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석원의 서울연가
사석원 지음 / 샘터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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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드셨는데요?"

"아침엔 빵 먹고요, 점심엔 김치찌개 먹었는데요."

'에엥~?@@'  애써 정색을 하고 다시 물었다.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내 허벅지를 꼬집어서 분명 보랏빛 멍이 들었을게다.

"아니, 뭘 먹었는지가 아니고요, 뭘 드셔서 허리가 아프시다면서요?"

"아하~? 네에..."

같은 한국어를 쓰고,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요즘은 어려운 의학용어를 사용하는게 아니라 일상용어를 사용하는데도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경험할 때가 있다.

 

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소위 서울 토박이.

부모님도 서울 분이시고, 친가 ㆍ외가 다 서울이어서 사투리가 섞일래야 섞일 새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쓰는 말이 표준어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하지는 못하는데 '서울 사투리'라는 것도 있다고 해서이다.

암튼 서울 사람이면서도 서울 말씨의 특징이랄까, 속성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사석원은 그걸 이렇게 정리해주는데 제법 명쾌하다.

 50년 전쯤의 한국영화를 보면 배경이 되는 풍경이나 사람들의 옷차림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고 말투도 확연히 달라 매우 생경한 느낌이 든다. 특히 여인들의 말씨가 그렇다.

  원래 서울 여인들은 수더분하기보다는 깔끔하고, 푸짐하기보다는 야무진 느낌이 풍겼다. 꼭 조여진 버선발의 사뿐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잘 씻어서 껍질을 깎아놓은 생밤알 같다고나 할까. 곱고 사근사근한 말씨에 깍듯한 예의범절을 갖춘 서울 여인들. 알뜰하면서도 부지런하고 때론 지나치게 경우가 밝아 다소 차가운 인상을 풍기기도 했던 서울 아낙네들. 그녀들의 말은 졸졸졸 물소리같이 맑고 명랑했다. 서울 여인들은 비교적 말이 많고 빨라 받아 적기가 힘들고 힘을 빼서 발음해 억양에 변화가 적어 타지인들은 구별하기 힘들다고 했다. 또한 도란거려 무슨 재미난 소설 읽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랬던 서울 여인들의 토박이 말투가 지금은 오래된 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말투는 전국 팔도가 비슷비슷해졌다. 모두 같은 고향 출신인 듯 엇비슷한 음색으로 말을 한다(260쪽)

그의 이 글을 읽고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었는데,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난 목소리가 엄청 컴플렉스이다.

이젠 아들이 제법 커 그런 일은 없지만, 환자를 앞에 두고 어린 아들과 응급 상황일지도 모르는 전화 통화라도 하려고 하면, 대부분의 남자 환자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애인'이랑 통화하냐며 관심을 보인다.

내 말씨가 곱고 사근사근하다 못해, 다정다감해서 애교가 뚝뚝 떨어진단다는 거다.

이런 목소리의 컴플렉스가 내게 주도적으로 나서서 말을 하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습관을 만들어주어, 그나마 일을 하는데 있어서 플러스로 작용한다고 자위하곤 했었는데...사석원의 글을 읽고보니 나만 그런게 아니고 전반적인 서울 여인들 말씨의 특징인가 보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컴플렉스'로 여길 것까지는 없었을텐데 말이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사석원이 썼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내겐 의의가 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내가 40년이 넘게 몸 담고 살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서울을 좀 자세히 알아보자는데에도 의의가 있다.

 

사석원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최북'과 마찬가지로 손철주를 통해서였다.

그 후 사석원의 그림과 글들을 꾸준히 접했다.

그림이야 내가 좋다고 설레발을 치던 그런 풍의 그림인 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글은 조각글로만 접했던게 고작이었기에 그의 문체나 작풍에 대해서 느낄 사이가 없었다.

다시 말해, 글을 이렇게 맛깔나게 쓰는 줄 미처 몰랐다.

그림이 단정하고 깔끔하지만, 다정하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그런 여운을 가지고 있는 그런 것인데 반해,

글은 이렇게 저렇게 눙치고 엉너리 치며 수작을 부리는 품이 천연덕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요번의 것은 그림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뭐랄까, 질펀한 느낌이 드는 것이,

그의 책에 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화류계에서 '쫌' 놀아본 한량의 냄새가 풍긴다고 해야 할까, ㅋ~.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은 이제 옛말인가 보다.

이 책은 처음 맛집 소개로 시작하는 듯 하다가는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듯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듯 하다가, 그림이면 그림, 글이면 글, 음악이면 음악, 두루두루 출중하여 나같은 凡人의 입장에선 마냥 부러워만 하다가 날 새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낱말로 '인복'쯤을 들 수 있겠는데, 그 인복이란 건 이 밑의 글에도 나오지만 상호적인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을 많이 지어야 나도 복을 많이 받는 것이고, 같은 상황을 놓고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면서 한번 더 미소 지으면 행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행복이나 불행은 쪼개진 사과처럼 확연히 나눌 수 있는 별개의 것도 아니지만, 혼자서 다니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행복한 순간, 또는 불행의 정점을 치는 순간 방심한 틈을 노린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아마도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나 봐요!" 내 인생이 남들에겐 부러울 정도로 얘깃거리가 많고 재밌게 비쳐진 것 같다.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감히 말하고 싶다. 삶이란 게 뚜렷한 경계가 있어 행복과 불행이 쪼개진 사과처럼 확연히 나누어져 다른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같은 상황이라도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고 추억이 될 수도 있고 회한이 될 수도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겐 사랑의 도시고 누군가에겐 끔찍한 비정의 도시가 될 것이다. 그것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9쪽, 서문 중에서)

그렇다면...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불행 대신 행복을, 회한 대신 추억을, 비정함 대신 사랑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불끈~! 

 

인복이 상호적인 것이니까 복을 많이 받으려면 복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말로 시작했는데, 이 사람의 그림 재주야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어렸을때 고흐 도록을 보고 꾸준히 모사를 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한다.

글도 문득문득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꾸준히 독서를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종묘'를 언급하면서 최근에 쓰인 소설인 '은교'를 언급하는 것은 단적인 예이다.

음악 또한 중학교때 클래식 연주회를 쫒아 다닐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런 모든 감성이 쌓이고 쌓여 오늘 날의 사석원이란 사람이 만들어 지는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오감을 열고 열정적으로 공감하려 하는 노력, 물론 본인 나름대로는 치열했겠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충분히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삶은 제대로 즐기는 자의 것이다.

ㆍㆍㆍㆍㆍㆍ사춘기의 지적 욕구 때문인지 아니면 겉멋이 들어서인지 고전음악엔 문외한이었던 중학생의 나는 국립교향악단의 연주회를 6개월간이나 정기권을 끊어 빠짐없이 남산 국립극장에 가서 관람한 경험이 있다. 당시 지휘자는 홍연택이란 분이었고 작은 망원경을 준비해 열심히 연주와 지휘하는 모습을 관찰했었다. 그 덕인지 지금도 틈만 나면 고전음악의 향기에 푹 빠져 지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222쪽)

('커피, 치명적 유혹'의 '홍연택 커피-블랙 앤 스위트 블랙'편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참 재밌는 분이다.)

 

암튼, 사람을 기죽게 하는 그의 내공은 음식으로 시작해, 그림, 글씨, 음악에만 국한 되지 않고 급기야 건축에까지 팔을 뻗친다.

샘터는 본래 서울대 도서관 자리. 그 앞으론 개천도 흘렀고 일명 미라보다리도 있었다. 샘터 사옥은 고 김수근 선생의 작품. 선생의 명성답게 명작이다. 담쟁이가 건물 전체를 덮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현재는 선생의 제자인 승효상 선생이 부분적으로 개축을 하고 있다.(119쪽)

난, 불광동 성당을 보고 자랐다. '기도하는 손'모양의 건물은 김수근이 누군지 모르던 그 어린 시절에도 충분히 나에게 영감과 은총을 주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작품은 명성이나 이름으로 얘기하는게 아닌거다.

그가 하려는 얘기가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의도하는 바가 충분히 나에게 전해졌다고 믿고 싶다.

난 '불광동 성당'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춘천 어린이 회관'을 사랑하여 날 따뜻한 날 걷기를 즐긴다.

 

나는 사석원의 그림들을 애정해 마지 않지만,

혹자들은 그의 그림을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이라며...다시말해, 시류나 인기에 너무 편승한다고 폄하한단다.

그 혹자들을 향하여 축하카드가 됐건 땡큐카드가 됐건 마음이 담긴 카드를 보내거나 받고 감동 받아 본적이 있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마음이 담긴 카드를 보내거나 받고 느끼는 감동이야말로, 이 춥고 모진 세상을 건너갈 수 있는  따뜻한 힘과 위로라는 걸 말로 설명해서는 느끼지 못할테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의 그림에서 따뜻함과 위로를 읽고 two thumb up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그의 그림 자체가 얽매임 없이 자유로워 맘껏 상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중광의 그림을 향하여 저속하다며 평가절하하는 이들로부터 그림을 변호할 수 있었던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가 제도권미술 같은데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을만큼 기초가 탄탄하고 떳떳하며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인연을 바라보는 중광의 시각을 나름 해석한 그의 시선도 재미있다.

ㆍㆍㆍㆍㆍㆍ그의 그림은 얽매임이 없이 자유로웠다. 경계를 태연하게 넘나드는 경이로운 작품들이 많았다. 무아지경에서 일사천리로 그린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제도권 미술계에선 중광의 작품을 저속하다며 평가절하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중광은 2000년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 제목은 '괜히 왔다 간다'였다. 그리고 2년 후 입적했다.

  '인연이 있어 괴롭고, 인연이 없어 괴롭고, 만나도 괴롭고, 헤어져도 괴로우니 인연이란 괴로움이 얽힌 그물인가?'(137쪽)

인복과 노력과 실력과 더불어 그를 남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자유로운 상상력.

며칠전에 일본에 놀러갔다온 친구가 기념품이라며 젓가락을 보내줬길래,

내가 '머리에 비녀 대용으로 꽂고 다니다가, 국수나 라멘을 만나면 후루룩, 찝짭~먹으라고?'해서 웃었었는데,

사석원은 비녀를 이렇게 멋드러지게 해석한다. 비녀를 가지고 함부로 농담을 하면 안되겠다, ㅋ~.

  비녀는 순결과 절제의 상징이랄까, '나는 임자 있는 몸이니 넘보지 말라'는 듯 육체의 문에 빗장을 지른 것이다. 단호하고 애틋한 의미다.(149쪽)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의 글이 상상력 만으로 쓰여지진 않았다.

기본기 또한 탄탄하며, 시어를 잘 벼리는 여느 시인이 쓴 시보다 더 아름다운 언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더불어 웅숭깊다.

생각이 넓다는 건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같은 것으로, 멍석을 넓게 깔아 상대가 그 멍석 안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의미하며,

생각이 깊다는 건 자기 안으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속 깊음을 얘기하는 거란 얘기를 들었다.

 

그의 실물을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나도 사석원처럼 나이 먹을수록 사물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웅숭깊은 눈을 닮고 싶다.

종로②

종묘

ㆍㆍㆍㆍㆍㆍ이곳은 노인들을 위한 욕망의 공간이다. 박범신이 소설 《은교》에서 말했지. "젊음이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늙음도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맞다! 노인의 욕망은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그냥 자연일 뿐이다. 종묘공원은 어쩌면 젊은이들보다도 더 뜨거운 노인들의 욕망이 몸부림치며 몸살을 앓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많지 않기에. 절망할 정도로 외롭기에.(196~197쪽)

마지막으로, 서울에 40년을 넘게 살았으면서도 서울의 지리를 몰라 누군가를 만나기라도 할라치면 길을 잃어버릴까봐 노심초사이다. 그래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나 해외에서 온 친구들에게 서울 안내를 하기 위해 내가 외운 레파토리는 한 곳이다.

인사동. 장소가 그리운건 그곳의 사람이 그립다는 그의 논리대로라면, 난 누군가 그리울때면 여러곳을 기웃거릴 것 없다. 무조건 인사동 한곳이면 충분하겠다.

  장소가 그리운 건 그곳의 사람이 그립다는 것.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지금 바람 부는 고은초등학교 담장엔 후배들이 그린 그림들이 예쁘게 장식되어 있다.ㆍㆍㆍㆍㆍㆍ학교 앞엔 벽화도 있다.《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타일로 만든 작품이다. 그래 맞다. 진실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지. 마음으로 볼 줄 알아야지. 지금 서대문도서관 자리는 얼룩 젖소가 풀을 뜯던 목장이었다. 여긴 우리의 영토였는데. 수풀 무성한 언덕엔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친구들은 없다. 여름이면 무악재에서 아카시아꽃 따 먹던 동무들, 그 순수한 눈망울들, 우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갑자기 몰아친 바람에 내 우산이 힘없이 젖혀졌다.(212~213쪽)

 

이제 봄이다.

태어나고 40여년을 자란 서울을, 이리저리 산책이라도 다니며 맘껏 즐겨야 겠다.

만끽하여야겠다.

MP3에 이런 음악 한곡 정도 담아서 귀에 꽂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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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3-14 04:32   좋아요 0 | URL
서울은 전국에서 재개발 아주 많이 하는 손꼽히는 곳이니
길이 늘 달라져서
길을 헤맬 때가 잦을밖에 없지 싶어요.
그래도 봄마실 즐거이 다니셔요~

mira 2013-03-14 15:37   좋아요 0 | URL
요즘 인사동은 너무 원색적이예요. 예전 인사동이 더 좋았었는데 말이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