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대청소 중이다.

청소라고는 하지만,

더럽고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이 한다는 의미보다는,

정리하고 버린다는 의미에 가깝다.

 

사물에 물성을 부여하고 감정 이입을 해서,

버림 받는 것처럼 여겨질까봐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도 마음 굳게 먹고 제법 잘 정리하고 있다.

다른 건 다 그럭저럭 하겠는데, 책이 낭패다.

책을 하나 둘 정리하다가 정민 님의 이 책을 발견했다.

 [eBook] 스승의 옥편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3월

 

 스승의 옥편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2월

 

정민 님의 책을 제법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만큼 좋았던 책이 없다.

여러 번 들춰본 책이어서 상념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어 골랐는데,

구절 구절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아들 곁으로 내달린다.

 

이 책이 유독 좋았던 이유는 '한문학자'이신 정민 님의 글이라기 보다는,

정민 님의 삶과 사유가 배어있는 일기 글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선현들의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언급도 좋았다.

예전에 읽을때는 스승님의 옥편을 다리미로 다려가며 간수한다는 구절에 집중했었는데,

다시 읽으니 선현들의 옛글에 자신의 삶을 포개놓은 정민 님이 고스란히 읽혀서 이 또한 배울 점이지 싶다.

책의 초반부터 곳곳에서 상념이 널을 뛰었는데,

'마음을 헹구는 일'이란 꼭지에서 이윤영의 문집에 평생 벗이었던 이인상이 지은 제문에서 '와르르' 눈물이 났다.

"오호라. 그대가 나를 버리고 떠난 것은 오직 그대의 육신과 혼백이요, 나를 버리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다만 그대의 마음이다."

첫 줄에 그만 나도 눈물이 글썽해진다. 제문은 계속 이어진다. "그대의 덕은 본받을 만했으니, 빈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세상이 날 어리석다 미워해도, 그대는 사귐을 더욱 도타이 하며, 덕은 외롭지 않은 법이라 했었지. 아아! 지난 30년간, 속마음엔 슬픔이 가득했었네. 책 읽는 즐거움은 때로 책을 덮음만 못 했었지." 가슴속 깊은 슬픔을 나누던 벗을 잃은 상실감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진다.(27쪽)

 

내가 '와르르' 눈물을 흘린 것은 '그대가 나를 버리고 떠난 것은 오직 그대의 육신과 혼백이요, 나를 버리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다만 그대의 마음이다.'라는 구절에서 였다.

예전 같으면 그저 눈으로, 머리로 읽었을 구절인데,

그 마음이 내게 충분히 전해져 어쩌지 못하였다.

 

그동안 세상 참 많은 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안다는 듯 공감을 표하려 했었다.

내가 그 또는 그녀가 아닌데, 그 또는 그녀가 겪은 슬픔이나 아픔을 어쭙잖게 위로한답시고 공감한다고 말하곤 했었다.

이젠 그런 말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말인지를 알겠다.

섣불리 판달할 것도 아니고, 쉽사리 내뱉을 수 있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커다란 슬픔이나 절망에 빠져 있을때는,

그런 위로의 손길이나 공감의 표현이 정말 큰 위안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내가 날마다 따뜻함을 경험하고 있다.

 

처음엔 내게 왜 이런 일이, 우리 부부에게 왜...라는 생각으로 괴로웠는데,

더 무릎을 꿇고 마음을 낮추라는 가르침으로 받아 들이려 한다.

 

어떤 아픔은 묻어둘 수밖에 없으며,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는 수밖에...따위의 말들로 위로하는 수밖에 없음을 알겠다.

한시도 잊혀지진 않는다.

잊혀질 수는 없다.

매 순간 순간 숨쉬는 숨결마다 같이 한다.

내딛는 걸음 걸음, 밥을 먹는 밥공기에도, 자려고 누운 베갯머리에도, 함께 한다.

하지만 무심한듯 일상을 산다.

육신과 혼백은 내곁을 떠났을지라도 마음만은 여기 나와 늘 함께 함을 알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직업이지만,
아들을 향해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자책에,
삶이 참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래도 아들이 엄마의 직업을,
이곳에 독서기록을 올리는 엄마를, 참 자랑스러워 했었던 기억에 손을 놓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여러 분들이 위로해주시고 선물을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거절할 수 있는 선에선 최대한 거절을 했는데,

*****님은 블로그 댓글도 막아놓으시고,

방명록은 확인을 안 하시는 듯 하고,

개인 연락처도 없고,

심지어 선물 수락 메시지까지도 전할 수 없었어서 이곳에 감사의 마음을 남긴다.

 

 

 

 일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 도감
 마스다 유키코 지음, 배혜영 옮김 /

 진선아트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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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1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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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14: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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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3 0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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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4 1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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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1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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