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적는 얘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약간의 가감이 있음을 밝혀둔다.

다만 줄거리나 내용의 가감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감정 절제이다.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재조명하려고 하였으나,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기억력이 다소 감퇴하였고,

그녀도 사람인지라 쪽 팔린게 무엇인지를 아는지라...

다분히 미화하였을 수도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화를 바탕으로 사실에 가깝게 접근하려 노력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시간을 거슬러 흰눈이 펑펑 운치있게 내리던 며칠 전,

그녀가 사는 집은 산꼭대기, 다시 말해 언덕 위에 있는 저층 아파트이다.

폭설에 택배차가 오르지 못한다고 하여,

어렵게 어렵게 접선하듯 하여 귀하게 받은 택배 꾸러미를 풀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초록색 식물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살아있는 것,

생명이 있는 것에 쉽게 정을 주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얼마전에 친구에게 받아 키우게 된 '로즈허브'에 재미를 붙이자,

동료며 친지들이 여기저기서 탐을 냈고,

그 얘길 전해 들은 친구가 특별히 신경쓴답시고, 유독 싱싱하고 똘망똘망한 것들로 골라 몇 녀석 더 보내주었던 것이다.

룰루거리며 택배 꾸러미를 풀던 그녀는,

'으악~'하고는 저층 아파트가 무너져내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하느님, 부처님, 천주님, 신령님, 천지신명님, 아버지, 엄마, 온갖 종류의 구세주 이름은 다 불러 보고...

직장 때문에 늦는 남편과 야간 자율학습에 늦는 아들을 괜히 속수무책이라고 야속해 했다.

가까이 사는 남동생한테 전화를 했더니 술이 한잔 걸쳤는지,

"누나, (이제 세돌이 막 지난) 우리 둘째 보내줄까?끌끌~"하며 놀려 먹는다.

생각다 못해 해충박멸 어쩌구 하는 사이트에 전화를 했더니,

말 그대로 해충에 대해서만 수습을 해주는데,

그것도 업무시간 외 라는 상투적인 답변인 거다.

"사람 목숨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어떻게 안되겠느냐?"고 통사정을 했더니, 주소를 대보란다.

주소를 듣던 전화기 너머에서,

"그거 산꼭대기에 있는 아파트죠? 거기 오늘 눈 많이 와서 차 올라 다닐 수 있어요?"한다.

"아니요~--;"

택배도 007접선하듯 받은게 그제서야 떠오를게 뭐람~(,.)

 

다음날 직장에서 점심을 먹으며 그 얘기를 하였더니,

점심을 같이 먹던 한명은 웃다가 턱관절(T-M joint)이 빠져 다시 맞춰주는 수고를 해야 했고,

다른 한명은 '드림파마'라는 제약회사를 대야 해야 하는데,

어이를 상실한 사람처럼 '아놀드파마'라는 의류 메이커를 대며 전화 연결을 했다.

 

이쯤되면 로즈허브에 들어있던 괴생명체를 다들 바퀴벌레 쯤으로 상상하는데,

그런데 괴생명체는 더듬이 있는것만 닮은 달팽이 되시겠다.

 

그 괴생명체가 바퀴벌레 따위가 아니라 달팽이라는 걸 안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참 가지각색이었다.

그녀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그녀가 어떤 당혹감을 느꼈고,

심지어 삶의 위협을 느꼈는지, 는 그 즈음이면 사람들의 안중에서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처음에 에 대해 잘 못랐을 때는 세상의 무시와 푸대접에 반발하여 잡초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피했지만 지금은 그런 몰이해의 역사마저 다 끌어안고 좀 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 안에 잡초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의식도 없는데 굳이 단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단어 하나를 바꾸어 사람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난 10년 동안 나는 의식의 변화가 아니라 유행의 변화를 목격했을 뿐이다.(5~6쪽)

굳이 단어가 주는 선입견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풀이 되었든 잡초가 되었든, 어떤 부정적인 의식이 없다면 단어에 얽매일 필요가 없듯이...

그 괴생명체가 바퀴벌레가 되었건 달팽이가 되었건 간에,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당혹감으로 호흡곤란이 왔고,

숨이 막혀서 삶의 위협을 느꼈고,

그렇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내겐 얼마든지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얘길 '황대권'님은 '고맙다 잡초야'에서 이렇게 풀어내고 있다.

 

 

 

 

 

 

 

 

고맙다 잡초야
황대권 글.그림 / 도솔 /

2012년 10월

 

 

 

꼭 농사일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농사짓는 사람들은 수확을 하고 나서 자신이 다 이룬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노동의 강도가 세고 날씨와 기후변화에 애를 태웠기 때문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을 것이나 착각일 뿐이다. 애착 또는 집착을 공(功)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농사는 근본적으로 자연이 짓는 것이며 인간은 다만 그 과정에 이런 저런 방식으로 개입할 뿐이다. 자연의 공(功)으로 농사가 이루어지는데, 그 공(功)의 주체인 자연의 본질은 공(空)이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공(空)으로서의 자연을 이해할 수가 없다. 텅 빈 가운데 무한한 조화를 부리는 자연의 공능(功能)을 믿고 그에 맡기면 다행히 굶어 죽지는 않는다. 굶어 죽기는 커녕 신선의 경지에 올라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살 수 있다. 최초의 자연농업의 원리를 세상에 밝힌 후쿠오카 마사노부 옹의 농사철학이다.

나는 다만 조연이나 보조자에 불과한데 내가 마치 주인인 양 모든 일에 노심초사하며 일희일비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보조자는 보조자답게 주인이 하는 일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내가 그렇게 애를 태우고 수고한다고 해서 자연이 하는 일에 무엇 하나 더 보탠 것이 있었던가? 비료를 주어 수확이 늘어났다고? 그것은 하나를 얻기 위해 열을 잃어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벌레를 잡아주어 수확의 감소를 막았다고? 그것은 벌레를 매개로 작동하는 자연의 공능을 알지 못해 하는 소리다. 내가 잡은 벌레가 나비의 감소를 가져오고 나비의 감소가 꽃가루 수정을 감소시켜 농장 전체의 수확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물론 꽃을 보지 않고 매년 종자를 사서 쓰는 농부에게 이런 말은 황당하게 들릴 것이나, 엄밀하게 말해서 종자를 사다 쓰는 농부는 농부가 아니라 농업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물을 주어서 말라죽지 않게 했다고? 들에 핀 야생화와 숲 속의 나무는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잘 자라는데 누가 물을 주었을까?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내가 무엇 무엇을 했다'는 자의식이다. 이 자의식은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의 토양이기도 하지만 심하면 허위의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미 보조자의 역할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것 자체가 허위의식인데 거기에 하나를 하고는 열을 했다고 풍을 친다. 사실 겸손이라는 말은 유한한 존재인 사람 앞에서보다 자연 앞에서 더 필요한 덕목이다. 말 못하는 자연 앞이라고 오만에 빠져 제멋대로 굴다가 낭패를 당한 인간 지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손자병법에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는데 무한한 공능을 지닌 자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가 다한 것처럼 착각에 빠져 있으니 어찌 위험에 빠지지 않으리.(117~118쪽)

 

그 출발점으로 '경물의 생활화'를 제안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물건이 가지고 있는 영적 차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물건들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경천애인'은 저절로 될 것이다. 하늘과 사람은 물건보다 훨씬 소중한 존재로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건이 그러한 모심의 대상이 되냐고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설명할 것 없이 조용히 손을 잡고 박물관이나 사원으로 데려가자. 어떠한 물건이든지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 그야말로 '물건'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84~85쪽)

 

'내가 누구다', '내가 무엇 무엇을 어떻게 했다' 따위의 자의식은 대상이 다를때 뿐만 아니라,

같은 대상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사물, 기타 등등과의 비교를 통하여 우위의 순위를 매기기 때문인데...

이 모두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우월주의'의 산물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우월주의에서 탈피하는 순간에서야...

남을 위험에 빠뜨리면 자신도 위험에 빠진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늘 위험을 느끼는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옷을 벗어던짐으로써 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스스로를 유약하게 만들어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유약해진 나는 예전처럼 함부로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나를 지키기 위해 좀 더 세심하게 주변을 살펴보게 된다. 이렇게 상대방과 동등한 관계를 맺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면 어느 순간에 자연이 벌거벗은 나를 보호해준다는 느낌이 든다.(21~22쪽)

하는 구절이 설명이 되고,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가 제시하는 우리시대 최고의 자연회귀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먹기 | 음식이 밥상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음미하여 되도록 오래오래 씹는다.

볼일 보기 | 인도식으로 손에 물을 묻혀 씻으며 땅과 똥과 나를 일치시킨다.

옷 벗기 | 옷은 그저 피륙이 아니라 의식과 행동을 지배해온 거대한 관념이다.

추위 | 인류의 미래는 추위를 견디는 힘에 달려 있다.

운전 | 타이어의 진동과 떨림을 모두 느끼며 알아차린다.

절하기 | 허리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반복한다.

종사 | 자연농업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무이한 농법이다.

건강 | 방법은 오직 하나, 우리 몸을 자연의 질서에 맡기는 것이다.

노동 | 반복되는 단순노동을 통해 '거짓 나'가 소멸되는 느낌을 체험한다.

소통 |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다 보면 공감대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란다.

 

이것은, 다시말해 인간우월주의의 탈피이고...

다시말해 경물의 생활화이다.

우리가 애정과 관심을 갖는 그 순간이 물건이 '물건'으로 거듭나는 순간이고,

나는 경물의 숭배라고까지 얘기하고 싶지만,

그 순간 경물 우월주의로 변해버리고 아쉬울 따름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 씹는 행위만 해도 그렇다.

음식물을 입 안에 넣고 씹을 때에 온 신경과 에너지를 씹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라즈니시 말투로 하면 '씹는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단다. 그걸, '비는 단지 흔들어댈 뿐이지만 나의 입 속에서는 격렬한 파괴와 창조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29쪽)' 라고 너스레를 떨고있다.

 

볼일보기, 옷 벗기 등 자연과 물아일체를 넘어선다.

내가 자연과의 연애를 얘기하는 건 들어봤어도, 자연과의 섹스는 또 처음이어서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순간적인 오싹함 뒤에 오는 따스함의 쾌감을 꽤 긴 시간 동안 맛보면서 섹스할 때의 오르가즘과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운우지정이라 하여 남녀 간의 사랑을 자연의 움직임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날 나는 자연과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엇다고 생각한다. 따로 안식처를 찾지 못한 나는 적극적으로 자연을 향해 구애를 했고 자연은 - 물론 말 그대로 '늘 그러함'이었지만 -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애와 유사한 쾌감을 느꼈다.(51쪽)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던건,

반복되는 단순노동을 통해 '거짓 나'가 소멸되는 느낌을 체험한다는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은 어느 순간까지는 맞지만,

흔히들 명상이라고 하면 정적인 모습만 떠올리는데 매우 격렬한 동작일지라도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히 관(觀)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명상이 된다. 사실 도끼질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근력이 있어야 하고 연습도 필요하다. 무작정 휘두르다간 다치기 십상이다. 조급한 심정에 서투른 솜씨로 함부로 달려들어서는 장작은커녕 헛되이 기운만 쓰고 마음은 전보다 더욱 어수선해지고 만다.

ㆍㆍㆍㆍㆍㆍ도끼날과 나뭇결이 일직선이 되게 놓되 마치 제단 앞에 예물을 바치듯이 정성스럽게 놓아야 한다. 통나무의 심사를 최대한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다.바야흐로 통나무가 갈가리 쪼개지고 온몸에 불이 붙어 하늘나라로 올라가려는데 그만한 예의는 지켜주어야 한다. '예의'라고 했는데 사실은 나와 통나무 사이의 주파수를 맞추는 조율과정의 하나다. 통나무를 단단히 세워놓았으면 그 앞에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서서 호흡을 고른다. 도끼를 휘두르는 기술이나 완력보다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통나무와 나의 주파수가 일치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도끼를 휘둘러서는 안 된다.(56~57쪽)

그 순간을 넘어서면 타성에 빠지게 된다.

타성에 빠지는 순간을 넘어서면, 그 다음에 '거짓 나'가 소멸되는 느낌을 체험할 수 있으려나?

아직 나는 갈길이 멀기만 한가 보다.

(난 한때 이걸 갖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언젠가 올렸던 '그녀의 취향' 링크

다만, 나와 통나무 사이의 주파수를 맞추는 조율 과정이야말로

사람이고 사물이고 자연이고 간에, 경계를 넘어서는 소통인듯 여겨져서 눈여겨 보고 귀담아 듣고...나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

 

난 그러고 보면 공감이나 소통이란 말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나 보다, ㅋ~.

 

차와 일체가 되면 도로 표면의 요철 상태에 따라 미세한 떨림이 지속적으로 전해온다. 바로 이 순간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이 진동과 떨림에 일일이 반응하도록 노력한다. 가령 차가 덜커덩하고 위아래로 흔들리면 그에 따라 몸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준다. ㆍㆍㆍㆍㆍㆍ계속 이렇게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다 보면 어느덧 차체와 혼연일체가 됨을 느낄 수 있다. 일단 하나가 된 뒤로는 제법 큰 흔들림이나 방향 전환이 와도 별 어려움 없이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ㆍㆍㆍㆍㆍㆍ

주행과 흔들림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잊고 있었던 호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왜 처음부터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가 하면 호흡은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상을 한답시고 억지로 호흡에 신경을 쓰다 보면 의식이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제는 차와 일체를 이루었으니 전신 호흡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전신 호흡이란 온몸의 주의를 기울여 최대한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되 더 이상 들이마실 수 없을 때까지 숨을 들이켜고 더 이상 폐에 공기가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숨을 내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숨을 쉬자면 온몸의 근육과 신경 - 특히 배 부분 - 을 온전히 동원해야 한다.(69쪽)

 

위 구절처럼 차와의 혼연일체를 잠깐 시험해 보려 했었다.

바로 좌절을 하고 말았는데,

스스로 '한 섬세한다'고 자처하던 나조차도...

차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떨림에 일일이 반응하려고 노력하는게 여간 힘들고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차와 혼연일체는 고사하고, 영혼의 육체 이탈, 흔히들 말하는 멘탈 붕괴를 먼저 경험하겠는지라 접어 버렸다.

다만 마음을 바치고 모으는 모든 일의 근간은 '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다시말해 공감이나 소통은 마음 바치고 모으는 일, 주파수를 맞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다.

'어떤 날'의 '출발'어디에선가 나왔던 구절이기도 한데...

이제는 세월이 한참 흘러 잊어버렸는데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있어야 할 게 제자리에 있는거다...뭐, 그런 가사였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자랄 때 신은 그것이 있어야 할 정확한 자리를 정해준다. 각 생명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을 때에 가장 행복하고 또 번성한다. 각 생명뿐 아니라 그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 다른 생명들도 그렇다. 무한한 생명의 바다에서 생명들은 대단히 복잡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데 어떤 상태의 관계에 있을 때 각 생명이 행복한지 신은 알고 있다. 개별 생명이 그 자리를 찾아갈때 그것은 번성(행복)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시들어갈(불행할)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충실히 따르는 뭇 생명들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찾아감으로써 삶의 의미를 완성한다(또는 자아를 실현한다). 사람들은 흉측하게 생긴 동물을 보고 진저리치면서 신이 왜 저런 걸 만들어 사람을 놀라게 하는지 의아해한다. 반대로 쓸모 있는 동식물을 보면 이들이 모두 인간을 위해 태어났다고 멋대로 생각한다. 둘 다 터무니 없는 인간 중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이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고, 세상에 태어나면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이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할 때가 아니면 인간에 의한 부당한 간섭이 주원인이다.(96~97쪽)

 

난 이 책의 저자처럼 원시수렵시대의 자급자족을 꿈꿀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1순위도 아니고 0순위 되시겠다.

다만 인간이 전지전능하다는 생각은 적어도 버려야 한다.

인간을 위해 태어난 동식물만이 쓸모있다고 생각하는 인간 중심 주의적 사고방식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적어도 겸허해 진다.

뭇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

숙연해진다.

 

내가 '공감과 소통', '대화와 소통'에 목숨 거는줄 알았는지...이런 책이 내게 왔다.

 

 

 

 

 

 

 

 

 

가짜 우울
에릭 메이젤 지음, 강순이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12월

 

 

제목은 '가짜 우울' 이지만,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은 '우울증은 정신장애가 아니다'는 것이다.

앞으로 멀지않은 언젠가...

정신건강 사업 팀이 생길지도 모르고,

대형할인마트의 우울증 코너에 가서,

점원에게 치료프로그램을 OX 또는 사지선다형으로 선택해서 상담받듯 처방받아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단다.

실은 이 책에서는 '만들어진 정신장애'라는 말을 벌써 쓰고 있으며,

이것은 이윤을 많이 남기는 '이름짓기 게임'일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울증이란 정신장애와 정상적인 슬픔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할텐데...

책의 한구절을 옮겨보자면 이렇다.

5.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이 어떤 느낌이고 우울증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고 주장하고, 그 두가지가 완전히 다르다고 확신한다. 이 사실이 우울증이 정신장애라는 증거 아닐까?

 

아니다. 그들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어떤 사람은 그 차이를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슬픔은 살갗이 벗겨진 듯 얼얼하고 쓰라린 느낌인 반면, 우울증은 마치 눈으로 만든 장갑과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서 왜 이렇게도 삶의 온기와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지 알 수 없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느낌이 더 안 좋거나 다르다고 해서 정신장애라고 할 수는 없는일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은 베란다의 흔들의자에 앉아 앞뒤로 흔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러나 롤러코스터가 위를 뒤집고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고 해서 장애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 책이 우울증을 정신장애라고 부르는 것에 딴지를 거는 것 쯤으로 끝났더라면 그저 그런 책이 되었을 것이고,

내가 이렇게 설레발을 치면서 소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울증이 정신장애인지 아닌지...에서 부터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시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변증법을 택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언젠가, 리뷰로 쓸 날이 오겠지만...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문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해서이다.

어떤 해결책을 답으로 얻었는지는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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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2-20 07:52   좋아요 1 | URL
'어떤' 농사꾼은 당신이 모든 일을 다했다고 우쭐해 할는지 모르지만,
제가 살아가는 시골마을 이웃 어르신들한테서는 그런 모습을
조금도 느끼지 않아요.

황대권 님은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요.
어차피 이 책은 도시사람이 읽을 테니,
도시사람들한테 무언가 일깨우려고 그렇게 '빗대어 보는 이야기'로 썼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농사꾼은 '모든 사랑'을 들여서 흙을 만집니다.
스스로 모든 사랑을 들여 흙을 만져 얻은 곡식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활짝 웃는 일이란,
참 아름답다고 느껴요.

아름다운 웃음은 사랑이요,
이 사랑이 있어 곡식도 열매도 한껏 무르익을 수 있구나 싶어요.
사랑받는 곡식은 더 잘 자라고,
사랑 못 받는 곡식은 알곡이 작기 마련이에요.

농사꾼은 '아무것도 안 하는 보조자'가 아니라,
농사꾼은 '스스로 무엇을 한다는 생각' 아닌 '사랑을 온통 바치는'
아름다운 '길동무'라고 느낍니다............

아무개 2012-12-20 08:30   좋아요 1 | URL
저는 오늘 '진짜 우울'하지만 <가짜 우울> 보관함에 담고 갑니다.

프레이야 2012-12-20 08:40   좋아요 1 | URL
님, 황대권의 저 책 소개하는걸 들은 적 있어요. 야생초편지 이후 반갑더군요. 저도 가짜우울 담아가요.

2012-12-20 15:08   좋아요 1 | URL
황대권님 너무 도인처럼 되어 버리셨어요. 아니, 뭐, 제 개인적인 느낌..^^

북극곰 2012-12-24 17:09   좋아요 1 | URL
나무꾼님~
내일이 크리스마스라도 제게는 별만 다를바 없는 휴일이지만 ^^
즐겁게 보내세요. 눈도 온대잖아요. 예쁘겠다.
남쪽나라에서 와서 그런지 눈이 온대면 저는 괜히 설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