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다.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券氣)라는게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싶다.

옛것이라고 하여 고루하거나 진부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깊이있는 사고(思考)를 요하면서도 품격을 두루 갖춘 것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난 옛날에 도스토옙스키 옹의 책을 좀 읽다가 넘 어려워서,

고전은 그렇게 다 어렵고 재미없는건 줄 알았었다는~--;

물론 세월이 흐르고,

나도 생각이 여물고,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삶을 해석하는 관점 같은 것들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실은, '안나 까레니나'를 그냥 읽게 되지는 않았었다.

어쩌다가 읽게된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가 계기가 되어 고전문학에 feel이 제대로 꽂혀 주셨다.
'김의기'와 '안나 카레리나'를 읽으면서 느끼는건,

고전문학 중에는 중고등학생들이 필독서로 읽기엔 쉽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거다.

나처럼 반 평생을 산 사람의 눈으로 전후좌우 사정을 고려하여도 어림짐작하게 되는 것들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개중에는 번역까지 난해하여 우리말로 적혀있어도 무슨 뜻인지 못 알아먹겠는 것도 있더라~--;

 

민음사 刊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로마서 12:1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1부/13쪽/1줄)

 

  

 

반면,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에 나온 이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내가 갚을 것이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불행하다.

 

누구의 번역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두 번역을 놓고 봤을 때, 같은 내용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난 고민을 하다가 '로마서 12장 19절'을 들여다보기로 하였다.

여러분이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 갚는 것이 나에게 있으니 내가 갚을 것이라.'"

라고 되어있다.

번역의 잘, 잘못을 떠나서 적어도 원수나 복수를 갚는 주체가 '주님'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는데,

작가의 의도가 그런 것인지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안나카레니나를 읽으면서 '톨스토이'가 시대를 넘나드는 거장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의 부단한 노력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대의 사조나 조류, 유행에 대해서 폭넓고 깊이있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뿐더러, 그걸 그의 작품 곳곳에 녹여냈는데...그것이 요즘의 삶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올드하거나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였는지, 달아놓은 각주를 보면서 였는지...기억이 가물가물한데...러시아어가 재밌게 느껴져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키티는 안나의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산문적인 용모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러시아어에서 '시적'이라는 말은 '예술적인'이나 '아름다운'의 뜻을, '산문적'이라는 말은 '일상적이고 범속한'이나 '무미건조한'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1권/162쪽)

 

레빈이 이런 상상을 하는 부분도 재밌다.

그럼 손님이 물을 거야. 어떻게 이런 일에 그토록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까? 남편이 흥미를 느끼는 일이라면 저도 흥미를 느끼게 돼요.(212쪽)

단순히 레빈의 그것이라고 생각했을때는, 좀 권위주의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 상대방이 흥미를 느끼는 일에 같이 흥미를 느끼게 되는 그런 사랑이라면, 참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이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
 김의기 지음 / 다른세상 / 2013년 1월

 

 

 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겹쳐 읽은 책은, 이택광의 '마녀프레임'이다.

이 책은 이웃 a님의 서재에서 보고 혹하여 읽게 되었는데 '동종요법'이나 '고대의학'관련된 장르소설을 좀 읽어줬던 터라 그랬는지 어쨌는지, 책의 내용이 너무 가볍고 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암튼~--;

  마녀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존재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히브리 신화에도 마녀는 분명히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마법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했다. 즉 날씨나 출산 또는 의술처럼 생존과 밀접한 일들을 마녀가 관장했다.히브리어로 마녀는 므카세파인데 이 말은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특별히 '여성'이라는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마녀하면 떠오르는 섹스와 관련한 뉘앙스도 없다. 대체로 마법은 병을 고치거나 기후를 변하게 하는 요술이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대개 여신 숭배에서 기원했다.(28쪽)

 

마녀사냥이란 "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라는 문구가 번역 문제에서 의미적 혼란 때문에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발생한 것이었다.ㆍㆍㆍㆍㆍㆍ마법사(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는 말은 이렇게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반해서 마법을 사용한 경우에 처벌하라는 말이었다. 아이를 납치하거나 질병을 퍼뜨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다 오늘날로 보면, 의학과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진 존재들이 고대의 마법사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29쪽)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해 본 것은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이라는 '틀'은 '예외'를 만들고 약자, 소수자, 희생양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과거에는 그것이 마녀였고, 여성이었고, 유태인이었고, 빨갱이였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무슬림이고 동성애자고 이주노동자의모습으로 현신하고 있는 것이란다.

 

프레임은 어찌보면 군중심리 같은 것이다.

교집합, 여집합, 합집합의 관계에 따라...마녀로 지목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마녀를 지목해야 하고,

이런 상호감시체계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이 '인터넷'이다.

 

 

 

 

 마녀 프레임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나영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그리고, 그런 군중심리를 가장 적절히 사용하는 사람들이 연예인이 아닐까 싶지만, 잘못 틀어지면 '타.진.요'같은 인터넷 카페가 생겨나기도 하고 눈덩이나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곳이 연예계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과 호기심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된 책, 1박2일 '나영석'PD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정함'이다. 집중과 편애는 한 끗 차이다. 공정함을 잃는 순간 오해가 만들어지고 팀워크는 깨진다. 누군가를 편애해서 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받을 기량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너도 저 기회가 탐이 난다면 최소한 패스를 받을 기량 정도는 스스로 터득해서 갖춰야 한다. 그것만 갖춰진다면 언제라도 너에게 공을 주겠다. 이런 식이다. 어쩌면 야박해 보일 수 있는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었던 것은 호동이 형이 철저하게 유지했던 그 기회에 대한 '공정함'때문이다. 멤버들은 누군가를 질투하기보단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 빠른 길임을 알게 된다. 한 예로, <1박 2일>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운 사람은 이수근이다.(143~144쪽)

 

심각하지 않게 설렁설렁 넘겨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그런 책에서 다른 어떤 책에서 깨달을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예전에 한번 김C와 술을 먹다가 인간은 대체 몇 살쯤에 철이 드는가, 라는 주제로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잇다. 김C의 대답은 이랬다. 사람은 말이야.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 30대가 되면 마흔이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근데 너는 철들었니? 아니, 하고 나는 대답한다. ...결론은 이거야.87살쯤 먹고 죽기 직전에 드디어 깨닫는 거지. 아들딸 주변에 모아놓고 숨은 넘어가는데 창피해서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거지. '아아....철든다는 건 없구나.' 이렇게 말이야. 최종결 결론을 내리고 저세상으로.

  흠. 묘하게 설득력 있는 애기. 과연 그럴듯하다. 철이 든다는 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철이 든 척.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어른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사실을 직시하고 저는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 김C는 가능하면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177~178쪽)

암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날씨가 변덕스럽다거나,

(4월에 눈이 내린게 51년만에 있는 일이란다, ㅋ~.)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하여 나 또한 변덕스럽게 책 한권 읽지않고...

어쨌거나 이 봄을 건너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뭔가를 읽기는 꾸준히 읽었는데 단지 기록으로 남길 시간이 없었을 뿐이고,

내가 열심히 읽는데도 불구하고 신간은 새록새록 나와주고 계신다는 거다.

'책.탑.타.파.'를 고려하여 당분간은 책을 구입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을 했지만...불끈~!!!

이 책 꼭 한권만 구입한 뒤로 결심은 잠시 유보다~--;

 

 

 

 

 

 

 

 

 

 로스트 라이트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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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3-04-12 13:18   좋아요 1 | URL
제 경우엔 러시아작가들 중엔 도스토예프스키 한 사람만 편애하고 톨스토이 이 할배는 어려서부터 정이 안가서 유명하다는 소리만 풍문으로 들었어요. 전 당분간 해리보슈 형님하곤 결별. 해리 홀레 형님하고 새 교분을 맺는 중이어서 ㅎㅎ 이 캐릭터 너무 어썸합니다.

2013-04-1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9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