘처럼 분명한게 또 어디에 있겠어? 하지만 여기서는 날도래들이 알을 까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전까지는, 그놈들이 알을 까는 상류의 물구덩이는 대부분 햇빛 속에 있고, 이 물구덩이는 그늘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어."(183쪽)

여기서 말하는 생각한다는 건, 햇빛과 그늘의 경계처럼, 기준을 정하고 나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위 "생각한다는 건~ 주목하게 돼."의 문장은 인과관계보다는 전후관계나 시간관계를 두드러지게 해야 의미가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늘 속이라 지하에 있는 것 같은 강물의 목소리는 저 앞쪽 햇빛 환한 강물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절벽과 맞닿은 그늘 속에서 강물은 깊어지고 또 심오해진다. 강물은 가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처럼 굽이치면서 자기 자신의 뜻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무슨 말을 혼자서 중얼거린다. 그러나 저 앞쪽의 강은 수다쟁이처럼 햇빛 환한 세계로 나서면서 다정하고 곰살맞게 굴려고 최선을 다한다. 강은 먼저 이쪽 강가에 인사를 하고 그 다음에는 저쪽 강가에 인사하면서 그 어느 쪽도 무시하지 않는다.

  ㆍㆍㆍㆍㆍㆍ"아주 좋은 놈들이에요?" "그래, 아름다운 놈들이지."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알기로, 아버지는 '아름다운'이라는 말을 자연스러운 일상용어로 사용하는 거의 유일한 분이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그런 어법을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다.

ㆍㆍㆍㆍㆍㆍ"아주 좋은 놈들이야?" "그래요, 아름다운 놈들이지요."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았다.

ㆍㆍㆍㆍㆍㆍ

"내가 읽던 부분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되어 있어. 참 좋은 말이야. 난 예전에, 처음에 물이 있었다고 생각하곤 했어. 하지만 잘 들어보면, 말씀이 그 물밑에 있다는 것을 듣게 돼."

"그건 아버지가 먼저 목사이고, 그 다음에 낚시꾼이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요." 내가 말했다. "만약 폴에게 물어보면 말씀이 물에서 나왔다고 할 걸요."

"아니야, 넌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해. 물이 말씀 위로 흐르는 거야. 폴도 네게 같은 말을 할거다.ㆍㆍㆍㆍㆍㆍ."(186~188쪽)

 

"저 애는 아름답구나." 동생이 아버지가 방금 낚시를 끝낸 물구덩이에서 그 물고기를 잡았는데도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194쪽)

 

"제가 아는 건 다 말씀드렸다고 했잖습니까. 아버지께서 더 물어오신다면, 전 그저 그 애가 훌륭한 낚시꾼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넌 그보다 더 잘 알아야 해. 그 애는 아름다운 낚시꾼이었지."

"그래요. 아름다운 낚시꾼이었지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누가 가르쳤는데요."(199쪽)

뭐니 뭐니해도, 이 소설의 백미는 이 부분인 것 같다.

기준을 정하고,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를 정하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 그렇게 정해놓은 것이지,

흐르는 세월이나 흐르는 강물 따위, 자연은 어느 한쪽도 편가르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는 거.

 

사랑도 마찬가지인거 같다.

눈멀고 귀먹지 않았으나 맹목적이다, 그냥이다.

내게도 사랑은 그런것이고, 그런 것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몸을 돌려 자신의 침실로 갔다. 어머니는 남자들과 낚싯대와 엽총들로 가득한 집에 살면서 그 침실에서 홀로 자신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과 대면해 왔다. 어머니는 가장 사랑했으나 제일 아는 것이 없었던 막내아들에 대하여 내게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아들을 사랑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동생은 어머니를 품에 안고서 이어 몸을 뒤로 젖히고서 크게 웃던 이 세상 유일한 남자였다.(198쪽)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고,

그런 소설을 읽느라,

덕분에 정말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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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7-18 13:35   좋아요 1 | URL
더운 여름날 잘 지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