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검루수필
백검당주.양우생.김용 지음, 이승수 외 옮김 / 태학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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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검당주, 양우생, 김용이 쓴 수필 모음집이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잘못 구입한 책 되시겠다.

책이 별로여서가 아니라, 내 능력 밖의 책이어서 과분하다.

한때 중국 무협 소설을 즐겨 읽었었다.

중국 무협의 세계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김용이라는 이름만 봐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여서 구입했지만,

이 책은 내게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

근데 찬찬히 읽다보니,

이 어려움은 낯섬이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1950년대의 삶이나 문화에 대해서 얘기하면 그것들이 낯설고 이질감이 느껴지게 마련인데,

이들이 활동하던 1950년대에 쓰여진걸 오늘날, 대한민국의, 내가 읽으니 더 더욱 그렇다고 자위하면서 읽었다.

 

암튼 중국 무협 소설의 향수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맨 처음 '역자 서'를 읽으면서 감동하였는데,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과 노고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고고한 품격 같은 것이,

뭐랄까, 팔뚝에 소름이 돋는듯한 서늘한 상쾌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여러 명이 편역했다고 되어있는데,

내가 이쪽으로 지식이 부족하여 평가를 할 깜냥이 안되니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편차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고르게 다 좋았다.

 

아는 내용은 집중하여 읽었고,

모르는 내용은 어쩔 수 없이 설렁설렁 읽었다.

아무래도 '홍콩 문단의 3검객'이라서 그런지 하나 하나 품격과 깊이가 느껴졌다.

 

김용의 글들엔 어느 정도 기대가 있어서 였을까, 수필만의 매력을 느끼기엔 좀 부족했고,

개인적으로 양우생의 글들이 좋았다.

이런 글은 작가적 통찰력이 엿보인다.

발자크는 귀족생활에 열광했지만, 그의 작품은 귀족을 예리하게 풍자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백작이었지만 농민들 속으로 들어갔다. 부패한 환경은 절대로 양심 있는 작가의 영혼을 옭아매지 못한다.(44쪽, 양우생 편)

 

'김용'의 '수수께끼에 대하여'는 영어와 중국어의 글자의 형태를 가지고 노는 수수께끼에 관한 내용인데,

한자에 대해서 조금만 알고 읽으면 얼마든지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백검당주'의 '시를 읊거나 대련을 짓는 일'에 이런 구절도 나온다.

 

대련을 지을 때는 평측과 허실을 고려해야 한다. ㆍㆍㆍㆍㆍㆍ이 구칙은 매우 엄격하다. 내 생각에, 문자에 기대어 밥 벌어 먹는 사람에게 있어 이런 작은 일에 주의하는 것은 절대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정말 쓰잘 데 없는 것이 아니라면, 마음을 기울여보는 것도 괜찮다.ㆍㆍㆍㆍㆍㆍ저명한 작가 노사는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운문을 섭렵할 것을 권장했다. 중국의 운문이 그만큼 엄격하게 음률에 주의하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이 방면으로 중국에는 허다한 입문서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마음을 두지 않거나 중시하지 않았을 뿐이다.(177~179쪽)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김용의 작품 중 읽지 않은 것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쩜 읽었더라도 합쳐져서 다른 제목을 달고 나와서 모르고 지나간 것도 있는 것 같다.

'서검은구록'은 김용의 최초의 무협소설이라는데,

우리나라 제목은 '청향비'란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 하였다.

기회가 되면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싶다.

'모비 딕'을 힘주어 얘기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양우생 님의 '수학과 논리' 같은 글도 재미있었다.

 

'바둑과 장기' 꼭지의 글들은 누가 썼는지를 막론하고 다 흥미로웠으며,

양우생 님이 '부계'를 설명하는 것도 재밌었고,

'꿈과 이야기' 꼭지의 글은 결국 전부 양우생 님이 쓰셨다.

무협소설을 얘기하면서 '돈키호테'를 언급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기회가 닿는다면 돈키호테를 읽어보고 싶다.

 

처음 낯설어서 진입하기가 좀 힘들었는데,

읽기 시작하니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책 뒤에 역자 소개를 하는 코멘트도 흥미로워 한참을 들여다봤다.

문득 한양대 국문과에 다니는 사람들은 행복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정민 님(정민 님의 책들은 좀 읽었다.)도 계시고,

이승수 님도 같은 한양대 국문과에 몸담고 계시단다.

찾아보니 '거문고 줄 꽂아놓고'란 책이 눈에 띤다.

계속 이런 책만을 읽는다면 머리가 뽀글거리겠지만,

가끔 한번씩 끼워읽기로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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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9-01-11 16:12   좋아요 1 | URL
저는 좌백의 것들을 좀 읽었습니다, ㅋ~.

진짜 젊은 날, 아니 꽃다운 어린 시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참 많이도 찾아 읽었네요.
노년에 독서라...참 좋은데, 아주 좋은데,
전 노안 수술을 하든, 성능 좋은 돋보기를 구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래간만에 추억 돋아서...쓸데없는 농담을 해봤습니다, 헤아려 주시길~^^

transient-guest 2019-01-11 14:28   좋아요 0 | URL
양우생 와룡생 고룡 같은 분들의 작품은 제대로 번역되어 나오지도 못했지만 일단 다 절판되었기 때문에 구할 길이 없죠 너무 아쉽습니다

양철나무꾼 2019-01-11 16:16   좋아요 0 | URL
와룡생, 고룡도 추억 돋는 이름이지요.
그러고 보니 전 김용 것도 몇 작품 못 읽었고,
와룡생, 고룡도 그러하니,
명함을 내밀기가 민망합니다.

절판되었군요, 재출간된다면 구매의사 있습니다~^^

서니데이 2019-01-11 14:55   좋아요 0 | URL
백검당주는 잘 모르겠네요. 아마 우리 나라에서는 작가 중에 김용선생이 제일 유명할 것 같아요.
오늘도 날씨가 많이 흐려요.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9-01-11 16:20   좋아요 1 | URL
저도 끝도 잘 모를 젊은 시절(어린 시절)에 읽어서 잘은 모르지만,
뭐랄까, 삶의 모든 것들이 녹아있는 것 같앴어요.
저도 백검당주는 낯선데,
양우생의 글이 김용보다는 저에게 잘 맞았어요.

네, 날씨는 흐린데 그래도 따뜻해서 살만해요.
님도 좋은 하루보내세요~^^

2019-01-11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5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