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은총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이동윤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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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참 아프게 읽었다.

전작 '스틸 라이프'의 경우에도 장르소설이고, 가마슈경감이 등장하는 고로...죽음, 즉 살인사건은 존재했었다.

하지만 읽고난 후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그런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마음이 상처입고 피 흘리는 것 같다.

그동안 내가 고민해오던 선악의 문제-그중에서도 경계가 애매하여 고심하던 절대선이나, 필요악 같은 것들을 일종의 '충격 요법'을 통하여 일부러 경계를 만들고 각인시키려는 느낌이랄까?

 

재작년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시아버지 및 시댁 식구들의 행동과 관련해서 난, 안락사나 품위있는 죽음 따위 들을 놓고 한때 고민했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죽어 마땅하다'거나 '죽음 보다 가혹'한 따위의 인간의 실존과 직접 연결시키려면 사람이 얼마나 모질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이것은 이른바 '입장 바꿔 생각해봐'하는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이 바뀔 수 있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으로,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쩜 내내 고민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요. 전 그녀가 잔인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러면 어떤 대접을 받아야 마땅할까요?"

ㆍㆍㆍㆍㆍㆍ

"그녀는 홀로 지내야 마땅해요. 그게 그녀가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상처 입힌 벌이에요." 그녀는 단호하고 침착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썼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눈물만은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어요."

ㆍㆍㆍㆍㆍㆍ클라라와 마찬가지로 가마슈 역시 사람들에게서 고립되는 것이 죽음보다 훨씬 가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132~133쪽)

세상에 '...해야 마땅하다'는 걸 정하는 건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고, 도덕이고, 관습이고...그런 것들을 만들고 정한 것도 결국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심판할 수 있을 만큼 하늘에 미루어 한점 부끄러움이 없을까?(그러다 보니 생각은 엉뚱하게 헌법재판소장으로 흘러가는데...생각이 길어지니 각설하고...) 

 

여기서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인간의 업보이다.

내 죄의 벌을 내가 받는 것은 업보이고 잉과응보이지만,

부모의 죄를 자식이 대물림하여 벌을 받는 것, 그걸 두고 '업보'라고 하면 안된다는 거다.

왜냐하면 자식은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있는게 아닐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전생' 어쩌고 저쩌고를 믿어버리면 노력이나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이 되고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은 '치명적 은총(a fatal grace)'이지만 이건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의 제목이고, 캐나다에서의 원제는 '동사(dead cold)'였단다.

난 '치명적 은총'이라는 제목만을 듣고 책의 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좀 웃기지만, 내가 타고난 재주 내지는 달란트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은 얼굴도 기억할 수 없는 엄마를 쏙 빼닮았다. 엄마에게 야속한 마음만을 가지고 있는 나 같은 경우에, 나를 꼭 닮은 딸이 태어났더라면 그 딸이 이쁘기만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떠나기 전, 크리가 여전히 여름 원피스와 끈 달린 슬리퍼 차림으로 앉아 있는 거실로 돌아갔다. 그녀에게 담요를 둘러주고 맞은 편에 앉았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잠시 바라본 후 눈을 감았다.

그는 앞으로 괜찮아질 거라고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 그렇게 될거야. 삶은 항상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란다. 세상이 언제까지나 잔인하지만은 않을 테고. 기회를 주렴, 얘야. 삶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니? 기운을 내렴.(162쪽)

오히려 나를 광분하고 흥분하게 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쓸데없는 관심과 오지랖이었다.

우리는 선의라는 탈을 쓰고 너무 다른 사람의 삶에 깊이 개입하려 드는 것은 아닐까?

어차피 사람의 삶이란 누구나 다 사무치고 저리도록 고독하고 외롭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그걸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식에게도 시인하고 가르쳐 주는 편이, 공정한 것이 아닐까?

ㆍㆍㆍㆍㆍㆍ아주 충실한 사람이에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단 한 가지에 투영하거든요. 하나의 관심사에, 하나의 취미에, 한 명의 친구에, 한 명의 연인에, 나는 그의 연인이고 그게 얼마나 두려운지 몰라요."ㆍㆍㆍㆍㆍㆍ"그는 모든 사랑을 내게 쏟아부어요. 나는 그의 꽃병이니까요, 하지만 내게 갈라진 틈이 있다면요? 내가 깨져버린다면요? 내가 죽는다면요? 그는 어떻게 할까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시간에 불행을 대비하라는 말은 어쩜 아이러니 하게 들린다.

하지만 사람은 완벽한 신이 아닌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 책의 누군가에게 치명적 은총이라고 불리울만한 그런 재주를 주셨을 때는, 그에게서 '가장' 소중하고 절실한 무엇인가 하나를 빼앗아 갔다는 말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속내를 모르고 무조건 부러워 할 것도 아니고, 선의라는 탈을 쓰고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려 들어서도 안될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항상 부러워하고 샘을 내느라 한순간도 너무 너무 행복해본 적이,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았던 적이 없는게...오히려 다행이라며 안도할 일인가? 끙~(,.)

"ㆍㆍㆍㆍㆍㆍ. 열렬하게 비위를 맞추려 하고 관계에 굶주려 있지. 게다가 본성은 착한 것 같아."

"착한 사람은 상처를 받기 마련이야. 착한 마음은 깨지기 마련이고, 아르망. 그렇게 되면 공격적으로 변해. 조심해.ㆍㆍㆍㆍㆍㆍ"(172쪽)

 

살인이란 살해된 사람과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얽힌, 굉장히 인간적인 일이다. 살인자를 지나치게 흉물스럽고 기괴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그에게 부당한 이득을 안겨주는 것이다. 아니, 살인자는 인간이고, 매 살인의 기저에는 감정이 깔려 있다. 의심할 바 없이 비뚤어져 있고 뒤틀리고 추악하기는 하지만 분명 사람의 감정이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의 감정이 지나치게 강대해지면 그 감정은 귀신을 만들어내도록 사람을 몰아붙인다.

가마슈의 일은 증거를 모으는 것이었지만 또한 감정을 모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이었다.그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었다.(256~257쪽)

 

내가 루이즈 페니의 전작'스틸 라이프'도 그렇지만, 요번 책 '치명적 은총'을 설레발을 치면서 two thumb up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다소 잔잔해서 장르소설로서의 매력도 떨어지고, 나같은 경우 제목 만으로 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으니 다른 사람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말이다, 이 책에는 치료약이 등장한다는 거다.

가만히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이나 범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이 책 속의 누군가가(오지랖이 아닌)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느낌을 받고, 관찰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느낌을 받고, 감정을 그러모아 다독여 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의 세세한 감정에 맞춤하게 처방되어진 치료약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ㆍㆍㆍㆍㆍㆍ그들을 항상 젊고 아름답게 묘사해 놓은 것을 보는 데 지쳤거든요. 지혜란 나이와 삶의 경험, 고통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거죠."(291쪽)

 

"누군가 당신을 칼로 찔렀다면 당신이 고통을 느끼는 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297쪽)

 

"그들이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군요."(354쪽)

 

"ㆍㆍㆍㆍㆍㆍ그녀가 얼마나 놀라운 예술가인지 온 세상이 알게 될 거예요. 그녀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것들을 보죠. 사람들에게서 가장 큰 장점을 찾아내요."(442쪽)

 

"ㆍㆍㆍㆍㆍㆍ그제서야 나는 단지 말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과 글에서 드러나는 말의 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죠."(453쪽)

 

그리고 이런 '맞춤 치료제'의 근간에는 그들의 배우자의 내조랄까, 사랑이랄까 하는 것들이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피터는 책장으로 다가가, 마구잡이로 밀어 넣어 잔뜩 쌓여 있는 책들을 뒤졌다. 그는 자서전에서 시작하여 소설과 문학 부분 을 지나 역사 분야에 이르기까지 제목을 훑어 보았다. 꽤 많은 추리소설이 있었다. 그리고 시집도. 욕조 안의 클라라를 흥얼거리거나 신음하게 만드는 멋진 시들이었다.  대부분의 시집들은 얇고 젖은 손으로도 잡기 쉬웠기 때문에 욕조야말로 그녀가 시를 읽기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시는 그가 원했던 방식대로 그녀를 애무했다. 그녀 안에 들어가 그녀를 어루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를 신음하게 했다. 그녀의 신음 소리는 모두 그의 것이어야 했다. 피터는 아내에게 그러한 줄거움을 안겨주는 시를 질투했다. 그러나 그녀는 해흐트나 애트우드, 안젤루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에이츠를 읽으면서도 신음했다. 오든과 플레스너를 읽으며 기쁨에 겨워 신음 소리를 내면서 읊조렸다. 그러나 그녀는 가장 좋아하는 시인의 자리를 루스 자도를 위하여 남겨두고 있었다.(160쪽)

 

  "아, 집에 오니 좋네."그는 그녀를 끌어안고 코트 사이로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느끼며 키스했다. 두 사람 모두 처음 만났을 때보다 살이 올라 있었다. 양쪽 다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을 더 이상 입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면에서도 역시 성정했고, 가마슈는 살이 붙은 것 정도는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인생이란 사방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가마슈는 현재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렌 마리는 그를 다시 안아주었다. 그의 코트는 눈을 맞아서 그녀의 스웨터마저 축축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서 커다란 위안을 얻었으니까.(168~169쪽)

 

 

 

 

'스틸라이프'와 '치명적 은총'의 역자가 다른 사람이다. 왜 바뀌었을까?

요번엔 작품에 별을 여섯개, 번역과 교정에서 하나 이상을 깎아 먹었다.

그래서 별 다섯.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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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3 12:50   좋아요 0 | URL
저는요, 사람이 죽을 때 점점 연해져서 (물리적으로 말입니다) 흐릿해져서 점차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센과 치히로에서 치히로가 그 세계에 처음 가서 몸이 흐릿해질 때처럼 말이죠.
말도 안 되는 얘기 해 봤습니다.

P.S. 이 글은 좀 있다 읽겠슴다. 아직 안 읽고, 댓글로 뻘소리만 한 마디~

antibaal 2015-01-08 06:50   좋아요 0 | URL
궁금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때문에 더 읽고 싶네요

양철나무꾼 2015-01-08 09:22   좋아요 0 | URL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